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뿔소를 본 적이 있다. 아프리카 케냐에 있는 나크루 호수에 갔을 때이다. 그곳은 세계 홍학 서식지로 유명했다. 마사이 마라 초원에 사는 뭇 동물들을 만나고 나이로비로 향하던 길이었다.

홍학들이 고즈넉한 호숫가를 띠를 두른 듯 분홍빛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깃털들로 자욱한 호숫가를 걷고, 발길을 돌리는 순간, 눈에 들어온 것은 호수 저편, 초원 한가운데에서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는 코뿔소 가족이었다.

코뿔소를 두 눈으로 직접 본 것은 이오네스코의 연극 <코뿔소> 이후 20여년 만이었다. 나크루 호숫가 초원에서 본 코뿔소는 콧등에 한 줄로 뿔이 두 개 솟아난 아프리카 코뿔소였다. 그때까지 나는 뿔이 하나인지 둘인지, 아프리카 코뿔소인지 인도 코뿔소인지 구별할 생각도 못했다. 코에 뿔이 나 있으면 다 같은 것이었다.

과천 서울동물원에서 열린 '먹방베스트 10' 행사에서 흰코뿔소가 과일을 먹고 있다. 연합뉴스

아프리카에서 코뿔소를 만나고 돌아오면서 마사이 청년들이 나무를 깎아 만든 코뿔소들을 구해 왔다. 서재 곳곳에 코뿔소들이 서 있다. 어떤 녀석은 뿔이 하나에다 갈색이고, 또 어떤 녀석은 뿔이 두 개에다 희고, 또 검다. 매일 녀석들과 마주하면서도 나는 이오네스코가 연극에 등장시킨 코뿔소가 아프리카 코뿔소인지, 아시아 코뿔소인지는 여전히 알지 못한다. 이오네스코는 단지 현실에서는 맞닥트릴 수 없는 야수(野獸)의 순간적인 출몰에 코뿔소를 등장시킨 것뿐이다.

코뿔소 대신 카프카의 <변신>처럼 등껍질이 딱딱한 풍뎅이로 탈바꿈시키거나, 카뮈의 <페스트>처럼 오랑 사람들의 건강(삶)을 파괴시키는 병균으로 대체해도 무방하다.

이오네스코는 단편소설로 <코뿔소>를 쓴 뒤, 연극으로 각색해서 무대에 올렸다. 평온하던 일상에 난데없이 코뿔소 한 마리가 나타나더니, 그 수가 점차 많아져, 그곳 사람들 수와 거의 같아진다. 인간이기를 끝까지 싸워 지킨, 단 한 사람을 제외하고. 여기에서 코뿔소란 사람들의 다른 모습인 것. 카프카가 잠자를 풍뎅이로 변신시킨 것처럼, 이오네스코는 단 한 사람을 남기고 모든 사람들을 코뿔소로 집단 탈바꿈시켰다.

모든 사람이 하나의 모습으로 변해간다는 것은 두렵고 소름끼치는 일이다. <코뿔소>는 루마니아에서 태어나 유년기에 나치와 파시즘, 전쟁과 이산의 고통을 겪은 이오네스코의 부조리한 세계 인식을 풍자적으로 보여준다.

<코뿔소>는 20세기 중반에 발표된 소설이자 부조리극이지만, 코뿔소적인 상황은 지금 이곳의 현실에서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깊어가는 가을, 먼 곳에서 도착한 편지처럼 반가운 소식을 접했다. 프랑스 전문 극단이 처음으로 한국을 찾아온다는 것이다. 시월의 마지막은 연극 <코뿔소>와 함께 보낼 것이다. 이번엔 뿔이 하나인지 둘인지, 흰지 검은지, 아프리카 코뿔소인지 아시아 코뿔소인지 알게 될까. 아무렴, 가을이 깊어간다.

함정임 | 소설가·동아대 한국어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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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