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들 손으로 직접 대통령을 뽑은 지 30년이 됐고, ‘박근혜’는 그 여섯번째로 선택받은 대통령이다. 어디 순탄한 정권은 없었다. 임기 초 90% 넘는 지지를 받다가 떠날 때쯤에는 곤두박질친 대통령이 있었고, 퇴임 후 검찰 조사를 받은 대통령도 있었다. 몇 번의 정권을 지나다보니 주기라는 것도 있다. 취임 초 의욕적으로 정책을 추진한다. 대통령 주변 사람들이 비리로 걸려들면 정권의 도덕성이 상실돼 국정의 추가 비틀거린다. 측근들, 친·인척 이름이 나오면 국정을 이끌 힘이 쫙 빠진다. “역사는 평가해 줄 것이다. 역사로부터 평가받겠다”면서 ‘역사와의 대화’를 시도하며 무리한 정책을 추진하기도 하지만 곧장 여론의 역풍을 맞고 흐지부지된다. ‘미래 권력’ 자리를 다투는 대선 국면이 본격화하면 ‘현재 권력’은 국민들의 관심에서 멀어지고 짐 쌀 준비를 한다. 물론 후임 대통령이 와도 1~2년은 고생을 해야 한다.

누구는 대통령의 5년이 비슷하게 반복돼 온 것을 ‘불행한 역사’라고 한다. 그럼에도 분명한 건, 정권 5년 동안 내세울 만한 공(功)이 있었다. 과(過)도 있었지만 반면교사가 되면서 사회가 발전해왔다. 청와대 운영도 마찬가지라고 볼 수 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수사해온 검찰 특별수사본부 이영렬 본부장(서울중앙지검장)이 중간수사 결과를 발표하는 모습이 20일 서울 중구 한 전광판을 통해 생중계되고 있다. 그 뒤로 청와대가 보인다. 정지윤 기자 color@kyunghyang.com

2014년 말 이른바 ‘정윤회 비선 파동’이 났을 때다. 박근혜 정부 초기 청와대에 파견됐다 나왔던 공무원 ㄱ씨의 허탈한 표정이 아직 생생하다.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우리가 실패하면서도 수십년간 쌓아온 시스템이란 게 있는데 그게 송두리째 무너졌잖아요.” ㄱ씨도 자신이 청와대에 있을 때 최순실이라는 이름을 몰랐을 것이다. 비선 실세 국정농단의 양태들이 드러난, 말도 안되는 이 상황을 어떻게 생각할까. 대놓고는 말을 못할 것이다. 공무원이니까. ㄴ씨는 행정고시에 합격하고 중앙부처 5급 사무관으로 공직을 시작했을 때, 고참으로부터 들은 “일선 공무원들은 장관을 위해, 장관은 대통령을 위해, 대통령은 국민을 바라보고 일을 한다”는 말을 가슴에 새겼다. 그래서 설령 ‘아닌 것 같은데’라고 생각되는 일도 결국은 국민을 위한 것이라고 여기고 했었다고 한다. 요즘 민심 동향 파악이 임무인 공무원들도 아예 손을 놓고 있다고 한다. 특별히 전할 민심이 없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하는 일에 5%가 지지하고, 딴소리 말고 즉각 퇴진하라는 여론이 계속 늘어 70%대에 이른 상황이니 ‘위’에다 무엇을 보고하겠는가.

그동안 대통령은 두 번 사과했다. 처음은 마지못해 한 티가 역력했다. 불난 집에 기름을 끼얹었다. 그래서 두번째 사과를 했지만 “내가 이러려고 ○○○이 됐나 자괴감이 든다”는 패러디를 양산했을 뿐이다. 사과의 성패는 사과하는 이의 말과 의도뿐 아니라 상대방의 관심과 태도, 즉 쌍방의 상호작용에 달려 있다. 비난받을 자신의 행동을 명확히 설명하고 그에 따른 사회규범을 수용할 뜻을 밝혀야 한다. 위기 모면에만 급급한 이런 식의 대통령 사과는 백날 해봐도 소용없는 일이다. 사람들이 들어야 하는 말이 있는데 그 얘기를 안 하기 때문이다. 말로 뭘 어떻게 할 수 있는 단계도 지났다.

