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지인이 갑자기 물었다. 최순실·박근혜 게이트 때문에 각 당의 유력 대선후보들이 내년 대선에 어떤 공약을 새로 내놓을 것 같은가라는 질문이었다. 사실 이에 대한 답변은 별로 어렵지 않았다. 지금까지 비슷한 사건들이 벌어졌을 때 정치인들이 내놓은 대안들이 크게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마도 내년이 되면 청와대 제2부속실 폐지나 청와대 이전, 대통령의 사적관계에 대한 철저한 정리 등이 정당과 정치인들의 새로운 약속으로 제시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무엇을 없애거나 더 도덕적이겠다는 선언을 한다고 문제의 본질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박 대통령은 세월호 사고 이후 해경을 해체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해경은 실제로는 해체되지 않았고 오히려 관료조직은 더 커졌으며 한편에서는 최근 중국 어선들의 불법조업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해경의 역할과 중요성에 대한 고민도 필요해졌다. 따라서 최순실·박근혜 게이트 이후 정치개혁의 대안은 청와대 부속실을 폐지하는 수준이 아니라 시민들에게 위임받은 권력이 시민들의 의지와 별도로 작동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어야 한다.

검찰 수사와 언론 보도를 보면 이번 게이트는 연설문을 손보거나 사적이익을 추구한 것에 그치지 않았다. 대기업들에서 자금을 모금했고 이를 대가로 기업들의 민원을 매우 꼼꼼하게 들어줬다. 그것은 각종 노동기본권에 대한 후퇴이고 재벌들의 경영권 승계에 대한 정부 차원의 보호였다. 국가 차원의 전략육성산업이라며 문화산업을 치켜세우고 그것을 통해 사적이익을 꾀했다. 그 과정에서 세금으로 만들어진 예산이 어떻게 편성되고 집행되는지에 대해서 관료제도는 오직 비선 실세들의 눈치만 보고 있었다. 이를 감사해야 할 감사원도 국정원도 제대로 작동하기는커녕 공모했다는 의심마저 받고 있다. 이것은 단순히 대통령과 지인들의 비리를 넘어 민주주의 시스템의 철저한 파괴라 불러야 하는 수준이다. 따라서 더 근본적인 대안이 필요하다. 그것은 시민들의 직접통치라는 민주주의의 기본원리를 다시 세우는 것이 되어야 할 것이다.

대한민국에서 시민들에 의해 선출되고 위임받는 권력은 대통령과 국회다. 대통령과 청와대 권력이 시민들의 통제를 벗어나 민주주의 그 자체를 위협하고 있다는 것이 증명된 상황에서 대안은 또 하나의 위임받는 권력, 즉 입법부가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국회의 권한과 역할에 대한 새로운 해석과 적극적인 개혁이 필요하다. 예산은 이제 대통령과 청와대 주변의 선호에 의해 마음대로 결정되고 집행되는 것이어서는 안된다.

이를 위해 예산법률주의의 도입과 현재 행정부가 독점하고 있는 예산편성 권한의 입법부로의 이전을 고민해야 한다. 이번 사태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던 감사원 역시 더 이상 청와대 권력이 관료들을 통제하는 전가의 보도여서는 안된다. 오히려 입법부의 통제하에 실질적으로 행정부 관료제를 견제하고 감사할 수 있는 역할로 개혁되어야 한다. 감사원을 대통령 소속이 아닌 국회 산하로 옮겨 입법부와 행정부의 비대칭적인 권력관계를 바꾸어야 할 것이다.

