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촛불혁명’이라는 말이 낯설지 않다. 나는 촛불혁명이야말로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제1조의 당연한 진리를 국민들이 국민 대표들 앞에 당당히 확인시켜준 역사적 사건이라 믿는다.

임기가 남은 대통령을 끌어내리고 대선을 통해 새 대통령을 뽑았다고 이러한 촛불혁명이 완성된 것은 아니다. 촛불현장의 뜨거웠던 열기와 참여자들의 적극적인 모습을 떠올려볼 때, 국민이 나라의 주인이라는 헌법 제1조의 정신이 국민 모두의 머리와 가슴에서 너무도 당연하게 여겨지는 그날까지 촛불혁명은 계속될 것이라 확신한다.

지난 19일에 문재인 대통령과 여야 5개 정당 원내대표들이 만난 자리에서 문 대통령이 내년 6월 지방선거에서 개헌을 위한 국민투표를 실시하겠다고 한 대선 공약을 지키겠다고 말했다. 여야 대표들이 즉각 환영의 뜻을 밝히면서 개헌이 정치권의 화두로 급부상하고 있다. 한 야당 원내대표는 “국회 개헌특위를 즉각 가동하고 대통령도 국회의 결정을 따르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밝혀야 한다”며 국회가 개헌의 주체임을 분명히 하고 나섰다. 또 다른 야당의 한 원내대표는 “대선 전 국회 개헌특위에서 민주당을 제외하고 바른정당, 국민의당이 ‘분권형 대통령제’에 대해 합의한 내용이 있는 만큼 이를 중심으로 재논의가 이뤄져야 한다”며 권력구조 개헌에 대한 집착을 드러냈다.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이분들의 말 속에는 개헌의 주체가 ‘국회’라는 생각이 공통적으로 들어있다. 아니다. 헌법 제1조에 따르면 개헌에 대한 권력도 국회가 아니라 당연히 주권자인 국민에게 있다.

우리 헌정사를 돌이켜 보면, 개헌논의가 항상 정치권에서 정치인들의 필요에 의해 촉발되고 개헌이 정치인들이 짠 정치일정에 따라 그들이 원하는 권력구조나 대통령 임기조항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왔다는 문제점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나중에 독재로 치달은 대통령들은 예외없이 장기집권을 위해 헌법상의 권력구조나 대통령 임기조항을 손댔다. 심지어 1987년 6월항쟁의 결과 쟁취해낸 개헌의 기회에서도 주인인 국민들이 아니라 정치인인 여야 8인 대표들이 개헌안을 만들었다. 6월항쟁에서 피를 흘린 국민들은 개헌논의 과정에서 철저히 배제된 것이다. 그래서 6월항쟁은 미완의 혁명으로 끝났고, 그 후 약 30년이 지나도 나아진 것 없는 답답한 현실 앞에 국민들이 촛불을 들었다.

개헌을 한다면, 이제 국민 주도의 개헌이 되어야 한다. 연초부터 국회에 개헌특위가 설치돼 활동 중이지만 국민 여론수렴은 뒷전인 모양새다. 국민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개헌의 내용이 무엇인지 듣기보다는, 또다시 분권형 대통령제니, 의원내각제니 하면서 정치인들의 최대 관심사인 권력구조 개헌에만 몰두하고 있다.

대통령제가 문제여서 이 부분을 개헌해야 한다고 말하는 국회의원들 중에는 바로 그런 대통령을 보좌해온 분들이 없지 않다. 누가 권력구조 개헌을 통해, 말로는 ‘국민을 위한 개헌’을 이야기하면서 실제로는 자신이나 자기 당의 권력 참여지분 확대에 더 치중하는지 국민들은 두 눈 부릅뜨고 지켜보고 있다.

물론 현행 헌법 제128조에 의해 개헌발의권은 ‘국회재적의원 과반수 또는 대통령’에게 있다. 그러나 헌법 제1조의 정신으로 이 조항을 읽으면, 개헌의 방향과 개헌안의 주된 내용은 국민들이 정하고 국회나 대통령은 이를 받아 발의할 수 있는 것이다. 정치인들이 정치일정에 따라 당리당략에 따른 주고받기로 만든 개헌안에 대해 국민들이 국민투표로 찬반의사만을 표시하게 해서는 ‘국민 주도의 개헌’이 될 수 없다. 또한 국민 주도의 개헌절차를 밟다보면 당연히 개헌의 주된 방향과 내용도 국민들이 결정하게 된다.

헌법에는 권력구조 조항만 있는 것이 아니다. 기본권조항, 경제민주화 조항, 지방자치조항 등 국민생활과 직결된 더 중요한 조항들이 많이 있다. 촛불현장에서 여러 차례 이야기된 국민소환제나 국민발안제는 국민이 배제되고 기존의 정치인들만 참여하는 개헌논의 과정 속에서는 결코 반영될 수 없다. 비정치인으로 구성된 헌법심의회가 우편이나 각종 소셜미디어상 시민들과의 소통을 통해 개헌안을 마련해 낸 아이슬란드 개헌에서 볼 수 있듯이, 국민 주도의 개헌이 외국에서도 대세를 이룬다.

개헌은 국민들이 주도하게 하고, 국회와 정부는 적폐청산, 일자리 등 민생, 외교안보 안정화, 선거구제 개편 등을 통한 정치개혁에 노력을 집중하면 된다. 촛불혁명의 시작도 국민이 했듯이, 그 수행도 국민이 개헌을 통해 이루어내야 한다. 이번 개헌이 반드시 국민 주도의 ‘촛불개헌’이 되어야 하는 이유다.

임지봉 |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헌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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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을 제외한 자유한국당·국민의당·바른정당의 원내대표가 어제 대선 때 개헌 국민투표를 추진하기로 합의했다. 3당은 4년 중임 분권형 대통령제 도입을 골자로 한 단일 헌법개정안 초안을 마련하고 다음주 초까지 최종안을 확정하기로 했다. 민주당 내 일부 의원들도 개헌 대열에 보조를 맞추고 있다고 한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으로 정국이 어지러운 판에 느닷없이 개헌 합의라니 어안이 벙벙하다.

개헌이 필요한지에 대해서는 아직도 논란이 있다. 그러나 적어도 대선 국면에서 헌법을 바꾸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데는 시민 사이에 일정한 합의가 형성되어 있다. 따라서 개헌을 추진할 의사가 있다면 대선 이후 시민의 뜻을 모으고 충분한 공론과정을 거쳐야 한다. 정치권 일부가 뚝딱 합의해 추진할 일이 결코 아니다. 30년 만에 시민의 권리장전을 다시 제정하겠다면서 대선으로 시선이 모아지고 있는 틈을 이용하겠다는 발상은 매우 불순하다. 게다가 국민의당이 탄핵당한 자유한국당, 국정농단에 책임이 있는 바른정당과 손잡고 대선 국면을 호도하기 위해 개헌으로 시선을 돌리려는 정치공작적 행태는 묵과하기 어렵다.

