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는 선생이기도 하다. 말과 행동이 아니라 글을 통해서지만 동시대 사람들뿐만 아니라 앞으로 태어날 사람에게도 후회없는 삶을 살아내도록 도움을 주려 노력하니까 말이다. 기만과 허위에 가득 차 있는 생각을 비판하고 소망스러운 삶을 살아가도록 돕고 있으니, 분명 나는 선생이기도 하다. 가급적 학교에서 제안하는 강연은 빼놓지 않으려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특히 만사를 제쳐두고 가는 것은 선생님들이 요청한 강연이다. 선생이라는 자의식을 가진 내게는 동료들이 부르는 것 같으니, 어떻게 그들의 강연을 거부할 수 있다는 말인가. 또한 그 선생님들이 가르칠 학생들의 수를 생각해보면, 효율도 만점이다. 한 사람의 선생님이 변하면 수십 수백의 학생들도 변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철학자는 항상 사람들을 곤란에 빠뜨려야 한다. 허위와 편견을 깨지 않는다면, 자신의 삶을 반성하는 치열한 노력을 기대할 수 없으니까 말이다. 소크라테스가 철학을 산파술이라고 정의했던 것도 이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아이를 낳을 때, 산모가 아파야 할까, 아니면 산파가 아파야 할까. 두말할 것도 없이 산모가 아파야 한다. 산파는 산모의 아픔을 돕고 아이를 순산하도록 돕는 사람이니까. 그래서 철학자로서 강연을 할 때, 나는 청중들을 아프게 한다. 아주 곤란스럽게 만들어버린다. 고민과 고뇌에 빠져야 청중들은 스스로를 반성하고, 그것을 해소할 수 있는 자기만의 생각을 낳을 수 있다. 자기의 삶을 닮은 생각을 만든다는 과정은 여러 모로 자기 얼굴을 닮은 아이를 낳는 과정을 닮아 있으니까.

선생님들을 청중으로 하는 강연회에서, 나는 과격한 선택을 그분들에게 강요한다. “선생님이 될 것인가? 아니면 유괴범이 될 것인가?” 처음에 선생님들은 무슨 말인지 의아해하지만, 나의 설명을 듣고 곧 당혹감에 휩싸이게 된다. 아이를 볼모로 돈을 얻으려는 사람이 유괴범이고, 아이들의 미래를 사랑하는 사람이 선생님이라는 설명이 뒤따르니까. 곤혹감이 스치는 얼굴에서 선생님들이 느끼고 있는 서운함과 불만의 마음이 내 가슴에 그대로 전달된다. “저도 선생님이 되고 싶어요. 그런데 학교에서 한 번 당신이 아이들을 가르쳐보세요. 선생님이 되는 것이 얼마나 힘든데. 교장과 교감, 혹은 상급부서에서 요구하는 행정 업무에 지치고, 선생님의 권위를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치부하는 학부모와 학생들에게 둘러싸여 본 적이 있나요.” 왜 모를까, 아이들을 사랑하는 선생님으로 남고 싶은 그들의 열망을, 그리고 현실적으로는 자꾸 자신들을 유괴범으로 만들고 있는 교육 환경에 대한 그들의 절망을.

1989년 5월28일 설립된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즉 전교조는 절망적인 교육 환경을 극복하고 아이를 사랑하는 선생님이 되려는 열망을 실현시키려는 우리 선생님들의 치열한 노력의 결과였다. “교직원의 권리 옹호와 교육 민주화, 참교육 운동 전개!” 물론 우리 선생님들이 주장했던 교직원의 권리, 즉 교권을 오해하지는 말자. 지금 학생 인권에 맞서 교권을 주장하는 일부 철없는 선생님들의 주장과는 확연히 다른 것이니까. 권리는 약자가 아니라 강자의 부당함에 맞서서 주장되어야 한다는 것, 우리 선생님들은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참다운 선생님들이라면 한 번도 약한 학생들 앞에서 교권을 주장하지 않는 것이다. 그것은 선생이기 이전에 인생의 선배로서 해서는 안되는 부끄러운 일이기 때문이다.

