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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천재지변을 만났을 때 전하께서 통치의 잘못은 없었는지 반성하고 바로잡기를 그 당시 애절하게 내리셨던 말씀만큼만 하셨더라도 오늘 이 지경에 이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뒤로도 실제 달라진 것은 전혀 없었으니, 일이 있을 때마다 내리신 말씀들 역시 믿을 수가 없습니다. ‘사람은 속일 수 있어도 하늘은 거짓을 용납하지 않는다’고들 말합니다만, 신은 ‘하늘이 거짓을 용납하지 않는 것이야 당연하지만 사람 역시 속일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근래 들어서는 전하께서 조언을 구하셔도 신하들이 대수롭지 않게 여겨 호응하지 않습니다. 전하의 말씀에 애초부터 진정성이 없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얼마 전에 사헌부의 지적에 대해서 전하께서는 사실과 다르게 전달된 것일 뿐이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당시에 그 말씀을 믿었습니다만, 사헌부의 보고가 맞았음이 요사이 밝혀지고 말았습니다. 신은 전하의 진실하지 못함이 이 정도일 줄은 생각도 못했습니다. 실상을 열어 보여서 잘못을 인정하고 고치면 되는 일이었는데도 끝내 남을 속이고 자신도 속이셨습니다. 그러니 어디든 밝히 보는 하늘이 어찌 전하를 돕겠습니까?

궁궐 안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서는 밖에서 알 수도 없고 알 일도 아닙니다만, 총애하는 사람이 있는데 전하께서 감추시면서 이 사실을 지적한 신하를 다른 죄에 얽어서 처벌하셨다고들 합니다. 전하께서 개인적으로 총애하는 이가 있다는 사실이 무슨 문제가 되겠으며, 무엇하러 그것을 숨기시겠습니까. 그래서 신은 사람들이 지나치게 억측하는 것일 뿐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런데 이제 보니 그런 신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알겠습니다. 새어나온 사실들만도 이러한데, 저희의 이목이 닿지 않는 궁궐 깊숙한 곳의 일을 어찌 다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 결국 전하의 교만과 사치, 음란과 방탕, 원한과 승부욕이 극에 달하여 저 망국의 군주들처럼 되지 말라는 법이 있겠습니까.


김창협이 1686년 숙종에게 올린 상소문의 일부다. 한문을 번역하고 소개하는 데에는 많은 품이 든다. 시대가 다르고 문화와 통념에 거리가 있어서 말을 옮기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330년이 지난 상소문을 소개하면서 별도의 해설이 필요하지 않음을 느끼는 것은, 참으로 놀랍고 슬픈 일이다.

송혁기 |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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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