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는 하나님이 두 분. 한 분은 별로 말이 없으신 분. 아무리 뒷방 어르신이어도 아버지는 아버지. 다른 한 분은 대형교회를 세습한 어떤 아들 목사. 자라면서 하나님으로 불렸다니 어째 거시기해.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았으나 도통 세상에선 관심이 없었는데, 제대로 홈런 한 방에다 관심 팍! 주위의 염려하는 목소리에 눈귀를 닫아걸고, 오로지 자기들 무리에서만 아멘 제창이구나.

우리 동네 교회 두어 곳. 목사 자녀에게 물려줄 거라곤 교인들보다 가난했을 기억과 감나무뿐인 작은 교회. 손때 묻은 의자와 기도 냄새가 좋아라. 한번은 젊은 목사가 나를 찾아와 전도를 감행. 장차 믿어보겠다며 자리를 피했다. 흙구덩이 촌구석에서 자연에 의지하여 지내는 자가 어떻게 하나님을 믿지 않고 살 수 있단 말인가. 과일값이나 하시라고 헌금도 했지. 교회 바깥에 이름 없는 교회와 목사들이 살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신학자 서남동 선생 말씀처럼, 예수는 한국에 와서 ‘만적 임꺽정 박장각 갈처사 장길산 홍경래 전봉준 묘청 사명당 수운 만해 장일담 전태일 윤상원 박종철…’ 혁명적 반항아들의 족보 속에 있으면 있었지 목사들의 족보 따위엔 안 계신다.

수도자 ‘토마스 머턴’은 <명상의 씨>에서 이렇게 경계하고 있다. “신비 생활(신앙 생활)에서 가장 나쁜 환상은 그대를 그대 마음속에다 가두어 놓고, 순수한 집념과 의지력만으로 밖에서 오는 모든 실재는 봉쇄해 버리고, 그대의 마음을 신념만으로 꽉 채우고, 바깥 세계와 이웃 사회와의 모든 관계를 단절하고, 자라목처럼 움츠림으로서 주님을 찾아보려 드는 것이다. 다행히도 이런 짓을 하려던 사람은 아무도 성공하지 못했다.”

목사는 길 위에 있는 순례자다. 목사의 가족조차도 보헤미아 집시들처럼 움직이는 ‘가족 순례단’이다. 장로가 촌장이라면 목사는 잠시 머무는 성경교사. “한 장의 잎사귀처럼 걸어 다니라. 당신이 언제라도 떨어져 내릴 수 있음을 기억하라. 자신의 시간을 갖고, 무엇을 할 것인가를 결정하라.” 순례자 시인 나오미 쉬하브 니예의 고언을 새겨보는 시간이다.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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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