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럭에서 내렸다

나쁜 냄새

부품마다 나쁜 생각을 했나보다

 

꽃나무 옆에 한참 서 있었는데

꽃나무 밑동에서도 휘발유 냄새가 났다

 

시계를 보지 않는 이슬과 바람에게서도

시간을 보지 않는 시계에서도

끊임없이 겁나던 두려움에게서도

앞이 보이지 않던 눈물에게서도

먼 길을 함부로 달려온 트럭 냄새가 났다

 

꽃냄새가 되려고

국화가 되었다가

작약처럼 붉기도 했지만

 

나쁜 냄새는 휘발되지 않아

 

내 나쁜 생각 위에 뚫린 창문들을

자꾸 열어

 - 최문자(1943~ )

좋지 않은 생각을 하면 꽃에서도 휘발유 냄새가 나는구나. 나쁜 생각은 해로운 에너지를 발산하니 그 기운이 꽃향기조차 역하게 바꾸어 놓는구나. 갑자기 누군가가 몹시 싫어진다면, 늘 듣던 말이나 별것 아닌 행동이 오늘따라 몹시 거슬린다면, 늘 맛있게 먹던 단골집의 음식 맛이 형편없는 것 같다면, 되는 일이 없는 것 같다면, 혹시 나의 생각에서 나쁜 기운이 나오는 건 아닌지 의심해볼 일이다.

하지만 아무리 잊어버리려 해도 돋아나는 괴로운 기억이 몸과 마음을 들쑤신다면 어찌하랴. 어디서나 아무 때나 그 기억들이 덤벼들어 간신히 평온을 유지하고 있는 마음을 뒤흔들면 어찌하랴. 그 기억의 상처가 한 해에 감정이 가장 사치스러워지는 봄날의 꽃놀이조차 망쳐놓으면 어찌하랴. 착하게 산다고 해서, 한눈팔지 않고 열심히 산다고 해서, 그게 쉽게 아물겠는가. “나쁜 생각 위에 뚫린 창문들을 자꾸 열어” 좋은 기운이 들어오도록 자주 환기하는 수밖에…….

김기택 | 시인·경희사이버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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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