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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마포에는 뱀이 곧잘 출현해서 애를 먹이곤 했다. 거기 살던 어떤 이가, 하인이 큰 뱀 두 마리는 잡았다가 그냥 놓아주고 작은 뱀 두 마리는 잡아서 죽이는 것을 보았다. 의아하게 여겨 그 까닭을 묻자 하인이 대답했다. “큰 뱀은 영물이라서 죽였다가 앙갚음을 당할 수 있지만, 작은 뱀이야 그럴 염려가 없지 않습니까요.”

대답을 들은 주인은 생각한다. 그러고 보면 사람도 마찬가지 아닌가. 크게 악한 자는 힘을 장악하고 있어 아무도 건드리지 못하고 작게 악한 자만 큰 벌을 받는다. 크게 선한 자는 잘 알려지지 않고 묻혀 버리는 반면 조그만 선행을 베푼 자는 알려져서 큰 상을 받는다. 잔인무도한 살인을 일삼은 도척은 멀쩡히 천수를 누리는데 좀도둑은 담을 넘다가 잡혀서 찢겨 죽으며, 공자 같은 이도 제대로 등용되지 못해 천하를 떠돌아다녔는데 그저 그런 선비들은 부귀공명을 누린다. 과연 누구를 상주고 누구를 벌해야 하는가?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18세기 후반의 작가 심익운이 지은 <크고 작음에 대하여>라는 짧은 글이다. 그는 젊은 나이에 장원급제하여 문명을 떨쳤으나 당쟁에 연루되어 제주도 유배지에서 쓸쓸히 죽어갔다. 이 글을 옛날의 한 불우한 인물이 던진 삐딱한 불평으로 치부할 수 없다는 게 오늘 우리의 슬픈 현실이다. 작은 악은 가차 없이 처벌되는데 정작 큰 악은 온갖 방법을 동원하여 처벌을 피해가는 기현상은 예나 지금이나 비일비재하다. 선과 악의 가치만이 아니라 힘의 강하고 약함이 개입되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누구든지 죄 없는 자, 이 여인을 돌로 치라”는 일갈은 지극히 약한 이를 위해 던졌을 때에만 의미가 있는 것이다.

일반인이었다면 진즉에 처벌되었을 명명백백한 잘못을 저지른 이들이, 여전히 온갖 궤변을 늘어놓으며 고개를 뻣뻣이 들고 있는 장면을 우리는 연일 목도하고 있다. 그러나 너무 강해서 도무지 어찌해볼 수 없을 것 같던 거대한 악이, 작고 약하지만 선량한 많은 이들의 연대로 만들어낸 힘에 의해서 그 흉측한 민낯을 백일하에 드러내는 장면 역시 우리 눈앞에 있다. 이 땅에 냉혹하게 작동하는 힘의 원리에 굴복하여 이번에마저도 이 큰 악을 제대로 도려내지 못한다면, 앙갚음이 두려워 큰 뱀을 놓아준 하인처럼 뱀이 불쑥 나타날까봐 늘 노심초사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송혁기 |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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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