평화롭게 마무리된 지난 토요일 집회는 ‘세상의 바보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이었다. 헌법을 유린당한 국민들에게 ‘헌법(대통령 권한) 수호’만 얘기하고 “대통령 관련 의혹 중에 입증된 게 하나라도 있느냐”고 머리를 들고 있다. 민심이 돌아올 가능성이 없는데, 대통령 자신도 결국은 민심에 굴복할 수밖에 없음을 알 텐데 이판사판에 다름없다. 청와대 홈페이지에 ‘오보·괴담 바로잡기’ 코너도 열었다. 가용 공적 수단을 총동원해 민심과 맞서겠다는 것인데, 기세등등했던 대통령이 초라해 보인다.

대통령은 검찰의 국정농단 사건 수사에서 ‘공범’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이번주에 받겠다던 검찰 수사를 거부하고, 자신이 선택한 특별검사로부터 수사를 받겠다고 한다. 어차피 ‘대통령 박근혜’가 아니라 ‘피의자 박근혜’로 지내야 할 시간들이다. 미래 성장동력으로 삼겠다던 문화융성과 창조경제는 ‘창조 비리’의 수단이었음이 국정농단 사태로 만천하에 드러났다. 국정에 복귀한다고 한들, 갖은 수를 써서 남은 1년3개월 임기를 채우겠다고 한들, 무엇을 하더라도 될 일도 없고 될 리도 없다. 그동안 온나라가 난장판이 될 게 뻔하다. 안보의 위기, 경제의 위기는 가중되고, 국격과 국익도 훼손될 수밖에 없다.

대통령이 버티면서 이제 국회는 탄핵 절차에 돌입할 태세다. 국민들은 ‘이게 나라냐’라고 한다. ‘개인 박근혜’의 자존심은 접어두고, ‘국가’와 ‘역사’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생각해 주길 바란다. ‘대한민국 18대 대통령’으로서 국민들의 자존감을 세워줬으면 한다. 그것이 마지막 남은 ‘명예’일지도 모른다. 떠날 때는 말없이.

안홍욱 정치부장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불과 보름 전만 해도 박근혜 대통령은 수사 대상이 아니라고 선을 그었던 검찰이 금명간 박 대통령을 조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최순실씨 비위에 관한 언론의 잇단 보도와 박 대통령 퇴진을 촉구하는 100만 촛불 민심이 검찰 수사를 견인한 것이다. 하지만 검찰은 여전히 억지춘향 격으로 수사에 임하고 있다. 박 대통령을 참고인 신분으로 규정한 게 단적인 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실체 규명보다는 박 대통령에게 가벼운 혐의를 적용해 하루빨리 사건을 털어야겠다는 생각만 하고 있다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

검찰 주변 얘기를 종합하면 검찰은 청와대와 최씨가 재벌·대기업에서 미르·K스포츠 재단에 총 774억원을 거둬들인 행위에 대부분 뇌물죄가 아닌 직권남용죄 적용을 검토하고 있다. 직권남용죄는 재단 설립 과정에 재벌들의 부당한 청탁이 없었고 재벌들이 낸 돈에 대한 대가성도 없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뇌물죄보다 형량이 현저하게 낮을 뿐만 아니라 돈을 낸 재벌들은 피해자가 되므로 처벌받지도 않는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에서 재벌들은 전국경제인연합회 등을 통해 경제민주화 입법 중단, 비리 총수 사면, 관광진흥법 같은 민원 법안을 만들어줄 것 등을 지속적으로 요구해왔다. 특히 부영 같은 기업은 세무조사를 받고 있는 상황이었다.

