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연사회(無緣社會)>란 2010년 일본 NHK가 방영한 특집 이름이다. 일본 열도에 큰 충격을 안긴 프로그램이다. 그 취재 내용은 <무연사회>라는 책으로 우리말로도 옮겨져 있다. 혼자 살아가다 혼자 사망하는 사회가 무연사회다. 무연사회의 가장 큰 비극은 홀로 맞이하는 죽음인 ‘무연사(無緣死)’다. NHK 취재에 따르면, 일본에서 무연사는 연간 3만2000명에 이른다.

무연사의 일차적 원인은 개인주의의 발전에 따른 독신 세대의 증가에 있다. 평생미혼율(50세 시점에서 결혼 경험이 전혀 없는 사람들의 비율)이 늘어나면서 적지 않은 이들이 ‘나 홀로 가족’으로 살아가다 돌봐주는 이 아무도 없는 상태에서 세상을 하직하게 된다. 무연사를 맞이하는 다수는 독신 고령세대다. 그 대책의 하나가 일정 기간 수도 사용량이 없으면 관계 기관에 자동 통보하는 시스템이다. 수도 계량기가 알려주는 이승과의 작별이라니, 참으로 쓸쓸한 죽음이다. 무연사는 일본 고령사회의 가장 짙은 그늘이다.

일본에 앞서 고령사회를 맞이한 곳은 유럽이다. 1970년대에 들어와 영국, 독일, 프랑스는 65세 이상 노인이 전체 인구의 15%가 넘는 고령사회에 도달했다. 당시 유럽의 분위기를 예고한 책이 시몬 드 보부아르가 1970년에 발표한 <노년>이다. 서른한 살 <제2의 성>을 출간해 억압받는 여성의 상태를 고발했던 그가 이제 예순두 살을 맞아 <노년>을 통해 고령세대의 비참한 실존을 주제로 삼는다.

보부아르는 노인이란 지위가 주체적으로 취득한 게 아니라 사회적으로 주어지는 것이라고 본다. 고대의 노인은 지혜의 상징이었지만, 근대 이후에는 부담스러운 존재로 변모한다. 자본주의 문화는 젊음을 찬양하지 나이 듦을 기리지 않는다. 노인은 결국 가족과 사회로부터 소외되고, 이 소외의 감정은 슬픔과 분노를 동시에 격발시킨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년의 삶의 질은 계층에 따라 격차가 두드러진다. 특히 하층계층 노인은 직업을 잃으면 쓸모없는 잉여의 존재로 전락하게 된다고 보부아르는 분석한다.

2000년대 일본 노인의 현실과 1970년대 프랑스 노인의 현실은 2010년대 우리 사회 노인의 현실에 그대로 부합한다. 46.5%에 달하는 노인 빈곤율과 인구 10만명당 80명에 달하는 노인 자살률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운데 압도적인 1위라는 점을 고려하면, 우리 사회 고령세대가 더 불행한 것으로 보인다. 광복과 한국전쟁, 역동적인 산업화와 자랑스러운 민주화를 숨가쁘게 함께해왔지만, 이제 적지 않은 노인들의 삶은 더없이 어렵고 고독하다.

우려를 더하는 것은 고령화의 속도다. 올해 우리나라 65세 이상 노인 인구는 708만명에 이른다. 2025년에 1000만명을 넘어서고, 2030년에는 1300만명, 2050년에는 1900만명가량 될 것으로 추산된다. 고령세대를 60세 이상으로 잡으면, 전체 인구에서 이 집단이 차지하는 비중은 2030년에 31.4%, 2050년에는 41.5%로 높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내가 태어난 해가 1960년이니, 일흔이 되는 2030년에는 60세 이상 인구가 10명 중 3명이나 된다. 참으로 낯선, 늙어버린 미래 한국의 풍경이다.

고령사회에 대비하는 정책은 2000년대에 들어와 꾸준히 제시됐다. 문재인 정부 역시 건강하고 품위 있는 노후생활 보장을 100대 국정과제의 하나로 삼고 있다. 공적연금 인상을 통한 노후소득 보장, 치매 국가책임제 강화, 노인 일자리 확대 등이 주요 내용을 이룬다. 당장 어제 보건복지부는 기초연금의 기준연금액을 내년 4월부터 25만원으로, 2021년에는 30만원까지 인상하는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정부의 예산 증가가 불가피하지만, 노인들이 처한 현실을 고려하면 당연한 결정이다.

