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유가족들이 청와대 100m 앞까지 다가가 하염없이 눈물을 쏟아냈다. 세월호 사건 진실 규명과 박근혜 대통령 퇴진 구호도 외쳤다. 지난 3일 열린 6차 촛불집회에서 있었던 일이다. 유가족들의 청와대 앞 시위는 사건 발생 이후 처음이다. 이날 전국에서 촛불을 든 230만 시민이 유가족들의 든든한 원군이었다. 전명선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은 “그동안 한번도 못 온 곳인데 시민들과 함께할 수 있어 기쁘다. 박근혜 대통령은 (세월호) 가족들이 지속적으로 요구한 것에 답변 한번도 없다. 그에 대한 사과, 꼭 받아내겠다”고 말했다. 유가족들은 그동안 박 대통령 면담 등을 요구하며 광화문 일대에서 수백일간 농성을 하고 집회를 열었지만 경찰에 가로막혔다.

6차 촛불집회가 열린 3일 청와대에서 100m 떨어진 서울 종로구 효자치안센터 근처 경찰버스 차벽 앞에서 세월호 유가족들이 희생된 아이들의 얼굴이 새겨진 보자기를 두른 채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외치고 있다.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박 대통령은 그동안 세월호 유가족들에 대해 무성의와 외면으로 일관했다. 박 대통령은 참사 당시 진도 팽목항을 찾아가 유가족들 앞에서 마지막 한 사람까지 구해내겠다며 눈물을 흘렸지만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유가족이 원하면 언제든지 면담을 하겠다고 했지만 이 역시 말뿐이었다. 사건 발생 한 달 뒤인 2014년 5월16일 유가족 대표와의 면담이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이후로는 오히려 유가족들을 사회적으로 따돌림하는 일에 골몰했고 세월호특별법과 특별조사위원회도 무력하게 만들었다. 유가족들의 마지막 바람이라 할 수 있는 세월호 선체 인양은 언제 이뤄질지 기약도 없다.

세월호 사건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와 불가분의 관계다. 게이트 정점에 참사 당일 박 대통령의 7시간 행적 의혹이 있다. 전 국민이 TV 생중계로 배가 가라앉는 장면을 보고 있었지만 박 대통령은 출근도 않고 숙소인 관저에서 시간을 보낸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 등 참모들도 공범이나 다름없다. 박 대통령이 짧게는 3분, 평균 20분 간격으로 쉼없이 상황을 점검하고 필요한 지시를 내렸다고 강변한다. 하지만 그랬다는 박 대통령은 7시간 만에 나타나 “구명조끼를 학생들이 입었다고 하는데 그렇게 발견하기가 힘듭니까?” 하는 뚱딴지같은 말을 했다. 김영한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수첩을 보면 김 전 실장은 ‘대리기사 폭행’ 건에 검찰의 엄정 수사를 주문하는 등 유가족과 야당 의원을 범죄자로 내몰아 상황의 반전을 꾀했다. 박영수 특별검사는 박 대통령의 7시간 의혹도 수사 대상이라고 말했다. 당연한 판단이다. 유가족들의 한과 시민들의 트라우마를 해소하지 못하는 수사는 의미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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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광화문 세종대왕상 앞까지였다. 청와대로부터 1.8㎞. 10월29일의 첫 번째 촛불집회와 11월5일의 2차 촛불집회까지는 그랬다. 매주 광장의 함성이 커질 때마다 시민들은 조금씩 청와대 근처로 갈 수 있었다. 3차 집회는 800m 거리인 내자교차로까지, 4차 집회는 400m, 그리고 지난 주말엔 청운효자동주민센터 앞까지 갈 수 있었다. 청와대 200m 앞까지 진출한 거다.