[김용민의 그림마당]2016년 11월15일 (출처: 경향신문DB)

박 대통령이 최씨에게 연설문 등 청와대 기밀문건을 유출한 혐의도 공무상 비밀누설이 아닌 헌법 위반 사안으로 보고 적극적으로 수사해야 한다. 최씨 같은 비선 실세가 밀실에서 국가의 중요한 의사결정을 내리고 박 대통령이 이를 묵인했다면 이는 헌법 제1조1항에 명시된 ‘민주공화국’ 국가형태 조항과 제1조2항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는 국민주권 원리에 위배된다. 박 대통령이 문화체육관광부 공무원 인사에 부당하게 개입한 혐의는 헌법 제7조2항의 직업공무원제 위반이다. 결과적으로 박 대통령은 대통령으로서 헌법수호 의무(헌법 제69조)도 방기했다.

지난 주말 밤 서울 한복판을 밝힌 100만 촛불은 국정농단으로 금 간 민주주의를 회복하자는 주권자의 준엄한 명령이었다. 검찰 수사는 박 대통령과 최씨 등의 비리를 밝혀내 처벌하는 것 외에 헌정 질서를 바로 세운다는 관점에서 이뤄져야 한다. 망국적인 정경유착을 근절하겠다는 의지도 있어야 한다. 진정 이를 실천할 준비가 되어 있다면 수사 대상이나 범위에 성역을 두어서는 안된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어제 검찰에 소환됐다. 우 전 수석 조사를 위한 특별수사팀이 출범한 지 두 달 보름 만이다. 우 전 수석은 변호사 시절 ‘몰래 변론’, 가족회사 자금 횡령, 강남 처가땅 특혜 매각, 경기 화성땅 차명 보유, 공직자 재산 허위신고, 의경 아들의 ‘꽃보직’ 압력 등의 비리를 저질렀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그러나 검찰은 그동안 우 전 수석 수사에 손을 놓고 있었다. 검찰 수사는 오히려 이석수 전 청와대 특별감찰관이나 우 전 수석의 비리 의혹을 보도한 경향신문과 조선일보를 겨냥했다. 윤갑근 대구고검장 등 이른바 ‘우병우 사단’이 수사를 맡은 것부터가 문제였다. 오죽했으면 우병우의 ‘셀프수사’라는 말까지 나왔겠는가. 최순실 게이트가 터지지 않았다면 검찰은 이미 우 전 수석에게 면죄부를 주고 사건을 종결했을 것이다.

우 전 수석은 최순실 국정농단에도 개입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K스포츠재단을 통해 롯데그룹에서 70억원을 뜯어낸 최순실씨가 검찰의 롯데 압수수색 직전 서둘러 돈을 반납한 과정이 석연치 않기 때문이다. 검찰 수사 상황을 손금 보듯 알고 있는 우 전 수석의 도움이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직무유기 책임도 크다. 우 전 수석이 제 역할을 했다면 최순실씨의 각종 패악질은 미수에 그치거나 진작에 모습을 드러냈을 것이다. 우 전 수석이 최순실씨와의 인연 때문에 민정수석으로 발탁됐다는 조응천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주장도 있다.

검찰은 우 전 수석 사건을 기존 수사팀이 아닌 특별수사본부에 맡겨 몰래 변론 등 개인 비리는 물론 최순실씨와의 커넥션 의혹까지 철저하게 파헤쳐야 한다. 이것이 나라가 살고, 검찰도 사는 길이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최순실씨의 국정농단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이 최씨와 연루된 청와대 참모진을 대상으로 압수수색에 나섰으나 청와대의 거부로 실패했다. 최씨가 국정을 맘 놓고 주무를 수 있도록 도와준 대통령과 청와대는 민심을 몰라도 너무 모르고 있다. 청와대는 검찰 수사의 대상일 뿐이다. 국가비밀 보호 운운하며 검찰과 대치하거나 협상을 벌일 위치에 있지 않다. 시민들의 더 큰 저항을 부를 행태만 보이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25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비선 실세’ 최순실씨에게 각종 연설문과 발언자료 등을 유출한 것을 인정하며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한 뒤 고개를 숙이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검찰은 지난 29일 안종범 정책조정수석, 정호성 부속비서관 등의 청와대 사무실을 대상으로 압수수색에 나섰다. 청와대는 법률상 임의제출이 원칙이라며 자료 제출로 맞섰다. 검찰은 자료가 부실하다며 사무실 압수수색을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30일에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형사소송법은 공무상 비밀이라도 국가의 중대한 이익을 해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압수수색을 거부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청와대에 비밀문서가 보관돼 있어 압수수색이 불가능하다는 청와대 논리는 코흘리개에게도 통하지 않을 망발이다.

