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무들이랑 눈싸움하고 들어온 밤. 어머니는 동동구루무를 손에 잔뜩 발라주셨다. 트고 갈라진 손에 기름기가 물큰하니 퍼졌다. “아가. 손은 밥 먹을 때와 일할 때, 사랑하는 사람을 만질 때, 기도할 때도 이렇게 두 손을 모으잖니. 몸 중에서 가장 성스러운 게 손이란다.” 노랗고 노란 달빛 아래서 어머니는 내 손을 오래도록 만지셨다. 함박눈이 내리다가 그치고 또 내리다가 그치고 하던 밤이었다. “낼 누가 오실랑가부네.” 아니나 다를까 먼 나라에 일하러 가셨던 외삼촌이 불쑥 찾아오셨고, 어머니는 편찮으시다는 외할머니 소식에 눈물 지으셨다. 두 분이 조금씩 흘린 소금들로 간이 맞아선지 저녁밥은 정말 풍성하고 맛있었다. 눈이 그치자 달이 둥시럿 떴다. 봉창엔 따스한 불빛이 어렷다.

갓방에서 외삼촌이랑 같이 잤는데, 오들오들 추운 밤에 삼촌은 사우디 사막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모래가 산처럼 쌓인 나라. 물이 없이도 길고 먼 여행을 한다는 낙타라는 동물. 하얀 천을 뒤집어쓰고 다니는 사람들 이야기. “저도 가보고 싶어요.” “그러면 손을 꼭 모으고 기도해봐. 뭐든 손을 모으고 기도하면 언젠가 백 프로 이루어진단다.” 삼촌은 미신 같은 알쏭달쏭한 말을 남기고 다음날 일찍 새벽길을 떠나셨다. 그런데 삼촌 말이 자꾸 맘에 걸렸다. 기도할 때마다 손을 모으게 되었다.

붓다께서 여행하실 때 전다라 신분의 사람, 게다가 똥치기인 한 청년의 집에 찾아간 일이 있었다. 청년은 붓다를 한번 뵙고자 간절히 바라 왔었다. 붓다는 제자들과 함께 그를 갠지스 강으로 데려갔다. 악취로 코를 찌르는 몸을 친히 닦아주었다. “이제부터는 나를 따라오라. 너를 제도하여 사문을 만들겠다.” 천민 신분으론 수행자가 되는 일조차 허용되지 않았는데, 붓다는 완전히 달랐다. 출요경에 따르면 “똥치기 청년은 스스로 마음을 가다듬고 부지런히 수행한 끝에 열흘이 못 되어 번뇌를 완전히 끊어버린 성자가 되었다”. 똥을 치던 손으로 스님들의 밥을 짓고, 스승 붓다를 따라 걸으면서 손을 모아 정진했다. 이후 청년의 손에선 세상에 없는 가장 아름다운 향내가 났다. 아무도 그가 똥치기임을 눈치채지 못했다.

<임의진 | 목사·시인>

'일반 칼럼 > 임의진의 시골편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랑 사랑 누가 말했나  (0) 2018.05.24
늙은 군인의 노래  (0) 2018.05.17
향내 나는 손  (0) 2018.05.10
판문점 와이파이 비번, 99882314  (0) 2018.05.03
‘게미’ 맛집과 평양 동무  (0) 2018.04.27
당나귀 귀  (0) 2018.04.19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