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물어가는 정유년을 인형처럼 일으켜 세운다면 아마도 요즘은 저 밑의 발쯤에 해당되지 않을까. 이 무궁한 시간을 납작한 시계 속에 가둬놓을 수 없듯 일-주-월-년으로 구분한들 시간이 토막 날 일은 없겠다. 하지만 우리는 또 마음이 생겨먹은 모양대로 몇몇 연례행사와 함께 한 해를 보자기에 싸서 기억의 창고로 밀어 넣는다.

오고가는 생각 속에서 재미 삼아 올해의 단어로 ‘명행족(明行足)’을 선택했다. 고려시대 어느 고승의 선시를 읽다가 ‘여래(如來)’라는 말을 만난 뒤끝이었다. 이제껏 그런대로 아는 척했는데 제대로 따지려니 막상 이 글자 앞에서 이응도 모르겠기에 사전을 뒤적이다가 딸려 나온 말이었다. 여래나 명행족이나 모두 부처를 뜻하는 말이다. 신체발부 중에서 어쩌면 가장 낮은 곳에 위치하는 발이 이런 자리의 소용을 얻었을까. 평발임에도 불구하고 진리와 교화를 위해 멀리멀리 돌아다니신 석가모니의 일생도 기리는 함의로 나는 이해했다.

걷는 건 늘 옳았다. 바람이 몹시 부는 산길. 시든 억새가 나부끼고 황소의 두둑한 등허리 같은 능선이 굽이굽이 이어졌다. 보이는 매 순간이 그냥 그대로 심우도(尋牛圖)의 한 작품들. 올해 무슨 공부를 하였던가. 얼마를 돌아다니고 헤매었던가. 눈이 침침해진 만큼 발바닥은 넓어졌는가. 이런저런 싱거운 궁리를 돌부리에 얹어보다가 통도사 뒤 영축산 정상에 드디어 도착했다.

바람도 얼른 지나가고 웬만한 녹색은 모두 사라지고 없는 엄동설한에 홀로 싱싱한 잎을 드러내놓고 있는 식물이 있다. 올해도, 오늘도 긴 꼬리를 감쪽같이 감추는 때라서 몹시도 고맙고 반가운 처녀치마였다. 처음 그 이름을 들었을 때 조금 특이하다 싶어 실물을 더욱 눈여겨보기도 했던 야생화. 처녀치마는 정상 부근의 바위틈에 군락을 이루고 있었다. 추운 계절을 지나느라 지금은 지면에 착 붙어 있지만 이윽고 날이 풀리면 대궁을 쭉 뻗어올려 황홀한 꽃을 피운다.

주름치마처럼 펼쳐진 잎에 곧 도래할 봄기운을 잔뜩 움켜쥐고 있는 처녀치마. 슬피 우는 제자들에게 관 바깥으로 슬쩍 내보였다는 부처의 맨발을 떠올리게 하는 처녀치마. 백합과의 여러해살이풀.

<이굴기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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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