집회와 시위를 신고하면, 경찰은 금지하고 법원이 조금 더 허용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법원의 행진 허용은 경찰의 금지조치에 빗대면 전향적인 일이지만, 법원도 기본적인 입장은 경찰의 금지와 같은 맥락이다. 다만, 경찰보다는 조금씩 더 허용하겠다는 것뿐이다.

법원이 제시하는 허용의 단서도 웃긴다. 지난번 집회를 보니 질서를 잘 지키고 평화롭게 했으니 이번엔 조금 더 앞으로 나가도 좋다는 허가다. 이건 100만 또는 200만 시민에게 준법서약을 강요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경찰의 행정작용이 헌법과 법률의 원칙에 맞는지만 판단해야 할 법원이 자기 역할에서 훌쩍 더 나아가 시민의 도덕교사처럼 굴고 있다. 기본부터 다시 확인해보자. 대통령이 앞장서 헌법질서를 유린하는 상황이라 민망하긴 하지만, 그래도 원칙은 원칙이다. 대한민국 헌법은 모든 국민이 집회의 자유를 가지고, 집회에 대한 허가는 인정되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제21조).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집회나 시위는 일정한 자격을 갖춘 사람들만의 권리가 아니다. 질서를 잘 지키고 평화로운 집회를 한다거나 남들이 버린 쓰레기마저 잘 치우는 착한 시민들만 누릴 수 있는 권리가 아니다. 선량하냐, 그렇지 않으냐를 묻지 않고, 이전 집회에서 어떻게 행동했느냐며 전력을 따지지도 않는 거다. 경찰이나 법원 등 국가가 허용하고 말 계제도 아니다.

그런데도 경찰과 법원이 집회를 허용하는 건 희한한 악법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 때문이다. 집시법은 1962년 12월 제정됐다. 군사쿠데타 직후에 국회가 아니라, 지금 대통령의 아버지가 만든 법이다. 이 법을 만들었다는 국가재건최고회의는 박정희에게 임명장을 받은 쿠데타 부역자들로 구성된 반헌법 유령조직이었다. 여기서 만든 최소한의 형식적 요건조차 갖추지 못한 법이 여태껏 국민의 인권을 탄압하는 도구로 쓰이고 있다.

청와대 근처에서 집회를 금지하는 건, 대통령 관저 100m 이내에선 집회나 시위를 금지하는 집시법 제11조의 규정 때문이 아니다. 집시법 제12조의 ‘주요 도로’ 규정 때문이다. 교통 소통 때문에 주요 도로에서는 집회나 시위를 금지할 수 있다는 규정이다. 주요 도로는 법이 아닌 시행령으로 정하는데, 전국의 모든 고속도로와 모든 자동차 전용도로에다, 서울 16개, 부산 10개 등 전국 88개 도로를 주요 도로로 지정해 놓고 있다. 서울의 1번 주요 도로는 자하문 터널 북단부터 한강대교 남단까지다. 효자동, 광화문, 남대문, 서울역, 삼각지를 아우르는 꽤 긴 코스다. 그나마 1번 주요 도로는 좀 낫다. 2번 도로는 아예 서울 서남부 끝에서 동북부 끝까지다. 부천시와의 경계부터 구리시까지의 경계다. 여기에는 오류동, 영등포역, 여의도, 광화문, 종로, 청량리, 상봉동, 망우동까지가 모두 들어간다. 시내 어디든 경찰이 맘만 먹으면 집회와 시위를 금지할 수 있는 거다.

악법을 만든 박정희도 이렇게까지 무도하지는 않았다. 1962년의 집시법에도 주요 도로에서의 집회와 시위를 금지한다는 개념은 있지만, 그건 관공서 출퇴근 시간을 기준으로 1시간 전과 1시간 후까지로만 한정된 개념이었다. 만약 박정희가 만든 집시법이 여태껏 남아 있었다면, 주요 도로를 핑계로 집회 금지 통고를 반복하는 일은 없었을 거다. 우리는 주로 출퇴근이 없는 토요일에 모인다. 54년 동안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을 침해하는 악법이 존속하고 있다는 것도 통탄할 일이지만, 그냥 존속 수준에서 멈춘 게 아니라, 오히려 박정희 때보다 퇴행했다.