자유한국당 정우택, 바른정당 주호영, 국민의당 주승용 원내대표(앞쪽부터)가 15일 국회에서 ‘대선 때 개헌안 국민투표’에 합의한 뒤 회의장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대선까지 남은 55일 동안 개헌안에 합의하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4년 중임의 대통령제로 합의했다고 하지만 정부 형태를 어떻게 할 것인지 하나만 놓고도 장시간 논의해야 한다. 조그마한 법 하나 바꾸는 데도 갑론을박하며 시간을 보내는 정치권이 언제 무슨 수로 합의를 보겠다는 것인지 알 수 없다. 개헌을 하려면 의원 200명 이상의 찬성이 필요한 줄 알면서도 제1당을 제외한 것도 의도를 의심케 한다.

출처: 경향신문DB

이처럼 되지도 않을 개헌을 3당과 민주당 일부가 추진하고 나선 의도는 뻔하다. 이번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를 위시한 민주당 후보를 이길 방법이 없으니 개헌을 연결고리로 대선 판을 흔들어보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반문재인 개헌연대’라는 정치공학적 접근으로는 시민의 지지를 받을 수 없다. 정정당당하게 국가를 책임 있게 이끌 비전과 정책을 내놓고 경쟁하기 바란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 비선 실세 최순실씨의 국정농단이 헌정 사상 초유의 탄핵으로 이어져 긴급히 대선을 치르는 비상 국면이다. 시민과 정치권 전체가 박 전 대통령 검증의 실패를 뼈저리게 반성하며 제대로 된 대통령을 뽑는 데 집중해도 모자랄 판이다. 박 전 대통령 탄핵에 아무런 역할도 못하고 개혁입법도 소홀히 한 정치권이 개헌부터 하겠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스스로 개헌의 정당성을 훼손하는 행위이다. 3당이 진정 나라와 시민을 생각한다면 정략적 개헌 논의를 즉각 중지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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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개헌, 대선

새해가 밝으면서 우리나라가 선진국 클럽이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한 지 만 20년을 채웠다. 하지만 아직도 우리나라는 멕시코, 터키와 더불어 OECD 내의 ‘못난이 3형제’다. 노동시간, 자살률, 노인 빈곤율 등 부정적인 분야에서는 OECD 상위권을, 수면시간, 노동자 근속 기간 등 긍정적인 분야에서는 하위권을 차지하고 있어서 붙은 별명이다.

그렇지만 우리나라가 ‘못난이 3형제’를 면할 뿐 아니라 ‘선배 선진국’마저 압도하는 분야가 바로 공교육이다. 높은 학업 성취도는 다른 나라보다 월등히 많은 학습 시간 등의 이유를 댈 수 있겠지만, 그것 말고도 학교 시설, 교육 인프라, 우수한 교원의 확보, 평등한 교육 기회 등 우리나라 공교육이 OECD 최상위권을 차지한 분야는 많다.

반면 우리나라는 학생들의 학업에 대한 자신감, 학교에서의 행복도, 교사에 대한 존경심, 학부모들의 공교육에 대한 신뢰도, 교사의 직무 만족도와 직무 효능감 등은 ‘못난이 3형제’마저 멀찌감치 따돌린 압도적인 최하위다. 비유하자면 훌륭한 연주자, 좋은 악기, 쾌적한 공연장을 갖췄지만 청중과 연주자 모두 불만에 가득 차 빨리 공연이 끝나기만 기다리고 있는 오케스트라와 같다. 이는 연주하는 곡 자체가 졸렬하거나, 오케스트라 운영방식이 잘못되었거나, 지휘자가 무능한 탓이다. 지난 10년간 교육당국은 교사의 전문성을 무시하고 정권 입맛에 따라 누더기나 다름없는 교육과정을 만들었고, 그걸로 모자라 걸레로도 못 쓸 국정교과서까지 들이밀었다. 그 밖에 수많은 낡은 교육제도와 시대착오적 교육법이 창의적인 교육활동을 가로막았고, 거기 기생하는 관료들이 변화에 저항하고, 정권의 눈치를 보며 자기들의 권력 유지를 위해 교육을 왜곡했다.

2017년은 새로운 대통령을 선출하는 해다. 개헌 논의도 활발하다. 그렇다면 이참에 국가의 100년 기틀이 되는 교육도 개헌 수준으로 바꾸어 볼 필요가 있다. 교육법은 교사의 전문성과 자주성을 보호하고, 정권이나 기타 부당한 외압으로부터 지켜주는 보루가 되어야 한다. 교육과정은 중앙에서 획일적으로 내리 먹이는 것이 아니라 교육현장에서 교육전문가들의 토론, 교육자와 학생의 만남 속에 생성되어야 한다.

이런 식의 변화가 일어난다면 교육에 대한 정치적 간섭을 통해 충성경쟁을 벌여왔던 교육 관료들의 권력도 저절로 무너지고, 우리나라 100년의 장래가 거의 혁명적으로 바뀔 것이다. 반대로 교육 관련 법이 바뀌지 않는다면 아무리 개혁적인 정부가 들어서고, 교육부 장관이 바뀌더라도 낡은 저 교육체제에 생채기 하나 나지 않을 것이다.

요즘 헌법 공부가 유행이라고 한다. 헌법을 공부하는 것은 시민으로서의 의무이자 권리다. 그렇다면 교육법을 공부하는 것은 학생, 학부모, 교사의 권리이자 의무가 아닐까? 새해에는 전국 방방곡곡에서 교육법을 공부하는 모임들이 만들어지기를 희망한다. ‘손바닥 헌법’처럼 ‘손바닥 교육법’ 같은 책자도 나왔으면 한다. 그래서 학생, 학부모, 교사가 자신들을 개·돼지로 만드는 권위주의적이고 낡은 법 조항들을 샅샅이 밝혀내 폐지를 요구하고, 그 자리를 대신할 조항들을 만들어 제안하고 공론화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이는 교육의 개헌이며, 결국 우리나라 미래 100년을 책임질 개헌이다. 2017년이 교육주체들에 의한 교육 개헌의 원년으로 기록되기를 꿈꾸어 본다.

권재원 | 실천교육교사모임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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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에서 개헌론이 분출하고 있다. 여당의 분당으로 신4당 체제로 정치권 구도가 재편되면서 개헌을 매개로 한 대선 경쟁이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개헌론자들의 주장은 박근혜 게이트처럼 대통령의 막강한 권한이 문제가 되니 개헌을 통해 이를 해소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통령의 권한을 분산시키자는 주장, 5년 단임제를 4년 중임제로 고치자는 의견도 있다. 1987년 체제 이후 강화된 시민의 정치·사회적 권리를 헌법에 반영해야 한다는 논리도 있다.

