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방학이 되면 친할머니가 계신 시골에 내려가 지냈다. 내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할머니의 땀과 사랑이 배어 있다. 할머니는 어린 손주에게 모든 것을 허용했지만 한 가지 예외가 있었다. “문지방 위에 서지 마라!” 할머니는 내가 문지방 위에 서면 집안으로 들어오는 복이 달아나고 귀신이 나를 잡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나는 때만 되면 문지방 위에서 놀다 할머니한테 혼나던 기억이 난다. 건물에 들어가기 위해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장소가 있다. 내부를 외부로부터 구별하기 위한 특별한 공간이다. 사람들은 이곳에서 건물 내부로 들어가려고 준비하고 기다린다. 이곳은 내부도 아니고 외부도 아닌 ‘가물가물한’ 장소이기 때문에 현관(玄關)이라고 불렀다.

건축에서 현관이란 주택의 정면에 낸 출입구를 이른다. 지금은 일반집의 단순한 출입구나 신발을 벗어 놓는 장소로 그 뜻이 축소되었지만, 원래는 불교사찰의 첫 번째 문을 가리켰다. 불교에서 현관은 현묘(玄妙)한 도(道)로 들어가는 문으로 속세를 떠나 영원한 극락세계로 떠나기 위한 출발점이다. 현(玄)자는 원래 누에가 고치를 치기 위해서 자신의 입에서 실을 뽑는 행위와 누에가 고치 안에서 변신하여 나비가 되는 신비한 변화를 형상화한 단어이다. 누에는 몸을 8자로 움직여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은 실을 뽑아낸다. 그 행위를 ‘작고 여리다’는 뜻으로 요(요)라 부른다. 이 지속적인 행위로 고치를 짓는 것을 현(玄)이라고 한다. 밖에서는 볼 수 없지만, 고치 안에서는 천지가 개벽하는 변신이 일어난다. 정해진 시간이 지나면 그 안에서 전혀 예상하지도 못한 나비가 자신의 모습을 드러낸다. 누에가 나비가 되는 ‘가물가물’하게 나오는 과정을 현(玄)이라 한다.

라틴어로 문지방이나 현관을 의미하는 단어는 ‘리멘’(limen)이다. 리멘은 미래를 예측할 수 없는 불안하고 힘든 기다림의 시간이며 장소다. 우리가 가장 싫어하는 장소이지만 이곳을 통과하지 않고는 다음 단계로 진입할 수 없다. 이곳은 떠나고 난 후에 그 진가를 인정받는 장소이며 다른 어떤 것으로도 대치할 수 없다.

<해리 포터> 시리즈의 작가 조앤 K 롤링_경향DB


해리 포터 시리즈 작가인 조앤 롤링은 20대 자신의 삶을 다음과 같이 덤덤하게 말한다.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이혼하여 미혼모가 되었고 실업자였으며 홈리스였다. 그녀는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칠흑 같은 터널 안에 갇혀 있었다.

그녀는 이 기간에 자신의 삶에 있어서 본질적이지 않은 것들을 제거하기 시작한다. ‘자기 자신’이 아닌 척하기를 그만둔다. 그리고 자신에게 중요하고 절실한 일에 집중한다. 자신을 남과 비교하고 타인에게 의존적이며 종속적인 인간에서 자기 자신을 응시하여 새로운, 놀랍고 자신만의 거친 길을 찾는다. 그녀는 깨닫는다. 자신은 살아있고, 사랑하는 딸이 있으며 오래된 타자기와 풍부한 상상력이 있다는 사실을. 그녀에게 운명처럼 다가온 ‘리멘’이라는 불안한 시간과 공간은 자신의 삶을 다시 건축하는 단단한 심연의 바닥이 된 것이다. 조앤 롤링은 누에로 남아있지 않고 리멘을 통해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는 한 마리 나비가 되어 훨훨 날게 되었다.

