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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우들과 함께하는 산책시간이 나는 너무나도 행복했다. 푸른 하늘 아래 봄바람이 콧등을 스치며 꽃내음 화사할 때 환우들이 왁자지껄 떠들며 천진난만한 어린아이와도 같은 웃음을 지으면 나의 마음은 봄에 피는 진달래꽃과 같이 화사해졌다.”

지난달 보건복지부가 연 ‘제1회 정신질환 인식개선을 위한 사회복귀 체험수기 공모전’에 응모한 김태욱씨의 수기 ‘고난이 변하여 나의 소망이 되고’의 한 대목이다.

심사위원으로 참여해 지루한 ‘난관극복기’들을 읽다가 이 문장을 접하고는 자세를 고쳐 앉았다. 그렇다. 정신질환자들도 평범한 이들처럼 봄을 느끼고, 아름다운 꽃을 보면 기분이 좋아진다. 자신의 느낌을 유려한 문장으로 표현할 줄도 안다. 그런 당연한 사실들을 잊고 있었다. 보건과 복지 분야를 취재하면서 정신질환 관련 기사를 곧잘 썼다. 기사에는 차별을 경계하고 비판하는 내용도 습관처럼 넣었다. 그러나 기사와 달리 나는 그들을 다른 존재, 조금은 뒤떨어진 사람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다시 김씨의 수기를 읽기 시작했다. 그는 중학교 때 교통사고로 아버지를 잃고 우울증을 앓았다. 치료를 미루다 16살에 처음 입원했고, 이후 입·퇴원을 반복하다 요양시설에 들어갔다. 병이 호전된 뒤엔 요양시설을 나와 검정고시로 중·고교 과정을 마치고 경기 양주시에 있는 정신과병원에 환자보호사로 취직했다. 지금은 병원일을 그만두고 한국방송통신대에 진학해 행정학을 공부하고 있다. 김씨의 수기는 문장이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내용도 흥미진진했다. 김씨는 어느날 병원에서 새벽 근무를 하다가 장애인 복지카드를 잃어버린다. 사실 그는 병원에 취직을 할 때 정신장애 3급이란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누군가 그 카드를 발견하면 감추고 싶었던 비밀이 만천하에 드러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는 ‘멘붕’에 빠진다. 밤새 병원 곳곳을 뒤지던 김씨는 날이 밝도록 카드를 찾지 못하자 경기도에서 서울까지 택시를 타고 도망쳐 버린다. 김씨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표현했다. “나는 마음이 너무 조급해졌고 어떻게 해서든지 찾으려고 했다. 등줄기에 땀이 흐르고 있다는 것이 느껴지고 입안이 바싹바싹 마를 정도의 간절한 마음은 좀처럼 사그라들지 않았다.”

체험수기라고 했지만 스릴러 소설을 읽는 것처럼 손에 땀이 났다. 어느새 김씨를 응원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다행히 김씨의 수기는 ‘해피엔딩’으로 끝났다. 다음날 김씨를 병원으로 부른 원장은 잃어버린 복지카드를 건네며 “그동안 성심성의껏 일해 준 것과 환자들을 사랑하는 마음을 잘 알고 있다. 괜찮다면, 계속 일해달라”고 말했다. 문제의 복지카드는 간호사실 책상 밑에서 발견됐다.

김씨의 수기는 담긴 내용 외에도 많은 것을 말해준다. 정신질환은 치료가 어렵더라도 무작정 격리해야 할 병은 아니다. 사회가 받아들여주기만 한다면 언제라도 그들은 이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역할을 할 준비가 되어 있다. 그러나 한국 사회는 어떤가. 수기를 읽을 당시는 ‘정신보건법 개정안’이 시행을 보름여 앞두고 있을 때였다. 강제입원 절차를 강화한 개정안을 놓고 각계에서 많은 우려가 쏟아졌다. 그중에는 ‘정신질환자들이 사회로 쏟아져 나와 혼란이 일 것’이란 내용도 있었다. 다행히 지난달 30일 법이 시행된 이후 병원에 있어야 할 환자들이 앞다투어 사회로 쏟아져 나왔다는 소식도, 또 퇴원한 환자들이 사고를 일으켰다는 소식도 들려오지 않았다. 여전히 보완해야 할 점이 많은 법이지만, 정신질환자들의 인권과 우리 사회의 수준은 한 단계 더 올라갔다.

궁금해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심사위원으로서 난 김씨의 수기에 만점을 줬다. 부끄러운 편견을 깨준 답례이기도 하다. 다른 심사위원들도 비슷한 생각을 한 것 같다. 김씨의 수기는 이번 공모전에 나온 79편 중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아 대상작으로 선정됐다.

홍진수 정책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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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