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의 끝인 12월이 밋밋하게 30일로 끝나지 않고 혹처럼 하루 더 있는 게 얼마나 다행한가. 신년으로 연결된 등대처럼 그날이 있어 일년의 마무리를 할 수 있는 게 퍽 다행이다. 무언가 마음을 가다듬어야 할 디딤돌이 필요한 시기에 무엇을 할까. 거제 내도(內島)로 갔다. 구조라 선착장을 떠난 배는 10분 만에 ‘자연이 품은 섬, 내도’에 일행을 내려주었다. “시계방향으로 돌되 쓰레기는 남기지 마시고요. 동백나무, 후박나무, 구실잣밤나무 등 천연 원시림이 끝내줍니더.” 아직도 귓전에 남은 선장님의 구수한 입담.

산의 높이를 재는 기준인 해발(海拔)이 그대로 환히 드러나는 곳을 출발해서 시계바늘처럼 한 바퀴 돌기로 했다. 옹기종기 모인 집에 바닷물처럼 들락날락거리는 주민의 수. 내도에는 자동차가 없다. 당연히 아무런 석유냄새가 없었다. 깨끗한 공기 사이로 세 종류의 길이 있다. 주민이 주로 다니는 마을길과 관광객이 사용하는 해안길. 그리고 염소가 닦아놓은 희미한 산길. 이날도 보았다. 나를 물끄러미 구경하더니 후다닥 절벽으로 뛰어가는 어린 염소 세 마리.

내도 나무를 살피면서 세심전망대를 거쳐 신선전망대에 도착했다. 섬에는 무덤도 물론 있었다. 멀리 외도(外島)가 반짝거렸다. 외(外)에 주목하면서 이 세상 바깥에 대해서도 한번 생각을 해본다. 지금은 말보다는 마음을 관찰해야 하는 시기. 무술년을 가늠하며, 나이를 재보며, 세월의 둘레에 대해서 궁리해 보는 시간.

어느덧 한 바퀴를 다 돌아 희망전망대에 도착하니 이런 팻말이 있다. “시간이 갈수록 젊어지는 참식나무 이야기. 참식나무의 어린 잎을 보면 누런 털이 엄청 많은데 도무지 젊은 기운이 느껴지지 않는다. (…) 참식나무의 털은 시간이 가면 오히려 없어지고 맨질맨질해진다.” 조약돌처럼 흩어지는 나이를 걱정하는 이라면 거제 내도의 참식나무 아래로 올 일이다. 이곳에서 나무의 기운을 쬔다면 나이를 거꾸로 먹는다고 하지 않는가. 남부 해안에 흔하게 도열해 있는 참식나무. 한겨울에도 붉은 열매로 직박구리를 불러들이는 나무. 금으로 칠한 듯 잎 뒷면이 연하장처럼 빛나는 참식나무. 녹나무과의 낙엽교목.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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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