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연금개혁안의 전면 재검토를 지시하면서 연금 논의가 사실상 원점으로 되돌아갔다. 보건복지부가 보고한 방안에서 “보험료 인상 부분이 제일 국민들의 눈높이에 맞지 않다”는 게 대통령의 생각이란다.

당황스럽다. 국민연금법에 따른 재정계산은 소득대체율 40%를 기준으로 이루어진다. 이 대체율에서도 상당한 수준의 보험료율 인상이 요청되고, 대체율을 상향하겠다는 대통령의 공약까지 감안하면 더더욱 보험료율 인상이 불가피한데 이를 되돌려 보내다니. 대통령의 눈높이에 맞는 연금 개혁은 무엇일까?

대통령의 반려 소식을 듣는 순간 2015년 연금 논의가 떠올랐다.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와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을 40%에서 50%로 인상하는 원칙에 합의했다. 대체율 인상이 내키지 않았으나 새누리당 지도부가 공무원연금 개혁을 이끌기 위해 야당의 요구를 수용한 결과다. 막판에 청와대 반대로 입법화되지는 않았지만 성사 직전까지 갔던 실무합의안이다. 작년 대선 토론에서도 문재인 후보는 소득대체율 50%를 거듭 주장하며 ‘2015년 국회의 사회적 대화 기구에서 합의했던 내용’임을 강조했다.

남은 과제는 보험료율.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쪽에서 ‘대체율 50%, 보험료율 10%’ 방안이 흘러나왔다. 사람들은 보험료율 인상 폭이 적어 의아해했지만, 보험료율을 현재 9%에서 1%포인트만 올려도 기금소진연도가 2060년임에는 변화가 없기에 선택 가능한 조합이라는 설명이 뒤따랐다.

국민연금에서 재정수지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는 대체율 10%에 부응하는 필요보험료율이 약 4~6%이다. 대체율 50%를 제안하려면 보험료율은 최소 4%포인트 이상 올려야 한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어떻게 ‘1%의 마법’이 나올 수 있었을까?

국민연금은 가입자가 전반전에는 보험료를 내기만 하고 후반전에는 급여를 받기만 하는 제도이다. 아동수당, 기초연금처럼 현세대가 세금을 내고 동시에 수당을 받는 일반 복지제도와 달리 국민연금에선 유독 재정구조에 시차가 존재한다. 보험료율·대체율이 한묶음으로 결정되어도 전반전에는 보험료율이, 후반전에는 대체율이 효력을 발휘한다. 그래서 2015년 합의안대로 가면 1% 보험료율 인상은 바로 재정에 영향을 미치지만 10% 대체율 인상은 가입자가 은퇴하는 30~40년 후에야 본격적으로 현실화된다. 2015년 기준에서 2060년까지는 주로 보험료율 인상이 작동하는 시기이다. 1%만 올려도 소진연도에 변화가 생기지 않는 이유이다.

문제는 소진 이후이다. 이때는 수급자가 늘어나고 50% 대체율로 연금을 지급해야 하기에 재정 지출은 더 커지고 그만큼 미래세대의 짐도 무거워진다. 결국 마법이 아니었다. 재정구조의 시차가 낳은 착시일 뿐이다. 하마터면 전반전만 보고 재정이 괜찮다고 판단해 국가대사를 결정할 뻔했다.

혹시 대통령은 2015년의 마법을 떠올리고 있을까? 그래서 보험료율을 조금만 올리고도 대체율 50%가 가능한데 더 높은 보험료율 수치를 들고 온 복지부가 못마땅했을까? 지난주 김연명 청와대 사회수석의 임명은 이런 추측에 힘을 보탠다. 김 수석은 2015년 당시 문재인·김무성 합의를 이끈 실무기구의 공동위원장으로서 ‘50%·10%’ 방안의 논리를 제공했던 당사자이다. 

