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국 캘리포니아주 고등법원 토머스 괴탈스 판사는 오렌지 카운티 검찰청 소속 250명 검사 전원에 대해 ‘중범죄 기소권을 박탈’하는 명령을 내렸다. 전무후무한 충격적인 결정이었다. 이유는 살인 등 중범죄를 기소하면서 피고인에게 유리한 증거들은 감추고, 교도소 재소자들을 회유해 피고인에게 불리한 허위 증언들을 하도록 교사해 온 관행이 확인되었기 때문이었다. 충격적인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주 법무장관이 철저한 자체 조사를 천명했지만, 학계와 여론은 검사들의 ‘사법방해죄’ 범죄 혐의에 대해 ‘독립 수사기구’에 의한 철저한 수사를 촉구하고 있다.

이 사건에 대해 로스앤젤레스 소재 로욜라 대학 로스쿨 나타포프 교수는 검사들이 ‘나쁜 놈들을 잡아넣을 수 있다면, 어떤 수단과 방법을 사용해도 된다’는 매우 위험하고 반헌법적인 사고에 빠져있는 것 같다고 비판하면서 이들이 저지른 가장 큰 잘못은 ‘사법제도에 대한 불신’을 조장했다는 것과 ‘무고한 시민에게 누명을 씌우면서 진범은 놓칠’ 가능성을 활짝 열어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미 미국에서는 이런 형태의 ‘사법 부정’ 혹은 목격자의 진술이나 피의자의 자백에 의존해 엉뚱한 사람에게 누명을 씌우는 일이 발생할 수 있다는 가능성에 기반을 둔 ‘무죄 입증 프로젝트(Innocence Project)’가 운영되고 있다. 1992년에 시작된 독립 민간 기구인 이 프로젝트 활동을 통해 지금까지 총 343명의 사형 및 무기징역 등 장기수가 재심을 통해 무죄 판결을 받고 석방됐고, 이들 대신 140명의 진범이 검거됐다.

변호사와 교수 등 민간 전문가들로 구성된 이 프로젝트는 주로 DNA 등 과학적 수사기법을 활용해 사건을 독립적이고 중립적인 시각에서 다시 조사한다. 그간의 사건 사례들에서 발견되는 공통된 수사와 기소, 재판 과정상의 문제점들을 분석해 사법제도와 정책의 개선 방향을 제시하는 것도 중요한 역할 중 하나다. 프로젝트가 재심을 통해 진실을 밝혀낸 사건들이 애초에 경찰과 검찰, 법원을 거치면서 잘못된 판결로 이어지게 된 원인들을 분석해 보니 목격자의 허위 혹은 착오, 부실한 경찰 과학수사, 피의자의 허위 자백, 검사의 증거조작, 정보원이나 제보자의 부정, 변호인의 무능 등이 대표적인 문제들이었다.

과연 미국에만 국한되는 문제였을까? 우리의 경우 최근 재심을 통해 무죄가 확정된 인혁당 사건이나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 등 소위 ‘시국 사건’에만 해당하는 문제일까? 국정원과 검찰이 증인과 증거들을 철저하게 조작했던 치졸한 행각이 낱낱이 밝혀진 ‘서울시 공무원 간첩조작’ 사건만 예외였을까?

실제 범인으로 강하게 의심되는 ‘익산 택시기사 살인사건’ 용의자가 뒤늦게 자백하고 그를 숨겨주었던 친구가 그 사실을 인정하는 진술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처음에 증거도 없이 잡아넣었던 15세 소년의 누명을 벗겨주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고 있는 대한민국 경찰과 검찰, 법원을 신뢰할 수 있을까? 그런 경찰과 검찰과 법원이 합심해 ‘아버지를 살해한 패륜아’라며 교도소에 감금하고 있는 무기수 김신혜의 ‘억울하다’는 울부짖음에 많은 사람이 귀 기울이고 있다. 그 이유는 아마도 ‘사법 부정이 판치고, 이를 바로잡을 어떤 대안도 없는 대한민국’에서는 언제든 ‘나도 저렇게 억울한 누명을 쓸 수 있다’는 두려움에 대한 공감대인 듯해 아프고 슬프다.

서울 서초동 대법원 앞에서 '강기훈 쾌유와 명예회복을 위한 시민모임' 회원들이 '강기훈 유서대필 조작사건 무죄' 판결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출처 : 경향DB)


범죄 사건의 진실은 오직 가해자와 피해자, 그리고 하늘만 안다. 그 현장에 함께 있지 않았던 경찰과 검찰, 법원이 내리는 결정이 진실에 가깝기 위해서는 철저하게 솔직하고, 치우치지 않으며, 이해가 반영되지 않고, 오직 과학과 법 절차에 기반을 둬 발견한 증거에 입각해야 한다.

그런 완벽에 가까운 노력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하는 일이기 때문에 실수나 오판이 발생할 수 있다. 그 경우에 대비한 대안이 있어야 한다.

미국의 경우 ‘무죄 입증 프로젝트’가 그 대안이고, 우리의 경우 한때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 등 한시적인 기구들이 있었다. ‘사법 신뢰’가 무너진 대한민국, 대책이 필요하다.


표창원 | 범죄과학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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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한국판 드레퓌스’로 불리는 강기훈씨가 대법원에서 무죄 선고를 얻어내기까지는 24년이 걸렸다. 송사에 한번 휘말리기만 해도 심신이 피폐해지는데 그는 강산이 두 번 바뀌고 대통령이 다섯 번 바뀌도록 수사와 조사, 재판을 거듭해서 받았다.

