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가 노동자를 위해서 투표하지 않는다, 이 간단한 명제가 한국이 가진 큰 딜레마이다. 마찬가지로 농민도 농민을 위해서 투표하지는 않는다. 한국 농업이 가진 큰 어려움은 어떤 정책을 쓰더라도 경상도 농민은 한나라당에, 전라도 농민은 민주당에 투표할 것이라는 게 일종의 사회 법칙처럼 자리하고 있다는 점이다. 농민만이라도 농업을 위한 투표를 한다면, 한나라당이 농촌 지역을 지역구로 하는 국회의원까지 동원해서 직권상정과 날치기를 할 꿈도 못 꿀 것이다.
반면 압구정 현대아파트와 타워팰리스를 두 축으로 하는 부자들은 지독할 정도로 자신들을 위해서만 투표한다. 그래서 한나라당을 반민중적이라고 하고, 동시에 반민족적이라고 부르는 거다. 자신에게 도움이 된다면, 반민족적인 일도 서슴지 않는다. 이 상황에서 노동자 특히 비정규직 노동자 문제를 어떻게 풀 것이냐, 여전히 우리에게 중요한 질문이다.

한국에서 노동조합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집단은 두 개가 있다. 한나라당은 당연히 친자본, 친재벌이니까, 노동조합을 타도의 대상으로 보고, 회유와 공작을 통한 각개격파 외에는 노동자 대책은 없다.
그런데 시민단체도 노조를 별로 좋아하지는 않는다. 이건 앞에서 이미 다룬 적이 있기는 한데, 노조를 견제하면서 시민운동이 자신의 형태를 갖춘 것이라, 노동조합을 두려워하면서 견제하는 묘한 긴장감이 초기 활동가들에게는 있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바로 그 시대에 속한 사람이라서, 노동운동과 서울시정이 어떤 관계를 가질 것인가, 궁금하기는 하다. 견제관계였던 것은 맞는데, 일부에서 주장하듯이 반(反)노조는 아니라고 알고 있다.

분당 전 민주노동당 내에도 노동조합이 있었는데, 그 때 사무국장이 나중에 저자로 유명해진 목수정이다. 민주노총의 지지를 받고 있는 민주노동당에서 과연 노조를 어떻게 대할 것이고, 상근활동가들에게 어떤 처우를 약속할 것인가, 그게 초미의 관심사였다. 진보정당들은 사실 돈이 별로 없고, 맨날 부채에 시달리니까, 한나라당이나 민주당 상근자 수준의 대우를 해줄 수가 없고, 그만한 복지를 약속할 수도 없었다.

비정규직 청년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생겨난 청년 유니온이 정작 자신들 사무실 내부에서 정말 비정규직 수준도 못한 대우를 해줄 수밖에 없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돈줄을 틀어막고, 배고프면 결국 지칠 거야, 이렇게 한 게 현 정권의 진보정당 고사 작전의 실체이다. 농담처럼, “우리도 제발 조선일보 수준으로 활동가들을 챙겨주자”고 하지만, 지금의 진보정당 구조에서는 별 뾰족한 수가 없다.
유사한 문제가 시민단체 내부에서도 생겨났다. 졸저 <88만원 세대>를 쓰게 된 첫 모티브 중의 하나가 시민단체에 오겠다는 20대들이 갈수록 줄어드니까 도대체 얼마나 받는데 단체에 이렇게 안 오나, 그 질문이었다. 시민단체가 안 준다, 안 준다 하지만, 중앙단체들은 그보다는 더 준다.

임금 수준만 따지면, 진보정당 상근자들이 시민단체 평간사보다는 많이 받는다. 그런데 시민단체 내부에는 노조가 없다. 장기적으로 보면, 단체 내에도 노조를 만드는 게 맞는데, 노조와 견제 관계에서 조직을 꾸리다 보니, 그를 대체하는 ‘평간사협의회’라는 게 생겼다. ‘원맨 밴드’에 가까운 시민단체에서는 그럴 형편이 안되지만, 중앙의 일정 규모가 되는 단체들, 환경운동연합, 녹색연합, 그리고 참여연대에는 평간사협의회가 있다. 여성단체에는 아직 안 생긴 걸로 알고 있다.
진보정당의 노조들이 주로 임금과 처우 개선이 주된 이슈였다면, 평간사협의회의 주요 이슈는 단체 내부의 의사결정과정에 관한 내용이다. 명망가 위주로 구성된 집행위원회 같은 데에 평간사들의 의견과 목소리를 어떻게 담을 것인가, 그런 게 큰 쟁점이다.

단체 내부에서 평간사협의회를 규모가 작은 곳에도 계속 늘려나가는 게 옳으냐, 아니면 여기도 임금을 받고 4대보험이 적용되는 직장이니까 노조를 만드는 게 옳으냐, 그런 논의들을 가끔 한다. 주먹구구로 단체를 운영하던 초창기는 지났기 때문에, 우리도 이제 평간사들의 역할과 협의구조에 대해서 지지하게 고민을 해봐야 한다.

노조와 평간사협의회, 위상은 조금씩 다르지만 내부에 스스로를 견제할 수 있는 좋은 장치들이다. 생활협동조합과 같은 단체들이나 대표의 독단에 고통받는 단체들도 이제는 평간사협의회 같은 형식을 빌려서, 비록 듣기 싫은 얘기를 할 것이 뻔하지만 내부에 견제장치들을 만드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너무 오랫동안 견제 없이 움직이면 한나라당이나 농협 혹은 대형교회처럼 자신도 자신을 제어할 수 없는 수렁에 빠지게 된다. 조선일보에도 노조가 있을까? 물론 형식적으로는 있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시우회에 참석해 퇴직공무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경향신문DB)


자, 이 기회를 빌려 박원순 신임 시장에게 부탁 한 가지만 하자. 참여연대에도 평간사협의회가 있듯이, 서울시청 내의 공무원들도 노조 외에 그런 유사한 협의체가 있는 게 좋을 듯싶다. 임금과 복지 등 처우 문제만이 아니라 실제로 시정의 운영방안과 제안을 하는, 같이 앉아 상의할 수 있는 파트너, 그리고 때때로 시정의 전횡을 견제할 수 있는 장치가 있는 편이 낫다. 되도록 독대의 자리나 비선 조직이 움직이게 하지 말고, 공식적으로 실무 공무원들이 토의하고 협의할 수 있는 장치, 그런 것들이 길게 보면 더 효율적이다.

참여연대의 평간사협의회는 활동가들 사이에서도 평이 좋았고, 여러 가지로 장점이 많은 제도이다. 공무원은 타도나 계도의 대상이 아니라, 그들도 자신들의 삶으로 돌아가면 동등한 시민이다. 오세훈 시장은 초기에 하위직 공무원을 교육과 평가 그리고 퇴출의 대상으로 보았는데, 그때의 조직 붕괴가 결국 그의 시정을 실패로 만든 근본 이유 중의 하나이다. 노동자이면서 동시에 시민인 서울시 공무원들, 그들의 마음을 잘 헤아려주시기 바란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