최씨에게 대통령 연설문과 국가 주요정책 등 극도 보안이 요구되는 자료가 흘러가도록 도왔고 그가 청와대 인사권까지 휘두를 수 있도록 방기한 청와대가 검찰의 압수수색을 거부한 것은 말이 안된다. 민간인 최씨의 권력이 검찰 수사권보다 센 것이냐는 질문에 무어라 답할 것인가. 최씨의 국정농단은 과거 대통령 주변 인사들의 권력형 비리와 차원이 다른 전례 없는 국기문란 행위다. 시민들이 대통령 하야, 탄핵을 요구하며 분노를 분출하고 있는 것도 바로 대통령이 몸통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청와대 눈치만 보는 검찰의 수사의지도 빈약하기 이를 데 없다. 미르·K스포츠 재단에 대한 고발이 이뤄진 지 27일 만에야 수사에 나섰고 청와대 눈치만 보다 압수수색에 나선 것으로 의혹의 핵심 당사자인 우병우 민정수석은 대상에 포함되지도 않았다. 자료 협조에 소극적이라며 청와대에 목소리를 높이다 돌연 “청와대가 적극 협조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며 갈등 진화에 나선 건 청와대에 굴복한 것과 마찬가지다. 안 수석과 우 수석, 문고리 3인방이 30일 물러났기 때문에 검찰은 한시라도 빨리 이들이 사용했던 청와대 사무실과 자택에 대한 압수수색을 실시해 관련 자료를 확보해야 한다. 청와대의 증거인멸 시도를 도와주다간 어떤 수사결과를 내놓아도 시민은 믿지 않을 것이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독일에 은거해온 박근혜 정권 비선 실세 최순실씨가 어제 오전 극비리에 귀국했다. 최씨의 측근으로 중국에 머물던 ‘문화계의 황태자’ 차은택씨도 “귀국해서 검찰수사를 받겠다”고 밝혔다. 청와대 권력을 등에 업고 장관 인사와 국가예산, 재벌기업을 주무르며 국정을 농단한 두 사람이 서로 입을 맞춘 듯 조기 귀국으로 선회한 것이다. 특히 두 사람이 돌연 귀국의사를 밝힌 지난 28일 밤 박 대통령은 청와대 수석비서관 전원에 대해 일괄 사표 제출을 지시했다. 검찰은 박 대통령의 지시가 나오자 기다렸다는 듯 바로 다음날 청와대에 압수수색을 벌였다. 누군가에 의해 짜인 각본처럼 국정농단 비리의 두 주범과 청와대, 검찰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인 것이다.

30일 오전 최순실씨가 인천공항을 통해 극비 입국하는 장면이 한 시민의 휴대폰 카메라에 찍혔다. 연합뉴스

문제는 이런 일사불란함이 ‘성역없는 수사’보다는 ‘파문 축소’에 맞춰진 듯 석연찮은 행보로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검찰은 법원에서 영장을 발부받고도 압수수색 방식을 놓고 청와대와 이틀 연속 입씨름만 하며 시간을 허비했다. 그사이 청와대 비선 실세로서 특권을 마음껏 누리던 최씨는 극비리에 입국해 언론에 전혀 노출되지 않은 채 공항을 빠져나갔다. 검찰이 알고도 봐준 것인지, 모르고 있다 놓친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어느 쪽이라도 납득하기 어려운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최씨는 입국 직후 변호사를 통해 검찰에 ‘하루 정도 몸을 추스를 수 있는 시간을 달라’고 했고 검찰은 곧바로 ‘오늘은 소환하지 않겠다’고 호응했다. 최씨 측과 검찰 수뇌부가 귀국 전에 사전 교감이 없이는 가능하지 않은 일이다. 최씨의 돌연 귀국과 일련의 움직임이 진상규명을 위한 자발적 행동이라기보다 조직적 은폐를 위해 이번 사태를 지휘하는 사령탑이 있는지 의심케 하는 대목이다.

