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좋은 맛집 알아?” 송년회 시즌이다. 과거 여행 담당 기자를 했다는 이유로 동료들로부터 가끔 이런 질문을 받는다. 음식과 식당을 평가하는 데는 여러가지 잣대가 있을 것이다. 제철 재료, 요리사의 정성, 식당의 청결, 맛의 향토성…. 해외의 음식 칼럼니스트 책이나 TV를 보면, 요즘 요리사는 예술가고, 음식은 마치 예술작품처럼 거창하게 포장된다. 20~30년 전 맛집 얘기엔 셰프가 아니라 욕쟁이 할머니가 단골로 등장하곤 했다. “복스럽게 좀 처먹어, 이놈아!” 손님이 욕쟁이 할머니에게 느끼는 것은 불쾌감이 아니라, 정이란 게 욕쟁이 할머니 이야기의 골자다. 여기서 식당 손님은 소비자가 아니라, 배가 고파 찾아온 ‘사람’이다.

요즘 맛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난 밥이라고 생각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첫째, 밥은 기본이다. 둘째, 음식은 정성인데, 밥은 생각보다 꽤 정성이 필요하다. 게다가 취향에 크게 좌우되지 않는다. 평양냉면처럼 호불호가 확 갈리는 음식도 아니고, 홍어나 과메기처럼 향토적 특성이 깊은 음식도 아니다. 그래서 밥맛을 평가하는 데는 미식가를 들먹일 필요조차 없다.

쌀값은 재료비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다. 생활물가가 급등해 음식값을 올릴 수밖에 없다는 언론 보도는 있었지만, 지금까지 쌀값 올라서 밥값 올려야 한다는 기사를 본 적은 없다. 그런데도 육칠천원짜리 국밥집 밥이, 몇만원짜리 고깃집이나 횟집의 밥보다 훨씬 나을 때가 있다. 이유는? 묵은쌀로 밥을 짓거나 형편없는 쌀로 밥을 짓기 때문일 것이다. 게다가 요리는 타이밍이다. 아무리 좋은 쌀로 밥을 지어도 시간이 지나면 밥맛은 급속히 떨어진다. 미리 해놓은 밥은 군내 난다. 갓 지은 밥이 가장 맛있다. 그래서 신선도를 따져야 하는 것은 생선회가 아니라 밥이다. 대량으로 쪄낸 밥도 맛이 없다. 

10년 전쯤 일본 출장 때 밥집 주인에게 감동을 받은 적이 있다. 료칸 주인이 손님들에게 좋은 밥을 내놓기 위해 다른 음식을 먹고 있을 동안 숯과 냄비를 들고 와 다다미방에서 밥을 지어줬다. 그래야 밥이 맛있다고. 주인은 밥맛이 제일 좋다는 니가타현 어느 지역의 쌀로 밥을 지었다고 했다.

그동안 우린 왜 밥에 신경 쓰지 않았을까. 맛집도 유행이 있고, 시대나 사회적 환경에 따라 변한다. 서울 시내 곳곳에 있던 안동찜닭, 조개구이집은 많이 사라졌다. 한국의 외식문화가 급속도로 발전하게 된 것은 먹고살 만해진 1980년대부터다. 물론 예전에도 갈빗집, 불고깃집이 있다. 한데 ‘마이카 시대’라는 1980년대부터 서민들도 맘 놓고 먹지 못했던 음식들이 인기를 끌었는데, 고기와 생선회 같은 거였다. 돼지고기도 과거에는 머리 고기나 수육으로 먹었다. 대개 잔치·제사음식이었던 거다. 회식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삼겹살은 1970년대 중후반부터 유행했다는 것이 정설이다. 등심 등을 수출하고 남는 나머지 부위를 삼겹살로 가공해 팔았다는 건데, 이게 크게 히트했다는 거다. 수입쇠고기의 등장으로 LA갈비란 것도 나타났다. 이후 밥은 고기나 생선회를 먹고 위장에 여유가 있으면 먹는 탄수화물이 됐다.

밥보다는 고기였고, 생선회였다. 고깃집, 횟집에선 밥은 디저트처럼 후순위로 밀려서 코스 요리 중 마지막이었다. 배가 부르면 안 먹어도 그만인 셈이 됐다. 한데 분명한 것은 밥맛 좋은 식당이 대개 다른 음식도 맛있다.

또 하나, 음식에는 윤리적인 면이 있다. 거창한 동물복지 차원이 아니라 조리 방식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많은 나라들에서 소나 돼지, 양을 도살할 때 최소한의 고통을 느끼게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인간과 비슷한 고통을 느낀다고 판단되는 척추동물에게 함부로 고통을 줄 때, 동물학대라고 규정한다. 그렇다면 뜨거운 해물탕에서 꾸물거리는 산낙지는?

“최근에는 낙지, 오징어, 문어 같은 두족류가 사실상 ‘명예 척추동물’이 되었다. 같은 연체동물인 대합조개, 굴 따위와는 달리 대단히 정교한 신경계를 갖고 있다는 이유에서다.”(대니얼 대닛, <주문을 깨다>)

낙지도 포유류 못지않게 고통을 느낀다는 얘기다.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펄펄 끓는 해물탕에서 산낙지가 꿈틀거리며 죽어가는 모습이 잔인하고 혐오스럽게 보일 수도 있다.

10~20여년 전 식당 소개 정보를 보면 주차·카드 가능 여부였다. 요즘은? 남녀 화장실이 따로 있는지를 본다. 남녀 공용화장실은 남성도 불편하다. 여성은 더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하나 더. 식당은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청결이다. 인테리어는 번듯한데 기름때나 반찬 자국이 묻어 있는 손님용 앞치마를 내놓는 맛집들이 있다. 그럴 때마다 이런 생각이 든다. “주방은 깨끗할까?”

<최병준 문화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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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