청와대는 다섯 번의 촛불집회 내내 “국민의 뜻을 무겁게 받아들인다” “국민들의 목소리를 엄중하게 받아들이겠다”는 똑같은 말만 반복하고 있다. 그러나 국민의 뜻을 받아들이기는커녕 꼼수만 부리고 있다. 어차피 기댈 게 없는 사람, 진작 쫓아냈어야 할 사람이니 그렇다 치자. 문제는 국회다. 국민은 아랑곳하지 않고 대통령의 의중만 쫓는 여당은 제쳐놓더라도, 야당이 이러면 안 된다. 촛불 행렬에 빠지지 않고 참여하는 사람들이 왜 집회와 시위의 자유를 원천적으로 제한하는 반헌법, 반인권 악법을 폐지할 생각은 하지 않는지 모르겠다. 어떤 야당 의원이 청와대 앞으로 좀 더 다가갈 수 있는 개정안을 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다른 의원들에 비하면 반가운 일이지만, 집시법 문제는 청와대 앞 100m를 30m로 당긴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다. 집회와 시위를 경찰이 허가하는 근거 법률인 집시법이 남아 있는 한 집회와 시위의 자유는 침해되고 위축될 수밖에 없다. 미국, 영국, 프랑스, 일본 등 대부분의 나라에는 집시법이란 법 자체가 없다.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은 기본적으로 집회와 시위가 못마땅할지도 모르겠다. 집회와 시위가 자신을 겨냥하는 경우가 많고, 언제나 민원인에게 시달린다고 여길 테니 말이다. 집회와 시위는 기본적으로 평소 발언권을 갖지 못했던 우리 시민들, 특별히 가난한 시민들의 권리다. 말로만 민심을 좇는 게 아니라면, 당장 광장을 여는 일부터 해야 한다. 광장의 가장 큰 걸림돌이 바로 집시법이다. 쿠데타 시절보다 못한 퇴행이 부끄럽지도 않은가. 경찰의 공권력 남용으로 국민의 인권이 침해되고, 헌법질서가 일상적으로 파괴되는데도 잠자코 있는 까닭이 뭔가.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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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의 대국민사과 한달째. 광화문에서는 100만명 이상의 꺼지지 않는 촛불이 횃불로 이어지고 있다. 뉴스는 아직도 대부분이 최순실의 국정농단 내용으로 채워지고 있다. 대통령은 헌법과 국민을 무시하고, 국가원수와 군 통수권자로서 스스로 권위를 던져 버렸다. 언젠가부터 국내 포털사이트의 청와대 연관검색어는 비아그라, 발기부전, 프로포폴 등으로 바뀌었을 정도다.

2014년 3월6일, 필자는 학군장교로서 동기생 5860여명과 함께 군 통수권자인 대통령 앞에서 ‘국가와 국민을 위해 충성을 다하고 헌법과 법규를 준수한다’는 임관선서를 했다. 이날 대통령은 군 통수권자로서 우리에게 ‘선배 전우들의 소임을 이어받아 강한 애국심과 투철한 사명감으로 충성을 다해줄 것’을 주문했다. 가슴 속 저 깊은 곳에서 끓어오르는 그날의 뜨거움은 가끔씩 힘들었던 군 생활 속에서 필자를 잡아주던 든든한 버팀목이었다.

그러나 장병들이 믿고 기대야 하는 정신적 지주 격인 군 통수권자는 스스로 군의 사명감을 저해하고 장병들의 권위와 사기까지 붕괴시켰다. 이 땅의 자유민주주의를 목숨으로 지켜온 선배 전우들의 뒤를 이을 각오로 훈련 중인 장교 후보생단의 기개를 꺾어버렸다.지금 이 순간에도 전후방 각지에서 작전에 투입되고 있는 우리 용사들의 사기를 북돋기 위해 지휘관들은 과연 뭐라고 할 수 있겠는가. 주변에 간신뿐인 군 통수권자는 최순실에게 국정을 맡겨놓고 얼이 빠져 있었는데 일선 지휘관들의 명이 서겠는가.

