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의 함성은 여전하다. 역사적 체험을 간직한 시민들 덕이다. 대통령 탄핵 절차도 순조롭다. 절차만 남았을 뿐이라며, 탄핵은 기정사실로 여기는 사람들이 많다. 특검 수사는 김기춘, 우병우, 조윤선, 이재용에게서 성패가 갈리겠지만, 우병우를 제외하면 여태까지의 기세는 좋다. 대선 후보들은 벌써부터 공약을 쏟아낸다. 무엇보다 이번엔 확실히 바꿔야 한다는 시민들의 열망이 뜨겁다.

변화의 조짐은 곳곳에서 읽을 수 있지만, 정작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박근혜 대통령과 황교안 총리도 여전하다. 대통령은 죄 없는 어린양 시늉을 하고, 총리는 대통령 시늉을 하는 게 달라졌을 뿐, 그들의 체제는 여전히 확고하다.

그 확고한 체제가 새해 벽두부터 국가보안법 사건을 일으켰다. ‘노동자의 책’이란 인문사회과학 전자도서관을 운영하는 이진영씨를 구속한 것이다. 국가보안법은 “국가의 안전을 위태롭게 하는 반국가활동을 규제함으로써 국가의 안전과 국민의 생존 및 자유를 확보”하는 게 목적인 법(제1조 1항)이다. 국가의 안전을 위태롭게 하는 사람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당장 박근혜, 최순실, 김기춘 등의 이름이 쏟아져 나오겠지만, 경찰은 도서관 운영자를 꼽았다. 이적표현물 소지·반포·판매 혐의다. 책을 보관하고 나눴던 게 ‘반국가단체에 동조할 목적’이었다는 거다. 다른 혐의는 없다. 오로지 책 때문에 구속되었다.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도서관 운영자까지 구속해야 할 까닭이 뭘까. 백문이 불여일견, ‘노동자의 책’ 사이트에 접속해봤다. 모두 3000여권의 책이 분류되어 있는데, 공개된 건 목차뿐이고, 본문은 회원 가입을 해야만 읽을 수 있었다. 시중에서 팔리는 책도 있었지만, 대개는 진작 절판된 1970~80년대 책들이다. 사이트 전면엔 카를 마르크스, 프리드리히 엥겔스, 블라디미르 레닌, 레프 트로츠키의 사진이 걸려 있다. 공안당국은 이진영씨가 반국가단체, 곧 북한에 동조했다지만, 이 네 명의 사진을 걸어둔 것만으로 그 혐의에서 벗어날 수 있다. 절대 권력을 3대에 걸쳐 세습하고, 국가정체성을 ‘김일성 조선’이라고 규정하는 북한은 마르크스 등에서 한참을 벗어난 변종체제일 뿐이다. 마르크스 등의 사진은 북한에 동조할 수 없다는 강력한 의사표시인 셈이다. 그게 아니라도 상관없다. 김일성이 축지법을 쓰고, 솔방울로 수류탄을 만든다는 황당한 이야기를 늘어놓은 책들이 있다 해도, 그게 국가의 안전을 위태롭게 할 가능성은 전혀 없다.

이진영씨를 구속할 만큼 위험하다던 책들 중에는 E H 카의 <러시아 혁명>이나 파울로 프레이리의 <페다고지>도 포함되어 있다. 이런 목록에는 애초 기준 같은 건 전혀 없다. 공안당국은 심지어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같은 책도 국가보안법 위반 금서로 묶어뒀다. 유일호 경제부총리가 경향신문 ‘내 인생의 책’에 “일독 이상의 가치가 있는 책”이라 꼽았던 책이다.

<역사란 무엇인가>로 유명한 카는 영국 외교관, 언론인, 학자였다. 그가 쓴 <러시아 혁명>은 읽어보지도 않았을 거다. 그저 ‘혁명’이란 단어 때문에 이적표현물이 되고, 그 때문에 멀쩡한 사람을 잡아 가두는 근거가 되는 거다. 공안당국은 “소위 운동권 학생들에게 러시아 혁명과 유사한 방식의 혁명이 필요한 것으로 믿게 할 소지” 때문이라지만, 그런 규정조차 1987년의 것이다. 30년 전의 낡은 잣대다. 교육 분야의 고전 <페다고지>도 1986년 이적표현물이 되었다.