하지만 지금 제기되는 개헌론은 생각해봐야 할 점이 많다. 우선 정치권이 당장 개헌 논의를 시작하면 모든 이슈를 블랙홀처럼 빨아들인다. 그런데 이번 촛불집회에서도 드러난 것처럼 시민들의 요구는 단순한 개헌이 아니다. 특권과 반칙으로 점철된 구체제의 개혁과 일신이다. 개헌론자들은 개헌에 이런 개혁 과제들을 담아낼 수 있다고 하지만 실현 가능성이 의심된다. 당장 대선 정국과 맞물려 개헌의 본래 취지는 뒷전으로 밀리고 개헌파와 비개헌파로 나뉘어 권력을 잡는 일로 날을 지새울 게 뻔하다.

개헌론은 특히 대통령에 대한 권력 집중을 문제점으로 지적한다. 하지만 한국 정치가 후진성을 면하지 못하는 것은 헌법 그 자체 때문이 아니다. 헌법의 문제에 앞서 민주주의의 기본 프로세스 자체가 작동하지 않은 탓이 크다. 기존 헌법에도 책임총리제 등 권력 분산의 요소가 다 들어있다. 더구나 촛불시민들의 요구대로 개혁을 한다면 대통령에 대한 권력 집중과 부정부패 등은 충분히 해소할 수 있다. 개헌까지 갈 것도 없이 여야 정치권과 검찰, 언론이 제 기능을 다한다면 제왕적 대통령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출처: 경향신문DB

설령 권력 체제를 개편한다 해도 내각제나 대통령제, 이원정부제 가운데 무엇이 최상인지 합의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내각제와 대통령제가 다 문제라면 이번에는 이원정부제를 도입해야 하는데 현대정치에서 내치와 외치를 구분하는 것은 가능한 일이 아니다. 대통령의 권력이 너무 강하다고 해서 권력해체에만 집착하면 또 다른 폐해를 낳을 수 있다. 대통령이 권한을 가지고 책임있게 국정을 운용할 수 있는 길을 원천적으로 차단할 가능성이 있다.

개헌의 또 다른 맹점은 정치세력들이 저지른 실책을 한꺼번에 덮어버린다는 것이다. 대선은 지금까지 어느 정치세력 또는 어떤 정치인의 잘잘못을 가리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런데 개헌은 모든 것을 제도의 결함으로 치부하기 때문에 모든 대선후보를 동일선상에 놓아버린다. 여당과 그 지도자의 실정에 대한 심판이나 야당 정치인의 잘못된 정치적 선택을 바로잡으려는 시도도 다 소용이 없어진다.

당초 개헌론은 지난 10월 수세에 몰린 박근혜 대통령이 제기했으나 정략적 접근이라는 비판으로 수그러들었다가 탄핵 가결 후 재등장했다. 여당은 물론 야당 일부까지 가세해 만병통치약으로 둔갑시키고 있다. 지금 개헌론은 개헌 그 자체보다 개헌을 매개로 자기 정파의 정치적 이득을 챙기는 데 목표가 있다. 현 정치 구도가 대선을 치르기에 불리하다고 판단한 정치인들이 개헌을 고리로 힘을 모아 상황을 바꾸려는 것이다.

지금 개헌안은 구체성이 결여돼 있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개헌이 가능하지도 않다. 개헌 방향에 대한 합의조차 없는데 언제 민감한 헌법 조항까지 합의해 통과시킬 수 있을 것인가. 대선 국면에서의 개헌은 시민의 참여 기회도 제약한다. 그래서 지금 개헌을 주장하는 것은 당략적 접근일 수밖에 없다. 정치인들만의 개헌은 결코 성공할 수 없다. 개헌은 시민의 뜻을 충분히 모아야 한다. 대선 공약으로 제시하고 심사숙고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정치권은 이제 개헌론의 수렁에서 벗어나야 한다. 시민들이 요구한 개혁 과제를 입법화하는 일에 집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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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일 여야 3당은 내년 1월부터 6개월간 국회 개헌특위를 운영키로 합의했다. 위원은 새누리당 8명, 민주당 7명, 국민의당 2명, 비교섭단체인 정의당 1명 등 총 18명으로 구성하고, 위원장은 새누리당이 맡기로 했다.

탄핵 시국에서 개헌 추진 자체에 대한 논란도 있고 개헌 내용에 대해서도 다양한 의견이 분출되고 있는 상황에서 어떠한 방향으로 개헌을 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기에 앞서 개헌 논의를 국회에만 맡겨둬선 안된다고 생각한다.

개헌의 방향에 대한 여야 간 입장이 첨예하게 갈리고, 같은 당 안에서도 생각의 차이가 있는 상황에서 개헌안 마련을 의석수에 비례한 국회 특위에 맡길 경우 과연 가능할까. 국회는 제20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선거구획정조차 입장 차이로 법정시한을 넘겨 처리했다. 선거구를 넘어서서 권력구조 변동을 다룰 수밖에 없는 헌법개정안을 국회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 찬성으로 만들어낼 수 있을까.

대안으로 헌법개정 시민의회를 제안한다. 아일랜드는 2012년 12월 헌법 8개 조항을 검토하기 위한 ‘헌법회의’를 1년4개월 동안 운영한 바 있다. 헌법회의는 의원 33명과 성, 연령, 지역을 감안해 추첨으로 선발된 시민 66명, 임명직 의장 1명 등 100명으로 구성됐다. 헌법회의는 전문가 집단과 8주간 회합 뒤 각 참가자들의 의견 개진, 지역별 회합, 인터넷으로 실시간 중계된 총회, 건의 내용 제시 등의 순서로 진행되었다.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주와 온타리오주도 선거법 개정을 위해 전원 추첨으로 구성한 시민총회를 1년여 동안 성공적으로 운영했다.

우리의 헌법개정 시민의회는 국회가 운영주체가 되며 성, 연령, 지역을 감안한 추첨을 통해 뽑힌 시민으로 구성한다. 국회 의석이 있는 정당은 자체 헌법개정안을 준비해 시민의회에 제출하고, 시민사회도 일정수 이상의 국민 서명을 받아 개정안을 청원할 수 있다. 개정안을 제출 또는 청원한 정당 및 시민대표들은 시민의회에 출석해 당위성을 설명한다. 시민의회는 헌법 및 각 분야 전문가 의견을 경청한다. 인터넷 홈페이지, 각 시민의원들 등을 통해 국민 여론도 수렴한다. 최소 6개월 운영 후 시민의회가 최종 개정안을 마련하면 국회 본회의에 바로 상정해 수정 없이 찬반 투표로 처리하거나, 국회 헌법개정특위 차원에서 논의해 본회의에 상정하면 된다. 후자의 경우 국회의원들이 상정된 안에 거부감이 있다고 하더라도 시민의회 결정을 전적으로 무시하기 어려울 것이다. 본회의에서 통과되면 국민투표에 부친다.