분명한 것은 고령사회 대책에서 국가의 역할이 더없이 중요하다는 점이다. 기초연금 인상에 더해 노인 일자리 창출을 통한 노후소득 증대, 연금 인상에 따른 재정 확보를 위한 증세의 사회적 합의 모색, 건강보험 지원의 확대 등이 요구된다. 이뿐만 아니라 노인을 부담스러운 짐으로만 생각하는 문화도 바뀌어져야 한다. 재레드 다이아몬드가 <어제까지의 세계>에서 주장하듯 경험 많은 노인들의 능력을 활용할 이유는 여전히 충분하다. 나아가, 보부아르가 충고하듯 노인 스스로 자기 삶의 의미를 개척하고, 젊은 세대에 대한 이해와 관용을 높여야 한다.

우리 인간은 누구든 언젠가 노인이 되고 결국 죽음을 맞게 된다.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는 경구다. 죽음에 앞서 쓸쓸한 노년 또한 기다리고 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김호기 | 연세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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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박근혜 정부의 ‘출산율 올리기’ 사업이 사실상 실패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회입법조사처는 30일 펴낸 ‘제3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의 문제점과 개선방향’ 보고서에서 이같이 분석했다. 정부는 합계출산율 1.27명, 출생아 수 44만5000명을 목표로 삼았지만 결과는 합계출산율 1.15명, 출생아 수 40만명에 그칠 것으로 추산됐다. 앞서 정부는 2005년부터 5년씩 1, 2차 기본계획을 만들어 80조원이 넘는 자금을 쏟아부었으나 별다른 성과를 얻지 못했다. 오는 2020년까지 100조원이 넘는 돈을 투입해 합계출산율 1.5명, 출생아 수 48만명 목표를 달성할 계획이지만 지금 추세대로라면 떨어지지 않으면 다행일 것 같다.

정부는 출산율 제고를 미래가 걸린 문제로 보고 대응책 마련에 부심해 왔다. 그러나 10년이 넘는 동안 벌인 사업이 효과를 거두지 못하면서 이를 원점에서 재검토할 필요성이 생겼다. 더이상 미룰 수 없게 된 정부 대책의 문제는 현실과 동떨어진 ‘탁상머리 행정’이라는 점이다. 한마디로 출산 적령기 시민의 요구에 부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출산을 꺼리는 이유’ 중 다수가 ‘경제·사회적으로 힘들다’는 것이다. 시민은 고용불안에다 주거대책까지 막막한 상황이어서 출산은 뒤로 미룰 수밖에 없다고 하소연한다. 그런데 정부의 대책은 가려운 데를 긁어주지 못했다. 남성의 육아휴직 사용을 장려하기 위한 ‘아빠의 달’ 확대를 비롯해 임신기 근로시간 단축, 난임시술 지원 확대 등은 출산율 제고에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 ‘쉬운 해고’ 등으로 청년 일자리가 만들어져 출산율을 높이는 데 기여했다는 게 정부 설명이지만 불안한 일자리는 고용불안을 키워 오히려 결혼과 출산을 꺼리게 만든다.

저출산 대책은 구태의연한 기존의 방식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 무모할 정도로 획기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경제적으로 힘들어 아이 낳기를 꺼린다면 현금 지원을 해서라도 문제를 해소해야 한다. 놀랄 정도의 ‘출산장려금’을 지급하고 ‘육아수당’ ‘영아보육수당’ ‘가족수당’ 등 직접적인 지원방안을 검토하자는 얘기다. 여성만 출산과 육아를 책임지는 관습에서 탈피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뒷받침해야 한다. 이를 위해 중구난방인 보육 관련 대책을 통할하는 컨트롤타워도 필요하다. ‘아이를 낳으면 국가가 책임지고 키운다’는 확실한 보장이 없는 한 출산율 제고는 요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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