사건이 발생하자 ‘특검’ 이야기가 바로 나오는 것도 문제다. 특검을 하자는 것은 결국 검찰을 믿지 못하겠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검찰은 권력형 비리만 수사하는 곳이 아니다. 시민들의 각종 생활과 안전에 관계된 수많은 범죄수사 등에서 검찰의 일상적 역할은 더 크다. 그러나 우리 사회가 검찰을 이렇게까지 믿지 못한다면 시민들의 일상적 안전과 삶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 이를 위해 시민들의 신뢰를 받는 검찰이 되어야 한다. 검찰은 청와대 권력으로부터 독립해 시민들의 통제를 받는 조직으로 바뀌어야 한다. 이를 위해 검사장 직선제 등의 제도 도입을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도 국회의 국정조사, 청문회 등의 권한을 재검토하고 더 강화해야 한다. 시민들의 대표로 구성된 입법부의 국정조사, 청문회는 특정 범죄사실을 수사하는 검찰의 역할과 그 본질이 다르다. 이번 사건에서 드러났듯이 범죄만이 문제는 아니다. 비록 합법적으로 진행되었다고 하나 실제로는 시민들의 민의와 어긋난 수많은 정책집행들이 오히려 더 큰 문제다. 입법부의 각종 조사와 감사는 검찰의 수사보다 더 폭넓게 시민들의 삶에 미친 영향을 다룰 수 있어야 한다. 이에 대해서 입법부가 더 강도 높게 조사하고 기존 정책들을 재검토해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 가야 할 것이다. 박 대통령이 물러나도 시민들은 대한민국 민주주의하에서 살아가야 한다. 광장에 나온 촛불은 지금 대통령 개인의 자격을 묻는 것을 넘어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그 자체에 질문을 던지고 있다.

조성주 정치발전소 기획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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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의 변호인이 어제 밝힌 검찰 수사에 임하는 입장은 귀를 의심할 만큼 믿기지 않을 내용으로 가득 차 있다. 그는 조사 시기는 ‘대통령 관련 의혹 사안이 모두 정리된 뒤에’, 조사 방법은 ‘서면조사’를 제시했다. 그의 말대로라면 구속된 최순실·안종범·정호성·차은택씨는 물론 이제 막 시작된 안봉근·이재만 전 비서관들에 대한 수사까지 모두 완료된 시점에야 조사를 받겠다는 것이다. 변호인으로서 사건을 검토하고 변론 준비를 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고도 했다. 누가 봐도 시간 끌기요, 검찰 수사를 가로막겠다는 술수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수사 시기와 방법을 입맛대로 고르겠다는 것은 박 대통령이 저지른 범죄혐의의 중대성을 고려해도, 여전히 법 위에 군림하겠다는 오만방자한 태도로 비춰봐서도 용납될 수 없는 일이다. 지난 대국민담화에서 “필요하다면 검찰 조사에 성실하게 임하겠다”고 눈물을 비치며 한 말도 새빨간 거짓말이었던 셈이다. 분노한 민심에 고개를 수그리기는커녕 뒤통수를 치고 농락한 꼴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변호인으로 선임된 유영하 변호사(오른쪽)가 18대 대선을 이틀 앞둔 2012년 12월17일 박근혜 당시 대선후보의 경기 군포시 거리 유세에 동행하고 있다. 연합뉴스

변호인의 입장은 박 대통령의 생각과 똑같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그는 현재 대통령 심정이라며 “선의로 추진했던 일이었고 긍정적인 효과도 적지 않았음에도 이런 일이 일어나 매우 가슴 아파하고 계시다”고 전했다. “대통령이기 이전에 여성으로서 사생활이 있다는 점도 고려해달라”고도 했다. 변호인의 입을 빌려 3차 대국민담화를 내놓은 것과 다를 바 없다. 입으로는 대통령으로서 책임을 다하겠다면서 정작 자신에게 요구되는 책임은 외면하고, 한술 더 떠 이젠 ‘여성’을 내세워 뒤로 숨으려 드는 그 뻔뻔함에 더 할 말이 없다.

구속된 측근들을 통해 드러나고 확인된 의혹만으로도 박 대통령은 국정농단의 몸통이자 주범이다. 이들이 온갖 분야의 국정에 개입할 수 있도록 길을 터준 사람이 박 대통령이기 때문이다. 정상적이라면 스스로 성역 없는 수사를 받겠다고 하고, 진솔한 사과와 함께 진상규명에 적극 협조하는 게 국가 지도자로서의 올바른 자세다. 그런데도 자기 한 몸 지키겠다고 현직 대통령이란 지위를 울타리 삼아 버티고 있다. 비선 실세에게 정부를 헌납한 대통령이 수사를 자청하기는커녕 요리조리 피해 나갈 궁리만 하고 있다.

민심이 무엇을 원하는지, 국정혼란을 막기 위한 방안이 무엇인지 아직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그에게 더 기대할 것이 없다. 지금 대통령 퇴진 요구는 세대와 지역, 이념을 초월해 점점 커지고 있다. 이런 식으로 계속 버티다가는 불행한 말로를 자초하게 될 것임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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