촉촉이 봄비 오시는 날. 이은하의 노래 ‘봄비’가 혀끝을 맴돈다. “봄비 속에 떠난 사람 봄비 맞으며 돌아왔네… 오늘 이 시간, 오늘 이 시간 너무나 아쉬워 서로가 울면서 창밖을 보네, 헤에~.” 꿈같던 만남을 뒤로하고 각자 뒤돌아 살아가는 날들. 소식이 궁금해서 인터넷을 켰다. 판문점 와이파이 비번이 궁금해. 혹시 99882314가 아닐까. 구십구 세까지 팔팔하게 살다가 이삼일만 아프고 꼴까닥 죽으면 좋겠다는 바람. 이렇게 좋은 날 보고 가시지 서두르셨나요. 울 아버지 어머니, 당신 아버지 어머니. 우리라도 오래오래 살아서, 살아남아서 좋은 날 좋은 세상 구경합시다.

“봄비가 되어 돌아온 사람. 비가 되어 가슴 적시네. 오늘 이 시간, 오늘 이 시간 너무나 아쉬워 서로가 울면서 창밖을 보네, 헤에~.” 세상이 온통 파릇파릇, 올챙이 떼 웅덩이 가득 헤엄치고 개구리는 마당에서 담박질. 대나무 식구들은 일가친척 수도 없이 모여 살면서도 무엇이 또 아쉬워서 아기 죽순들을 저렇게 ‘다산’하는 것인지. 정말로 우후죽순. 낳고 낳고 또 낳고, 징하게도 많이 낳아 복작거리며 산다. 빽빽한 대숲. 쓰러지지 않도록 서로 도우며 텅 빈 가난에도 허리가 휘는 찬바람에도 견디고 또 견디는 저들. 대나무를 몇 그루 쪄서 울타리를 보수했는데 금세 그 빈자리에 죽순이 불쑥 올라와 있구나. 누구도 못 이긴다.

울먹이고 외롭던 새. 알을 몇 개 부여안고 빗속에서 애지중지. 아기 새들 눈뜨면 엄마는 진종일 먹이를 물어 날릴 것이다. 나눠 먹으라고 꾸짖으면서 엄한 교육도 마다 않을 것이다. “한 시인이 어린 딸에게 말했다. 착한 사람도, 공부 잘하는 사람도 다 말고 관찰을 잘하는 사람이 되라고. 겨울 창가의 양파는 어떻게 뿌리를 내리며 사람은 언제 웃고, 언제 우는지를. 오늘은 학교에 가서 도시락을 안 싸 온 아이가 누구인지를 살펴서 함께 나누어 먹으라고.” 마종하 시인의 ‘딸을 위한 시’를 읽다보니 99세까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배우게 된다. 강어귀 물살이 일렁이고 소금쟁이 한 마리 지팡이를 짚으며 물위를 헤엄쳐 다가온다. 예수처럼 누구처럼 물 위를 아슬아슬 걸어오는 평화여! 봄비 세상을 관찰하다가 당신 얼굴을 보았다.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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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