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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7.05.29 [아침을 열며]검찰의 운명
  2. 2016.11.08 [박용채 칼럼]최순실, 초식 사회를 깨웠다

참 하기 싫은 수사였구나. 지난달 검찰이 박근혜 전 대통령과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을 기소하며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최종 수사결과를 발표할 때 든 생각이다. 전직 대통령까지 구속된 역사적 수사가 대단원의 막을 내리는 순간이라고 하기엔 너무 조촐했다. 달랑 9장짜리 보도자료에 특별수사본부 공보 책임자인 서울중앙지검 1차장의 비공개 브리핑이 전부였다. 지난해 11월 최순실씨 등을 기소할 때 이영렬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이 직접 발표하는 모습을 생중계까지 했던 것과 비교될 수밖에 없다.

검찰로서는 내키지 않았을 것이다. 입맛에 맞는 수사를 골라 의도대로 끌고 가며 나라를 들었다 놓았다 한 과거와 너무 다르다. 국정농단에 분노한 국민들의 거센 요구에 어쩔 수 없이 수사가 시작됐고, 그 수사의 최종 목표가 자신들과 한몸인 박근혜 정권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전직 대통령을 구속하긴 했지만 사실상 특검의 ‘설거지’를 한 셈이고, 우병우 전 수석의 혐의를 파면 팔수록 자신들의 치부가 드러나는 상황에서 신이 났을 리 없다. 그때 이미 검찰은 다가오는 운명의 그림자를 보고 있었을 것이다.

검찰은 최고 사정기관이라 불린다.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박정희 정권 시절 그 자리는 중앙정보부가 차지하고 있었고, 전두환·노태우 정권 시절에는 보안사령부, 국가안전기획부 등이 검찰을 압도했다. 검찰이 지금의 자리에 오른 것은 문민정부 출범 이후다. 고문, 조작 등의 불법수사가 더 이상 용납되지 않는 자리를 수사권과 기소권을 독점한 법률 전문가 집단의 ‘법질’이 대신하게 되면서 검찰은 막강한 권력을 쥐게 됐다.

문재인 대통령과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왼쪽)이 지난 11일 커피를 마시며 청와대 경내를 산책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세상 무서울 것 없는 검찰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것이 2003년 3월 노무현 전 대통령의 ‘검사와의 대화’다. 참여정부 들어 판사 출신 여성 법무부 장관(강금실)이 임명되고 파격적인 고검장 인사가 이뤄지면서 검찰 내 반발이 커지자 노 전 대통령이 검사들을 직접 설득하겠다며 만든 자리다. 과거처럼 청와대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검찰을 조종하는 것이 아니라 투명한 대화와 소통으로 공감대를 찾자는 취지였다. 하지만 검사들은 그 자리에서 ‘검사스러웠다’. 고졸인 노 전 대통령에게 대학 학번을 묻고, 수사정보를 통해 얻었을 것이 분명한 대통령의 과거나 친·인척 문제를 거론하기도 했다. 이후 검찰은 여야 거물 정치인을 줄줄이 구속한 대선자금 수사를 통해 다시 한번 위상을 떨쳤고, 참여정부 검찰개혁은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권불십년. 이제 검찰도 정상에서 내려올 때가 된 것 같다. 검찰개혁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국민들이 다수가 된 데다 새 대통령이 바로 참여정부 검찰개혁 실패를 민정수석 자리에서 경험한 문재인 대통령이다.

문 대통령은 2011년에 낸 회고록 <문재인의 운명>에서 “(참여정부 때) 검찰개혁의 출발선을 검찰의 정치적 중립으로 봤다. 즉, ‘정치검찰’로부터 벗어나는 걸 개혁의 핵심으로 본 것”이라며 민정수석으로 오면서 검찰과의 전용회선(핫라인)까지 끊었다고 소개했다. 권력과의 유착이 검찰의 가장 큰 폐해라 보고 권력을 잡은 스스로가 그것을 포기했다. 그러나 검찰은 이명박 정부 들어 권력과의 유착으로 돌아가 버렸다. 이명박 정부 시절 검찰이 참여정부 2인자로 불린 문 대통령을 잡기 위해 엄청 뒤를 캤지만 나오는 것이 없어 오히려 놀랐다는 얘기도 돌았다.

