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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다시 오랜만에, 대학을 찾았다. 1980년대식 초고속 일본어를 가르칠 학자를 찾아서다. 당시 운동권 학생들은 2박3일 만에 일본어 철자와 문법을 배우고 곧바로 원전을 읽었다. 철자와 필수 문법만 초고속으로 익힌 뒤 새까맣게 사전을 찾아가며 학습한 일본어 원전에 힘입어 운동권을 이끄는 이론가가 되고, 학자가 되고, 국회의원이 되기도 했다. 이렇게 익힌 일본어로 책을 번역한 이도 있고 도쿄 주재 특파원이 된 사람도 있다. 당시, 운동권 선배들에게 유통되던 전설의 일본어 문법을 정리해 책으로 펴내기도 했던 일문학자에게 물었다. 지금도 그런 방식으로 일본어를 공부하는 것이 가능한가?

그는 “물론”이라고 말하면서 덧붙였다. 엉성해 보이지만, 이 방법이야말로 가장 효율적인 일본어 학습법 중의 하나다. 그렇다면 왜, 대학에서 그 방법으로 일본어를 가르치지 않느냐고 묻자 그는 탄식하며 말했다. 지금 대학에서는 제대로 된 공부가 불가능하다. 그건 일본어뿐 아니라 인문학 전반의 사정이 마찬가지다. 우리말로 가르치고 배워도 이해하기 쉽지 않은 내용들을 영어로 가르치는 것부터가 말이 되는가. 설상가상으로 학생들의 우리말 이해력이 모자라 조금만 어려운 개념어를 쓰면 뜻을 이해하지 못한다. 이들을 위해 쉬운 우리말로 천천히 말하기도 하지만, 이런 방식으로 무슨 고급 학문 교수가 가능한가. 공동체에서 1980년대 운동권식 일본어 학습법을 재현해 보자고 제안하자, 그는 반색했다.


2.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어거스틴, 보에티우스, 데카르트, 라이프니츠, 스피노자, 홉스, 칸트, 헤겔, 마르크스, 프로이트, 니체, 소쉬르, 화이트헤드, 포퍼, 러셀, 벤야민, 하이데거, 아도르노, 래비나스, 라캉, 푸코, 들뢰즈, 지젝, <논어집주>, <맹자집주>, <도덕경>, <장자>, <주역>, 산스크리트어 <금강경>, 희랍어 <성경>…. 내가 속한 인문학 공동체에서 원전으로 공부하는 철학자, 사상가나 고전 중 일부다. 하다 보니 대부분 원전 강독의 형태가 되었지만, 처음부터 이렇게 하자고 한 건 아니다. 학자들에게 “대학에서 안 하거나 못하는 교수법을 마음껏 실험해보시라”고 제안했더니, 이렇게 원전 강독이 많아졌다. 강독은 대부분 우리말 번역서로 진행되지만, 산스크리트어나 희랍어나 라틴어, 프랑스어, 독일어, 영어 교재를 읽어가는 공부 모임도 없지 않다. 공동체에 산스크리트어, 희랍어, 라틴어, 독일어, 프랑스어, 일본어, 한문 강좌들을 만든 것도 이 때문이다. 제대로 된 공부를 하고 싶어 하는 이들은 이런 곳도 있느냐며 좋아하지만, 문제는 이것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시작한 지 3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끝이 보이지 않는 그리스 철학 읽기 모임부터 그렇다. 스피노자의 <에티카> 강독은 1년8개월 만에 5분의3을 겨우 끝냈고,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이나 헤겔의 <정신현상학>은 한 번에 몇 페이지밖에 못 읽을 때도 있다. 마르크스의 <자본론>은 매주 60페이지씩 강독해도 1년 이상이 걸린다. 이는 한문 원전으로 읽는 <논어집주>, <맹자집주>, <장자>, <주역> 같은 고전도 마찬가지다. 외국어 익히기도 어렵다. 중간 탈락자도 나온다. 그럼에도 이를 밀어붙이는 것은 학자들이 “이 방법이 맞다”고 하기 때문이다.

3. 대안 철학대학원 과정 모집을 앞두고 학자들과 자주 머리를 맞댄다. 화두는 하나다. 가뜩이나 팍팍한 세상, 살아남기에도 급급한데 왜 쓸모도 없어 보이는 철학을, 인문학을 힘들여 공부해야 하는가. 넘어야 할 산도 많다. 여기서 공부하는 이들의 대다수가 직업으로 공부하는 학생이 아니라는 점부터가 그렇다. 공동체의 이런 저런 공부 모임 참여자는 주부와 학생, 연구자, 전문직 등을 포함해 거의 모든 직업을 망라한다. 직장인이 매주 정기적으로, 인문학 공동체를 찾아 돈도 안되는 것들을 공부하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다. 그럼에도 이들이 공부해야 할 철학은, 인문학은 어떤 것인가.

철학 이론뿐 아니라 신화와 문학과 영화 텍스트 등등을 오가며, 지금 여기 우리의 일과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 대안 대학원 과정 꾸리기에 고심하는 이유다. 철학의 체계적인 이해와 학습 못지않게 사유의 방법, 사유의 훈련에 치중하는 과정을 만들려 애쓰는 것도 이 때문이다. 물론 철학을 공부하는 이들이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개념들과 철학하는 방법에서 시작하는 것은 대전제다. 기본을 반복하며 내 것으로 만들어, 이를 글쓰기로 드러내는 연습도 필수다. 분명한 것은, 제도권 대학원에서 오직 학위를 받기 위해 공부하는 형태는 정답과 거리가 멀다는 것이다.

어찌 보면 철학은, 인문학은 인간과 세계를 보는 눈을 벼리는 것이다. 생각이 바뀌면 행동이 바뀌고 일과 삶과 세상이 바뀐다. 이런 면에서 인문학처럼 실천적인 공부도 흔치 않다. 직업 연구자나 학생보다 주부와 직장인에게 인문학 공부가 더 절실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물론 이들이 공부의 길을 걷는 건 쉽지 않다. 길은 험한데 자주 깜깜한 밤이 찾아온다. 그래도 뚜벅뚜벅 먼 길 걷는 게 가능한 것은 같은 길 걸으며 옆에서 발소리를 내주는 동무들이 있기 때문이다.


김종락 | 대안연구공동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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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