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은 수확의 계절. 안나푸르나는 ‘수확의 여신’이라는 뜻. 안나푸르나 트레킹은 그야말로 진정한 가을산행. 나는 지금 넉넉하고 드높은 설산들 곁에 와 있다. 주먹밥 정신으로 뭉친 광주 의사들이 일군 네팔 진료소가 이곳에 있다. 둘러볼 겸 겸사겸사 찾아온 길.고개만 들면 물고기 꼬리 모양의 마차푸차레, 웅장한 안나푸르나 설산, 강가푸르나, 닐기리, 다울라기리, 최고봉 고산들이 일렬로 쭉 펼쳐진 병풍 모양. 두메산골이지만 온 세계 히피 여행자들로 골목은 또 날마다 축제가 된다. 이곳 산촌 친구들을 위해 폴라로이드 즉석 사진기를 한 대 들고 왔다. 꽃담 밖에만 있던 아이들이 깔까르르 웃으며 다가오는 것은 즉석 사진의 위력. 낯을 가리던 아이들도 사진 한 장 찍어달라며 소매를 잡아끈다. 오로지 자신이 주인공인 사진을 가져본 일이 없던 친구들은 횡재를 했다. 저마다 세상의 주인공이 되라고 축복해주었다.

“사진기 한 번 줘보세요. 아저씨 사진은 내가 찍어 드릴게요.” “아냐. 내 얼굴을 찍은 사진은 엄청 많아. 이건 너희들 찍어주려고 가져온 사진기야.” 사진기를 만져보고 싶어 호시탐탐. 콧물 풍선을 달고 사는 아이 목에다 사진기를 걸어주었더니 모두가 부러워서 입이 벌어진다. 해진 소매 끝엔 땟자국이 거무뎅뎅. 손톱 끝에도 때가 끼어 있지만 한 번 웃을 때면 설산만큼 하얀 이를 드러내는 이곳 아이들이다. 교사이며 작가인 폴 셰퍼드는 이런 말을 남겼지. “말하기 순간부터 사춘기의 출발 지점까지 그 10년은 우리가 노아의 방주에 넣어야 할 모든 것이다.” 우리나라 아이들은 언제야 서열화된 학교, 사교육과 입시지옥에서 벗어나 이처럼 해맑은 웃음을 되찾을 수 있을까. 노아의 방주에 학식만을 집어넣어 가지고는 우리네 인생을 행복하게 만들 수 없다.

아침마다 ‘나마스테’라고 인사한다. 산기슭 벼랑바위에 사는 산양에게도 나마스테, 쥐방울만 한 꼬마들에게도 합장한다. 나마스(경배합니다), 테(당신에게, 당신 안에 사는 신에게) 그래서 나마스테. 즉석 사진기를 들고 만나는 모든 신성한 얼굴들에게 경배하며 인사한다.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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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