하루라도 빨리 피의자의 신병을 확보해 ‘말맞추기’나 ‘증거은폐’의 기회를 차단하는 것은 수사의 기본이다. 하지만 그동안 미적거리던 검찰의 수사 태도를 보면 여전히 권력 눈치 보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의심을 지우기 어렵다. 최씨는 구체적 증거가 드러난 국가기밀 유출 등 자신을 둘러싼 비리 의혹을 모두 부인했다. 최씨는 여전히 검찰 조사에서도 ‘꼬리 자르기’를 시도할 가능성이 높다. 이미 각본도 짜였을지 모른다. 그동안 검찰은 항상 박 대통령이 제시한 ‘수사 가이드라인’에 맞춰 수사결과를 내놓았다. 박 대통령과 검찰이 이번에 어떤 선택을 할지 두 눈 부릅뜨고 지켜볼 것이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배가 잔뜩 부른 채, 입안 가득 음식을 넣고, 더 이상 먹지 않을 떡 두 개를 남이 먹을까봐 양손에 움켜쥔 놀부의 모습. 지금 우리 검찰의 모습이 그렇다.

세계에서 그 유례를 찾을 수 없는 ‘헌법에 명시된 영장청구 독점권’, 수사권과 경찰 및 특별사법경찰관리에 대한 수사 지휘권, 독점적 기소권, 독점적 공소유지권, 형집행권 등 재판을 제외한 모든 형사사법 기능을 다 틀어쥔 검찰이 정보 수집과 범죄예방 업무까지 손을 뻗치더니, 급기야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을 넘어서는 대규모 ‘과학수사부’를 창설했다.

명분은 ‘경찰 및 국과수와의 선의의 경쟁’이다. 자신이 지휘하는 부하와 경쟁하겠다고 현장 실무자들에게 지급되는 장비와 물품들을 챙겨 갖는 임원이나 간부를 본 적이 있는가? 정작 검찰과 경쟁이 필요한 것은 억울함을 토로하는 피해자들과 피의자들, 그리고 그들을 대리하는 변호사들이다.

우리 형사법의 대원칙은 ‘당사자 대등주의’, ‘무기 평등의 원칙’이다. 검찰과 피고 측 변호인이 양 당사자로 진실 발견을 위해 대등하게 경쟁하며 서로 동등한 무기, 즉 증거와 진술 확보 수단을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새로운 과학수사 기구가 필요하다면, 대한변호사협회(대한변협) 같은 기관에 법과학연구소 설립을 허용하고 지원하든지, 민간 법과학연구소를 인증하는 것이 옳다.

영국의 경우에도 2012년 국립법과학연구소(Forensic Science Service)를 폐쇄하고 증거 분석 감정업무를 민간과 각 지방경찰청에 분산 이양했다.

미국 역시 각 주나 시 경찰 법과학연구소와 민간 법과학연구소들이 국가인증과 감사를 받으며 증거 분석과 감정 업무를 수행한다.

가뜩이나 어려운 나라 살림에 이중 삼중의 과학수사기관을 만들 필요가 도대체 어디에 있을까? 이미 발생한 뒤 변화가 생긴 범죄 현장과 불완전한 인간의 인지 지각 능력에 의존해 ‘범행을 재구성’하고 범죄혐의자를 ‘추정’해 유무죄를 입증해 나가는 과정인 형사절차는 ‘인간적 오류(human error)’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그만큼 그 절차의 공개성과 투명성, 검증가능성이 긴요하다.