국민연금 개혁에서 재정 시차에 대한 이해는 무척 중요하다. 보험료율과 대체율이 각각 효과를 낳는 시기도, 연금액을 결정하고 실제 지급하는 세대도 다르기에 긴 시야에서 세대를 관통하는 인식이 요청된다. 늘 우리 세대 눈높이에 머물러 있지 않은지 되돌아봐야 하는 까닭이다.

종종 등장하는, 설령 기금이 소진돼도 부과방식으로 전환하면 된다는 주장 역시 현세대 편향을 보여준다. 적립금 없이 당해 보험료로 연금 지출을 충당하는 부과방식은 전환 시기 앞뒤 세대의 재정 몫이 비슷해야 가능하다. 부과방식의 모범으로 소개되는 독일과 스웨덴의 경우 현재 우리와 비슷한 대체율에서도 대략 소득의 19%를 보험료로 납부한다. 서구에서 세대 간 연대의 열매인 부과 방식이 한국에선 현세대의 책임 회피 논리로 활용되니 말문이 막힌다.

대통령은 배려와 공평을 중시하는 분이다. 복지부안을 반려한 배경에는 서민 가계를 걱정하는 선의가 바탕에 있다 믿는다. 그 마음이 현세대 국민뿐만 아니라 미래 아이들까지 품기를 바란다. 초고령시대를 맞이하여 연금 개혁은 미래 세대가 수용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드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왕 원점에서 다시 시작할 모양새이니, 대통령도 2015년의 기억을 넘어서야 한다. 국민연금 재정구조에 대한 재인식이 절실하다.

<오건호 |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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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소득층이 고소득층보다 유리.” 최근 국민연금공단이 시민 홍보자료에 담은 문구이다. 사회복지학계에서 국민연금을 소득재분배 제도라고 평가하는 근거이기도 하다. 정말 그럴까? 본격적인 연금개혁 논의를 앞두고 꼭 점검해야 할 주제이다.

우선, 연금공단의 이야기는 맞다. 보통 국민연금은 소득대체율이 40%라고 소개되지만, 이는 평균소득자 기준이고 계층별로는 누진적이다. 40년을 가입하면 하한소득자(월 30만원)는 자신의 소득 대비 100%를, 상한소득자(월 468만원)는 30%를 받는다.

국민연금의 독특한 급여산식 덕택이다. 국민연금액은 자신의 소득에 연동된 비례급여가 절반, 전체 가입자의 평균소득에 연동된 균등급여가 절반으로 구성된다. 대부분 선진국에선 대체율이 소득에 완전 비례해 계층별로 동일하지만, 우리나라 국민연금은 균등급여로 인해 누진구조를 지닌다. 저소득층일수록 유리한 재분배제도라고 말할 만하다.

이번엔 상반된 이야기. “고소득자일수록 혜택이 크다.” 어제 정의당 윤소하 의원이 국정감사 자료로 밝힌 국민연금의 특징이다. 국민연금연구원에 의뢰한 분석을 보면, 가입자가 납부한 보험료 총액과 받을 연금 총액의 차이, 즉 순혜택은 고소득자일수록 많다. 예를 들어 가입기간이 20년으로 같더라도 100만원 소득자는 6779만원, 국민연금 상한소득자는 8887만원을 더 받는다. 여기에 노동시장의 상황을 감안해 소득별 가입기간을 다르게 가정하면 격차는 훨씬 늘어난다. 10년 가입한 100만원 소득자는 순혜택이 약 3000만원, 40년 가입한 상한소득자는 거의 1억9000만원에 이른다. 국민연금으로 인해 두 사람의 경제적 처지가 노후에 더 벌어진다.

사실 국민연금에서 역진성 문제는 이전부터 제기돼 왔다. 8월에는 한 시민단체가 내놓은 분석자료가 언론에 보도되자 연금공단은 해명자료를 내고 “국민연금 제도에 대한 몰이해”라고 반박했다. 고소득층의 순혜택이 많을 수는 있지만 균등급여가 존재하므로 ‘역진적’이라고 볼 수는 없다는 설명이다.