촛불로 표출된 우리 시민들의 시민혁명에 경외감을 쏟아내면서도 헌법개정은 국회에서 정당들끼리 알아서 하겠다고 하는 것은 촛불 민심에 대한 배신이다. 그럴 경우 촛불이 대통령을 넘어서 국회, 정당으로 향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말로만 깨어 있는 시민을 찬양할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는 헌법 제1조의 정신에도 부합하는 헌법개정 시민의회를 제도화할 것을 정치권에 촉구한다.

이지문 | 연세대 SSK 연구교수·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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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 민심에 놀라 침묵했던 새누리당 친박들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3차 대국민담화에서 “진퇴 문제를 국회 결정에 맡기겠다”고 떠넘긴 뒤부터다. 친박들은 개헌 추진 등 정국 전환을 시도하고, 촛불 민심을 조롱하고 있다. 박 대통령이 비선 실세들 범죄의 공범이 되고 탄핵·퇴진에 몰리게 된 데는 친박 세력 책임이 가장 크다. 자숙해야 마땅한 이들이 또 돌격대인 양 나서고 있다.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는 야당이 대통령 담화를 ‘꼼수’라고 비판한 것에 대해 “국회 권능을 스스로 무시한 피해 의식”이라며 “국회가 역할을 못하면 ‘무기력 집단’으로 지탄을 받게 될 것이고, 국민은 절망할 것”이라고 반박했다. 도둑이 몽둥이를 든 격이다.

친박계 조원진 최고위원은 “의원총회에서 (당내 비주류가 결성한) 비상시국회의를 해체하고, 당의 분열을 초래하는 탄핵을 더 이상 추진하지 말라고 요구했다”면서 “탄핵에 들어가면 지도부는 (21일로 예정된) 사퇴를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정진석 원내대표는 “개헌이 전지전능한 해법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광장의 함성을 통해 반영된 국민의 바람을 이어갈 수 있는 첫걸음은 될 것”이라고 밝혔다. 탄핵 정국을 개헌 정국으로 바꾸겠다는 의지다.

[김용민의 그림마당]2016년 12월1일 (출처: 경향신문DB)

막말도 이어지고 있다. 친박계 중진 홍문종 의원은 라디오에 출연해 “탄핵을 위해 야당이 하나가 됐고 정치 타임테이블을 설정해놨는데, (대통령 담화로) 대오가 흐트러지지 않았을까 생각한다”며 “야당으로서는 시쳇말로 약이 좀 오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조롱했다. 김종태 의원은 그제 의총에서 “촛불시위는 평화시위가 아니다. 좌파 종북 세력은 통상 시위 때마다 분대 단위로, 지역별로 책임자를 다 정해 나온다”고 말했다. 촛불을 들고나온 시민이 종북 세력에 의해 조종됐다는 폄훼다. 실로 몰상식하다.

이런 사람들이 박근혜 의원을 대선후보로 만들어 대통령으로 세웠고, 여당을 이끌어 왔다. 국정농단을 방관·방조하면서, 정부와 여당의 좋은 자리를 나눠 먹는 등 이권을 챙겨온 게 이들이다. 대통령이 피의자로 전락한 시점에서도 이간질, 범죄자 보호, 사법 방해, 위력 과시, 협박에 무고까지 하고 있다. 주먹만 안 썼을 뿐 범죄 단체와 다를 바가 없다. 지금 시민들은 눈을 부릅뜨고 여당을 지켜보고 있다. 이 당이 해체하지 않더라도 다음 21대 총선 때 선거 벽보에 박 대통령과 자신의 사진을 나란히 붙일 후보가 몇이나 되겠나. 깊게 생각하고 자중자애해야 한다. 형해나 다름없는 일부 무리가 아니라, 시민의 뜻을 받들어야 한다. 그게 국회의원들이 가장 무서워한다는 유권자의 명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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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직 임기 단축을 포함한 진퇴 문제를 국회의 결정에 맡기겠다”는 박근혜 대통령의 어제 담화는 개헌을 염두에 둔 것으로 해석된다. 박 대통령이 개헌이라는 말을 직접 언급하지 않았지만, 새누리당 지도부와 친박 세력이 개헌을 위한 임기 단축을 제기했던 점을 고려하면 개헌론에 불을 붙이려는 의도로 볼 수밖에 없다.

박 대통령이 개헌론을 부추기는 의도는 분명하다. 그제 서청원 의원 등 친박 핵심 의원들이 거론한 것이 바로 개헌을 고리로 한 박 대통령의 명예퇴진이었다. 이런 움직임에 개헌론을 제기하면 탄핵의 대오가 흐트러질 것이라고 내놓은 게 바로 담화이다. 야권 내 일부도 개헌을 주장하므로 야권을 분열시켜 탄핵을 희석시키는 효과도 노릴 수 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폭로되었던 지난달 박 대통령은 국회에서 느닷없이 개헌을 제안해 정국 반전을 꾀하다 실패한 적이 있다. 그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기 때문에 박 대통령이 개헌을 명시하지는 못했지만, 다시 그 카드로 판을 뒤흔들려는 ‘불순한’ 의도가 역력히 드러난다.

박근혜 대통령이 29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3차 대국민담화를 발표한 뒤 기자회견장 뒤편으로 나가고 있다. 서성일 기자 centing@kyunghyang.com

무엇보다 허다한 정치·사회적 과제를 개헌으로 해결하려는 발상 자체가 옳지 않다. 촛불집회에서 드러난 시민 의사는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고 한국 사회의 권력이 된 재벌을 개혁하라는 것이다. 검찰이 권력의 하청을 받는 청부업을 청산하고 독립적 주체로 거듭나라는 것이다. 시민의 의사를 제대로 대표하는 정당체제, 정치 개혁을 하라는 것이다. 재벌개혁, 검찰개혁, 정치개혁, 방송개혁 가운데 하나라도 제대로 했으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과연 가능했을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런데 시민이 하라는 개혁은 안 하고 헌법 타령을 하고 있으니 그게 바로 개혁해야 할 낡은 정치의 실상이라고 할 수 있다.

현 국면이 자신에게 불리하다고 개헌으로 판을 흔들어 보겠다며 헌법을 도구로 이용하는 것이야말로 헌법을 모욕하는 처사이다. 지금의 개헌 논의는 여야의 대선주자들과 여러 세력들이 대통령 중임제니 의원내각제, 이원집정부제 등 자기에게 유리한 권력 구조로 바꾸려고 하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개헌이라는 거대 이슈를 꺼내들어 일반 시민들을 배제하고 정치인들이 자신의 이익을 추구한다면 이는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지금과 같은 국가적 위기에서 개인적인 유불리를 따지는 것은 정치인의 바른길이 아니다. 그래도 굳이 개헌하고 싶은 정치인이 있다면 대선에서 구체적인 개헌 방안을 제시하고 대선 이후 그 결과에 따라 논의하면 될 일이다.

