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가정에서 자란 10대 엄마는 남몰래 사내아이를 낳았다. 보모의 손을 전전한 아이는 2세에 양부모를 만났지만 관심을 받진 못했다. 외할머니가 8세까지 키우고 돌아가신 뒤 다시 양부모 손에 맡겨진 아이는 언제나 혼자였으나 외할머니의 독서와 양부모의 교양 덕에 영특한 소년으로 컸다. 초등학교만 나온 소년은 영화광이 됐고 15세에 영화클럽을 설립했다 망했다. 이때 진 빚을 갚으려고 양부의 타자기를 훔쳤고 양부의 신고로 수감됐다. 이후 짝사랑에 치이고 입대했으나 탈영했고 수감됐다. 불우하기 짝이 없는 이 청소년을 제자이자 양자처럼 보듬은 사람은 영화계 리더인 28세의 멘토였다. 멘토의 보증으로 풀려난 그는 돌봄과 후원으로 성장했다. 23세가 되자 그는 자신의 이름과 함께 ‘프랑스 영화의 어떤 경향’이란 비평을 발표했다.

기성 영화들과 영화계를 신랄하게 부정한 비평 때문에 칸영화제 참석이 금지됐던 그는 26세에 결혼했고 장인의 배급영화들을 비판하다가 “그렇게 영화를 잘 알면 한번 만들어보지?” 하는 힐난에 영화를 만들었다. 이렇게 탄생한 영화가 1959년 칸영화제 공식경쟁 부문에서 기립박수를 받고 최우수감독상을 수상한 <400번의 구타>다. 당시 28세였던 그의 이름은 프랑수아 트뤼포. 같은 해 초겨울 그를 키운 정신적 양부이자 멘토 앙드레 바쟁이 41세로 숨을 거뒀다. 트뤼포 감독은 자신의 성장담을 투영한 영화의 주인공으로 14세 소년 장 피에르 레오를 발굴했고 직접 키우고 가르쳤다. 자신이 겪고 성장한 대로 트뤼포 감독은 레오의 양부이자 멘토가 되었고 둘은 감독과 배우로 여러 편의 영화를 같이 만들었다.

‘400번의 매질이 아이를 어른으로 만든다’는 프랑스 속담에서 빌려왔다는 영화 제목대로 트뤼포 감독이 경험한 가족이란 애정이 사라진 관계고 학교란 훈육만 가득한 공간이다. 이런 세상에선 “진실을 말해도 믿지 않으실” 어른들에게 아이들은 거짓말을 하고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든다. 이 세계를 어른들이 본다면 온갖 어리석은 짓들뿐이겠지만 아이들은 그 어리석음을 통해 문제를 일으키고 상처 입고 성장하면서 세상과 자신의 진실을 만난다고 영화는 말하고 있다. 이 영화 <400번의 구타>가 지난 4월13일 국내에서 처음 개봉됐다. 같은 날 정지우 감독의 신작 <4등>도 개봉됐다. 영화를 본 관객이라면 아프고 미안하면서 고맙고 대견한 마음의 동요를 평화롭게 다 받아주는 <4등>의 영화 포스터를 갖고 싶었을 것 같다.

영화 속 소년 준호는 포스터 문구대로 “난 수영이 좋은데 꼭 1등만 해야 해요?”라고 묻는다. 수영을 좋아하고 소질도 있어서 수영선수가 된 준호는 “야! 4등! 너 웃음이 나와?” 하고 화를 내는 엄마와 어른들 앞에선 만년 4등이자 40등과 같은 패자이며 400번의 구타를 통해서라도 기어코 1등에 올라야만 구제받을 수 있는 미완의 훈육 대상일 뿐이다. 그래도 수영이 좋아서 수영선수이길 원하는 준호 앞에 나타난 멘토는 1등의 폭력을 대물림하는 전 국가대표 선수다. 맞고 훈육 또 맞고 훈육 끝에 준호는 2등을 한다. 가족파티가 열린 그날 어린 동생이 말한다. “정말 맞고 하니까 잘한 거야? 예전엔 안 맞아서 맨날 4등 했던 거야, 형?”

정상가족의 울타리 안에서 오늘의 행복을 빼앗는 부모 자식과 스승 제자라는 한국의 현재를 그린 <4등>은 탈가족과 탈학교의 위기 속에서 양부모와 멘토를 통해 자라고 또 그렇게 누군가의 가족과 스승이 되어 살았던 저 근대적 프랑스인의 고전 <400번의 구타>와 57년의 시차에도 불구하고 떼어놓을 수 없는 문제적 영화다. <4등>의 결말은 준호의 1등이지만 이 성취는 훈육 때문이 아니라 준호 스스로의 현실 직면을 통해서다. 초등학생 아이의 선택치고는 가혹하지만 준호는 수영선수로 살아남아 끝내 수영을 좋아하는 자신을 지킨다. 수영장의 푸른 물빛 가득한 포스터 하단에는 잠수한 채 지그시 눈을 감고 슬며시 웃고 있는 준호의 얼굴이 투명한 기포를 한가득 올려 보내며 우리를 응시하고 있다.

지상의 몰상식과 폭력을 떠나 숨을 참고 수중의 잠수를 통해 자신을 있는 그대로 맞이하는 준호의 모습에서 400번의 구타에도 4등의 행복을 즐길 줄 알았던 해맑고 성숙한 우리의 또 다른 아이들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곧 성년의날 5월16일이다. 모 주간지는 특집으로 ‘성년이 된 발달장애인을 우리 사회는 맞을 준비가 됐나’를 실었다. 소방관이 되고 싶고, 요리사가 되고 싶고, 수영선수가 되고 싶은 발달장애 아동에게는 앙드레 바쟁과 프랑수아 트뤼포 같은 스승이자 멘토가 절실하다. 영화 포스터에는 “반짝반짝 빛나는 4등”이라고 쓰여 있다. 아이들이 숨을 참고 잠수해야만 반짝반짝 빛날 수 있는 수중만 아니라 지상의 햇볕을 쬐며 숨 쉬고 웃어야 할 그날은 내일이 아니라 오늘이어야 한다.

마침 성북 아리랑고개에 있는 아리랑씨네센터에서 <4등>과 <400번의 구타>를 같이 상영하고 있다. 이 오월이 가기 전에 꼭 보셨으면 좋겠다.


김종휘 | 성북문화재단 대표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