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랄, 이라고 하려다가 착잡, 이라고 말을 바꾼다. 착잡하다. 세상과 거리를 두려고, 하자니 이 또한 너무 거창하다. 기분전환이나 하려고 심학산에 올랐다고 해두자. 나 하나 운다고 세상이 달라지랴. 일산평야에 돌출한 심학산. 드넓은 평지에 홀로 우뚝하기에 그리 높지 않아도 사방의 경관이 툭 트였다. 서해로 귀순하는 한강의 마지막 용틀임이 한눈에 보인다. 강원도 심산유곡에서 출발한 가느다란 물줄기는 많은 동네-대부분 고시(考試) 따위는 거들떠도 안 보는 상식적인 사람들이 모여 사는 터전-를 굽이굽이 거치면서 두툼한 강이 되었다. 직선으로 흐를 줄을 모르는 한강은 한번 더 용틀임이라도 하듯 크게 구부러진다. 그렇게 일산을 둥글게 휘돌아 감싸니 하회(河回) 마을이 달리 없겠다. 강은 결국 바다를 찾아간다고 했던가.

 

춥다. 결빙하였던 한강의 얼음이 둥둥 떠내려와 서해와 몸 섞기 전에 대기하고 있는 게 멀리 보인다. 저건 아마도 서울이 배출한 각종 근심과 걱정덩어리들인 듯, 서초동 출신의 쓰레기도 한몫하고 있는 듯. 이른바 법꾸라지 한 마리가 일으킨 꾸중물이 잠잠해지는가 했는데 법귀족이라 칭할 만한 자들이 활개치는 형국이다. 한강 하구의 얼음들이 유난히 탁하고 불결하게 느껴졌다. 귀족의 정의는 태어나자마자 은퇴한 사람이라던가.

세 글자의 단어를 두 개 내뱉은 뒤 내려가는 길. 며칠 전 ‘한겨레 그림판’에서 본, 가슴이 뻥뻥 뚫린 채 걸어가는 사람들이 떠올랐다. 심학산 둘레길의 배밭삼거리에 서 있는 층층나무가 오늘따라 걸려들었다. 가지가 옆으로 층층이 뻗는 이 나무는 고약한 습성이 있다. 조금이라도 공간이 생기면 가지를 옆으로 벌려 햇빛을 독차지하려고 덤빈다. 같은 종(種)들끼리도 함께 살지 못하고 드문드문 떨어져 산다. 숲속의 폭군으로 불리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는 나무이다.

봄이 되면 가늘고 여린 꽃들이 또 찾아오겠지만 아직은 쓸쓸한 심학산. 찬기운이 승한 가운데 길섶에 희끗희끗한 눈들이 쌓여 있다. “…기침을 하자/ 눈을 바라보며/ 밤새도록 고인 가슴의 가래라도/ 마음껏 뱉자”(김수영) 이것도 분풀이랍시고 애꿎은 층층나무를 몇 대 쥐어박아 보지만 이 더럽고 허황한 기분을 어이할꼬. 층층나무, 층층나무과의 낙엽교목.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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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