동문서답이다. 급여산식의 누진성을 부정하는 지적이 아니다. 급여 변수만을 보면 국민연금은 분명 재분배 성격을 지닌다. 그런데 급여에 기여액을 결합해서 계산하면 소득이 높을수록 순혜택이 많다는 사실이 확인된다. 연금공단은 급여산식의 구조만을 다루고, 다른 쪽은 급여에 보험료까지 조합해 순혜택을 분석한 게 차이이다. 둘 다 객관적 진단이라면, 주목해야 할 건 상반된 평가가 나오게 된 원인이다. 정작 연금공단이 시민들에게 알렸어야 할 내용이다.

낮은 보험료 때문이다. 국민연금은 확정급여형 제도이다. 은퇴 후 받을 연금액이 보험료 수준과 무관하게 정해진다. 아무리 급여산식에 균등급여가 작동하더라도 보험료 수준이 낮으면, 보험료는 완전소득비례이기에 고소득자일수록 납부하는 절대액에서 부담이 줄어들고, 그 결과 순혜택이 커진다. 이에 보험료가 올라야 재정안정화뿐만 아니라 계층 간 순혜택의 격차도 줄어들 수 있다. 

국민연금은 OECD 회원국 연금에서 예외적으로 수지불균형을 지니고 있는 제도이다. 연금수리적으로 40% 대체율에 부응하는 보험료율은 약 16~18%이지만 현재 9%이다. 서구의 나라들이 대부분 공적연금에서 수지균형을 이룬 반면 한국은 이 나라들과 비교해 수급개시연령이 빠르고 수명 연장으로 수급기간마저 더 긴데도 보험료는 급여에 한참 미치지 못한다.

그래서 일부에서 ‘더 내고 더 받자’는 의견도 나오고 있 다. 지난번 국민연금제도발전위원회에서 나온 ‘11%/45%’ 방안은 어떨까? 보험료 수준이 관건이다. 여기서 보험료율 인상 2%포인트는 대체율 인상 5%포인트를 충당하는 재정이다. 여전히 기존 40%체제가 지닌 수지불균형을 그대로 방치한다. 현세대 노동시장 중심부 가입자의 이해에 치우친 제안이다.

재분배 제도로 설계되었지만 현실에선 고소득층일수록 유리한 ‘국민연금의 역설’, 어찌해야 할까? 이론적으론 보험료율의 대폭 인상이 해법이다. 하지만 서민 가계가 힘든 상황에서 사실상 실행하기 어렵다. 현행 순혜택 구조에서 대체율 인상이 적절한지, 그에 따른 추가 보험료율 인상을 감당할 수 있을지 냉엄하게 봐야 하는 이유이다.

어려울수록 정공법으로 가자. ‘있는 그대로’ 봐야 한다. 국민연금은 지금도 우리에게 최선을 다하고 있다. 더 벼랑으로 내모는 건 곤란하다. 시야를 넓혀야 한다. 연금개혁은 국민연금을 넘어서야 출구를 찾을 수 있다. 다행히 우리에겐 법정연금으로 기초연금, 퇴직연금이 있다. 연금 삼총사로 우리의 노후보장을 이야기하자.

<오건호 |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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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금개혁에 두 시각이 존재한다. 진보와 보수, 공보험과 사보험 쪽 이야기가 아니다. 친복지 진영에서 상충하는 두 시각이다. 노무현 정부 연금개혁에서 시작된 둘의 차이는 깊어져왔고, 국민연금제도발전위원회가 발표한 복수의 개편안 역시 두 시각을 반영한다.

한쪽은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을 45%로 올리자고 주장한다. 민주노총, 참여연대 등이 모인 공적연금강화행동과 여기와 교류하는 사회복지학자들이 핵심 주체이다. 우리 사회 친복지세력의 전통적 시각으로 볼 수 있다. 다른 쪽은 현행 40%를 유지하자고 말한다. 연금재정의 지속 가능성이나 노동시장의 불안정성을 주목하는 전문가들이 주로 내놓는 비판적 시각이다.

