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제5원소>는 200년 후 고층 빌딩이 즐비한 미국 뉴욕이 배경이다. 영화 속에서 브루스 윌리스는 하늘을 나는 택시를 몰고 경찰과 추격전을 펼친다. 하늘을 나는 자동차가 줄 지어 빌딩 사이를 유영하는 모습이 그리 낯설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자동차가 운전자 없이 이처럼 질서정연하게 움직일 수 있는 것은 모두 ‘지능형 교통 시스템’ 덕분이다. 물론 자동차에는 교통상황과 장애물을 인식할 수 있는 고성능 센서가 탑재돼 있다.

지난 5월 카네기멜런대학의 연구원들은 ‘복합센서’라고도 불리는 ‘슈퍼센서’ 기술을 발표했다. 연구원들은 비즈니스 환경에서 주로 사용되는 작은 센서들이 들어있는 디바이스를 개발했다. 슈퍼센서는 네트워크에 연결돼 여러 용도의 센서로 활용될 수 있다. 소리와 진동, 빛, 전자기 활동, 온도 등을 감지할 수 있다. 게다가 복합센서는 사람처럼 냄새를 맡지도 못하고, 촉각을 느끼지도 못하는 AI가 냄새나 촉각을 느끼도록 해 주기도 한다. 흥미로운 것은 복합센서 기술의 소유권이 일부 구글에 귀속된다는 것이다. 구글이 대부분의 연구비를 지원하는 대신 향후 기술에 대한 적지 않은 권리를 소유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번 슈퍼센서 개발의 의미는 한편으로는 향후 4차 산업혁명의 주도권을 쥐고 나아가려는 구글의 개가이기도 하다.

영화 <제5원소> 스틸컷

센서는 사물인터넷이 부상하면서 촉망받는 분야였다. 사실 이미 우리 삶 속에 파고든지 오래고, 보이지 않지만 공기처럼 일상 속에서 흘러다녔다. 홍채, 손목 정맥, 음성, 그리고 안면인식까지 신원을 확인시켜주는 생체인증에도 센서는 활약하고 있었다. 4차산업을 이끄는 로봇이나 드론도 센서에 의해 움직인다. 센서 없는 로봇은 무용지물이다. 로봇에 장착되는 센서는 시각, 청각, 후각 등 오감에 의해 물질이나 외부 상태 변화를 알아차리는 인간의 오감 같은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드론도 GPS 등의 위치측정센서에 의해 목표지점으로 날아간다.

벼랑 끝에서 몰락하던 소니가 재기에 성공한 것도 센서 덕분이었다. 그들은 인공지능 시대의 자율주행차에 집중했다. 자율주행차 한 대에 수 백개의 센서가 탑재된 후에야 비로소 완벽한 무인차가 된다는 사실을 그들은 알고 있었다. 센서는 자율주행차의 가장 중요한 기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람의 표정 등 피사체의 움직임을 감지해 촬영할 수 있도록 하는 애플 아이폰에 탑재돼 있는 ‘이미지 센서’가 소니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미소를 지으면 자동으로 사진을 촬영하도록 하는 것이 이미지 센서 기술이다. 소니는 2년 전 증시에서 공모로 조달한 5조원 대부분을 이미지 센서에 투자했다. 투자는 성공적이었고 그 분야에서는 세계 제일을 자랑하고 있다. 우리는 제대로 된 센서 기술을 갖춘 업체를 찾아보기 힘든 실정인데 말이다. 벼랑 끝에 선 소니는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IT 흐름을 읽고 있었고, 급소를 공략해 재기에 성공했다.

지금까지 태블릿, 휴대폰을 사용할 때 우리는 직접 정보를 찾기 위해 노력해야만 했다. 하지만 웨어러블 기술이 발전할수록 손쉽게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단순히 편리하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정보 습득을 위해 별다른 행동을 취하지 않아도 된다는 이야기다. 이는 정보에 대한 관점 자체를 변화시킬 수 있는 문제다. 인간과 사물과의 정보나 데이터를 주고받는 형태가 변화하듯, 사물과 사물간의 커뮤니케이션은 결국 센서에 의해 마침표를 찍는다. 20년 전 테헤란밸리에서 IT신화를 완성하던 한국 IT기업들의 기개는 어디에 갔는가. 구글과 애플, 아마존은 물론 이스라엘, 인도 하다못해 중국의 IT기업들은 창조와 혁신을 통해 무서운 속도로 달리고 있다. 우리는 지난 4년간 창조경제라는 허울에 씐 채 시간을 낭비했다. 트럼프는 이제 곧 IT분야에 대해서까지 우리를 압박하고 대미협상을 다시 하자고 할 것이다. 구글은 우리의 시장을 잡아먹을 것이고 클라우드 시장 역시 미국의 내로라하는 IT기업들에 빼앗긴다면 한국 IT의 미래는 어두워진다.

우리는 소니에서 부활의 씨앗을 확인할 수 있었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라는 것도 확인했다. 마지막 불씨만 남아있으면 언제라도 재기가 가능하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우리도 큰 그림을 그릴 줄 알아야 한다. 시대의 변화와 흐름을 읽을 줄 알아야 한다. 더 이상 최고의 인터넷인프라나 자랑하거나 삼성의 갤럭시 스마트폰을 자랑하는 데 머물러 있어서는 안된다. 소니 같은 기업들처럼 틈새 속에서 새로운 기업동력을 찾아 나서야 한다. 센서제국이라는 말이 과장이 아닐 정도로 시장의 50%를 장악하고 있는 일본. 이에 대응하기 위해 카네기멜런대학 연구팀을 동원해 슈퍼센서를 개발한 구글. 한국을 둘러싼 IT 환경과 기술들은 무서운 속도로 변하고 있다. 우리의 현실은 초라하다. 우리는 소니로부터 ‘이미지 센서’ 그 자체보다, 사물에 대한 호기심과 탐구열을 배워야 할 것이다. 우리의 IT산업도 언제 벼랑 끝의 소니처럼 될지 알 수 없다. 그리고 지금의 소니처럼 20년 만에 영업이익 5조원이라는 최대 실적을 올리며 재기에 성공할 수 있을지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최희원 인터넷진흥원 수석연구위원·<해커묵시록>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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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