미국에서는 주한미군의 방위비 인상을 압박하는 트럼프가 당선되고, 북한은 한반도 평화를 저해하는 핵실험을 계속하는 일촉즉발의 위급한 안보상황이다. 군 통수권자는 장병들에게 ‘극한의 상황 속에서도 지휘관을 중심으로 단결하여, 적과 싸워 이길 수 있는’ 군기를 주문해야 한다. 그러나 지금의 국정 컨트롤 부재 상황에서는 그렇게 주문할 수 없다. 정치권은 하루빨리 국정을 수습해 ‘이러려고 군 생활하나’ 하는 자괴감을 장병들에게 그만 심어주어야 한다.

김용태 | 예비역 중위·고려대 대학원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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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광화문 일대, 본래 맘 편하게 걷는 곳이 아니다. 머물러 있기에 적합한 곳도 아니다. 곳곳에서 전경과 마주칠 수 있기에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들으며 빨리 지나가고 싶은 거리이다. 청와대와 가까운 효자로, 그리고 자하문로를 걸어본 사람은 누구나 그 기분을 안다.

2016년 11월26일 다섯 번째 주말 촛불집회가 열린 그날에 모인 군중은 청와대와 가장 가까운 곳까지 행진했고 그들의 요구를 대통령에게 통보했다. “박근혜는 즉각 퇴진/하야하라”고. 그날 군중의 한 명이 되어 세종대로를, 사직로를 그리고 종로를 오후 3시부터 그다음 날 새벽 1시까지 걸었다. 원하는 것을 얻을 때까지 아침이슬을 맞겠다는 즐거운 결기로 무장한 이 거대한 인간의 집합체를 관찰했고 그들이 외치는 구호를 채집했다.

도시의 차량을 통제한다고 도심의 거리가 광장이 되지 않는다. 광장은 도시공학의 산물이 아니다. 물리적인 공간에 생명체인 인간이 모일 때 광장은 만들어진다. 동원된 군중은 광장을 완성하지 못한다. 동원된 군중에게선 광장을 구성하는 결정적인 요인인 자발적 의지를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26일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 일당의 국정농단에 분노한 시민들이 서울 도심인 광화문과 세종로 일대에서 촛불집회를 열고 있다. 이석우 기자

우리는 교과서에서 배웠다. 모든 인간은 천부인권과 자연권을 갖고 있는 존재로 태어났음을. 서울의 150만명, 전국적으로 190만명의 사람들은 교과서에 단지 글로 존재하던 천부인권을, 그리고 국가는 자연권을 지닌 개인들이 맺은 계약의 산물임을 부인할 수 없는 사실로 만들어냈다. 자신이 자연권을 지닌 사회계약적 주체임을 자각한 개인들이 모였다. 그래서 평상시 통치의 영역이자 국가의 의지가 재현되는 곳에 다름 아니었던 광화문 일대가 시민들의 광장으로 돌변하는 사태가 기적처럼 일어났다. 그 기적의 다른 이름이 촛불집회이다.

모이는 사람들의 숫자가 늘어날수록 헌법 제1조 제2항 “대한민국의 모든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텍스트는 물리적 힘으로 변화했다. 그들이 행진할수록 결집된 의지는 자연권에 의거한 주권자의 엄중한 명령으로 바뀌었다.

자유발언이 펼쳐지는 광장에서 고등학생, 주부, 회사원, 농민, 목사, 외국인, 대학생이 마이크를 잡고 현재의 부당함에 대해 발언할수록 그들은 국민으로 동원된 착한 주체에서 자신의 권리와 의무의 대칭성을 정확하게 파악한 사회계약적 주체로 거듭났다.