사실 대체율 5%가 연금액에 주는 영향은 크지 않다. 노후보장, 노후빈곤을 가르는 선도 아니다. 그럼에도 연금개혁 노선이 갈리는 분기점이다. 국민연금을 보는 시각이 달라서다. 진단이 엇갈리니 개혁 방향도 상이하다.

양대 노총 등 시민사회단체들로 구성된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 관계자들이 지난달 29일 서울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국민연금 급여인상을 목표로 하는 사회적 논의기구 구성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김영민 기자

전통적 시각은 국민연금의 재분배 성격을 강조한다. 국민연금 급여산식은 자신의 소득과 연동된 비례급여가 절반, 전체 가입자의 평균소득과 연동된 균등급여가 절반씩 구성된다. 보통 국민연금 대체율이 평균소득자를 기준으로 40%라고 소개되지만, 이 균등급여 덕택에 실제는 계층별로 누진구조를 지닌다.

비판적 시각은 오히려 국민연금의 역진성을 주목한다. 급여산식의 누진구조는 받는 연금만 살펴본 특성이고, 가입자가 내는 보험료와 함께 보면, 낸 것과 받는 것의 차이인 순이전액이 상위계층일수록 많다. 과거에 대체율이 높았을 때에는 더욱 그러했고, 현행 40% 체제에서도 순이전액이 대략 가입기간에 따라 증가하므로 노동시장 중심권일수록 혜택이 크다. 급여구조가 누진적이라도 현재 보험료가 낮아 발생하는 역설이다.

국민연금의 보장성을 설명하는 방식도 다르다. 전통적 시각은 평균치로 접근한다. 작년 국민연금 수령자의 평균 연금액이 37만원, 미래에 가입기간이 늘어도 55만원 정도로 최저생계비 근방에 머문다. 노후보장을 강화하기 위해선 대체율 인상이 필수적이라는 주장의 근거이다. 비판적 시각은 평균액이 주는 착시를 경계한다. 국민연금액은 소득과 가입기간에 따라 다르다. 미래 평균액이 55만원이라도 소득이 낮고 가입기간이 짧은 사람은 20만~30만원에 불과하고 상위소득자는 100만원도 넘는다. 한국의 노동시장 격차 구조에서 대체율 인상이 하위계층에 그리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비판이다. 노후소득에서 기초연금 비중을 높이자고 제안하는 이유이다.

세대 간 형평성에선 더욱 엇갈린다. 전통적 시각은 현세대는 부모를 부양하면서 동시에 자신의 노후까지 준비하는 이중부담 처지에 있으므로 국민연금의 보험료 부족분을 후세대에 의지하는 건 불공평하지 않고 오히려 세대 간 연대라고 말한다. 또한 미래에 기금이 소진되더라도 부과방식으로 전환하면 지급될 수 있고 후세대의 보험료 인상폭을 줄이기 위해 국고도 투입할 수 있다. 너무 세대 간 갈등을 부추기지 말라는 충고이다.

비판적 시각에선 후세대의 과도한 부담을 걱정한다. 공적연금 논의에서 개별적인 사적 부양을 끌어들이는 게 적절한지 의문이고, 설령 이중부담을 이야기하더라도 어느새 국민연금 역사가 30년이고 노인 10명 중 4명이 국민연금을 받는 상황에서도 우리가 나중에 수령할 연금에 필요한 보험료의 절반만 내는 건 공평하지 않다고 판단한다. 굳이 중복부담을 따지면 후세대는 점점 늘어날 기초연금과 노인 의료비, 앞세대의 국민연금 보험료 부족분과 자신을 위한 연금보험료 등 짐이 훨씬 무겁다고 항변할 수 있다. 앞으로 노후부양비가 높아질 수밖에 없다면 우리가 의사결정할 수 있는 국민연금에서는 가능한 책임을 다하자는 제안이다. 또한 미래 국고 지원도 계층별 연금액 격차를 지닌 국민연금이 아니라 노인에게 같은 금액을 지급하는 기초연금으로 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연금 대안에서도 강조점이 다르다. 전통적 시각은 장수시대에 사연금의 공세에 맞서려면 국민연금이 튼튼해야 하고, 중간계층이 국민연금으로 노후를 설계할 때 복지국가를 향한 정치동맹도 가능하다고 본다. 비판적 시각은 공적연금의 시야를 국민연금에서 기초연금, 퇴직연금으로 넓힌다. 기초연금을 더 강화하고, 퇴직연금은 연금 형태로 발전시키고 나아가 관리 주체를 공단으로 바꾸면 공적연금으로 재편할 수도 있다는 구상이다. 물론 다층연금체계에서도 복지국가를 위한 정치동맹은 열려 있다고 기대한다. 서구식 전통 경로와 다른 ‘한국형 연금모델’이다.