그의 인생은 1991년 4월26일 명지대생 강경대씨가 시위 중 경찰이 휘두른 쇠파이프에 맞아 사망하는 순간 결딴났다. ‘살인 정권’을 규탄하는 시위가 그해 봄 전국으로 퍼졌고 전남대생 박승희씨 등이 자신의 몸에 불을 붙였다. 이른바 ‘분신 정국’으로 정권과 민주화 세력 간 대충돌이 벌어졌다. 시인 김지하는 조선일보에 ‘죽음의 굿판을 걷어 치워라’라는 글을 썼다.

5월8일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전민련) 간부인 김기설씨가 ‘정권 퇴진’을 요구하며 서강대에서 투신했다. 서강대 박홍 총장은 “죽음을 선동하는 어둠의 세력이 있다”고 말했다. 기다렸다는 듯 검찰은 분신 배후 세력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다. 전민련 동료인 강기훈씨가 김기설씨의 유서를 대신 써줬다는 이유(자살방조)로 구속영장이 청구됐다. ‘노태우 정권은 퇴진해야 합니다’로 시작하는 김씨 유서와 강씨가 써보인 글씨는 일견 비슷했지만 분명히 달랐다. 하지만 김씨 유서 글씨와 강씨 필체는 동일하다는 국과수의 감정 결과가 발표되고, 그것이 증거로 인정되면서 강씨는 1991년 7월 구속기소됐다.

재판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1심 유죄, 2심 유죄, 3심 대법원서도 유죄. 민주화 세력은 도덕성에 큰 타격을 입었다. 2005년 강씨 사건을 위한 진상규명대책위가 구성되면서 반전이 시작됐다. 재심 청구, 서울고법 재심 개시 결정, 검찰 항고, 대법원 재심 개시 결정, 서울고법 재심 무죄, 검찰 상고, 대법원 재심 무죄라는 한국 사법사상 전무후무한 일들이 벌어졌다. 자살방조 혐의로 감옥에 갇힌 스물일곱 젊은이는 파렴치범이라는 비난까지 받다가 나이 50이 넘어 누명을 벗었다.

강기훈 사건을 바로잡은 것은 2007년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의 결정이었다. 진실화해위는 1991년 당시 검찰이 제시한 필적 감정이 잘못됐고, 국과수가 필적 감정을 문서감정인 한 명에게만 맡기고도 여러 명이 공동으로 감정한 것처럼 법정에서 허위로 증언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그럼에도 사법부가 재심을 통해 사건을 결론낸 것은 큰 의미가 있다. 죄인은 강기훈이 아니라 사건을 날조한 노태우 정권과 검찰이라고 공식화한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은 이제 ‘강기훈 유서대필 조작’ 사건이 됐다.

그러나 대법원 재심은 아쉬운 점이 많았다. 재판관이 “사건번호 2014도2946 피고인 강기훈, 검사 상고를 기각한다”고 낭독한 것이 전부였다. 검찰에 질타도 없었고, 1·2·3심 오판에 대한 반성도 없었다.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병마와 사투하고 있는 강기훈씨에게 사과와 위로의 말 한마디도 없었다. 대법원 스스로 재판의 의미를 애써 축소하는 모습이었다.

판결문도 싱거웠다. A4용지 4장 분량의 판결문은 사건번호와 피고인 성명과 주소, 변호인 이름, 대법관들의 서명 등을 빼면 1600자 정도였다. 핵심인 무죄 선고 이유는 형사소송법의 재심 규정과 지난해 2월13일 서울고법이 강씨를 무죄로 본 5가지 근거를 요약·정리한 수준이었다. 한 법조인은 “하기 싫은 숙제를 억지로 한 느낌”이라며 “이런 판결에 (서울고법의 재심 판결 이후) 1년 넘게 걸렸다는 게 이해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 일지 (출처 : 경향DB)


당시 수사 검사들은 여전히 기세가 등등하다. 검찰 수사팀 일원이었던 남기춘 변호사는 “현재의 척도로 옛날에 한 판결을 다시 하면 결론이 달라질 것”이라며 “(강기훈씨에게) 사과할 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임철 변호사는 “검찰은 수사를 하는 기관이지 판단을 하는 기관이 아니다. 당시 1·2심이 진행됐는데 그 과정에서 그런 걸 밝혀내지 못했다면 그건 법원 잘못”이라고 말했다. 조선일보는 사설에서 “국과수 필적 감정 결과를 어떻게 볼 것이냐 하는 법관의 주관적 판단이 달라지면서 원래와 정반대되는 판결이 나왔다. 증거의 신빙성에 대한 판단은 재판부마다 다를 수는 있다. 궁극적 진실은 강씨 본인이 아는 것이다”라고 밝혔다.

당시 수사진과 조선일보 논리대로라면 우리는 일제의 위안부 강제 동원 등에 관해 일본 정부의 사과나 배상을 요구할 수 없고, 요구해서도 안된다. 과거 일을 현재 기준으로 판단하면 안되고, 일제 침략에 선조들이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탓도 있기 때문이다.

우여곡절 끝에 강씨는 족쇄에서 풀려났다. 그러나 한국 사회가 강기훈 사건의 사슬에서 풀려나려면 더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오창민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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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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