촛불집회에 참여한 연인원, 그리고 물리적으로 그곳에 있지 못했어도 가능한 모든 방법으로 그 광장에 접속한 사람의 규모는 ‘국민’에서 벗어나 ‘시민’의 역능(力能)과 비례한다.

조직에 속한 사람이든 그 어떤 조직에도 소속되지 않은 사람이든 이곳에선 ‘시민’이라는 주체로 합일된다. 깃발을 따라 행진하든 혼자서 행진하든 차이가 없다. 여기서는 혼자서(solitary)와 연대(solidarity)의 경계가 모호해진다. ‘국민’이라는 오래된 강제와 사유습관에서 벗어나는 한, 트위터와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에서 이미 수없이 손가락으로 연습했던 ‘좋아요’와 ‘공유하기’와 ‘댓글달기’는 시민의 구호와 몸짓으로 거리에서 재현된다.

‘국민’으로 소환된 사람은 의무를 우선시한다. ‘국민’은 자신의 미래를 국가가 제시해주길 기다린다. 그리고 국가가 제시한 미래를 실현 가능성을 따지지 않은 채 믿어버린다. 국가에 의한 배신에 배신이 더해져도 미래를 국가에 기대는 관습을 ‘국민’으로 소환된 사람은 버리지 못한다. 사회계약적 주체로 거듭난 사람은 ‘국민’이 알지 못하던 시민의 ‘권리’를 너무 잘 알고 있다. 권리를 지닌 시민의 눈으로 지금 현재의 박근혜호 대한민국을 목격한 시민들은 “이게 나라냐”가 쓰인 손팻말을 들었다.

사회계약적 주체는 ‘광장’에서 각자의 미래를 상상하고 타인들과 교류한다. 여기에 모인 사람들은 새로운 시대를 원한다. 모든 ‘국민’이 ‘시민’으로 변화하지 않는 한, 압축성장 신화에 사로잡힌 앙시앵 레짐의 모든 관습에서 유래한 관행과 제도들이 대체되지 않는 한, 박근혜가 더 이상 대통령이 아니어도 과거는 무한 반복된다. 박근혜라는 이름은 이곳에선 한 개인의 이름이 아니라 ‘한강의 기적’이라는 이름으로 신화화되었던 한국 현대사의 앙시앵 레짐, 즉 구체제를 지칭하는 기호이다. “박근혜를 즉각 구속하라”는 외침은 구체제에 대한 긴급 정지명령에 다름 아니다.

박근혜는 박정희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구체제가 지연된 현재이다. 박근혜 퇴진은 단순히 정권의 교체를 의미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유예된 과거가 아니라 미래를 원한다. 미래는 현재가 작동 중지될 때야 비로소 다가온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런 구호와 함께 통치의 거리 광화문 일대를 걷는다. “정치검찰을 청산하라. 검찰을 개혁하라”, 그리고 “재벌들도 공범이다, 정경유착 재벌기업 처벌하라”고. 사회계약적 주체는 현재에 대한 작동 중지 명령을 시민의 의무로 파악한다. 국가에 광장에서 수집된 우리 모두의 공통의 미래를 요구하는 것이 시민의 권리라 이해한다. ‘국민’이었을 때 아무것도 아니었던 우리는 광장에서 이제 모든 것이 된다. 미래는 대통령이 아니라 시민들의 손에 달려 있다.

현재를 유지하려는 사람은 초조하기에 얼굴을 찌푸리지만, 미래를 상상하는 사람에게서 분노와 좌절은 찾기 힘들다. 여기엔 잉여의 무기력도 헬조선의 아나키스트적 분노도 없다. 여전히 진지하지만 영리한 군중들은 욕설의 카타르시스가 아닌 미래를 꿈꾸는 생성의 기쁨을 믿는다. 촛불집회는 이렇게 반복을 통해 진화했고 성장했다. 생성의 기쁨을 알아버린 사람은 폭력에 의존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폭력은 현재를 지키려는 자의 비통한 마지막 몸부림이 되어 버렸다.

