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상은 두 종류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개근상과 기타의 상. 전자가 자신이 자신으로부터 받는 상이라면 나머지는 심사위원들이 결정한다는 점에서 구별된다. 그러니 기타의 상들은 받는 게 아니라 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도 국가적으로 목을 매건만 올해도 우리나라를 비켜나간 노벨상의 뉴스에 이런저런 시답잖은 생각을 얹어놓기도 하면서 문경의 조령산에 올랐다.

세상은 너무 시끄러웠다. 텔레비전을 켜면 쏟아져 나오는 인문학의 교훈들. 도시는 아주 복잡했다. 횡단보도 하나를 건너도 다리에 걸리적거리는 각종 법규와 지시사항들. 오늘은 호젓한 산길로 접어들었으니 ‘하루를 살아도 행복할 수 있다면 그 길을 택하고 싶다’는 어느 유행가 가사에 딱 들어맞는 행보라 하겠다. 신생의 연두색 잎들이 엊그제 같더니 어느새 벌써 붉은 단풍의 계절이다. 한 해 끝에 잎에서 모처럼 벌어지는 잔치.

그간 무성하되 무심했던 잎이었다. 지금 꽃이 사라지고 열매가 뒤로 물러나는 건 그 잎으로 쏠리는 시선을 빼앗지 않겠다는 배려일 것이다. 순서에 따라 이제는 잎들이 주인공이다. 나를 씻기에는 아직 땀이 부족한 것일까. 널찍한 임도를 벗어나 신선암봉으로 가는 가파른 길을 더위잡고 나서야 산이 주는 높이와 깊이를 제대로 섭취할 수 있었다. 따로 주어가 필요 없는 이런 문장도 하나 건졌다. 산에 사네!

오늘 내 눈을 특히 사로잡는 건 투신하듯 일제히 아래로 향하고 있는 나무의 열매였다. 여름에는 꽃다발을 한 아름 안고 있더니 이제는 부상(副賞)처럼 열매를 주렁주렁 달고 있다. 지금 나의 심사에도 꼭 알맞은 그것의 이름은 참회나무. 가장자리가 꿀렁꿀렁 이는 잎은 대칭이고, 짙은 자주색의 열매는 다섯 조각으로 나뉜다. 잎이든, 꽃이든, 열매든 모두가 쩨쩨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 활황하게 피어나는 참회나무. 사계절 내내 산에서 개근하고 있는 나무들만큼 성실한 게 또 있을까. 자칫 가을의 끝자락에서 감당할 수 없는 스산함으로 넘어갈 수도 있는 국면에서 아연 활기를 한 움큼 선물해주는 참회나무. 노박덩굴과의 낙엽관목.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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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