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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이 바뀌면서 유사 이래 가장 심각한 국토유린 사건인 ‘4대강 사업’을 재조명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돈 버는 데 도가 튼 사람은 날아가는 새가 똥을 내갈겨도 저것이 어떻게 돈이 안 될까 하고 궁리한다고 한다. 건설회사 출신 대통령도 유유히 흐르는 강을 보며 그랬을 것이다. 

“저 물을 바다로 그냥 흘려보내는 것은 너무 아깝지 않은가! 물을 막아 저수지로 만들면 홍수조절은 물론 농업용수도 확보할 수 있으며, 주변을 공원으로 꾸며 관광객을 불러 모으면 지역경제도 살아나고, 공사과정에서 막대한 골재도 확보하고, 일자리도 창출하고…. 한마디로 대박 아닌가!”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그러나 그의 꿈은 재앙이 되고 말았다. 강이 죽어버린 것이다. 이 이야기는 혼돈이라는 자연을 인간세상처럼 개조하려다 그만 혼돈이 죽어버렸다는 ‘장자’의 우화와 꼭 닮았다. 자연은 자연대로 작동하는 방식이 있는데 인간의 관점에서 마음대로 뜯어고치려다 낭패를 봤다는 얘기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는 4대강 사업보다 무분별한 도로건설이 더 문제다. 강이 비록 죽었다고 하지만 저 정도에서 그친 것은 주된 교통수단이 배가 아닌 자동차이기 때문이다. 

지금 육지는 자동차 도로로 인해 땅이 천조각 만조각으로 갈라져 생태계 기능을 완전히 상실했다. 도로의 관점에서 보면 모든 공터는 주행로 아니면 주차장이다. 집이나 공원, 숲 등은 도로가 만든 부속품에 지나지 않는다. 이것은 땅값을 따져보면 바로 확인할 수 있다. 도로가 접근할 수 없는 땅은 똥값이니 말이다.

문명의 모태이며 인간의 고향인 자연에 대해 어찌하여 이런 가치전도의 현상이 벌어졌을까? 지나친 인간중심주의 때문이다. 팔이 안으로 굽듯 인간이 인간중심적으로 사고하는 것은 피할 수 없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인간이기 때문에’ 인간중심주의에 빠져서는 안 된다.

태곳적 화산덩어리에 지나지 않았던 지구생태계가 지금처럼 풍요롭게 된 것은 모든 생명들이 자기중심적으로 잘 살아주었기 때문이다. 말썽꾸러기 인간도 농업이란 것을 발견하기 전까지는 그랬다. 지구생태계에 농업이라는 괴이한 관행이 나타나기 전까지 모든 생명들은 철저히 자기 신체에 의존하여 살았다. 개별 생명체의 신체가 아무리 뛰어나다 한들 자연의 질서와 통제를 넘어설 수는 없었다. 말하자면 개별 생명체들은 대자연이라는 오케스트라 지휘자의 지휘 아래 타고난 생명의 음악을 맘껏 연주하면 되었다. 그러나 생물진화의 마지막 단계에 나타난 인간은 농업을 통한 다양한 기술에 힘입어 더 이상 신체에 의존하지 않고도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 그 기술은 다름 아닌 ‘착취의 기술’이다. 착취의 기술은 대상에 따라 둘로 나뉜다. 자연에 대한 착취는 과학기술의 발달을 통해 그리고 인간에 대한 착취는 사회조직의 조작을 통해 이루어지는데 보통 이 둘은 결합되어 작용한다. 착취의 기술을 통해 인간은 단순한 생존을 넘어 지구생태계를 자기 뜻대로 전변시키기 시작했다.

농업 이전에는 신체에너지 1을 투입하면 결과물 1을 얻었으나, 착취의 기술을 익힌 이후에는 신체에너지 1을 투입하여 10 또는 100, 1000의 결과물을 얻게 되었다. 이런 인간을 자기중심적으로 행동하도록 내버려두면 생태계가 위험에 빠지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해서 선인들은 이를 방지하기 위해 윤리와 도덕을 만들어 사람들이 적정한 선을 넘지 않도록 계도해왔던 것이다. 

그러나 개인의 이익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자본주의의 도래와 함께 도덕과 윤리는 어디론가 가버리고 돈 많은 자가 갑질하는 세상이 되어버렸다. 이러한 상황에 변화가 없으면 생태계의 파괴와 함께 종으로서 인간의 파멸은 피할 수가 없다. 재승박덕(才勝薄德)이라고 인간은 뛰어난 재주 때문에 오히려 명이 짧은 종이 된 것이다. 그 큰 덩치의 공룡조차 몇억 년을 살았는데 인간은 겨우 일만 년도 채 안 되는 문명의 시간으로 인해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질 운명에 처했으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다시 말하지만 슈퍼파워를 가진 인간의 인간중심주의는 모두에게 재앙이 될 뿐이다. 그런데 슈퍼파워의 근간인 과학기술과 사회조직의 발달은 막을 수가 없다. 우리가 조절할 수 있는 것은 결국 인간의 마음뿐인데 과연 인간은 마음을 다잡을 수 있을까? 성인들이 계도하던 시대는 가고 지금은 오직 돈과 능력이 말을 하는 시대인데 이런 상황에서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 가능할까? 서점에 넘쳐나는 처세와 심리 관련 책들은 거의 대부분 성공하기 위해 마음을 어떻게 써야 할지에 대해 말하고 있지 욕망 자체를 문제 삼고 있지는 않다. 물론 대부분의 종교가 욕망의 조절을 말하고 있지만 종교의 물질적 토대를 자본주의에 두고 있는 한 사람들은 종교의 제안을 또 하나의 ‘상품’으로 받아들일 뿐이다.

산업문명이 지구를 덮어버리기 전까지는 아직 지구생태계가 그런대로 작동하고 있었고, 성인에 대한 존경심도 남아있어서 말로만 얘기해도 어느 정도 효과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인지의 발달로 인해 모두가 지식인이고 모두가 성인이다. 심지어 계도를 혐오하는 문화까지 형성되어 있다. 

다른 건 잘 모르겠고, 한 가지만 말하겠다. “마음은 물질과 함께 갈 때 효과를 발휘한다.” 욕망을 제어할 수밖에 없는 생존시스템을 개발하여 그 안에서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다. 살기 위해서는 그 생존시스템에서 최선을 다해야 하고, 최선을 다하다 보면 저절로 마음이 다스려지는 그런 시스템을 그려본다.

황대권 | 생명평화마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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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