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폭력'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8.03.05 [시선]이주여성도 함께 “미투”
  2. 2017.11.15 [정동칼럼]30년 지나도 변하지 않은 폭력

오랫동안 감추어졌던 여성에 대한 폭력의 역사가 진실의 햇빛 아래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상처받은 피해자의 목소리가 또 다른 피해자의 목소리와 이어지며 부서지지 않을 것 같던 견고한 장벽을 조금씩 흔들고 있다. 모든 폭력은 가해자와 피해자의 권력 관계에 기인한다고 생각한다. 우리 사회에 오랜 시간 동안 뿌리내렸던 가부장제와 남성 중심적인 권력구조가 가해자에게 압도적인 권력을 주었고, 피해자인 여성에게는 침묵을 강요해왔다. 지금 드러나는 수많은 폭력이 오랫동안 은폐된 가장 큰 이유다.

같은 이유에서 침묵을 강요당하는 피해자가 여기에도 있다. 한국에 머무는 많은 이주여성이다. 얼마 전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와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에서 실시한 ‘이주여성 농업노동자의 성폭력 실태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중 12.4%가 성폭력 피해를 경험했다고 답변했다. 농촌 노동의 특수한 문제는 아니다. 식당, 공장에서도 여성 이주노동자에 대한 성희롱, 성폭력은 빈번하다. 혼인이주 여성의 성폭력이 동반된 가정폭력도 심각한 수준이다. 최근에는 외국인 유학생에 대한 성폭력 사건도 자주 발생하고 있다.

4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3·8 세계여성의날 기념 제34회 한국여성대회’에 참석한 시민들이 성폭력을 고발하는 ‘미투 운동’을 지지하고 성평등 실현을 촉구하는 집회와 행진을 하고 있다. 정지윤 기자

특히 이주여성들은 공장, 가정, 학교 등 공간적으로 고립되어 있어 외부기관의 조력을 받기 쉽지 않다. 또한 성폭력 피해에 대처할 정보가 충분하지 않고, 무엇보다 한국어 의사소통 능력이 떨어져 적절한 대응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성폭력 피해를 입은 이주여성들이 언어의 부담 없이 자국어로 소통하며 자신의 피해 사실을 충분히 설명하고 이에 대해 지원을 받을 수 있는 통합 지원 기관의 설립과 경찰·검찰·법원의 사법적 지원이 체계적으로 마련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사후적인 지원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욱 필요한 것은 처음부터 이주여성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제도의 근본적인 개선이다. 우리나라의 출입국 정책에 따르면 이주여성은 너무도 취약한 지위에 놓여 있다. 한국 사람과 결혼한 이주여성은 매번 자신의 체류자격을 연장하려면 한국인 남편이 함께 출입국관리소에 동행해야 한다. 두 사람이 진정한 결혼생활을 계속하고 있는지를 심사하기 위해서라고 하는데, 진정한 혼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지를 정부 기관이 심사한다는 것도 당혹스러운 일이지만 이러한 심사를 처음 혼인신고 이후에도 매년 반복해야 한다. 이주여성이 남편에게 가정폭력을 당해도 “신고하면 출입국관리소에 같이 안 가준다”는 말 한마디에 수년 동안 피해를 참고 지낼 수밖에 없었다.

일터에서의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지금의 제도에서는 외국인 노동자의 경우 사장이 외국인 노동자의 체류자격을 사실상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 외국인 노동자는 사장이 싫어도 사업장을 마음대로 바꿀 수 없다. 예외적인 몇 가지 경우를 제외하고, 사장의 허락 없이 사업장에서 이탈하면 그 순간 ‘불법체류자’가 된다. 사장이 가진 권한은 막강하지만, 책임은 거의 없다. 제대로 된 잠금장치도 없는 낡은 비닐하우스가 이주여성 노동자의 숙소이며, 그마저 사장은 여성 노동자의 숙소를 제멋대로 들락날락한다. 이런 숙소를 제공하고 월급에서 매달 20만~30만원씩 깎는다. 고용노동부 지침에 따른 것이라니 할 말이 없다. 이런 취약한 상황에 놓인 이주여성 노동자들이 사장의 온갖 성폭력에 노출되는 것이다.

한 인간이 존엄한 인간으로 존중받지 못하고, 정부에서 만든 제도가 이주여성을 열악한 사각지대로 밀려날 수밖에 없게 만든다면, 이주여성에 대한 폭력은 갈수록 심각해지고, 지속해서 은폐될 수밖에 없다. 어떠한 법과 제도도 사람을 누구에게 종속된 존재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 뒤늦게나마 그동안 감추어진 여성들에 대한 폭력의 역사를 햇빛 아래로 모습을 드러내게 한 위대하고 용감한 목소리가, 지금 이 순간 우리 사회 가장 취약한 어느 곳에서 눈물 흘리는 피부색 다른 이주여성에게도 울림으로 이어지길 희망한다.

<조영관 | 변호사·이주민센터 친구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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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전화기 너머 한국여성의전화 고미경 대표의 목소리는 울분에 차 있었다. 가정폭력보호시설에 가해자가 침입했는데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이 가해자 격리 등의 조치를 취하기는커녕 오히려 가정폭력 가해자를 옹호하고 비호했다는 것이었다. 참 어처구니없다 싶었는데 이어진 그녀의 말에 더 기가 막혔다.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가정폭력에 대한 인식과 대처는 어쩌면 이렇게 바뀌지 않을까요? 세상이 변하지 않으니 기자회견 구호가 30년 전과 똑같아요. 다르게 정해보려고 얼마나 골머리를 앓았는지 몰라요.” 이럴 땐 분노보다 절망감이 앞선다.

