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염병과 최루가스가 난무했던 대학가에 ‘환락의 거리’가 밀려온 때는 1990년대이다. 이 무렵부터 동네 선술집이 사라지고 록카페와 록호프가 들어서면서 ‘대학가인지 유흥가인지’ 같은 기사가 자주 등장한다. 서점과 복사가게, 당구장과 다방, 빵집과 분식집이 자취를 감춘 것도 이때다. 경제 호황과 민주화의 축배를 동시에 치켜들던 시절이다.

2000년대에 신촌거리, 참살이길, 녹두거리 등 대학가는 커피전문점, 통신기기 판매점, 패스트푸드점, 화장품 매장 등 기업의 각종 브랜드 각축장으로 변모한다. 캠퍼스는 아예 기업명을 붙이며 대형화되고 기업 브랜드의 별별 편의시설이 캠퍼스를 점령한다. 덩달아 대학가 주변은 주상복합 쇼핑몰 같은 대형 개발붐이 뒤덮는다. 이로써 ‘환락의 거리’는 ‘기업의 거리’로 완성된다.

하여 특색 있던 대학가 거리는 획일화되고 창조적 문화는 퇴조하고 중소 상공인과 골목 경제는 몰락한다. 남은 것은 2008년 완공된 이화여대의 ECC 복합단지 같은 건축물이다. 축구장 8배 크기의 이 건물은 대학생의 학창 시간을 집어삼키고 인근 지역의 소비를 빨아들인다. 새로운 것은 건물을 구경하고 사진 찍고 쇼핑하는 중국인과 내국인 관광객이다. 이런 곳에서 4년 이상의 인생을 보내는 대학생에게 캠퍼스는 무엇을 배우는 공간이며 대학가는 어떤 관계를 경험하는 장소일까.

연세대 08학번 어떤 학생은 한 일간지의 인터뷰에서 “학생들이 대학가에 남다른 감정을 갖지 않는다”고 답했다. 어쩌다 이 지경이 됐을까.

유독 올 상반기에 대학을 비판하는 신간이 쏟아진 것도 징후일지 모르겠다. 그중 여름에 나온 <대학의 위기> 저자 데버러 로드 교수는 “자격증 취득과 취업률에 대해 허세 수준을 넘어 거의 사기에 가까운 범죄를 저지르”는 곳이 대학이라고 고백했다.


그의 내부자 시각에 따르면 ‘위선에 찬 대학 기관과 교수’가 자발적으로 바뀌기란 “현실적으로 요원”하다. 역시 여름에 한국어판이 나온 <폐허의 대학> 저자 빌 레딩스는 한층 신랄하다. 과거 종교권력과 국가권력의 필요에 부응했던 대학은 이제 자본의 유행을 좇아 행정조직과 회계논리가 지배하는 기업체가 되었다고 진단한 그의 눈에 대학에 남은 것은 이것뿐이다. “한편으로는 불신에, 다른 한편으로는 텔레비전 복음주의에 직면”해 쇠퇴하는 교수의 권능 탄식.

‘비용과 효율을 따지며 수월성이라는 공허한 개념을 숭배하는 대학은 이미 폐허’라고 일갈한 그의 해법은 단순하지만 용기를 요한다. 먼저 폐허가 된 대학을 인정하고 다음엔 이 폐허에서 사유의 장소로 거듭나는 것이다. ‘폐허의 대학에서 폐허의 사유를 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두 대학의 사례를 소개하자. 9월23일 국민대는 서울연구원, 성북구청과 ‘캠퍼스 타운 조성을 위한 공동연구’ 3자 협약을 맺었다. 이 구상은 동네 주민의 문화예술 수요는 물론 동네의 육아, 청소년, 노인 문제 등을 국민대와 함께 마을공동체의 개념으로 풀어보자는 것이다. 한마디로 대학 캠퍼스가 동네 주민의 배움터와 쉼터로 공유되고 학생과 교수는 캠퍼스를 나와 동네(정릉동)의 현안 해결을 공부 삼아 실천한다는 과감한 상상이다.



대학 캠퍼스_경향DB



9월19일에는 동덕여대 캠퍼스가 하루 동안 깜짝 변신을 했다. 교정 곳곳을 8개 기차역으로 설정해 동선을 만들고 32개 독서부스, 11개 행사, 2개 전시, 2개 공개강좌를 열었다.

올해 5회째인 성북 책모꼬지(북페스티벌)에 6322명이 참여했고 이 중 66%가 인근 월곡동·장위동·석관동 주민이었다. 동덕여대는 앞서 5월15일 성북문화재단과 협약을 맺고 대학의 자원과 역량을 지역과 공유하면서 마을 문제를 함께 해결하기로 했는데 9월의 책모꼬지 지원은 그 첫 실천이었다. 주민 다수는 “이런 축제가 우리 동네 캠퍼스에서 많이 있으면 좋겠다”고 설문에 응답했다.


이들 사례는 아직 걸음마 단계지만 ‘폐허의 대학에서 폐허의 사유를 한다’는 것이 우리 시대에 무엇이 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요약하면 ‘마을을 키우는 대학, 대학을 품은 마을’이다. 취업난의 공포에 짓눌린 청년들에겐 일자리뿐 아니라 온전한 사람자리도 절실하다. 그 자리는 소위 선진국에 있는 게 아니고 대학이 자리 잡은 우리 동네에 있다.

현재 서울에는 38개의 4년제 대학이 있다. 성북에는 7개의 4년제 대학이 있으며 이들 캠퍼스가 구 전체 면적의 약 7분의 1을 차지한다. 이들 대학이 우리 동네의 마을대학이 된다면 ‘투쟁의 거리’를 지나 ‘환락의 거리’와 ‘기업의 거리’라는 시행착오 끝에 세계적인 캠퍼스와 대학가로 거듭날 수 있다.

도시 혁신의 권위자 찰스 랜드리가 말했듯 “멍청한 도시가 과거의 성공을 재현하려고 버둥거릴 때” “자기성찰을 하고 실패에서 교훈을 얻으며 전략적으로 행동하는 똑똑한 도시”는 지역 전체를 학습의 장으로 삼는 “학습도시”다. 이 길로 가자면 폐허의 대학을 인정하고 폐허의 사유를 시작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김종휘 | 성북문화재단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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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