사람들은 명령하는 국가와 통치하는 국가를 넘어서 광장을 담는 국가를 기다리고 있다.

이제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서 광장을 담지 못하는 그 어떤 정치, 그리고 그 정치가 제도화된 국가는 존재 정당성을 확보하지 못한다. 2016년 11월26일 그날 “우리가 주권자다”, “우리의 명령이다”, “세상을 바꾸자”라는 외침은 그래서 유난히 크게 들렸다.

노명우 | 사회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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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뽕’은 대한민국의 구성원으로서 자긍심이 고취될 때 느끼는 심리적 만족감을 이르는 속어다. 마약에 기분이 좋아지는 것마냥 국가적 소속감이 자존감을 강화시키는 경우를 말한다. ‘국가가 허용한 유일한 마약’이라는 우스개도 있다.

지난 26일 전국 190만명의 시민이 참여한 촛불집회에서 ‘국뽕’ 경험을 했다는 인터넷 간증이 이어졌다. 지구촌 현대사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의 ‘클린 평화 시위’에 외신들도 놀라움을 감추지 않았다. 세상 어느 나라 시위대가 집회 이후 청소까지 마치고 귀가한단 말인가. 역설적이게도 이 촛불시위를 촉발시킨 장본인 박근혜 대통령은 권력·재물·섹스·가족사가 얽히고설킨 스캔들로 매일같이 추문을 생산하며 대한민국 국격을 땅바닥에 메다꽂은 상황이다.

이에 대해 방송인 허지웅은 트위터에 이렇게 적었다. “5주째 (촛불집회에) 나왔는데 요즘은 한 주 동안 만신창이로 바스러진 시민의 자존감이 토요일마다 회복된다는 느낌을 받는다. 정부가 국격을 구겨놓으면 시민이 촛불로 다려 펴낸다.” 또 다른 트위터 사용자는 같은 날 밤 8시에 1분간 진행된 시민들의 소등시위에 대해 이렇게 썼다. “광화문 카운트다운 맞춰서 불 끄고 얼른 창밖으로 어느 집에 불 꺼지나 보고 있는데 의외로 많은 집에서 차례로 타다닥 불이 꺼지는 걸 보고 차오르는 국뽕을 참을 수 없었다.”

이번 ‘국뽕’ 경험은 과거와 질적으로 완전히 다르다. 2002년 월드컵 국뽕이 영웅적인 선수들과 자신의 동일시를 통한 만족감이었다면, 이번에는 시민들이 직접 참여하고, 주인공이 되어 이야기를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경험은 시민사회의 성격을 긍정적 방향으로 바꿔놓을 것이라는 희망도 나온다.

다만 이번 평화시위가 ‘유별나게’ 예외적인 것으로 취급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고 누리꾼들은 지적한다. 고 백남기 농민을 사망케 한 시위를 비롯해 대부분의 시위 참가자들은 그간 평화시위를 지향해왔다. 경찰의 차벽이 물러나고, 물대포가 사라지고서야 물리적 마찰이 줄어들었다. 우리 시민들은 원래부터 멋진 사람이었다는 방증 아니겠는가.

최민영 기자 m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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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헌법 본문 앞에는 전문(前文)이 있다. 헌법학자들은 이 전문이 본문의 각 조항을 지배하는 근본원리로서, 헌법의 본질적 부분을 이루는 ‘헌법의 헌법’이라고 본다. 그래서 헌법 전문은 당연히 헌법규범의 단계적 구조 중에서 본문에 우선하는 최상위의 근본규범이 된다.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으로 시작하는 헌법 전문에는 곧이어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이념을 계승하고’라는 부분이 나온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부정선거로 헌법을 유린하고 측근들의 부정축재를 용인한 이승만 정권에 대항한 시민혁명이 4·19혁명이다. 이리하여 4·19 시민혁명의 이념은 현재를 사는 대한민국 국민이 헌법과 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계승해 가야 할 이념이 된다.