프랑스 인류학자 반 즈네프는 ‘리멘’이라는 개념을 발전시켜 <통과의례>라는 책을 저술했다. 새로운 단계로 진입하려는 입문자(入門者)는 다음 세 단계를 성공적으로 완수해야 한다.

첫 번째 ‘분리’의 단계이다. 이 단계는 과거로 상징되는 모든 것들을 의도적으로 버리는 단계다. 자신에게 익숙하고 편한 세계와의 의도적인 단절이다. 이 단절을 ‘혁신’(革新)이라 부른다. ‘혁’(革)자는 갑골문에서 소의 가죽을 정교하게 벗겨 낸 모양으로 뿔, 몸통, 그리고 꼬리 부분이 한자에 남아있다. 자신이 안주하던 소 몸체에서 가죽을 정교한 칼로 벗겨 내야 한다. 특히 소가죽에 남아있는 기름이나 털을 제거해야만 그 가죽이 경직되지 않고 유연해질 수 있다. 이 과정을 무두질이라 부른다. 인간들은 구석기 시대부터 수렵-사냥을 통해 얻은 가죽에 기름을 바르거나 연기에 그을려 연하게 만들었다. 후에는 잿물에 가죽을 담가 털과 기름을 완전히 제거한다. 자신이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가치를 가차 없이 버리는 행위가 종교에서는 성기에 상처를 내는 할례, 혼돈을 상징하는 물에 자신의 몸을 담그는 세례와 같은 행위로 나타난다.

두 번째와 세 번째는 ‘전이’(轉移)와 ‘통합’의 단계다. 첫 번째 단계가 단시간에 일어난 사건이라면 이 두 번째 단계인 전이는 리멘의 단계다. 오래된 자아를 소멸시키는 오랜 기간의 투쟁의 시간이고 세 번째는 조용히 다가오는 단계다. 자신의 몸에 밴 습관이나 행동을 제거하고 새로운 자아를 만드는 창조의 시간이다. 이 기간은 문지방 위에 서 있는 불안한 시간이다. 새로운 단계로 진입하려는 입문자는 오래된 자아를 점점 소멸시키고 자신에게 온전히 집중하여 새로운 자아를 점점 늘려 만들어 가는 단계다.

이 단계의 스승은 외부에 있지 않다. 자기 자신을 위해 스스로 만든 ‘시간’과 ‘공간’이다. 이 구별된 시간과 공간을 ‘고독’이라고 부른다.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아 불안해하는 외로움이 아니라 자신을 위한 최고의 선물인 고독이다. ‘고독’은 보통사람들을 위대한 성인이나 위인으로 탈바꿈시킨다. 일개 상인이었던 무함마드는 메카 외곽에 있는 히라 동굴에서 ‘자신에게 온전히 헌신하고 묵상하는’ 고독한 훈련을 통해 이슬람 종교를 창시하고 16억 인구의 정신적인 지도자가 되었다.

세 번째 단계는 충분한 전이 단계에 거한 자가 자신도 모르게 들어서는 단계다. 이것을 ‘통합’의 단계라 부른다.

입문자는 자신이 새로운 존재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자신이 세 번째 단계인 통합 단계에 들어섰다고 확신하는 순간 그는 타락하고 만다. 자신의 그런 오만이 그를 처음의 단계로 매정하게 보낼 것이다.

두 번째 리멘의 단계 아래서 유유자적하는 상태를 ‘서브라임’(sublime)이라 부른다.

‘서브라임’은 흔히 ‘숭고한’으로 번역되는데, 그 어원적인 의미는 ‘리멘’(limen) ‘아래서’(sub)이다. 자기 자신을 응시하고 자신 안에서 최선을 찾으려 끊임없이 노력하는 사람은 이미 숭고하다. 그는 자신만의 별을 발견하고 묵묵히 걸어가는 자이기에 우리에게 감동을 준다.


배철현 | 서울대 종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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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