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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잘 알고 지낸다고 생각한 지인으로부터 충격적인 고백을 들었다. 지금껏 살면서 투표권을 행사해 본 적이 거의 없는데 이번에도 자신은 투표하지 않을 거라고 했다. 정치인들에 대한 우리 모두 공감할 만한 불신과 혐오감을 감안하더라도 나로서는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솔직히 말하면 부끄러워하기는커녕 너무도 당당한 그 태도에 말문이 막힐 정도로 당황하고 말았다.

어느새 오십의 나이였고 일하는 여자였다. 백화점의 이른바 명품 매장에서 일하는 용모 단정하고 야무진 성격의 꽃중년 여성. 산전수전 다 겪었을 것 같은 매니저급이었지만 ‘까칠한’ 부하 직원 때문에 때때로 울기도 하는 여자였다. 취향이랄까 가치관이랄까 뭐 그런 걸 공유할 만한 사람은 아니었지만 난 그녀가 좋은 사람이라는 걸 알았다. 적어도 인간에 대한 예의도 있고 말 못하는 짐승에 대한 연민도 있는 깔끔한 성격의 ‘천생 여자’라고 생각했다.

그 때문에 무척이나 조심스러웠다. 예전 같으면 나보다 나이가 많은 상대임에도 불구하고 “당신의 정치적 무지를 무관심으로 포장하지 말아라. 그건 쿨한 게 아니라 부끄러운 거다”라고 쏘아붙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고 그러고 싶지도 않았다.

제19대 대통령 선거를 19일 앞둔 20일 후보자 벽보가 부착된 서울 종로구 이화동 예술가의 집 울타리 앞을 시민들이 지나가고 있다. 박민규 선임기자 parkyu@kyunghyang.com

더 이상 정치적 태도, 혹은 관점이 다르다는 이유로 그 사람을 야유하거나 조롱하고 싶지 않았다. 역사적 관점에서 대한민국이 그렇게 흘러가서는 안되는 절대적으로 중요한 시기가 왔고 그건 나 자신의 나이도 마찬가지였다. 이 때문에 오래 생각하고 싶었다. 최순실과 박근혜의 경악할 만한 국민주권 우롱사태를 겪고도 아직도 누가 대통령이 되든 ‘그놈이 그놈이다’ 하며 투표권을 거부하는 사람이 있고, 그 사람이 나의 이웃이고 나의 친구이고 나의 가족일 수 있다는 사실을. 고민하고 또 고민하며 내 나름대로 그 해법을 찾고 싶었다.

“그들은 어쩌다 이 세상과 자신을 무관하게 여기며 자신의 소중한 투표권을 행사하지 않는 것을 되레 좋게 생각하는 사람이 되었는가? 과연 그들을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인가? 어떻게?”

생각해 보면 15년 전의 나 자신이 그랬다. 정치에 얼마나 무지하고 무관심했는지 여당과 야당을 구분하지 못할 정도였다. 심지어 남자 친구에게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박종필이 어느 당이냐”고 물었다. 그가 설마 하는 눈초리로 “혹시 정치 제일 오래 한 인간 김종필을 말하는 거냐”고 되물었을 때조차 나는 조금도 부끄럽지 않았다. 그때 내 나이 서른이었는데 그 나이까지 여전히 마감을 핑계로 한 번도 선거에 참여하지 않았고 내가 사는 동네의 국회의원이 누구인지 전혀 알지 못했다. 그럼에도 나는 부끄럽기는커녕 당당했다.

그때 난 이렇게 항변했다. 우리에겐 민주주의 국가에 살면서 ‘선거하지 않을 권리’ 또한 있는 거라고. 보수든 진보든 결국 자기 밥그릇의 함정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시시한 인간들이 모여서 국민 핑계 대며 자기 잇속이나 챙기기 바쁜 정치판을 최소한 ‘인정해 주지는’ 않을 권리도 우리에겐 있는 거라고. 또한 우리가 정치에 무관심한 건 그만큼 정치에 관심 쏟아봐야 좋은 꼴 못 보고 열이나 받을 뿐 인생에 도움이 되는 일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라고. 어디 그뿐인가? 투표율이 높아진다고 해도 제대로 된 정치인을 뽑힐 가능성은 거의 전무하며, 설사 제대로 된 정치인 몇이 국회로 간다 해도 이 웃기는 나라는 예전에 하던 대로 돌아갈 뿐이라고. 그렇게 냉소하며 나는 나의 ‘정치적 무지’ 혹은 ‘무관심’을 항변하며 쿨한 제스처를 취했고, 그 제스처에 얼마간 나 스스로 취해 있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어느 날 문득 깨지고 말았다. 나 자신이야말로 내 일 바쁘다는 이유로 내가 속한 집단의 논리에 갇혀 세상일에 전혀 관심 갖지 않고 있다가 선거철만 되면 느닷없이 멋진 냉소주의자 행세하며 자신의 무지하고도 무관심한 현실 인식, 혹은 현실 참여 태도를 스스로 합리화하기 바쁜 시시한 소시민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아마도 그 기반엔 사랑의 힘이 크게 자리잡고 있었을 것이다. 당시 이제 막 깨어나고 있던 ‘의식 있는 시민의 힘’에 주목하고 있던 지나간 내 연인의 냉철한 비판이 어느 날 내 심장에 비수처럼 꽂혔던 거다. ‘혹시 네가 정치에 무관심한 건 자발적인 선택이 아니라 누군가 그렇게 되도록 만든 것이 아니냐’고. ‘그 누군가는 그래야만 자신을 비롯한 특수한 사람들의 이익만을 위한 정책을 제멋대로 펼칠 수 있을 테니까’ 했던.

그러고 보니 갑자기 ‘사드’라는 키워드가 섬광처럼 떠오른다. 사드는 우리가 북한을 견제하기 위해 필요한 게 아니라,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필요한 거다. 이제 그 사실을 아는 사람은 다 알게 됐다. 그런데도 박근혜 정부는 왜 합당한 ‘딜’도 없이 그걸 한반도에 설치하기로 합의해줬을까? 자기한테 무슨 이익이 있다고? 여하튼 그 때문에 이미 중국 정부의 경제 보복이 심화되고 있고 그 때문에 중국인 관광객이 한국에서 ‘탈탈’ 빠졌고 그 때문에 백화점에서 일하는 당신의 일자리가 흔들흔들 불안해졌다는 걸 나의 이웃사촌인 그녀에게 ‘사랑’을 담아 넌지시 알려줘야 하지 않을까?

정치는 그렇게 당신의 삶과 결코 무관하지 않고, 그놈이 그놈인 것도 절대로 아니니, 안철수와 문재인을 비롯한 주요 대선주자들이 ‘사드’ 문제에 대해서 어떤 관점을 갖고 있는지 무엇보다 먼저 체크해야 한다고. 그런 다음 함께 투표장에 갈 수 있기를 나는 바란다고. 왜냐하면 나는 당신을 좋아하고 당신과 함께 더 좋은 세상에서 살 고 싶기 때문이라고.

김경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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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