지난 주말 5차 촛불집회는 서울 광화문에 150만명, 전국적으로는 190만명에 이르는 사상 최대 규모의 집회였고, 전 세계에 비폭력·평화집회의 전범을 보여주었다. 광장은 10대부터 70대 이상 노인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시민들로 빼곡히 채워졌지만, 이들의 입에서 나오는 요구는 단 하나, ‘대통령 즉각 퇴진’으로 모아졌다. 퇴진 전까지 물러서지 않겠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대통령 지지율이 4%로 추락했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말해주듯, 그 시각에 집이나 직장에 있던 국민들의 마음도 이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대다수 국민들은 지난 대선에서 대통령에게 부여한 국민적 신임을 이제 거두어들인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는 것이다.

26일 제5차 촛불집회에서 처음으로 행진이 허용된 서울 청운효자동주민센터 앞에 모인 시민들이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고 있다. 이준헌 기자

이러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여당 일부에서는 “현시점에서 대통령 하야는 헌정 중단, 헌정 파괴”라는 주장이 나왔다. 대통령의 갑작스러운 퇴진은 헌법이 예정하고 있는 절차와 방법이 아니므로 ‘헌정 중단’이나 ‘헌정 파괴’를 낳을 것이라며, 대통령 퇴진 이후의 정국에 대해 불안감을 국민들에게 심어주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 오히려 지금의 상황이야말로 국민들에게 불신임당한 대통령에 의해 헌법에 따른 국정 수행이 중단된 ‘헌정 중단’의 상황이다. 주권자인 국민들의 요구에 의해 대통령이 퇴진하고, 이후 정국 수습을 통해 국정 공백 상태를 극복하며 60일 이내의 선거를 통해 5년 임기의 새 대통령을 뽑아 민주 헌정을 이어가는 것이야말로 ‘헌정 회복’이고 ‘헌법 수호’이다.

대통령의 중도 ‘퇴진’은 우리 헌법이 규정하고 있는 상황이기도 하다. 전혀 불안해야 할 일이 아닌 것이다. 헌법 제68조 제2항은 ‘대통령이 궐위된 때’에는 ‘60일 이내에 후임자를 선거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여기서 ‘궐위’란 대통령이 사망하거나 탄핵결정으로 파면된 경우뿐만 아니라 대통령 스스로 ‘퇴진’한 경우를 포함한다. 헌법은 전문의 ‘4·19 민주이념을 계승하고’라는 부분을 통해 국민적 신임을 잃은 대통령은 임기 중에도 중도 퇴진할 수 있음을 규정함과 동시에, 불의의 정권이 퇴진하고 난 이후에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모든 대통령에게 헌법 제70조가 부여한 대통령 5년 임기가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선거를 통해 국민들이 부여한 신임을 스스로 저버린 대통령은 임기 중간에도 주권자인 국민들의 당당한 퇴진 요구에 의해 퇴진할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이 국민들이 직접 불의의 정권에 책임을 묻는, 헌법이 정한 절차와 방식이다. 헌법이 정한 이러한 절차와 방식에 따라 질서 있게 이 헌정 위기를 수습하는 것이야말로 지금의 ‘혼란’을 극복하고 ‘평화와 안정’으로 가는 길이기도 하다.

오히려 위험스러운 것은 대통령의 퇴진 거부로 ‘국정 공백’과 ‘헌정 중단’ 상황이 길어지는 일이다. 가계부채가 늘어나 1300조원에 육박하고 내수와 수출이 모두 얼어붙고 있다고 한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으로 외교·국방에도 중요한 현안들이 쌓이고 있다. 대통령의 퇴진 결단이 시급한 이유다.