지금 국회가 할 일은 시민들이 이미 마음으로 탄핵한 박 대통령을 헌법 절차에 따라 탄핵을 공식화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다시 개헌론을 꺼내겠다면 그것은 촛불에 대한 저항임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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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광장에서 터져 나온 지 5주가 지났다. 촛불민심은 영하의 날씨에 들이친 진눈깨비에도 꺼지기는커녕 거세지고 있다. 그만큼 박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시민 열망이 뜨겁다는 증좌다. 이런 엄중한 상황에서 일부 정치세력들이 개헌론을 끼워 팔려고 하고 있다. 촛불민심에 편승한 곁불 쬐기다.

최근 개헌 논의 불씨는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가 지폈다. 그는 23일 “문제 해결은 개헌이라고 생각한다. (탄핵과) 개헌도 동시에 추진하려 한다”고 말했다. 25일 국회에서 열린 ‘현 시국과 개헌 그리고 제3지대론’ 토론회에는 손학규 전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정의화 전 국회의장과 의원 등 20여명이 참석했다. 정 전 의장과 손 전 고문은 26일 따로 만나 개헌 논의를 주고받았다.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도 “개헌 작업도 대통령 탄핵과 함께 추진하는 게 맞다”고 밝혔다. 김종인 전 민주당 비대위 대표와 박지원 국민의당 비대위원장도 개헌 쪽에 서 있다.

[김용민의 그림마당]2016년 11월 28일 (출처: 경향신문DB)

이들은 현시점에서 개헌을 주장하는 게 적절한 일인지 자문해 봐야 한다. 시민 10명 중 8명이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지만, 박 대통령은 요지부동이다. 이럴 때 각자 정치세력이 개헌을 부수 안건으로 끼워 팔면 탄핵 추진의 집중력이 떨어질뿐더러, 대오마저 흐트러질 수 있다. 개헌 저의도 의심받고 있다. 친박은 개헌이라는 복잡다단한 의제를 끼워 넣음으로써 탄핵을 늦춰 보려 하고 있다. 야당 내 개헌파는 굳어져 가는 대선판을 뒤흔들어 보려는 의도를 갖고 있다. 무엇보다 개헌은 촛불민심과 동떨어진 것이다. 단 한 차례만 광화문이나 자신들의 지역구 촛불집회 현장에 가 봤으면 알 수 있다. 지난 5차례 촛불집회에서 시민들이 외친 구호는 “박근혜는 물러나라, 재벌도 공범이다”였다. 개헌 논의는 여의도에 머물러 있지 광장을 파고들지 못했다.

이들이 진정으로 개헌을 하고 싶다면 탄핵 문제가 해결된 뒤 대선 혹은 총선 공약으로 구체적인 개헌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 단지 헌법을 바꾸자는 막연한 생각만으로 단일한 정치세력으로 뭉치자는 것만큼 정치공학적인 접근도 없을 것이다. 개헌파인 남경필 경기지사도 “정치권 안에서 계속 권력을 누리고자 하는 마음이 담겨 있는 개헌 논의는 사상누각일 뿐”이라고 했다. 얕은수로 개헌을 추진하다가는 촛불민심이 자신들을 향할 수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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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사회학자 랄프 키즈는 2004년 사회생활에서 진실과 신뢰가 실종되어 부정직과 기만이 판치는 점에 주목해 <진실 뒤의 시대>라는 책을 썼다. 이 책에서 그는 ‘진실 뒤’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현상을 들춰 냈다. 2012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공화당 후보 롬니는 ‘진실 뒤의 정치’ 수법을 구사하며 오바마를 비판했다. 이것은 2016년 미 대통령 선거에서 트럼프 후보가 행한 여러발언의 모델이 됐다. 그리고 2016년 영국에서 유럽연합(EU) 탈퇴를 둘러싼 논쟁에서도 이탈파는 ‘진실 뒤의 정치’를 내걸어 일정한 지지를 얻었고 관철됐다. 자기들이 하고 있는 짓이 남길 후과를 생각해 보지도 못한 채.

완벽한 거짓은 완벽해 보이는 진실 뒤에 숨어 있다. 그래서 우리 눈앞에 보이는 진실 뒤에 있는 보이지 않는 또 다른 진실이 숨겨지는 것이다. 미국 정치에서 ‘진실 뒤의 세계’는 2004년이나 2010년 즈음에만 나타났다고 볼 수 없다. 2001년 9·11 이후 부시 정권에 의한 아프가니스탄전쟁이나 이라크전쟁은 문자 그대로 ‘진실 뒤의 세계’의 사건이었다. 부시는 9·11을 구실로 한순간에 전쟁광들이 그렸던 세계전략을 구사했고, 100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집을 잃고, 난민이 됐다. 이런 진실과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거슬러 올라가면 1968년 8월4일 베트남전쟁으로 비화된 통킹만 정보조작 사건을 떠올릴 수 있다. 이처럼 미국의 정치는 종종 ‘진실 뒤의 세계’에 있었다.

[김용민의 그림마당]2016년 10월25일 (출처: 경향신문DB)

일본 게이오대 호소야 유이치(細谷雄一)는 “일본 정치가 이상해졌다”면서 ‘진실 뒤의 세계’에서는 ‘허위가 일상에 침투해 진실은 무력화된다’고 지적했다. 지금 일본의 정치 세계에서는 아베 총리가 허위를 말해도 검증되지 않고 비판도 받지 않는다. 그래서 아베의 안보정치는 야당의 비판을 받으면서도 다수의 지지를 받고 있다. 이제 정치에서 진실을 말하는 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게 되었다. 거짓말을 하고 나서도 ‘과장’이라고 변명하고, ‘잘못 말했다’고 눈가림 사과만 하면 넘어갔던 것이다. 정치가 정의를 실현하는 게 아니라 허위를 선동하고 그것을 정당화하고 일상화하는 것이다. 공포를 선동하는 전략을 선택해 건설적인 정책 논쟁의 기회를 포기하게 만드는 데 성공한 것이다.

그동안 많은 이들이 헌법 개정을 거론했으나 거부 의사를 보였던 대통령은 전격적으로 임기내 개헌 관철이라는 국면전환용 초강수를 내보였다. 개헌 이유는 논외로 치고 이런 정치변화의 주도권을 손에 쥐려는 사실의 이면에 무엇이 숨겨있는지 읽어내야 한다. ‘진실 뒤의 정치’를 강행하는 반민주주의적, 반헌법적 의도를 적나라하게 캐내야 한다. 대통령이 민생안정과 경기회복, 북핵 위기관리라는 제 할 일을 제쳐두고, 왜 국민들을 또다시 ‘정쟁의 홍수’에 빠트려 놓으려고 하겠는가? 바로 대통령 주변의 부정부패와 비리를 덮으려는 게 아니었겠는가.

당장 한국정치에서 기만과 허위의 정치가 아니라 ‘진실 뒤의 세계’가 없었음을 증명하는 일은 불가능할 수 있다. 그러나 ‘진실 뒤의 세계’를 없애려는 집요하고 꾸준한 정치실천, 바로 의회민주주의의 진화와 부활을 촉구한다.