우리 선생님들은 단지 직위상 상위에 있는 교장과 교육감, 나아가 교육당국에 대해 교권을 강하게 그리고 단호하게 주장했다. 마마보이는 자신의 아내를 사랑할 수 없는 것처럼, 교육당국에 휘둘리는 순간 선생님은 자신의 학생들을 제대로 사랑할 수 없는 법이다. 그렇다. 사랑 때문이었다. 일체의 정치적 외압을 거부하지 않는다면, 그들이 어떻게 학생들을 온전히 사랑할 수 있다는 말인가. 1989년 이후 지금까지 전교조가 없었다면 정치권력과 교육관료들의 전횡으로부터 우리 선생님들이 어떻게 보호받을 수 있었겠는가. 더 주목해야 할 것은 전교조는 선생님들의 자유로운 연대라는 점이다. 혼자의 힘으로 교사로서의 자긍심을 지킬 수 없으니 선생님들이 서로 뭉친 것이다.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 “아이들 위해 힘겹게 만든 전교조
이 체제는 조용하게 와해 작업 중
선생님을 유괴범으로 만들 것인가”

전교조는 아이들을 제대로 사랑하려는 선생님들, 유괴범이 아니라 참다운 선생님으로 아이들 앞에 서겠다는 우리 선생님들의 든든한 방패막이가 되어 주었다. 그런데 지금 전교조가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해 있다. 권력과 체제로서는 전교조가 여간 거추장스러운 존재가 아니었나보다. 하긴 자신들의 기득권을 정당화하는 이념을 미래 세대들에게 고스란히 전해주고 싶었을 테니까. 최근 체제는 자신의 기득권을 정당화하는 국사 교과서를 채택하려는 후안무치한 행위를 서슴지 않고 있다. 아마 자신을 지지하는 세력을 청년 세대들에게까지 확장하려는 노골적인 야심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어차피 교과서를 선택하는 것도, 그리고 어느 교과서든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은 우리 선생님들이다. ‘교육 민주화’와 ‘참교육’을 옹호하는 전교조가 있는 한, 그들의 시도는 좌절되기 십상이다.

모든 후속 세대들에게도 자신의 정치적 영향력을 관철시키려면, 체제는 선생님들을 통제해야만 한다. 그것이 구체화된 것이 전교조를 법외노조로 만들려는 체제의 시도라고 할 수 있다. 이미 체제는 선생님들의 교권을 조금씩 와해시키는 작업을 조용히 그렇지만 단호하게 추진한 지 오래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아마도 선생님의 비정규직화일 것이다. 기간제 교사를 양산함으로써 체제는 선생님들이 아이를 사랑하기보다 교장과 교감, 혹은 교육당국의 눈치를 보도록 만들어버렸다. 생계의 위협을 느끼는 기간제 선생님들이 어떻게 아이들을 사랑하는 데 매진할 수 있다는 말인가. 진보적 교육감이 일하고 있는 경기도마저 25%의 선생님이 비정규직일 정도로 사정은 심각하다.

기간제 교사는 정규직 선생님이 아니라는 이유로 전교조에 가입할 수도 없다. 결국 전교조에 참여하는 선생님들은 그만큼 줄어들 수밖에 없고, 동시에 노쇠해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정치권력과 교육관료들은 지금 전교조를 무력화시킬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판단한 것처럼 보인다. 하긴 예전에는 꿈도 꾸지 못할 우익 교과서, 그러니까 잘 먹고 잘살게 해주면 모든 것이 통용된다는 식으로 일본제국주의와 유신독재적 가치를 정당화하는 교과서도 노골적으로 지지할 정도니까 말이다. 그렇지만 체제는 심각한 오판에 빠진 것처럼 보인다. 전교조는 체제가 선물로 선생님들에게 하사한 것이 아니라, 우리 선생님들이 치열하게 싸워서 얻는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준 것은 쉽게 뺏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싸워서 얻은 것은 결코 쉽게 뺏을 수 없는 법이다. 어느 선생님이 아이들을 사랑하는 선생님이 아니라 자신의 생계를 걱정하는 유괴범으로 전락하는 것을 보고만 있겠는가. 아이를 사랑하는 어머니는 수십명의 폭도들과도 싸울 수 있는 괴력을 발휘하는 것처럼, 우리 선생님들도 마찬가지다. 어떻게 우리가 유괴범이 아니라 선생님으로 남으려는 선생님들의 싸움을 외면할 수 있다는 말인가. 학교에 유괴범이 득실거리는 꼴을 보지 않으려면, 우리는 선생님들의 외로운 싸움을 방치해서는 안된다. 바로 지금이다. 지금이 우리가 선생님들을 지켜야 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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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