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년 전 1월12일 서울(경성) 한가운데서 영화 같은 일이 발생했다. 한용운·안창호 등 많은 애국지사를 탄압한 종로경찰서에 폭탄이 투척되었다. 3·1 운동 이후 일본은 종전보다 3배나 많은 경찰병력을 증강했지만, 범인을 잡지 못했다. 신문에서는 경찰이 시내 곳곳에 경계망을 펼쳤지만 범인을 잡지 못한 사실을 보도했다. 일제 탄압의 상징이었던 종로경찰서에 폭탄을 던진 사람은 의열단원 김상옥이었다.

영화 <밀정>에서 짧게나마 김상옥 열사의 무장투쟁이 소개되었다. 사실 그의 독립운동은 무장투쟁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그는 철물점을 운영했던 자수성가한 청년 CEO였다. 직접 디자인한 말총모자는 크게 유행했고 일본의 경제적 침략에 대항하여 일화배척과 국산품장려운동에 앞장섰다. 3·1 운동 이후에는 혁신공보를 만들어 독립운동 소식과 독립사상을 고취하는 논설을 발행했다. 이후 상해로 망명하여 의열단 가입 후 서울로 돌아와 종로경찰서에 폭탄을 던진 것이었다. 의거 후 김상옥 열사는 대범하게도 서울에 계속 머물며 사이토 총독 저격을 시도하였다. 하지만 사전에 발각되어 일본 경찰과 총격전을 벌인 끝에 포위망을 빠져나왔다. 그러나 은신처가 다시 발각되어 최후의 결전을 벌이게 되었다. 1월22일 서울 4대 경찰서에서 1000여명의 무장경찰이 은신처를 포위했다. 3시간을 넘는 총격전 끝에 수십명의 일본 경찰을 사살했다. 열사는 마지막 남은 한 발로 상해에서 동지들에게 ‘자결할지언정 포로가 되지는 않겠다’고 한 약속을 지키며 10일간의 독립전쟁의 마침표를 찍었다. 가족들은 열사의 몸에서 11발의 총상을 발견했다고 한다.

이러한 열사의 뜻과 기개를 기리며 수많은 독립투사들을 기억하는 것이 오늘날 우리가 지켜야 할 최소한의 예의라고 생각한다.

<김윤형 | 서울 성북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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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