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사는 지구를 물의 행성이라고 한다. 뭍이 넓다고 하지만 물에 댈 일은 아니다. 내가 생활하는 곳은 나무의 터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화장실에 가서라야 안 보이던 나를 잠깐이나마 만져보듯, 내가 담긴 장소에서 조금만 주의 깊게 사방을 둘러본다면 이 세상은 나무들에 의지하는 형국임이 틀림없다 하겠다.

거제도 앞바다에 부부처럼 떠 있는 두 개의 섬이 있다. 그래서 이름도 외도(바깥섬)와 내도(안섬). 그중에서 자연미가 더 물씬한 내도에 갔을 때 이런 점이 한꺼번에 실감이 났다. 섬이라 낮은 ‘물울타리’(함민복)가 둘러쳐졌고 바다에서 조금 나온 땅 위로 나무들이 빽빽하게 자리잡고 있었다.

원시림을 방불케 하는 내도 나무 중에서 특히 보고 싶은 게 있었다. 귀신을 쫓는다 하여 산소 주위에 심거나 관 속에 넣는다는 붓순나무였다. 부산의 유엔공원에서 식재된 것을 만나긴 했지만 자생하는 나무는 본 적이 없는 터였다. 배에서 내려 잘 조성된 일주로를 따라 급격한 비탈길을 오르자, 색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아름드리 동백나무가 호위하고, 대나무가 병풍처럼 둘러쳐진 지형이었다. 눈물처럼 후드득 지는 꽃으로 장식을 하고, 속기(俗氣)를 쫘악 뺀 그것은 무덤이었다. 내 이제껏 본 것 중에서 가장 아름답다 명명해도 좋을 무덤.

화장실에서처럼 비좁은 섬에서 밀착된 죽음을 만나고 갑자기 안목도 좁아진 탓일까. 한 바퀴를 다 돌도록 붓순나무를 놓쳤다. 죽음은 살아 있는 것보다는 언제나 그 면적이 넓다. 원점 회귀하듯 도착한 선착장 부근의 어느 지점. 한 발 삐끗하면 바다로 미끄러지고, 이내 그 어떤 너머로 통하게 되는 곳에서 열매가 주렁주렁 달린 나무를 만났다. 상록수가 우점한 가운데 잎은 지고 열매가 돋보이는 천선과(天仙果)나무였다. 하늘의 선녀들이 따먹는 과일이라 하여 그 이름을 얻었다는 나무. 주머니 없는 옷을 입는 선녀들은 입도 이렇게 작은가. 열매들이 간지럽도록 작다. 표면에 파르스름한 핏줄이 도는 듯한 열매 하나를 입에 넣어본다. 배꼽을 달고 있는 이라면 누구나 맛보다 먼저 생각나는 이가 있을 듯! 천선과나무, 뽕나무과의 낙엽관목.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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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