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3 지방선거는 한국 정치사에서 하나의 이정표다. 한국 정치의 시대와 전망은 이제 그 ‘이전과 이후’로 나뉠 것이다. 이는 첫 민주적 선거였던 5·10 제헌의원 선거(1948년)와 정권교체 시대를 연 15대 대통령 선거(1997년)와 견줄 만하다.

선거 드라마에서도 이번 선거는 전혀 다른 파격이다. 한국 정치가 편가름식 ‘양분(兩分) 정치’의 주박(呪縛·주술적 속박)에서 놓여나는 출발점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전은 진영의 울타리 뒤에 숨은 비상식의 정치가 상식을 이기는 암흑의 시대였다.

6·13 지방선거는 더불어민주당의 승리도, 문재인 정부의 승리도 아니다. 민주당이나, 문재인 정부의 승리로 머물 수 없다. “국민의 승리”라는 뻔한 입발림을 하려는 게 아니다. 이 전복적인 결과가 운명적으로 마주해야 할 미래를 이야기하고자 함이다. 특정 정당·진영·가치의 승리로만 이번 선거가 매김될 때 6·13 민심은 반쪽에 머물게 될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8일 지방선거 결과를 두고 “등골이 서늘하다”고 했다. 청와대 전 직원들에게 생중계된 수석보좌관회의에서였다. 그러면서 참모들에게 세 가지를 당부했다. 바로 ‘유능·도덕성·태도(겸손)’다. 도덕성은 전통적 진보의 가치이며, 유능은 진보·보수 구분 없는 국정의 조건이다. 눈에 띄는 것은 태도다. 앞선 노무현 정부를 옥죄는 한 빌미가 됐던 오만·독선 등 태도의 문제를 환기시킨 것이다. 배를 띄울 수도, 뒤집을 수도 있는 물(水則載舟水則覆舟)과 같은 ‘민심의 법칙’과 ‘절대 권력은 부패한다’는 권력 법칙 사이에서 긴장의 끈을 죈 셈이다.

이번 지방선거는 ‘상식의 승리’다. 지난 반세기 한국 정치를 양분해온 한 진영을 궤멸시킨 결과는 한국 정치에도 ‘상식의 시대’가 시작됐음을 알린 것이기 때문이다. 그랬을 때만 한국 정치는 긴 ‘분열’의 방황을 지나 ‘화해’로 만날 수 있다. 실상 표심을 결정지은 한반도 미래, 정치적 시민의 성장, 경제·사회적 정의와 안전의 가치는 모두 진보나 보수의 것으로만 머물 수 없는 상식적 명제들이다.

지난 대선부터 민심은 우리 사회·국가의 혁명적 변화를 명령하고 있다. 그 패러다임 변화의 핵심은 ‘다양성’이다. 진영의 대결장과도 같은 ‘양분 사회’의 극복이다. 좌우 두 진영만 존재하던 정치에 대한 ‘다양성’의 도전과 승리다. 자유한국당으로 상징되는 ‘앙시앵 레짐’(구체제)의 패배로 선거 의미가 우선 매김되는 것도 그런 이유다.

이는 옳고 그름으로만 판단하고, 국가 현실의 필요만으로 판단하는 새 세대의 출현으로 가능하게 된 현상이다. 단순히 스윙하는 민심이 아니라, 정치적 다름도 옳다면 지지할 수 있는 유연한 유권자·여론층의 존재다. 그 점에서 이념의 종언도, 지역의 종언만도 아닌 그동안 허위의 지역과 이념에 기댔던 ‘진영 정치’의 종언이다.

실제 앞길은 꽃길이 아니다. 선거 결과가 무색할 만큼 녹록지 않은 난제들이 산적하다. 한반도 평화의 길은 여전히 험하고 멀다. 별빛조차 들지 않던 캄캄한 벼랑길에 이제 등불 하나를 들었을 뿐이다. ‘소득주도 민생’의 새 길도 강한 저항을 받고 있다. 이는 국내 문제만으로 해결될 수도 없기에 더욱 엄혹하다. 탈원전 등 국민안전의 미래도 내내 방해받고 있다. 이처럼 비상식은 곳곳에서 반격을 준비하며 꿈틀대고 있다.

‘전환의 시대’에 정치는 어떻게 달라져야 할 것인가. 핵심은 태도다. 새로운 태도의 내용들이 향후 정치의 문법과 성패를 결정할 것이다. 첫번째는 한번도 제대로 가보지 못한 ‘협치’다. 대결의 정치 문법을 종식시키고 다양성을 가능케 할 기반이다. 다양한 정치적 의견이 공존하는 다당제가 의미를 가질 수 있는 토대이기도 하다. 여권이 일축한 ‘연정’은 협치의 가장 제도화된 버전이다. 두번째는 유연함이다. 어떤 정치적 주장도 절대적이지 않음을 인정하고 수정을 전제하는 태도다. 해묵은 ‘내로남불’ 프레임을 벗는 길이기도 하다. 세번째는 ‘생활 속으로’다. 그간 이념의 추상언어에서 구체적 생활과 현장으로 정치 언어는 더 다가가야 한다. 현실의 구체성에 기반할 때 정치적 공통분모는 커진다.

여당이 이번 선거를 진영의 승리로 자축할 때 그들은 새 시대의 궤도에서 이탈하게 될 것이다. 이는 비상식의 어둠 속으로 물러나는 일이다. 적폐 정권이지만, 전임 정부가 오랜 갈등 끝에 정리한 국책사업(동남권 신공항)의 결론을 선거가 끝나자마자 뒤엎으려는 움직임에선 그런 불길함도 감지된다.

그 결과는 정치지도에서조차 사라지게 된 한국당과 같은 운명이 될 것이다. 여당이 진정으로 승리를 두려워해야 하는 이유다. ‘하룻밤 새 무진을 점령한 안개’(‘무진기행’)처럼 실패의 기운은 부지불식간에 스며든다.

<김광호 정치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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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