허상수 지속가능한사회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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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이가 없다고 해야 하나? 황당하다고 해야 하나? 국회에 나와서 임기 내에 개헌을 주도하겠다고 ‘폭탄’ 선언을 할 때만 하더라도 독선적인 표정이 역력했는데, 바로 이튿날 “국민들께 사과한다”며 고개를 숙이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 없다. 사과한다면서도 빤한 거짓말을 몇 마디 하고는 기자들의 질문도 받지 않고 퇴장하는 것을 보고 그걸 진솔한 사과라고 받아들일 ‘국민’은 아무도 없겠지만, 그래도 늘 자기만 옳다는 독선적인 자세로 일관하던 권력자가 저렇게 힘이 빠진 모습을 보는 것은 참으로 낯선, 결코 유쾌하다고 할 수 없는 경험이다.

생각할수록 기괴스럽다. 국정원의 개입 덕분이든 뭐든 박근혜 정부는 합법적 절차에 따라 국민에 의해 선출된 정권이었다. 그런데 알고보니 이 정권의 막후에서 국가운영을 사실상 조종하고 좌우해온 실질적인 권력은 최아무개라는 개인이었다. 그렇다면 우리가 지난 몇 년간 박근혜 정권이라고 생각했던 정부는 실제로는 허깨비에 불과했고, 실상은 최아무개 정권이었다는 게 아닌가? 그러니까 그 누구도 모르고, 아무도 그 권력행사를 위임해준 바 없는 일개 사인(私人)에 의해 대한민국 국민들이 지배를 받고, 통치를 당해왔다는 게 아닌가?

박근혜 대통령이 25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비선 실세’ 최순실씨에게 각종 연설문과 발언자료 등을 유출한 것을 인정하며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한 뒤 고개를 숙이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어떤 학자들은 그동안 한국의 대통령제를 규정하여, 삼무(三無) 대통령제라고 말해왔다. 즉 무책임, 무반응, 무소불위로, 마땅히 책임을 져야 할 일에 책임을 지지 않고, 국민의 목소리에 반응을 보이지 않고, 제 마음대로 국가를 운영하는 습성에 길들여진 최고 권력자의 제왕적 통치방식을 그렇게 불러온 것이다. 그런데 이제는 여기에 한 가지 더, 즉 ‘무개념’을 추가하여 ‘사무(四無) 대통령제’라고 불러야 할 형편이 되었다. 그리하여 우리는 오로지 권력을 장악하는 데만 급급할 뿐, 국가란 무엇인지, 공과 사는 어떻게 구별되는 것인지, 대통령직이란 무엇을 하는 자리인지에 대한 기초적인 개념도 없는 인물이 대통령직을 수행할 때에 나라가 어떻게 망가지는지 지금 통절하게 경험하고 있다.

되돌아보면, 지난 몇 년간 이 나라에는 참으로 말도 안되는 일들이 끊임없이 벌어졌다. 가장 가깝게는 농민 백남기의 죽음을 둘러싼 국가권력의 불가사의한 패륜행위를 들지 않을 수 없다. 백남기 그분이 경찰의 무자비한 물대포를 맞고 뇌가 망가져 결국 죽음에 이르렀다는 것은 천하가 다 아는 일이다. 그런데도 이 나라 공권력은 굳이 부검을 하여 정확한 사인을 알아내겠다면서 이미 무너질 대로 무너진 유족의 마음을 갈가리 찢고, 수많은 시민들의 분노를 사고 있다. 검찰과 경찰이 부검을 하겠다는 것은 무슨 수로든 사망의 원인을 조작하여 자신들의 책임을 얼버무리겠다는 속임수라는 것은 누가 봐도 빤하다.

그런데도, 공권력의 정당한 행사라는 형식논리를 들이대며, 이 무도하고 파렴치한 작태를 멈추지 않는 까닭은 과연 무엇일까? 아무리 썩을 대로 썩었다는 대한민국 공권력이라고 하지만 자기들도 인간인데 이렇게까지 반인륜적인 폭거를 행하는 이유는 도대체 무엇일까?

세월호 문제도 조금도 다르지 않다. 이 사회에 만연한 돈밖에 모르는 풍조, 부실하기 짝이 없는 관리·감독체계, 꼭대기에서 밑바닥까지 공적 책임의식의 철저한 붕괴 등등으로, 어차피 사고는 났고, 수많은 아까운 생명이 희생되었다. 그렇다면 국가는 마땅히 사고의 원인을 규명·조사하는 데 적극 나서거나 협력해야 했다. 그래서 국가 자신의 책임이 막중한 만큼 공정한 조사가 되기 어렵다는 비판의 목소리를 겸허히 받아들여 민간 특별조사기구에 의한 진상조사를 적극 돕고 성실히 뒷받침해야 마땅했다. 법률적 형식논리를 따지기 전에, 그것이야말로 국가라는 공동체가 계속 존립하려면 반드시 수행해야 할 최소한의 윤리적인 행위라는 인식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하지만 우리가 익히 보아온 대로, 이 정권은 진상조사를 돕기는커녕 끊임없이 방해하고, 특별조사위원회의 활동 시한마저 자의적으로 정한 뒤, 결국 조사활동 자체를 강제로 종료시켜 버렸다. 사고 이후 2년이 더 넘었는데도, 그리고 지금도 광화문에서는 유족들이 진상규명을 피눈물로 호소하며 농성 중인데도, 국가는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세월호’는 아직도 미스터리 속에 싸여 있다. 그리고 이 상황은 언제 해소될지 기약이 없다. 현대국가 가운데 이런 불가사의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 나라가 또 있을까? 국가권력이라는 게 대체 뭐길래 이토록 반인륜적인 작태를 계속 보여주고 있는가?

나열하자면 끝이 없다. 개성공단 폐쇄도, 사드 배치 문제도 마찬가지다. 특히 우리에게 남북 문제는 힘들고 고달프지만 어쨌든 조심스럽게 관리하여 평화를 유지하면서 궁극적으로 통일을 도모해야 하는 중차대한 과업임은 말할 필요가 없다. 그러자면 우리 사회의 최량의 지혜를 발굴·결집하여 최대한의 합리성으로 대응하지 않으면 안된다. 하지만 오랫동안의 인내와 용기와 지혜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는 개성공단을 이 정권은 하루아침에 폐쇄해 버렸다. 그 결과 많은 중소기업이 쓰러지고, 가까스로 남아 있던 남북 간 교류의 마지막 통로가 닫혀 버렸다.