다음주부터 정부가 지역별 연금토론회를 시작한다. 결국 시민들이 결정할 몫이다. 연금개혁의 두 시각, 당신은 어느 쪽인가?

<오건호 |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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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레이시아 슈퍼리그. 말레이시아 프로축구리그의 이름입니다. 2017년 통계를 보면 총관중이 87만2108명이었습니다. 경기당 평균 6607명이 관람한 셈이죠. 2014년부터 우승을 휩쓸어온 조호르 다룰 탁짐(JDT)의 수치를 보면 작년 총관중이 18만7557명으로 경기당 1만7051명의 관중을 불러모았습니다. 비슷한 팀이 한국에도 있습니다. FC서울로 총관중 수 31만61명, 경기당 평균 1만6319명이었죠. 흥행이 비슷하다 싶지만 속사정은 너무 다릅니다.

서울 인구는 990만명, 수도권까지 합치면 2500만명입니다. JDT의 근거지 조호르바루 인구는 160만명, 조호르주는 300만명 정도입니다. 광역인구를 비교해 보면 서울이 8배 큰 셈이죠. 한국과 말레이시아 축구 열기가 비슷하다면 서울 평균 관중 수가 지금의 8배여야 맞습니다. 즉 13만명이 넘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단순한 계산이지만 한국 축구 열기가 그다지 높지 않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반대로 말레이시아의 축구 열기를 상상해 볼 수 있죠. 한국대표팀이 말레이시아에 진 것이 놀랍지만 예상할 수 있었던 미래가 온 셈이죠. 

사실 텅 빈 축구장과 꽉 찬 골프장을 보면 누구나 느낄 수 있는 점입니다. 축구를 하지 않는 나라에서 축구 관중 수가 급감하는 것이 이상할 게 하나 없죠. 오히려 이상한 것은 축구 열기입니다. 월드컵 때만 되면 광장이 들어차고 ‘치맥’이 동이 납니다. 평소에 축구에 전혀 관심 없고, 심지어 규칙도 모르는 이조차 온몸을 빨갛게 물들이고 소리를 지릅니다. 축구에 대한 애정은 이미 식었으니 그 열기의 뿌리는 아마도 축구는 아닐 테죠.

이는 민족주의입니다. 우리는 하나라는 동질감, 다른 이들보다 뛰어나다는 우월감을 근간으로 하는 민족주의가 그 뿌리입니다. 일제 치하에서는 긍정적 에너지였을지 모르지만 21세기 한국에서는 심각한 문제입니다.

민족주의는 우리가 특별하다는 환상을 만들어주는 증거를 필요로 합니다. 양궁, 태권도, 한글, 김치, 첨성대, 직지심체요절, 삼성. 세계 최고, 동양 최고라는 자부심에 감격합니다. 사실 세계 어디를 가도 자랑스러운 유물과 전통 없는 나라는 없죠. 다들 최고라고 생각합니다. 즉 아무도 최고는 아닌 셈입니다. 하지만 객관적 사실은 중요치 않죠. 직지심체요절이 세계 최고인 것만 자랑스러워할 뿐 그 배경인 고려말 불교의 망국적 행태는 논하지 않습니다. 당시 구시대의 유물이었던 직지심체요절과는 반대로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는 유럽 전체의 사회적, 정치적 변혁을 일으켰죠. 하지만 ‘우리가 더 빨랐다’는 데에만 만족해할 뿐입니다.