문 대통령은 민정수석에 비법조인 출신 조국 서울대 교수를 임명한 데 이어 판사 출신의 법무비서관, 전직 국회의원 민정비서관, 감사원 출신 공직기강비서관 등으로 민정수석실 진용을 짰다. 검찰 출신은 반부패비서관 한 명뿐인데, 그조차 국가정보원 대선개입 수사로 박근혜 정권에 찍혀 옷을 벗은 인물이다. 참여정부 출범 때와 흡사하다. 인권변호사인 문재인 민정수석, 부산대 총학생회장을 했던 이호철 민정1비서관, 판사 출신 박범계 민정2비서관, 여성 변호사 황덕남 법무비서관, 인권변호사인 이석태 공직기강비서관 등 모두 비검찰 출신이고, 사정비서관만 오래전 검사를 그만둔 양인석 변호사였다.

문 대통령이 과거의 실패에서 어떤 교훈을 얻었는지는 조만간 증명될 것이다. 바야흐로 개봉박두다. 제목은 <검찰의 운명>. 당장의 관전포인트는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에 누가 캐스팅되느냐다. 문 대통령이 장고하는 건 검찰개혁을 위한 최적의 배역을 찾기 위해서 같다. 이 작품은 음모와 복수가 난무하며 누가 권력을 뺏고, 빼앗기느냐가 결정되는 막장 드라마가 아니다. 국민들에겐 우리 사회의 부패와 범죄 근절을 위해 사정기관들이 서로 견제하며 경쟁하는 복리를 안겨주고, 검찰도 본래 존재가치인 ‘인권보호’ 기관으로 탈바꿈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김준기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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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단은 채동욱 전 검찰총장의 발언 한 토막이었다. 어쩌다 ‘최순실의 폭주’가 가능한 사회가 됐는가를 고민하던 터였다. 채 전 총장은 며칠 전 김어준의 팟캐스트에 나와 3년 전 국정원 댓글 수사를 하다 내쳐진 과정을 토로했다. ‘왜 잘렸나’라고 묻자 “법대로 하다가”라고 대답했다. 검찰이 권력 말을 왜 잘 듣느냐는 물음에는 “말 잘 들으면 승진시키고 말 안 들으면 물먹이고. 검찰총장까지 탈탈 털어 몰아내고. 뭐 그러면서 엎드리게 되고. 결과적으로 검사들이 평범한 직장인으로 돌아갔기 때문 아닌가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자성과 당부가 가슴에 닿는 술회다.

조직이 샐러리맨화하면서 사회 전체가 초식동물화하고 있다는 얘기는 검찰뿐 아니라 관계, 정계, 언론계에서 늘 농담처럼 듣는 얘기다. 채 전 총장의 말처럼 이미 체제순응형 사회가 된 것인가. 난세에 모난 정일 필요없고, 험한 세상 가늘고 길게가 미덕으로 얘기된 지 오래다. 하물며 위기가 상시화하고 생존이 정의라는 시대 아닌가.

[김용민의 그림마당]2016년 11월4일 (출처: 경향신문DB)

