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들어 전 세계적으로 불평등에 관한 관심이 급증했다.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로 인해 경제적 불평등이 심화되면서, 불평등에 관한 담론이 다양한 형태로 등장했다. ‘1 대 99 사회’ ‘격차사회’ ‘사회 양극화’ 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그러나 분석적으로 불평등, 격차, 집중, 사회 양극화는 소득분포의 다른 차원을 가리킨다.

소득불평등 지수로 가장 많이 사용되는 지니계수는 개인 단위로 소득 차이를 다루는 반면 격차, 집중, 사회 양극화는 집단을 중심으로 소득 차이를 다룬다.

격차는 특정한 소득집단 간의 소득 차이를 다룬다. 격차 지수로 많이 사용되는 ‘P90/P10’은 상위 10% 소득집단의 평균소득과 하위 10% 소득집단의 평균소득 격차를 측정한다.

집중은 토마 피케티의 연구에서처럼 상위 소득집단의 소득 점유를 다룬다. 피케티가 사용하는 소득불평등 측정은 상위소득 1%나 10%와 같은 특정 집단의 소득이 전체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분석한다. 반면 사회 양극화는 두 개의 소득 집락(集落)으로 사람들이 몰리는 현상으로 통상적으로는 중간소득 계층이 줄어들고, 중간소득 이상과 이하로 분리되는 현상을 지칭한다.

한국의 소득 분배는 이 4가지 차원에서 어떻게 변했을까? 일단 한국의 소득불평등은 그다지 높은 수준은 아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보고된 한국의 가처분소득 지니계수는 2012년 0.307이었고, 2013년과 2014년에는 0.302로 유지됐다. OECD 회원국 가운데 불평등이 심한 경우의 지니계수는 칠레 0.465(2014년), 멕시코 0.459(2014년)와 미국 0.394(2014년), 터키 0.393(2013년), 영국 0.358(2013년) 등이었다. 2014년 한국의 지니계수 0.302는 일본 0.33(2012년)보다 낮고 프랑스 0.294(2013년)나 독일 0.292(2013년)에 더 가깝다. 이 수치로만 본다면 한국의 소득 분배는 양호한 수준이다.

정말로 양호한 수준일까? 왜 사회 양극화와 헬조선 담론이 대두되는 현실과는 크게 다를까? 문제는 자료에 있다. 통계청이 사용하는 ‘가계동향조사’는 표본수가 적어 고소득층이 거의 포착되지 않는다. 표본수가 커질수록 고소득 포착률이 높아진다. 표본수가 가계동향조사의 2배 정도가 되는 ‘가계금융복지패널조사’ 자료에서 한국의 지니계수는 2012년 0.4044, 2014년 0.3873, 2015년 0.3814로 미국 수준에 근접했다. 이것은 OECD에 보고된 통계청 자료와는 상당히 다른 불평등 현실을 보여준다. 표본수가 더 늘어나면, 지니계수도 더 높아질 것이다.

가계동향조사에서 집단 간 격차를 보여주는 P90/P10은 1990년 6.5에서 2000년 7.7, 2005년 9.8로 높아졌다. 그리고 2010년에는 13.16으로 더욱 높아졌다. 여기에는 2006년 1인 가구가 통계에 포함되면서 격차가 확대된 효과가 포함돼 있다. 이는 2015년에 11.91로 약간 줄었으나, 2015년 가계금융복지패널조사에서는 P90/P10도 16.62로 높게 나타났다.

상위 소득 10%의 소득 집중도는 1990년 22.81%에서 2015년 25.46%로 지속적으로 증가했다. 한국에서 상위 소득집단으로의 소득 집중 수준은 OECD 평균보다 높을 뿐만 아니라, 소득 집중이 계속 심해져 미국, 영국, 캐나다, 호주와 같은 신자유주의 국가들의 소득 집중도에 근접하고 있다. 가계금융복지패널조사의 경우 상위 소득 10%의 소득 집중도가 26.80%로 가계동향조사보다 높게 나타났다.

양극화도 동일하게 심화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가계동향조사에서 추정한 포스터와 월프손의 양극화 지수는 1990년 0.2149에서 2010년 0.2887로 증가했다. 2015년 0.2799로 약간 줄어들었지만, 가계금융복지패널조사에서 추정한 양극화 지수는 0.3331로 가계동향조사보다 15% 정도 높게 나타났다.

2000년대 들어 불평등, 격차, 집중과 양극화 모두가 심화되었다. 다만 2010년대 들어 불평등, 격차와 양극화가 심화된 상태에서 정체된 상태를 보여주고 있다. 헬조선 담론은 소득 분배의 악화가 낳은 파생적인 산물이다. 3포 세대인 청년, 절반이 빈곤층인 노인 그리고 고용불안과 조기 퇴직으로 인한 위기를 겪고 있는 중년. 헬조선 담론은 모두가 불안한 한국의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신광영 |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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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의 ‘출산율 올리기’ 사업이 사실상 실패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회입법조사처는 30일 펴낸 ‘제3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의 문제점과 개선방향’ 보고서에서 이같이 분석했다. 정부는 합계출산율 1.27명, 출생아 수 44만5000명을 목표로 삼았지만 결과는 합계출산율 1.15명, 출생아 수 40만명에 그칠 것으로 추산됐다. 앞서 정부는 2005년부터 5년씩 1, 2차 기본계획을 만들어 80조원이 넘는 자금을 쏟아부었으나 별다른 성과를 얻지 못했다. 오는 2020년까지 100조원이 넘는 돈을 투입해 합계출산율 1.5명, 출생아 수 48만명 목표를 달성할 계획이지만 지금 추세대로라면 떨어지지 않으면 다행일 것 같다.

정부는 출산율 제고를 미래가 걸린 문제로 보고 대응책 마련에 부심해 왔다. 그러나 10년이 넘는 동안 벌인 사업이 효과를 거두지 못하면서 이를 원점에서 재검토할 필요성이 생겼다. 더이상 미룰 수 없게 된 정부 대책의 문제는 현실과 동떨어진 ‘탁상머리 행정’이라는 점이다. 한마디로 출산 적령기 시민의 요구에 부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출산을 꺼리는 이유’ 중 다수가 ‘경제·사회적으로 힘들다’는 것이다. 시민은 고용불안에다 주거대책까지 막막한 상황이어서 출산은 뒤로 미룰 수밖에 없다고 하소연한다. 그런데 정부의 대책은 가려운 데를 긁어주지 못했다. 남성의 육아휴직 사용을 장려하기 위한 ‘아빠의 달’ 확대를 비롯해 임신기 근로시간 단축, 난임시술 지원 확대 등은 출산율 제고에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 ‘쉬운 해고’ 등으로 청년 일자리가 만들어져 출산율을 높이는 데 기여했다는 게 정부 설명이지만 불안한 일자리는 고용불안을 키워 오히려 결혼과 출산을 꺼리게 만든다.

저출산 대책은 구태의연한 기존의 방식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 무모할 정도로 획기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경제적으로 힘들어 아이 낳기를 꺼린다면 현금 지원을 해서라도 문제를 해소해야 한다. 놀랄 정도의 ‘출산장려금’을 지급하고 ‘육아수당’ ‘영아보육수당’ ‘가족수당’ 등 직접적인 지원방안을 검토하자는 얘기다. 여성만 출산과 육아를 책임지는 관습에서 탈피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뒷받침해야 한다. 이를 위해 중구난방인 보육 관련 대책을 통할하는 컨트롤타워도 필요하다. ‘아이를 낳으면 국가가 책임지고 키운다’는 확실한 보장이 없는 한 출산율 제고는 요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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