그러나 우리는 이 무모한 결정이 납득은 안되지만, 어쨌든 국가 최고 권부에서 내린 결정인 만큼 거기에는 나름대로 합리적인 논의와 숙의 과정이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최아무개라는 이가 국가 중대사를 좌지우지했다는 정황이 드러난 지금에 와서 생각하니, 개성공단 폐쇄 결정에도 그의 개입이 있지 않았을까, 모골이 송연하지만, 의심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여기서 정말 짚어야 할 게 있다. 국가운영이 이토록 어지럽게 돌아가고 있는 상황에서 국무총리를 비롯하여 대통령을 보좌한다는 사람들, 그리고 집권당 고위 인사들이라는 자들은 대체 뭘 하고 있었나 하는 것이다.

대통령에게 직언은커녕 그저 어린애들처럼 고분고분 순종만 하면서 국록(國祿)만 축내고 있었다는 얘기인가? 대통령 비서실장이라는 이는 이번 사태의 진상이 드러나기 전에 국회에서 ‘봉건시대라면 모를까 운운’하며 최아무개라는 숨은 권력자의 권력행사를 부정했다. 하지만 지금 드러난 진상은 오늘의 대한민국 최고 권부는 옛 왕조시대보다 훨씬 더 질 낮고 무책임하고 비겁한 자들의 소굴이었음을 알려주고 있지 않은가?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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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시마 사태 이후, 많은 일본 시민들은 ‘핵 없는 세상’을 절규하며, 정부에 원자력 정책의 변경을 요구하는 크고 작은 시위를 계속해왔다. 그 시위에 참여한 시민들의 발언 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의 하나는 노벨상 수상 작가 오에 겐자부로의 말이었다. 그는 엄청난 원자력 재해를 겪고도 기존 원자력 정책을 완고하게 밀고 가려는 정부와 지배층의 태도에 절망하고, 그것을 “우리는 모욕 속에서 살고 있다”는 말로 표현했다.

나는 오에 겐자부로를 별로 중요한 작가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가 반핵 시위에 적극 참여할 뿐만 아니라 시위대 앞에서 이런 발언을 했다는 사실 하나로 그를 다시 보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왜냐하면 이 발언은 오늘날 일본을 비롯해서 한국, 나아가 세계의 지식인, 작가, 예술가들이 느끼는 심적 고통을 가장 핵심적으로, 가장 간명하게 드러낸 말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금 세상 돌아가는 것을 보면, 조금이라도 생각을 하고 사는 사람들로서는 ‘모욕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 나날의 연속이다. 특히 ‘말’을 가지고 먹고사는 지식인들에게 가장 참을 수 없는 것은, 합리적인 언어와 생각이 끊임없이 경멸을 당하고, 전혀 이치에 닿지 않는 말들이 압도적으로 난무하는 현실이다.

생각해보라. 후쿠시마 사태는 얼마나 가공할 핵 재해인가. 지금 당장은 아니라도 앞으로 망가질 사람들이 속출할 게 아닌가. 뿐만 아니라 사고 원전의 수습은 속수무책인 채, 땅과 바다는 방사능으로 돌이킬 수 없이 오염되고 있다. 이 상황은 언제까지 계속될지 기약도 없다. 그런데도 (일본뿐만 아니라 한국에서도) 기득권층과 정부와 주류 미디어는 아무 반성의 기미도 없이 원자력 이외에 대안은 없다는 입장만 고집하고 있다. 대안에너지와 생태적 생활방식으로 전환함으로써 ‘핵 없는 세상’을 얼마든지 만들 수 있음을 많은 지식인, 과학자, 탈핵운동가들이 구체적인 시나리오를 가지고 아무리 논리적으로 설명해도, 힘 있는 자들은 들으려 하지 않는다. 탈핵의 논리가 불합리하거나 현실성이 없기 때문이 아니다. 그들도 탈핵의 논리가 옳다는 것을 모를 리가 없다. 그럼에도 경청하지 않는 것은, 말할 것도 없이, 기왕의 원자력 체제 덕분에 누리고 있는 그들 자신의 권세와 지위와 부를 포기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합리적인 언어와 생각이 아니라 기득권세력의 억지 논리가 나라의 중대사를 결정하는 이 터무니없는 ‘모욕적인’ 상황을 언제까지 두고 봐야 할 것인가. 원자력 문제는 한가지 예에 불과하다. 세월호 사태에 대한 반응을 통해 우리는 책임질 줄 모르는 권력의 모습과 기득권 세력의 뿌리 깊은 부도덕성, 비인간성을 너무도 똑똑히 보았다. 그리고 그들은 이제는 또 광범한 시민적 합의를 통해 어렵게 도입된 ‘무상급식’을 자신들의 공약사항이 아니라며 허물어뜨리려 하고 있다(‘경제민주화’라는 핵심공약을 내팽개친 것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이). 아무리 몰상식한 정치라 하더라도 기왕에 시행하던 프로그램, 그것도 나이 어린 학생들의 밥에 관한 것을 중단시키고 싶다면, 합당한 설명이 있어야 한다. 엄청난 무기를 사들일 돈은 있고, 아이들 밥 먹일 돈은 없다는 게 말이 되는가.

그러나 이런 상황에 대해 우리가 한탄만 하고, 권력자들을 비난하고, 질 낮은 정치에 대한 혐오감만 표출하고 있을 수는 없다. 무엇보다, 그래봤자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비난을 하고, 비판을 한다고 해서 정치판의 꼼수가 사라지고, 권력자들의 자질과 생각이 달라질 가능성이 있는 것도 아니다. 선거구 조정이 필요하다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나오자마자 농촌 지역구 국회의원들의 허둥대는 모습은 이른바 ‘정치인’들의 관심은 첫째도 둘째도 그냥 권력의 자리를 지키고자 하는 것임을 명확히 드러내고 있다. 지금 우리 농촌과 농민은 정부가 광적으로 밀어붙이는 ‘자유무역협정’들로 인해 완전히 파국에 직면해 있다. 그런데 그 농촌 지역구 의원들은 농민을 보호하기 위해 치열하게 싸워본 적이 있는가? 그런 ‘정치인’들이 선거구 변경으로 자신의 입지가 위태로워지지 않을까, 안절부절 노심초사하고 있는 정경은 가증스럽기보다 희극적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결국 문제는, 정치인 혹은 권력자들의 개인적 자질이 아니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현재의 선거제도와 그것에 기반을 둔 대의제 정치시스템 속에서는 양심적이고 정의로운 정치가 구조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사실이다.