검찰이 강자에게 비굴하고 약자에게 군림한다는 것은 시민들에게 이미 익숙한 표현이다. 박근혜 정부 들어 검찰의 잣대는 오로지 권력 편이었다. 불과 한 달 전까지만 해도 문제제기는 사표로 이어졌다. 정치인들은 또 어떤가. 집권여당, 특히 친박에게 시민은 안중에 없었고 주군만 존재했다는 것은 야당 진영만의 얘기가 아니다. 옳고 그름보다는 충성이 우선이었다. 그 충성도 맹목적이었다. 관료들은 어떤가. “너무 늦으면 저희가 난리납니다. (저는) 중간에서 확실하게 전달해드렸습니다.” 관료 출신 청와대 경제수석이 3년 전 CJ그룹 오너의 퇴진을 요구하는 과정에서 나왔다는 전화 내용이다. 그가 과연 엘리트 공무원 출신 맞나.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 설립과 기금 갹출과정에서 주연급 조연으로 활약한 정황이 드러나고 있는 안종범 전 청와대 경제수석은 대학교수에서 대권 캠프를 기웃거리다 박근혜 진영에 안착한 인물이다. 주류라고 뻐기는 언론은 또 어떤가. 권력으로부터의 독립이나 공공성은커녕 대통령의 발언을 충실히 받아쓰기에 급급했다. 이들에게 중립성이 훼손되면 국가가 위험해진다는 말은 애초부터 머릿속에 존재하지 않는 표현일 수 있다.

이쯤 되면 관위(官威·조그만 힘도 휘두르며 존재감 과시), 불위(不爲·부패도 저지르지 않지만 일도 하지 않음), 홀유(忽悠·교묘한 말로 포장하기), 간객(看客·강 건너 불구경 하기) 등 중국 사회를 상징하는 복지부동 표현들은 한국 사회에 그대로 옮겨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한국 사회의 민도가 고작 이 수준인가. 윗선의 부당한 압력에 버티는 것은 불가능한 일인가. 하다못해 소극적인 태업이라도 할 배포는 없어진 것인가.

보도를 종합하면 최순실은 사실상 ‘비밀 사설 정부’ 역할을 했다. 최순실의 ‘폭주’는 ‘박근혜 대통령의 전능함’에서 비롯된다. 이를 감안하면 최순실의 폭주가 아니라 박근혜의 폭주라 해야 마땅하다. 검찰총장을 간단히 제압하고 자신과 다른 의견을 내는 의원을 겨냥해 시민에게 배신을 응징해달라고 요구하는 뻔뻔함을 감안하면 공포를 정치에 이용할 줄 아는 ‘전제군주’임이 틀림없다. 따지고보면 ‘부역’이란 용어가 새삼 주목받는 것 자체가 5년 단임 대통령 시대가 아닌 전체주의 시절이었음을 방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주변에 돌격 앞으로를 마다않는 이들이 가득한 상황에서 대통령이 체제순응형 초식사회를 흔드는 것쯤은 일도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초식사회를 깨운 것은 역설적으로 최순실과 대통령이다.

이미 언론은 두 재단의 실력자로 최순실이라는 이름을 찾아냈고, 최순실의 독일 내 유령회사도 밝혀냈다. 최순실의 태블릿PC에 담겨 있는 국정농단 내용도 내보냈다. 경쟁하면서 새 사실을 찾아내고 진실을 파헤쳐가고 있다. 1970년대 금권정치가 활개치며 썩어 문드러져 가던 일본이 그나마 버틴 것은 언론의 합리적인 문제제기와 이를 받아들여 성역없이 수사한 검찰 때문이다. 다나카 가쿠에이 당시 총리를 낙마시킨 것은 100만엔짜리 잉어가 떼지어 놀던 정원이 딸린 별장을 사들인 점에 의구심을 가진 탐색보도에서 시작했다. 록히드 스캔들의 배후에 도사린 다나카 전 총리의 그림자를 간파하고 이를 파헤친 것도 언론과 검찰이었다.

진부한 얘기지만 ‘물은 괴면 썩는다’. 더 진부한 얘기지만 ‘관행화한 방식은 부정해야 산다’. 이런 진부함이 여전히 회자되는 것은 진리이기 때문이다. 언론에 이어 시민항쟁이 시작됐다. 채 전 총장은 인터뷰 말미에 이렇게 말했다. “검사들이 쥔 칼자루는 법을 우습게 알고 제멋대로 날뛰는 놈들을 죽이라고 국민이 빌려준 것이다.” 그들의 순서이자 신뢰를 회복할 마지막 기회다.

박용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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