올 상반기에만 4565명이 ‘데이트폭력’으로 검거됐다. 폭행, 스토킹, 온라인 성범죄 등 주로 여성들을 겨냥한 ‘젠더폭력’은 갈수록 심각한 이슈가 되고 있으나 가정폭력처럼 피해자를 가해자로부터 격리해 보호하는 조치도 없고 강력 대응할 법적 근거도 미흡하다는 지적이 많다. 출처: 경향신문DB

사건은 이랬다. 지난 2일 저녁 8시경, 한 가정폭력피해자 보호시설에 가해자가 ‘침입’했다. 그는 “자녀를 보기 전에는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겠다”며 버텼다. 흔히 ‘쉼터’라고 부르는 보호시설은 단어 뜻과 달리 쉬는 곳이 아니다. 무자비한 폭력에서 탈출해 갈 곳 없는 피해자들이 최소한의 안전과 생명을 보호받기 위해 찾는 피난처이자 삶의 마지막 보루다. 이곳에 가해자가 무단 침입한다는 것은 쉼터 거주자들에게는 공포와 위협이자 또 다른 폭력임을 의미한다.

그날 그 가해자가 보자고 했던 아이는 엄마와 함께 쉼터에 온 뒤 꿈을 꿨다고 한다. “꿈에서 몸에 개미가 자꾸 나와 옷을 열어보니 아빠가 나왔다”며 엄마에게 “너무 무섭다. 여기는 안전하냐”고 물었다고 한다.

그런데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가정폭력에 대해 무지하고 무능했으며 피해자 보호라는 책무를 방기한 채 오히려 가해자 편에 서서 사태를 악화시켰다. 피해자와 활동가가 보호시설 위치를 노출시켰다며 근거 없는 비난을 하는가 하면, “가해자가 자녀만 보면 돌아갈 사람이다” “위해를 가하지 않았다”며 가해자를 격리시켜 달라는 보호시설 측의 요구에 응하지 않았다. 오히려 경찰은 한 수 더 떴다. 가해자에게 “피해자들이 빠져나가야 하니 이동해 달라”고 ‘부탁’까지 했단다.

결국 격리조치돼야 할 가해자는 남고 11시가 넘은 한밤중에 피해자가 공포에 떨며 피신해야 했다. 활동가들이 현수막으로 가해자의 시야를 가리며 최소한의 안전조치를 취하는 동안 가해자는 활동가들의 사진을 찍으며 위협했지만 경찰은 이마저도 방치했다.

가정폭력특별법이 제정된 지 올해로 20년이 되었다. 피해자 보호시설을 설치한 지는 30년이 흘렀다. 지난 5년간 신고건수는 20배가량 늘었지만 제대로 사법처리된 것은 극히 드물다. 여성단체들은 최근 ‘1OF10000TO10000OF10000’이란 암호 같은 숫자를 새긴 팔찌를 나눠주며 가정폭력 추방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가정폭력 피해자 1만명 중 신고한 이는 130명에 불과하며 이 중 1명만이 구속되는 현실에서 범죄자 모두 제대로 처벌받는 사회가 되기를 기원하는 간절함을 담은 것이다.

가정폭력에 대응하는 경찰의 안이하고 미흡한 조치로 피해를 신고한 여성이 가해자에게 더 큰 보복을 당하는 일은 가정폭력특별법이 제정된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하다. 이번 사건 이후 여성단체가 전개하고 있는 ‘#경찰이라니_가해자인줄’이라는 해시태그 운동에는 10만명가량이 동참해 자신이나 이웃이 당한 사례를 줄지어 고발하고 있다. 이웃의 가정폭력을 신고했더니 현장에 온 경찰이 귀찮다는 표정을 지으며 “저 사람 원래 자주 그러는 사람이고 여자도 드세고 자꾸 대들어서 그렇다”고 말하는가 하면 신고한 이웃에게 “죽여버리겠다”고 협박하는 가해자를 전혀 제지하지도 않았다는 등의 폭로가 잇따르고 있다.

경찰의 안이한 인식과 대응, 가해자에 대한 미진한 처벌은 현행법의 한계에서 비롯된 측면이 있다. 가정폭력처벌법은 ‘가정폭력 범죄로 파괴된 가정의 평화와 안정을 회복하고 건강한 가정을 가꾸고 피해자와 가족구성원의 인권을 보호함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가정폭력은 가정 내의 경미하고 사소한 다툼이라는 인식이 밑바탕에 깔려있지 않고서는 이런 법 조항이 만들어질 수 없다. 이 경우 가정폭력 피해자가 목소리를 내기란 더욱 어렵다.

가정폭력은 사적이고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다. 성별 권력관계에 근원을 둔 성차별이며 젠더폭력이다. 가정폭력이 심각한 이유는 신체적으로 때리고 공격할 뿐만이 아니라 여성의 온 삶을 통제하고 자율성과 자기결정권을 훼손함으로써 인간의 존엄을 파괴하기 때문이다.

오늘 쓴 글 중 새로운 관점이나 이론은 없다. 지겹지만 30년 동안 제기된 주장을 고스란히 다시 담았다. 여성단체들이 외쳐온 것처럼 “가정폭력은 전혀 사소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며 인간적 삶과 존엄한 삶의 복원을 위해 반드시 해결되어야 할 과제이기 때문이다. 아직도 세상이 이런데 민주화가 됐다고, 촛불혁명을 완수했다고 자축할 수는 없는 일 아닌가.

<문경란 | 인권정책연구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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