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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의 직장은 경찰서다. 그렇지만 경찰공무원은 아니다. 전엔 비정규직이었는데,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겠다는 정부 시책에 따라 무기계약직이 되었다. 그동안 따로 부를 명칭이 없다고 미스 김이니 아줌마니 하며 제 맘대로 불렀지만, 이젠 주무관이란 어엿한 이름도 찾았다. 정규직이 되어 정년도 보장된다지만, 그저 듣기 좋은 소리에 불과하다.

쉬운 해고 때문이다. 경찰청이 정한 기준이 그렇다. 해고 기준은 모호하고 사유는 너무 광범위하다.

이를테면 업무 수행 능력이 부족하거나 업무를 태만히 했다는 주관적인 판단만으로도 해고된다. 박근혜 정부의 쉬운 해고는 진작부터 시행되고 있었다. 업무량 변화나 예산이 줄어도 해고될 수 있다. “신체 또는 정신상의 이상으로 업무 수행이 곤란하게 된 때”도 그렇다. 사람을 소모품처럼 쉽게 쓰고 버릴 수 있는 매몰찬 규정이 매일처럼 김씨를 옥죄고 있다. 이런 모호한 기준에 걸리지 않으려면 잠자코 지내야 한다. 공공부문, 그것도 대표적인 법집행 기관인 경찰청의 실상이다.

김씨는 열심히 일하면 정규직이 될 수 있다는 믿음으로 버텼다. 경찰서에 들어올 때도 기능직 10급 기준에 맞춰 채용되었다. 신원보증인까지 내세워 신원조사를 받았으며 보안각서도 작성했다. 똑같이 들어온 사람들 중에서 어떤 사람들은 운이나 배경이 좋아서 기능직 공무원으로 신분이 전환되었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김씨처럼 이름만 정규직으로 남게 되었다.

경찰청에는 1600명쯤 되는 무기계약직이 있다. 비정규직인 기간제 노동자는 450명쯤이다. 경찰관들은 대개 1년에 한 번씩 인사이동을 하니, 부서 실무를 무기계약직이 챙기는 경우가 많다. 각종 서무에서 민원업무까지 손이 미치지 않는 일이 없다. 김씨처럼 경찰서장 부속실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출퇴근 시간부터 다르다. 위계가 강한 계급조직이니, 부속실 직원이 서장보다 늦게 출근하는 건 상상할 수 없다. 서장이 출근하기 전에 서장실 청소를 마치려면 늦어도 아침 7시까지 출근해야 한다. 넓은 응접공간과 안쪽에 별도의 침실과 화장실이 있는 서장실을 하루에 두 번씩은 깨끗이 청소해야 한다. 손님이 오거나 회의가 열리면 부지런히 커피를 날라야 하고, 서장의 옷이나 구두를 챙기는 일부터 갖가지 심부름을 해야 한다. 퇴근도 서장보다 늦게 해야 한다. 하루 14시간 노동이 보통이지만, 서장이 유난히 바지런을 떠는 사람이라면 주말에도 나와야 한다.

민원실 근무 여건도 심각하다. 민원인들의 악성민원을 견뎌야 하는 데다 민원실을 비울 수 없다는 이유로 휴게시간 없이 꼬박 자리를 지켜야 한다. 요즘엔 세수가 부족하다며 과태료 징수업무에까지 동원되고 있다.



일찍 나오고 늦게 들어가지만, 초과근로수당은 없다. 무기계약직에게 초과근로에 대한 보상은 대체휴무로만 주어진다. 8시간을 초과근로하면 하루를 쉴 수 있지만, 주말에도 쉬지 못하는 형편에 대체휴무를 쓸 수도 없다. 하긴 셈법부터 잘못되었다.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초과근로수당은 통상임금의 50% 이상 줘야 한다. 그러니 8시간을 초과근로했다면, 대체휴무는 하루가 아니라 하루 반나절이어야 한다. 물론 초과근로에 대한 보상을 수당이 아닌 대체휴무로 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고약하다. 초과근로수당은 주면 고맙고 주지 않으면 서운한 선물이 아니다. 법률에 따라 무조건 지급해야 하는 노동자의 권리다.

초과근로수당만 못 받는 게 아니다. 무기계약직은 어떤 수당도 받지 못한다. 가족수당, 학비보조수당도 없다. 고압가스 등 위험물을 다루는 기관실 근무자도 위험수당 같은 특수근무수당을 받지 못한다. 성과급도 전혀 없다.

수당이 없으니 월급은 형편없다. 김씨는 무기계약직 3호봉인데 지난달 기본급은 116만2150원이었다. 여기에 직급보조비 10만5000원과 정액급식비 13만원을 보태 139만7150원이 그의 보수 총액이다. 하지만 여기서 4대 보험료와 경찰공제회비, 경찰서 상조회비 등 28만1600원을 공제하면, 실수령액은 111만5550원이다. 111만원으로 한 달을 살아야 한다. 이게 경찰청에 근무하는 ‘정규직’의 실상이다. 이제 갓 경찰관이 된 순경(9급)의 실수령액과 비교해도 절반밖에 안 되고, 비슷한 연차의 경찰관들과 비교하면, 그 차이는 서너 배로 금세 벌어진다. 같은 직장에서 같은 일을 하는데, 때론 더 많은 시간을 일하는데도 현실이 이렇다. 그뿐만 아니다. 경찰 정원에도 반영되지 않아 유령으로 취급받는 경우도 많다. 하긴 무기계약직의 월급은 예산 항목에서도 인건비가 아니라 사업비로 편성되어 있다.

경찰서에 근무하기 전에 쌓았던 경력도 인정해주지 않는다. 군대나 국가기관에서 일했던 경력도 마찬가지다. 맞춤형 복지보험에 같은 액수의 보험료를 내도 경찰관은 사망시 1억원을 받지만, 무기계약직은 5000만원만 받는다.

생명에도 등급이 있는 것처럼 죽어서도 차별은 끝나지 않는다. 회식 때 빼놓는다거나 보급용 다이어리도 자기들끼리만 나눠 갖는다든지 하는 일상적 차별은 말할 것도 없다.

사람이든 조직이든 그 품격은 약자를 어떻게 대하는지에 달려 있다. 그래서 헌법은 여성의 노동에 대해 ‘특별한 보호’를 받아야 한다고 규정(헌법 제32조 4항)하고 있다. 경찰관에 비해 약자인 이들이 특별한 보호까지는 아니라도, 고용·임금 및 근로조건에서 부당한 차별을 받지 않도록(헌법 제32조 4항) 하는 건, 국민과 헌법의 준엄한 명령이다.

이참에 무기계약직과 기간제 모두를 행정직 공무원으로 특별 채용해야 한다. 경찰청장의 의지만 있으면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무엇보다 내부의 뿌리 깊은 차별부터 없애고 헌법과 법률을 지켜야 시민에게도 법을 지키라고 요청할 최소한의 자격을 지닐 수 있다.


오창익 | 인권연대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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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