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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 ‘미술’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미술이란 근대에 태동된 새로운 개념이다. 근대 이전에 만들어졌던 것들, 그러나 지금 우리가 미술이라 부르는 것들은 실은 대부분 생활에서 쓰이던 물건들이었다. 그러니 그것들은 크게 말해 민속공예에 해당한다. 따라서 우리 전통 미술의 큰 줄기는 단연 공예인 셈이다. 근대에 들어와 미술이란 개념이 태동된 후 이제 미술은 실생활에 쓰이는 물건, 공예적 차원에서 벗어나 순수시각적인 차원으로 이동했고, 전시가치를 지닌 그 무엇으로 위상이 바뀌었다. 그로 인해 오랫동안 우리들의 삶과 함께해왔던 물건들은 대부분 망실되었다. 대신 공장에서 대량 생산된 값싼 상품들이 이를 대신해왔다. 사라진 것들은 고물이 되어 버려지거나 이후 골동으로 보존되어 기적적으로 살아남게 되었다. 그렇게 오랜 시간이 흘러 전통시대에 쓰이던 물건, 민속 공예품들은 이제 골동품이 되고 더러 뛰어난 미술품으로 새삼 인식되어 박물관에 진열되고 있는 실정이다.

물론 이전부터 서화나 백자, 청자와 같은 고급 고미술품은 진즉에 인정받아왔지만 일상에서 쓰던 물건들, 민예품이 문화재로 등극되기는 대략 1975년이 되어야 가능했다. 우리 민예품의 진가를 일찌감치 알아본 이는 1920년대 조선에 온 일본인 야나기 무네요시로 거슬러 올라가야겠지만 본격적으로는 혜곡 최순우 전 국립박물관 관장의 역할이 지대했다. 그는 1975년 광복 30주년을 맞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한국민예미술대전’을 개최해 아름다운 우리 공예미를 선보였다. 그 전시는 한국 전통공예의 미의식에 대해 깊이 이해하는 결정적 사건이 되었다. 물론 근원 김용준과 수화 김환기 역시 조선 공예미에 일찌감치 눈뜬 화가들이고 이후 권옥연, 변종하, 이대원, 김종학 같은 분들 역시 그런 미감에 뛰어난 안목을 지닌 분들이다. 그러나 최순우 선생이야말로 조선시대 공예의 높은 미의식과 풍부한 공예 소재를 일찍이 인식하고 이를 대중들과 미술사학계에 널리 알리는 데 선구적인 역할을 하는 동시에 이에 각별한 애정을 가졌던 대표적인 분이었다.

올해는 최순우 선생 탄생 100주년이 되는 해다. 이를 기념해 현재 ‘조선공예의 아름다움’전이 열리고 있다. 모두 656점이나 되는 조선시대 공예품들이 전시됐다. 꽤나 알려진 유명 작가의 산수화나 초상화도 좋고 추사의 글씨도 좋지만 무명의 장인들이 만든 이런 소박한 공예품들이 주는 미감은 그것대로 불가사의한 매력이 존재한다. 더구나 그것들은 삶에서 수시로 썼던 것들이고 그로 인해 손때를 탔던 것들이자 실용적인 것이 우선되었으면서도 그 안에 절묘한 조형감각을 비벼 넣어 만든 것들이다. 보면 볼수록 감탄스럽다.

최순우 선생은 우리 전통미술을 극진히 사랑한 만큼 평생 한옥(현재 보존되어 있음)에서 살았고 그 안에 조선시대 민속 공예품들을 부려놓고 그것들과 함께 소박한 삶을 사셨다. 당시 사진을 보면 조선시대 사랑방을 그대로 연상시키는 검소하고 감각적인 방안에는 꾸밈새 없고 간소한 서안과 촛대, 사방탁자와 느티나무로 만든 둥근 재떨이 등이 놓여 있고 벽에는 박수근의 작은 그림이 걸려 있다. 마당 한쪽에는 여러 개의 항아리, 오지그릇이 가득하다. 그런 것들로 단출하고 멋지게 꾸며진 집이 더없이 매력적이다. 이런 게 진정한 의미에서 미술의 생활화일 것이다.

우리 공예품에 대한 빼어난 안목과 미적인 감수성과 감각, 그리고 그것을 탁월하게 표현해내는 매력적인 문장력을 두루 겸비한 동시에 그것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멋을 즐기는 삶을 살다간 최순우 선생의 생의 자취가 새삼 그립다. 지금 이곳에서 미술품과 골동은 투기나 과시욕이 되어버렸고 졸부들의 과시욕으로 변질된 지 오래다. 우리 선조들의 저 빼어난 공예품들의 생활화도 진즉에 사라졌다. 그만큼 멋을 아는 생활문화나 격조 있는 삶도 죄다 없어졌다.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 정부관리라는 이들이 ‘문화융성’을 내걸면서 결국은 기업들 돈을 갈취하고 블랙리스트나 만드는 이런 나라에서 무슨 문화나 예술, 격조 있는 미감 등이 있을 수나 있겠는가? 최순우 선생의 한옥과 그 안에서 소박한 것들과 함께했던 그의 무욕과 미적인 삶의 이력이 더욱 새삼스럽다.

박영택 경기대 교수·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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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