지금 이 상황에서 정치권이 가장 치중해야 할 일은 무엇보다 진상규명의 노력이다. 검찰과 특검의 성역 없는 수사와 함께 국회의 국정조사와 탄핵소추가 병행해서 이루어져야 한다. 이러한 진상규명이 병행되면 주권자인 국민들은 이를 통해 규명된 진상들에 근거해 계속해서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할 것이다.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국민이 성공하는 역사를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광화문에 부모 손을 잡고 나온 많은 아이들에게도 희망을 줄 수 있다. 광장으로 쏟아져 나온 국민들은 머지않은 장래에 승리의 경험을 하게 될 것이라 믿는다. 그 후 이제 어떤 대한민국으로 갈 것인가를 국민과 정치권이 치열하게 논의하면 된다.

임지봉 |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헌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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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광장에서 터져 나온 지 5주가 지났다. 촛불민심은 영하의 날씨에 들이친 진눈깨비에도 꺼지기는커녕 거세지고 있다. 그만큼 박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시민 열망이 뜨겁다는 증좌다. 이런 엄중한 상황에서 일부 정치세력들이 개헌론을 끼워 팔려고 하고 있다. 촛불민심에 편승한 곁불 쬐기다.

최근 개헌 논의 불씨는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가 지폈다. 그는 23일 “문제 해결은 개헌이라고 생각한다. (탄핵과) 개헌도 동시에 추진하려 한다”고 말했다. 25일 국회에서 열린 ‘현 시국과 개헌 그리고 제3지대론’ 토론회에는 손학규 전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정의화 전 국회의장과 의원 등 20여명이 참석했다. 정 전 의장과 손 전 고문은 26일 따로 만나 개헌 논의를 주고받았다.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도 “개헌 작업도 대통령 탄핵과 함께 추진하는 게 맞다”고 밝혔다. 김종인 전 민주당 비대위 대표와 박지원 국민의당 비대위원장도 개헌 쪽에 서 있다.

[김용민의 그림마당]2016년 11월 28일 (출처: 경향신문DB)

이들은 현시점에서 개헌을 주장하는 게 적절한 일인지 자문해 봐야 한다. 시민 10명 중 8명이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지만, 박 대통령은 요지부동이다. 이럴 때 각자 정치세력이 개헌을 부수 안건으로 끼워 팔면 탄핵 추진의 집중력이 떨어질뿐더러, 대오마저 흐트러질 수 있다. 개헌 저의도 의심받고 있다. 친박은 개헌이라는 복잡다단한 의제를 끼워 넣음으로써 탄핵을 늦춰 보려 하고 있다. 야당 내 개헌파는 굳어져 가는 대선판을 뒤흔들어 보려는 의도를 갖고 있다. 무엇보다 개헌은 촛불민심과 동떨어진 것이다. 단 한 차례만 광화문이나 자신들의 지역구 촛불집회 현장에 가 봤으면 알 수 있다. 지난 5차례 촛불집회에서 시민들이 외친 구호는 “박근혜는 물러나라, 재벌도 공범이다”였다. 개헌 논의는 여의도에 머물러 있지 광장을 파고들지 못했다.

이들이 진정으로 개헌을 하고 싶다면 탄핵 문제가 해결된 뒤 대선 혹은 총선 공약으로 구체적인 개헌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 단지 헌법을 바꾸자는 막연한 생각만으로 단일한 정치세력으로 뭉치자는 것만큼 정치공학적인 접근도 없을 것이다. 개헌파인 남경필 경기지사도 “정치권 안에서 계속 권력을 누리고자 하는 마음이 담겨 있는 개헌 논의는 사상누각일 뿐”이라고 했다. 얕은수로 개헌을 추진하다가는 촛불민심이 자신들을 향할 수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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