최근 우리 사회를 극한 갈등으로 내몰고 있는 유병언 추정 시신, 세월호 참사 원인, 천안함 침몰 원인 등의 ‘사건’들은 검찰에 ‘또 하나의 국과수’가 없어서 의혹의 대상으로 남은 것이 아니다. 수사 절차와 과정에 대해 국민의 ‘신뢰’를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서울중앙지검 브리핑실에서 유상범 3차장이 '비선실세 국정개입 의혹 문건유출 사건' 중간수사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출처 : 경향DB)


유병언 추정 시신의 경우, 국가권력에 속하지 않은 제3의 과학수사 기관에서 DNA 분석 등 검증을 했다면 의혹은 쉽게 가라앉았을 것이다. 경찰이나 검찰이나, 중립과 독립 내지 진실 발견보다는 권력에 대한 충성 경쟁에 매진하는 모습으로 비치는 것은, 요즘 유행하는 표현을 빌리자면 ‘도긴개긴’이다.

더구나 지금 검찰은 채동욱과 윤석열 등 권력과 맞서 싸우는 의로운 검찰을 몰아내고,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에 대한 축소수사 의혹을 받고 있으며, 서울시 공무원 간첩조작 사건, 김학의 불기소, 대통령 5촌 살인사건 의혹 보도기자에 대한 무리한 기소 등 권력의 입맛에 맞는 검찰권 행사를 연이어 해오고 있다.

대규모 과학수사부는 그 대가로 받은 세뱃돈이나 ‘떡’이라는 의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검찰은 형사사법과 관련한 모든 권력을 한손에 틀어쥐고, 권력이 원하는 대로 진실을 만지고 왜곡하려 한다는 의혹을 받아온 지 오래됐다. 그 오랜 의심을 떨쳐내지 못한다면, 결코 국민의 신뢰를 받을 수 없다.

과학수사와 법과학은 검찰이 장악해서는 안되는 중립지대이다. 피고 측, 기소 측이 모두 활용할 도구여야 하며, 어느 편에도 서지 않는, 눈을 가린 저울이어야 한다. 검찰은, 법과학 기관에 대한 감시와 감독을 할지언정 장악해서는 안된다. 두 손에 떡 든 검찰, 소화하지 못할 떡을 먹으면 탈이 난다.


표창원 | 범죄과학연구소 대표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TAG 검찰

대검찰청은 그제 금품 수수 혐의로 조사를 받아온 정모 부부장검사를 기소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 징계 수위가 가벼운 면직 처분을 권고했다. 법무부는 조만간 징계위원회를 열어 정 검사의 징계 수위를 확정한다. 정 검사는 서울 강서구 ‘재력가 피살사건’ 당사자인 송모씨에게 1800만원을 받은 혐의로 감찰 대상에 올랐다. 돈 받은 증거가 명백한데도 면죄부라니 어이가 없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해도 너무한다. 제 식구 감싸기에 급급한 검찰이 사정작업 운운할 자격이 있는지 의심스럽다.

당사자는 부인하고 있지만 증거는 차고 넘친다. 송씨가 평소 돈 준 내역을 깨알같이 기록한 ‘매일기록부’를 보면 정 검사는 10여차례에 걸쳐  1800만원의 돈을 받은 것으로 돼 있다. 돈 받은 명목도 ‘설날 세뱃돈’ ‘추석 용돈’ ‘유럽 (출장) 간다고’ ‘유럽 갔다 와서’로 돼 있다니 한심할 정도다. 검찰의 통화내역 추적 결과 두 사람은 1년 사이 17차례나 전화·문자를 주고받은 사이였다. 검찰은 “돈 받은 사실은 인정되지만 대가성을 입증할 수 없다”는 이유로 빠져나갔다. 그나마 징계시효(5년)를 들어 금품 액수도 800만원으로 줄여줬다. 누가 봐도 명백한 직무유기다.

