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을 민영화하는 것은 어떨까? 국가가 결혼 공인을 독점하는 것이 아니라 종교단체나 사회단체도 인증을 할 수 있도록 하자는 얘기다. 종교인이라면 교회나 성당, 사찰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종교단체로부터 인증을 받으면 되는 식이다. 커플은 자신들의 필요와 열망에 가장 부합하는 결혼 허가 조직을 선택할 수 있다. 성소수자들은 성소수자 단체에서 결혼을 인증받으면 된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고? 이것은 2017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리처드 세일러가 자신의 대표작 <넛지>에서 ‘결혼의 민영화’란 이름으로 한 장을 할애해서 한 제안이다. 그는 결혼 대신에 이성과 동성에 관계없이 두 사람의 동거 협약을 지지했다.

경향신문은 신년기획으로 ‘우리도 가족입니다’를 게재했다. 미혼 입양모, 비혼 동거, 동성혼 부부, 공동체 등 다양한 가족 형태를 소개했다. 오랜 세월 동안 결혼은 가족을 이루는 첫 단추였다. 하지만 이제 결혼에 대한 생각도, 가족의 형태도 바뀌고 있다. 1인 가구는 대세다. 2025년이면 3인 가구와 4인 가구를 합쳐도 30%를 넘기 어려울 것이란 게 인구학자들의 의견이다. 2016년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13세 이상 인구의 48%가 ‘남녀가 결혼하지 않더라도 함께 살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 중 20~30대는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이 60%를 넘었다.

결혼·가족제도는 끊임없이 변해왔다. 과거에는 요즘에는 상상하기 어려운 제도도 있었다. 고구려와 부여에는 형사취수제도가 있었다. 형이 죽으면 동생이 형수를 데리고 사는 제도다. 고구려 사람들이 형수를 넘볼 정도로 유독 음흉해서? 아니다. 성경에도 나온다. 사두개파 사람들이 예수에게 묻는다. 모세가 정해준 법에는 형이 자녀가 없이 아내를 두고 죽으면 그 동생이 형수와 결혼해서 자식을 낳아 형의 대를 이어야 한다고 돼 있다. 그런데 큰형, 둘째 형, 셋째 형…. 막내까지 일곱 명이 한 여자를 아내로 삼으면 부활한 뒤 이 여인은 누구 와이프가 되나요?(마가복음) 이런 제도가 생긴 것은 여자를 재산으로 생각했고, 어떻게든 출산을 통해 인구를 늘리는 게 힘을 키우는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또 결혼으로 맺어진 세력 집단 간의 합의를 깨트리지 않기 위해서였고, 여성 혼자 정글 같은 사회에서 살아남기 어렵기도 했다. 흔히 알고 있는 데릴사위, 민며느리뿐 아니라 다양한 결혼풍습(제도)이 있었다.

결혼·가족제도는 정치·경제·사회적 환경으로부터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아버지와 어머니와 자녀로 된 3~4인 가족은 근대의 산물이다. 아버지는 직장에 나가 일하고, 어머니는 가사를 관리하는 식의 가족 형태는 근대에 발명된 것이다.

세일러에 의하면 공식적인 결혼제도가 생겨난 주요 이유는 결혼을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 결혼생활 탈퇴를 단속하기 위함이었다. 이혼이 어려우면 부부생활이 안정되고, 자녀들에게 유익하다. 경제·사회적으로도 긍정적 효과가 많다.

지금은 성을 단속할 수도, 단속해서도 안 되는 시대다. 해혼, 졸혼이란 말도 나온다. 세일러는 경제학자답게 결혼의 대차대조표를 따져봤다. 그는 결혼의 혜택이 놀라울 정도로 적고, 시대착오적이라고 평가했다. 한국도 그렇다. 아이가 생기면 여성은 육아로 인한 경력단절을 감수해야 하거나, 사회적 지원이 제대로 뒷받침되지 않아 돌봄의 책임을 가족이 짊어져야 한다.

문제는 가족의 형태는 급변하고 있는데, 정부는 실태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다못해 비혼 또는 비혼 동거 커플이 얼마나 되는지조차 파악되지 않는다. 현실을 알아야 대책을 마련할 수 있는 법인데, 지금까지 정부의 가족정책은 출산율에 맞춰져 있었다. 출산율을 중심에 놓고 결혼·가족제도를 바라보는 사람들은 미혼, 비혼, 동성혼을 비정상가족으로 보기 십상이다. 하지만 정상가족, 비정상가족으로 나눌 수도, 나눠서도 안 된다.

결혼·가족의 공식은 ‘1(남편)+1(아내)=3 또는 3+α’가 아니다. 마치 기업과 공장에서 생산성, 생산성 외치듯이 결혼제도·가족정책에서 출산율, 출산율 해선 안 된다. 정부가 2006년 이후 10년 동안 쓴 저출산 예산이 80조원이나 된다는데, 그렇게 많은 돈을 쏟아부었지만 출산율은 올라가지 않았다. 오히려 비혼 동거 커플에게도 법적·경제적 지원을 한 프랑스 같은 나라에서 출산율이 올랐다.

결혼제도는 영구불변의 법칙이 아니고, 가족정책은 생산성(출산율)의 문제가 아니다. 가족을 노동인구를 찍어내는 공장 같은 것으로 봐서는 안 된다. 출산율이 아니라 행복하고 건강하며 조화로운 삶을 밑돌로 놓아야 한다. 결혼제도·가족정책은 그렇게 가야 한다.

<최병준 문화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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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