2017년에도 이런 농간이 가능한 건 국가보안법 때문이다. 실제 행위가 아니라, ‘반국가단체에 동조할 목적’이라는 도저히 측량할 수 없는 내심만으로도 처벌할 수 있으니, 자의적 법적용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이진영씨를 범죄자로 만든 곳은 서울경찰청 보안수사 4대다. 신촌 대신동에 있어 보통은 신촌 보안분실로 불린다. 악명 높은 남영동 대공분실과 같은 곳이다. 남영동 대공분실은 2005년 폐쇄되었지만, 홍제동, 장안동, 옥인동, 신정동, 대신동 등 서울에만 다섯 곳의 보안분실이 있다. ‘노동자의 책’ 이진영씨에 대한 구속은 그들의 체제가 여전히 건재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책동이다. 아니, 그들의 존재 자체가 바로 도발이다.

이런 작태가 비단 보안경찰, 공안검찰, 그리고 시민 인권보호에 적절한 역할을 하지 않는 법원만의 것은 아니다. 최근 정부는 국무총리 주재로 국무회의를 열어, 국가보안법 신고 포상금 상한액을 5억원에서 20억원으로 단박에 4배나 올렸다. 기껏해야 인터넷을 뒤져 옛날 사회과학 서적이나 털어대고, 유우성씨 사건처럼 간첩조작사건이나 일으켰던 새누리당 정권이 반성은커녕 시대착오적 안보 장사에 나서고 있다. 안보 현실에 대한 고려조차 없는 그냥 유치한 코미디다. 진짜 코미디야 웃음을 주지만 이런 저질 코미디는 애먼 사람만 해친다. 결국 국가보안법을 폐지하지 않는 한 악순환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 국가보안법을 근거로 공안당국의 자의적 판단만으로 시민들이 구속되는 일이 반복된다면, 이건 자유민주주의도 뭣도 아니다.

국가보안법은 1948년 12월 정부 수립 이후 불과 넉 달 만에 탄생했다. 백번을 양보해 그때는 막 분단된 상황이니 국가 보위를 위한 시급한 요구가 있었다고 치자. 그렇지만 국가보안법의 역사가 가장 확실하게 입증해주는 것처럼, 국가보안법은 고작해야 정권의 안보 또는 정권의 한 축을 떠받치는 공안세력의 안전만을 지켜줬을 뿐이다. 그들의 권력, 그들의 자리를 위한 매개일 뿐이다.

내일은 박종철 열사가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목숨을 빼앗긴 지 꼭 30년이 되는 날이다. 대공분실이란 이름은 보안분실로 바뀌었지만, 똑같은 사람들이 똑같은 방식으로 대공수사를 한답시고 곳곳의 보안분실을 지키고 있다. 1000만 촛불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세상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진짜 문제는 이제부터다.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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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사상가 몽테뉴가 1588년 <수상록>을 완간하자 로마교황청은 불온서적으로 낙인찍고 “어떤 언어로도 출판할 수 없다”고 했다. 로마교황청이 <수상록>을 300년간 금서(禁書)목록에 올렸던 것은 “도덕적 타락에 관용을 베풀었다”는 단 한 가지 이유에서였다. 루소의 <에밀>은 프랑스 혁명의 사상적 기반을 제공한 책으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프랑스 정부는 <에밀>이 출간되자 판매금지 처분을 내리고 루소를 구속했다. 루소가 <에밀>에서 기독교 교리를 거부하고 기존 교육체제를 비판했다는 게 구속사유였다. 옛 소련 작가 보리스 파스테르나크의 <닥터 지바고>는 사회주의 혁명 이데올로기를 부정했다는 이유로 출판허가를 받지 못했다. 이탈리아에서 처음 출간된 <닥터 지바고>로 파스테르나크는 1958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됐지만 소련 당국의 압력으로 수상을 포기해야 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나쁜 권력자’들은 금서목록을 작성, 시민의 눈을 가리려 했다. 하지만 금서는 시민들의 잠든 의식을 흔들어 깨워 나쁜 권력자를 위협하는 ‘사상의 무기’가 되곤 했다. 한국의 군사정권 시절이 그랬다. 박정희 정권은 리영희의 <전환시대의 논리> <8억인과의 대화>, 마르쿠제의 <이성과 혁명>, 박현채의 <민족경제론> 등 50여권을 금서로 분류했다. 전두환·노태우 정권 시절에는 마르크스의 <자본론>, 염홍철의 <제3세계와 종속이론>, 조성오의 <철학에세이> 등 200여권이 불온서적으로 낙인찍혔다. 대부분 1970~80년대 대학생들에게 ‘사상의 은사’가 됐던 시대의 명저들이다. 금서는 한마디로 시대와 불화하는 책이자 당대의 금기에 도전하는 책이다.