유대균 수사 당시 인천지검의 모습 (출처 : 경향DB)


이번 사건은 돈을 건넨 송씨가 숨지면서 애초 공소유지에 어려움이 예상됐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결정적 증거인 ‘뇌물장부’를 확보한 이상 수사 의지만 있다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검찰은 “돈 받은 사실이 없다”는 본인 진술에 의존한 채 그 흔한 압수수색도 하지 않았다. 사건 당사자가 검사가 아니라 일반인이었다면 이렇게 허술하게 수사했을까 싶다. 이 사건은 김진태 총장이 “한 점 의혹도 남지 않도록 대검이 직접 수사하라”고 지시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더 이해할 수 없는 결과다. 애초 사법처리할 의사가 있었는지 묻고 싶다.

이번 졸속 감찰을 단순히 수사 무능이라고 치부하기엔 검찰의 원죄가 너무 크다. 그간 ‘스폰서 검사’ ‘벤츠 검사’ ‘성추행 검사’ 같은 검찰의 내부 비리가 끊이질 않았지만 비리 자체보다 제 식구 감싸기 관행이 국민 불신을 키운 주범이었다. 검찰은 지금 적폐 척결을 위한 관피아 수사에 총력전을 펴고 있다. 하지만 제 눈의 가시조차 뽑지 못하는 검찰이 누구한테 법 앞의 정의를 말할 수 있단 말인가. 검찰의 고질병을 고치려면 공직자들의 금품 수수행위를 엄벌하는 내용의 이른바 ‘김영란법’을 국회에서 원안대로 하루속히 처리하는 수밖에 없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TAG 검찰
참여연대에서 2월 8일 이슈리포트 '부실하거나, 무리하거나 : 검찰권 오남용 사례와 책임져야 할 검사들'을 발간했습니다. 부실하거나 무리했던 검찰 수사의 이중적 행태를 유형별로 분석, 비교하였고 책임져야 할 검사들의 명단까지도 실었습니다.

참여연대의 노력과 훌륭한 리포트에 찬사를 보내며, 독자들을 위해 원문과 참여연대 사이트의 요약본을 온라인칼럼 '생생 정치시사자료' 폴더에 그대로 옮겨놓습니다.

*출처
http://blog.peoplepower21.org/Judiciary/40681


대검찰청



원문보기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건의 선정기준

15가지 사건, 왜 어떻게 뽑았나



솜방망이 수사 혹은 무리한 수사: 수사・기소권 남용하는 검찰의 이중성


1. 정권과 제식구는 감싸고, 전 정권과 정부 비판세력에는 과도한 수사
 
- 검찰은 국가형벌권 행사에서 불가결한 요소인 기소권을 독점하고 있는 데다 수사권・수사지휘권까지 쥐고 있는 가장 강력한 사정기관임. 이런 이유로 검찰청법은 “검사는 공익의 대표자”이며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로서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하며 주어진 권한을 남용하여서는 아니된다”고 명시하고 있음.
 
- 따라서 검찰은 가장 엄정한 ‘정의와 형평의 수호자’여야 함. 검찰이 가진 막강한 권한은 ‘형평성’을 잃는 순간 ‘정의롭지 못한 권력’으로 변질되어 도리어 정의실현의 최대 장애물로 될 수도 있음.
 
- 하지만, 불행하게도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은 늘 비판의 도마에 올라왔고 이명박 정부 들어서는 더욱 심각한 상황으로 후퇴하였음. 이는 한편으로 살아있는 권력에 대한 봐주기 수사・제식구 감싸기 수사로 나타났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전 정권 관계자나 정부정책에 비판적인 언론・시민단체・시민들에 대한 무리한 수사와 기소로 나타나고 있음.
 
- 이와 같은 검찰 수사의 이중성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현상임. 한편으로 ‘배후’로 지목된 정권 실세에 대해서 꼬리자르기식 수사를 하면서, 다른 한편에서는 경범죄 사건임에도 구속영장을 청구하고, ‘배후’를 캐내기 위해 무리하게 공안사건으로 수사를 하는 것은 정치검찰의 전형적인 행태로 볼 수 있음.


2. 부실수사 유형 vs. 수사권 남용 유형
 
- 보고서는 2008년 이후 3년간 검찰이 수사하고 기소한 사건들 중 정치적・사회적으로 물의를 빚었던 사건들 중 검찰의 수사권 및 기소권을 올바로 사용하지 못한 것으로 판단되는 사건들을 대상으로 하였음.
 
