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민주노동당의 당적을 오랫동안 가지고 있다가 분당하면서 탈당했다. 사민주의 정당 정도의 이름이라도 가지면 입당을 하려고 했는데, 대뜸 ‘진보신당’이라고 이름을 달아버리는 데 실망을 하고 아직 입당을 안 했다. 열심히 진보정당 운동하는 분들에게는 미안하지만 당원이 아니면 정말 편하다. 어쨌든 그 후로 당이라는 이름으로 무슨 활동을 하지는 않고 개별적으로 사안에 따라서 정치인들과 같은 자리에 앉기는 한다. 

새만금, 4대강, 탈토건 정책 그리고 최근의 한·미 FTA까지. 좋든 싫든 정치라는 과정을 통하지 않고서는 해결하기가 어려운 문제들이다. 지난 수년간 이렇게 민주당을 지켜본 결과는 진보적이고 개혁적인 경제 입장을 취한 정치인들은 민주당 내에서 한 명씩 한 명씩 고립되고 사라져갔다. 그리고 조금이라도 보수적인 입장을 가진 정치인들이 흥했고 그들에게는 더 많은 권력이 생겨났다. 지금 민주통합당 원내대표인 김진표류의 정치인들이 그렇다. 관료 출신, 보수적 시각의 경제인들이 민주당에서 주류가 되어가는 이 상황, 이건 이미 대세가 되어버린 듯하다.
 

출처 :경향DB


 
한명숙 대표체제의 민주통합당이 출범하면서 시늉으로 내걸었던 한·미 FTA 반대나 론스타 특감 등이 사실상 무산되었다. ‘앙시앵 레짐(ancien regime)’이라는 표현을 쓰면, 민주통합당은 맹렬하게 앙시앵 레짐으로 돌아가는 중으로 보인다. 노무현 정부가 급격하게 보수화되던 그 시기의 총리, 그 시기의 사람들, 그들이 다시 전면에 나서는 것을 지금 우리가 보는 중이다. 물론 “고기도 먹어본 놈이 먹는다”는 말이 있듯이, 집권도 해본 사람들이 더 잘한다고 할 수도 있다. 어쩌면 그 말은 맞을지도 모른다. 권력과 특혜를 누려보지 못한 사람들이 그 달콤함을 알 리가 없고, 그것을 차지하기 위한 강렬한 욕망이 생겨나지 않을 수 있다. 

자, 의미를 명확하게 하기 위해서 ‘통상파’라는 이름을 사용해보자. 김현종과 이종훈을 끌어들이고 결국 한국이 나아가야 할 길은 통상을 강화해서 더 강력한 수출 중심 국가로 가고, 이를 통해서 내부 시스템을 개혁해야 한다고 하는 사람들이 노무현 중기 이후 권력을 잡았다. 총리였던 한덕수까지 포함시키면, 민주당 혹은 민주당을 포섭한 통상파들이 누구인지 금방 그림이 나올 것이다. 그중에는 모피아도 있고, 노무현 측근도 있고, 정치인도 많다. 이 통상파들이 맹활약하던 ‘앙시앵 레짐’의 시대, 민주당은 망했고 정권은 한나라당으로 넘어갔다.

한명숙 대표 체제는 내가 보기엔 권력욕이 대단한 정치인들과 통상파들로 구성된다. 집권욕구는 대단하다. 이건 인정한다. 그러나 통치에 대한 욕구, 즉 나라를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기 위한 욕구, 이건 전혀 보이지 않는다. 집권을 하면 자리가 아주 많이 생긴다. 5년 동안 굶었던 사람들이 그 집권의 과실을 따먹고, 경제 등 골치 아픈 통치에 해당하는 기술적 일들은 그냥 통상파들에게 맡긴다, 이게 한명숙 대표의 치세 방식으로 보인다.

시민들이 원하는 것은 이건 아니라고 알고 있다. 반MB의 가장 나쁜 폐해는 정치권력만 교체하고, 사람들의 일상적 삶에는 아무런 변화도 생기지 않는 것, 즉 진짜 ‘시민의 경제’는 생겨나지 않는 것, 그거라고 본다. 집권은 해도 통치는 하지 않는 것, 그게 한명숙을 얼굴로 내세운 그 이면의 음모 세력이 지금 가지고 있는 집권 플랜 아닌가? 

민주통합당은 귀찮고, 이학영을 필두로 한 현장에서 잔뼈 굵은 활동가들은 그냥 내버려둬도 살벌한 정치판에서 한 명씩 죽어갈 것이다. 통상파들이 그리는 미래에 대한 그림이 과연 무엇인가? 내가 보기에는 없다. 지금 우리가 바라는 미래의 모습은 한·미 FTA가 태동되던 그 앙시앵 레짐으로 돌아가는 것은 아니다. 나는 그렇게 이해하고 있다. 한명숙 대표 등 민주통합당 지도부의 임기가 정상적이라면 2년이다. 대통령 하나 바꾼다고 세상 좋아지지 않는다는, 오랫동안 했던 말을 다시 환기시켜드릴 수밖에 없다. 

지금 민주통합당이 집권한다면 ‘시민의 정부’라는 명분으로 많은 사람들이 힘을 몰아준 덕일 것이다. 그 힘을 가지고 다시 구체제로 복귀한다면, 지금 숨죽이고 있는 새누리 세력들이 2~3년 후에 완전히 전열을 정비하고 다시 집권하게 될 것이다. 한명숙 대표의 지금과 같은 폐쇄적 당 운영 방식과 극도의 자기 사람 심기, 이건 노무현 정부의 실패를 다시 불러오게 된다. 통상파의 손을 잡고 대리 통치하는 정부, 그건 비극으로 가는 길이다. 

새누리당이 워낙 못하니 집권은 어떻게라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난 몇 주간 보여준 한명숙호의 모습대로라면 세상은 좋아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물러나라고 물러날 사람도 아닐 듯싶다. 더 늦기 전에 당 지도부들이 환골탈태하는 수밖에 없다. 통상파와의 통치, 그건 시대 패러다임에 안 맞고 그냥 앙시앵 레짐으로의 복귀라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시민과 밀실, 그건 어울리지 않는 두 개념이다. 시민 대연정을 어떻게 성공시킬 것인가, 한명숙 대표에게는 그 고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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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