최근 검찰이 전자도서관 ‘노동자의책’을 운영하는 이진영 대표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하면서 130권의 책을 불온서적으로 간주했다. 검찰판 ‘2017년 불온서적 목록’에는 파울로 프레일리의 <페다고지>, 존 리드의 <세계를 뒤흔든 10일>, 마르크스의 <독일 이데올로기> 등이 포함돼 있다. 모두 국가의 안보와 상관이 없는, 권장도서 목록에 올라야 할 고전들이다. 당대의 금기와도 상관없고, 그 때문에 전혀 긴장감도 없는 책들이다. 19세기 검찰이 21세기 시민을 이런 식으로 통제하겠다는 발상이 놀랍다.

박구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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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국가보안법과 함께 대표적 반인권 악법으로 지목돼온 보안관찰법이 다시 도마에 올랐다. 경찰이 보안관찰법 위반 혐의로 한상렬 목사를 긴급체포하면서다. 한 목사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 수감됐다가 지난해 8월 만기 출소한 이후 보안관찰법에 따른 신고를 거부해왔다. 사상범을 출소 후에도 감시할 수 있도록 한 보안관찰법은 헌법이 보장하는 양심과 사상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보안관찰법은 박정희 정권 시절 제정된 사회안전법이 1989년 개정되면서 신설됐다. 국가보안법 등으로 선고받은 형기의 합계가 3년 이상인 사람을 대상으로 한다. 보안관찰처분 대상자는 출소 후 7일 안에 가족 및 교우관계, 직업, 재산상황, 학력·경력, 종교·가입 단체 등을 경찰에 신고해야 한다. 법무부 장관은 이들 대상자 중 재범 가능성이 있는 사람을 ‘피보안관찰자’로 결정한다. 피보안관찰자가 되면 3개월마다 활동사항을 보고해야 하고, 이사를 가거나 10일 이상 여행할 때도 신고해야 한다. ‘보이지 않는 족쇄’를 차고 ‘창살 없는 감옥’에서 사는 것이나 매한가지다. 천주교인권위원회에 따르면 지난 5월 현재 보안관찰처분 대상자는 2000여명, 피보안관찰자는 40여명에 이른다.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 기소 및 무죄 판결 통계치(2013) (출처 : 경향DB)


보안관찰 제도의 가장 큰 문제는 양심·사상·표현의 자유를 침해함으로써 인간의 존엄성을 위협한다는 데 있다. 그러나 이뿐이 아니다. 합리적 이유 없이 다른 출소자들과 차별한다는 점에서 평등권을, 법무장관이 결정한다는 점에서 ‘법관에 의해 재판받을 권리’를 침해한다. 이미 처벌받은 사람에게 재범 위험을 이유로 불이익을 가하는 만큼 이중처벌 금지원칙에 위배되며, 처분의 무제한 연장이 가능해 죄형법정주의에도 어긋난다. 광범위한 인권침해를 야기할 수밖에 없는 위헌적 악법이다. 세계 인권단체들이 비판하고 국가인권위원회가 폐지를 권고한 까닭도 여기에 있다.

독재정권의 유산인 보안관찰 제도가 아직도 살아남아 시민 감시 수단으로 악용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국민의 기본권 수호를 사명으로 하는 헌법재판소가 제동을 걸어야 한다. 헌재는 그러나 1997년 합헌 결정을 내린 데 이어 지난 5월에도 헌법소원을 각하했다. 헌재 출범 자체가 민주화운동의 성과임을 생각할 때 유감스러운 일이다. 국회 역시 보안관찰법의 문제를 모르지 않음에도 방치해온 책임이 무겁다. 보안관찰법은 마땅히 폐지돼야 한다. 폐지 이전에라도 법 적용에 신중을 기해야 함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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