- 2008~2009년 사례는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가 발간한 검찰보고서에 수록된 주요사건을 대상으로 했고 그 밖에 2010년 검찰이 다루었던 주요사건들 중 권한의 오남용에 해당된다고 판단되는 사례를 일부 추가하였음.
 
- 검찰의 부실 수사 사례와 무리한 수사 사례를 먼저 유형별로 선정하여 분류하고 분류된 사건들을 다시 구체적인 특징에 따라 3-4가지로 재분류하였음.
 
- 이 과정에서 부실수사 유형에 해당하는 사건 6가지와 권한 남용 유형에 해당하는 사건 9가지를 최종 선정하였음.


<표> 부실수사 유형과 수사권 남용 유형

  부실수사 유형

  권한 남용 유형

  꼬리자르기식 수사

  무리한 기소

  제 식구 감싸기 수사

  무리한 영장청구

  압수수색・소환조사 미루기

  별건수사

  편의 봐주기 수사

  피의사실공표




책임지지 않는 수사, 그 권력 오남용의 책임자들은 반드시 기억되어야


3. 주임검사 - 소속 부장 - 차장 - 지검장, 책임져야 할 사람들
 
- 검사는 ‘단독관청’으로 담당 사건에 대한 수사와 공소유지를 주재함. 그러나 실질적으로는 상급자의 지휘・감독권 및 소속기관장의 직무이전・승계권한에 때문에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음.
정치・사회적으로 민감한 사건의 경우 검찰총장 및 법무장관에게까지 상시적으로 보고하도록 되어 있어 그만큼 수사에 대한 상부・외부의 영향력과 압력이 높아짐. 따라서
수사에 대한 책임을 주임검사에게만 묻는 것은 실질적으로 책임을 져야 할 대상을 배제하게 되며, 실효성도 적음.
 
- 그러나 수사와 기소에 대한 책임은 원칙적으로 사건을 담당한 주임검사에게 있으며, 준(準)사법 기관으로서 법적으로는 법관에 준하여 신분이 보장되는 만큼 담당 검사에 대한 책임수준을 높이는 것이 함께 요구됨.
 
- 보고서는 주임검사 - 소속 부서장 - 차장 - 지검장에 이르는 수사・지휘라인을 문제 사건에 대한 책임자로 보고 그들의 실명을 공개함. 이들은 검사로서 지켜야 할 정의와 형평의 원칙을 무시하였으며, 이는 상명하복에 따른 것이었다 할지라도 마땅히 비판의 대상이 되어야 함.


4. ‘정치검찰’이 ‘잘 나가는 검사’가 되어서는 안 됨

- 실제 정치적으로 민감하거나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는 수사는 몇몇 수사부서가 대부분 독점하고 있음. 무리하거나 부실한 정치적 수사로 문제가 되는 것 역시 이러한 수사를 담당하는 일부 검사들에 한함. 맡은 바 직무를 공정하고 성실히 수행하는 검사들까지 ‘정치검찰’이라고 비판할 수는 없을 것임.
 
- 문제는, 무리하게 수사를 하고 무죄를 받아도 소위 ‘잘 나가는 검사’는 승진을 하고 주요 보직을 계속 맡는 현실임. 일부 검사들이 수사에 문제가 있더라도 밀고 나가게 되는 것은 이러한 ‘정치검찰’의 행태가 제대로 인사에 반영되기는커녕 승진의 사유가 되는 데 있을 것임.
정치적 판단에 의한 무리한 수사나 부실한 수사에 대해 인사상 책임을 묻는 것은 꼭 필요함. “아무리 벌점을 받아도 잘 나가는 검사는 잘 나간다”는 내부 평가가 사라지지 않는 한 ‘정치검찰’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 검찰 인사를 통해 수사권을 남용하거나 부실하게 수사를 진행한 검사들에 대해서는 인사상 불이익 등 책임을 묻는 조치가 이뤄져야 할 것임.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