새누리당 김문수 보수혁신특별위원장이 26일 여의도 당사에서 기자간담회를 통해 개헌 문제와 관련, "저보고 헌법을 바꿔달라고 하는 사람(국민)은 아직 못봤다"고 발언하고 있다. (출처 : 경향DB)


대부분의 사람은 정말 ‘좋은 나라’에서 잠시라도 살다가 죽고 싶어 한다. ‘좋은 나라’란 별 게 아니다. 합리적인 말과 상식이 통하는 사회이다. 그런데 그런 나라를 위해 시급한 것은, 지금과 같이 돈과 조직과 혈연, 지연, 학연 따위의 음성적인 연줄, 그리고 무엇보다 부패한 기득권 세력의 도움 없이는 절대로 이길 수 없는 선거제도의 근본적인 혁파이다. 오늘날의 선거제도는 지배층의 영구적 권력 유지를 돕는 메커니즘일 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이 지배층에는 야당 정치인들도 당연히 포함된다.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인들의 최우선적인 관심사는 자신의 특권적인 신분 보지(保持)라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그러니까 결국 의지할 곳은 우리 자신뿐이다. 이 점에서 우리는 지금 정치판에서 이야기되고 있는 개헌문제에 예민해질 필요가 있다. 이대로 가면, 개헌은 또다시 여야 정치인들 사이의 주고받기 놀음으로 끝나게 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개헌 자체를 반대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개헌은, 지금과 같이 꽉 막혀있는 위기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최적의 방책이 될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 안된다. 예를 들어, 2008년 세계적 금융위기로 사실상 국가적 파산에 직면했던 나라들, 예컨대 아이슬란드와 아일랜드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여기서 절대로 양보해서는 안될 것은, 개헌 작업의 주체가 기성의 정치가들이 아니라 시민들이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아이슬란드와 아일랜드에서는 제비뽑기로 선출된 시민대표들이 장기간 주말마다 모여 전문가들의 도움 속에서 선거제도와 헌법을 어떻게 고칠 것인가를 토론하고 합의하는 과정을 진행했고, 그럼으로써 보통의 시민들이 정치의 주체가 되는 민주주의의 강화만이 세상을 살리는 길임을 다시금 깨우쳐주었다.


김종철 | 녹색평론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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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개헌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중국 방문 중에 터뜨린 자신의 개헌 발언을 거두어들임에 따라 급물살을 탈 것 같았던 개헌 논의는 일단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평소 실언이 잦은 김무성 대표이지만 이번 발언이 완전한 돌발성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김 대표는 오스트리아 같은 이원집정부제 정부를 거론하면서 개헌 논의가 봇물 터지듯 할 것이라고 했다. 김 대표가 “개헌 논의는 경제 블랙홀이 될 것”이라면서 반대하는 박근혜 대통령에게 정면으로 도전하는가 했더니 하루 만에 꼬리를 내리고 말았다.

여러 정황으로 박 대통령이 김 대표에 대해 강한 불만 내지는 경고를 전달했던 것으로 보인다. 박 대통령이 개헌 논의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는 단순히 경제난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박근혜 정부의 경제정책은 정책이라고 할 만한 것이 없어서 개헌 논의가 없더라도 실패하게 되어 있으니 ‘경제 블랙홀’은 한낱 핑계라고 하겠다. 박 대통령이 개헌 논의를 불쾌하게 생각하는 이유는 다른 데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개헌 논의가 박 대통령의 심기를 매우 불편하게 하는 것임을 김무성 대표는 잘 몰랐던 것 같다.

현재 거론되고 있는 개헌 방안은 4년 중임제 대통령과 분권형 대통령제인데, 이런 논의가 나오는 것 자체가 박 대통령한테 불쾌할 수밖에 없다. 중임제 대통령 개헌 논의만 해도 그렇다. 칠레의 미첼레 바첼레트 대통령처럼 온 국민의 사랑을 받았으나 단임제 때문에 중임을 못하고 퇴임해야 하는 모습을 본 국민이 중임제 개헌을 하자고 주장한다면 그것은 중임 허용에 방점이 찍힌다. (실제로 바첼레트는 퇴임 후 4년이 지나서 선거에 다시 당선되어 지난 3월에 대통령으로 두 번째 취임했다.) 하지만 우리가 4년 중임제를 거론하는 이유가 성공한 대통령에게 단임 5년이 너무 짧기 때문이 아님은 너무나 분명하다.

1987년 민주개헌 당시 단임제를 택한 이유는 중임을 허용하면 현직 대통령이 재선을 위해 온갖 수단을 동원할 가능성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중임을 허용하는 미국의 경우에도 재선에 성공한 대통령이 두 번째 임기 동안 첫 번째 임기보다 더 잘했던 경우가 별로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이 시점에서 나오는 중임제 개헌론은 “소통도 안되는 무능한 대통령에게 5년은 너무 길기 때문에 4년 만에 갈아 치울 수 있도록 바꾸자”는 이야기가 된다.

분권형 대통령 개헌론도 마찬가지다. 대통령제 국가에서 대통령이 속한 정당이 의회의 다수당인 경우에는 대통령은 ‘제왕’이 될 수 있다. 언론의 자유와 법원과 검찰의 독립 같은 법치주의 장치가 완비되어 있는 미국의 경우도 제왕적 대통령은 베트남 전쟁과 이라크 전쟁을 일으켜서 큰 문제를 야기했다. 그런 제왕적 대통령이 언론을 탄압하고 조작하며, 검찰을 자기 집사 부리듯이 한다면 그것은 바로 ‘독재’다. 분권형 대통령제 개헌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대통령의 권한을 분산시킴으로써 이 같은 독재의 출현을 막을 수 있다고 본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국회에서 열린 국감 대책회의에서 자신의 개헌 관련 발언에 대해 박근혜 대통령에게 사과하고 있다. _ 연합뉴스


분권형 대통령제는 국민이 직선으로 선출하는 대통령에게 외교와 국방 권한을 주고, 국회 다수당이 구성하는 내각에 내정 권한을 부여하자는 것인데, 이런 정부형태는 성공하기 어렵다. 혼란을 일으켜 나치의 등장을 초래한 독일의 바이마르 공화국이 전형적인 경우다. 이 같은 분권형 대통령제 개헌 이야기도 박 대통령에게 불편할 수밖에 없다. 경제·사회 등 내정 전반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내각에 권한을 위임하지도 않는 대통령이 문제라는 냉소적 뉘앙스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국정을 제대로 이끌어 가지도 못하면서 권한만 많이 갖고 있는 대통령에 대한 불만이 분권형 대통령제 개헌론으로 표출된 것이다. 친박계라는 강창희 전 국회의장마저 분권형 대통령제 개헌안을 제시했으니 이 역시 흥미롭다.

여론조사에 따르면 개헌이 필요하다고 보는 견해가 60%에 달하지만 구체적인 개헌방향에 대해서는 4년 중임제와 분권형 대통령제로 의견이 갈리고 있다. 여하튼 국민 다수가 현재와 같은 대통령에 대해 불만을 갖고 있음을 강하게 표출한 것이다. 하지만 분권형 대통령제는 물론이고 4년 중임제 대통령도 단점을 많이 갖고 있기 때문에 제도를 바꾸면 더 큰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 개헌이 과연 가능하고 바람직한지는 접어 두더라도 이 시점에서 제기되는 개헌 논의 자체가 ‘불통과 독선의 리더십’에 대한 불만이 표출된 것으로 보는 데는 무리가 없어 보인다. 이 때문에 개헌 논의가 청와대에 그토록 불편한 것이다.


이상돈 | 중앙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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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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