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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춘 지나고 여러 날인데 날씨가 조금도 꺾이지 않았다. 해만 조금 길어졌다. 심학산에 올랐다. 월초에 온 눈이 녹지 않고 그대로 쌓여 있었다. 겨울을 앓고 있는 산속에서 몸져누운 길이 수척하다. 가장자리마다 간호하듯 낙엽이 대기하고 있었다. 길이 훤히 보이는 만큼 뱀껍질처럼 반들반들했다. 골짜기를 끼고 도는 둘레길은 드문드문 응달이었다. 한물간 낙엽이라고 쉽게 생각했다가 어이쿠, 엉덩방아를 찧었다. 낙엽 밑이 얼음이었다.

넥타이를 매던 시절, 연례행사처럼 꼭 도로에서 넘어져야 했다. 모가지를 조르는 만큼 다리에 힘이 풀렸던가. 조급한 성격과 구두 탓도 있을 것이다. 옛날 생각에 싱겁게 젖었다가 또 넘어졌다. 두 번을 거푸 심학산한테 엎어치기를 당한 셈이다. 원하지 않은 동작을 취해야 했지만 기분이 과히 나쁘지는 않았다. 여기에선 넘어져도 나무 곁이다.

오늘은 아이젠을 준비했다. 얄미운 체중을 실은 쇠는 미끄러운 얼음을 날카롭게 파고들었다. 상어이빨 같은 아이젠을 장착했으니 넘어질 뻔, 하는 일조차 없겠다. 그제는 가운데를 피해 가장자리로 쫓겨다니기에 바빴다. 이젠 길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 외려 반들반들한 곳이 눈에 더 들어온다. 일부러라도 그곳을 밟고 싶어진다. 미끄러운 길 안으로 성큼 들어서는데 나의 머릿속으로 뛰어드는 식물이 있다. 그건 질경이였다.

얌전한 식물들이라지만 살아가는 데 치열한 경쟁을 해야 한다. 먹이인 햇빛과 물을 두고 다투는 것이다. 이런 사정이고 보니 역발상으로 인간이 뚫은 길 안으로 뛰어드는 생존전략을 택했다. 그게 바로 질경이다. 이 영리한 식물에게 여기는 블루오션인 셈이겠다.

살아가면서 질경이 한 번 안 밟은 이 어디 있겠나. 많은 스트레스 속에서도 생명력이 질긴 질경이. 줄기는 없고 초여름부터 가을까지 흰 꽃이 자잘하게 피는 질경이. 넓은 잎이 참으로 유연한 질경이. 바람보다도 더한 바퀴나 발길에 짓밟혀도 거뜬하게 먼저 일어나는 질경이. 지리산의 노고단산장에서 노고단 고개로 오르는 길에도 질경이는 무성했다. 올해 지리산 꽃산행 갈 적에는 더욱 나의 고개를 숙이게 할 질경이. 질경이과의 여러해살이풀.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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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