민족주의는 남을 비하해서 우월감을 충족시켜주기도 합니다. 똑같은 동포라도 미국에서 오면 교포고, 중국에서 오면 조선족이 됩니다. 동남아에서 온 노동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백인이 아니면 누구라도 낮게 보죠. 심지어 미국인도 흑인은 ‘깜둥이’라고 비하해 부릅니다. 특히 이주노동자들에게 우리는 무자비합니다. 선장은 선원을 바다에 빠뜨리고, 농장주는 노동자 가슴팍에 니킥을 날립니다. 성추행도 다반사고, 다치면 버려집니다. 휴일·휴식도 제때 보장하지 않고 임금체불도 흔하죠. 심지어 출입국관리사무소 등 권력기관에 의한 폭행과 불법감금도 심심치 않게 일어납니다. 가게에서 나가라고 고함치기도 하고, ‘쟤들은 뭐야’라는 빈정거림은 너무나 일상적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특정 집단을 향한 공공연한 증오발언·폭행 등 이른바 혐오범죄를 규제할 법조차 없습니다. 상식과 인권의 차원은 물론 실질적 이유에서도 이래서는 안됩니다. 2013년 기준 외국인 노동자는 25만여명. 매해 2만건이 넘는 국제결혼으로 2017년 전체 혼인 중 다문화 혼인의 비중은 7.7%. 다문화 학생은 2017년 10만명을 돌파해 5년 사이 2배 증가. 이런 수치만 보더라도 한국은 이민자 없이는 지탱할 수 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 최근에 논란이 되고 있는 국민연금 고갈도 마찬가지죠. 인구 고령화와 출산율 감소가 문제의 핵심입니다. 근본적 해결책은 젊은 노동력의 증가이고, 여기에 이민 문호 확대 외에는 답이 없습니다.

이민 확대, 이민자 보호, 전반적 노동권 확대 등 정부가 할 일이 산적합니다. 게다가 민족주의적 반대와 두려움과도 다퉈야 할 겁니다. 정책을 마련하고 사회 인식을 바꾸는 노력에도 공을 들여야 하죠. 비정부기관의 활동도 전폭적으로 지지해야 합니다. 시간이 없습니다. 국민연금 위기 같은 근본적 위기가 폭발할 한국의 미래는 이미 문 앞에 와있으니까요.

<남태현 미국 솔즈베리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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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 재정추계위원회와 제도발전위원회가 제4차 국민연금 장기재정 추계결과와 제도개선안을 발표했다. 국민연금 제도가 변화 없이 현행대로 유지될 경우 2042년에 적자로 돌아서고, 저출산·고령화의 여파로 적립기금이 당초 예상됐던 2060년보다 3년 빠른 2057년에 소진되는 것으로 추계됐다. 연금고갈을 막기 위해 내놓은 개편안은 두 가지로, 첫번째는 2028년까지 40%로 낮아질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을 올해부터 45%로 고정시키고, 현재 9%인 보험료율을 내년부터 11%로 올리는 방안이다. 두번째 방안은 보험료율을 2029년까지 13.5%까지 올리고 연금을 받기 시작하는 나이를 2043년까지 67세로 높이는 게 골자다. 어느 쪽도 가입자들의 부담이 커진다. 세대 간 이해도 엇갈린다.   

국민연금은 1988년 도입 당시 보험료율(3%)은 낮고 연금은 후해 ‘적정 부담-적정 급여’ 체계로 전환해야 한다는 숙제를 안고 있었다. 그럼에도 보험료율을 1998년 9%로 인상한 이후로는 20년 동안 근본적인 개편이 이뤄지지 않았다. 워낙 인화성이 크다 보니 정부 개혁안의 국회 통과가 무산되거나 백지화되기 일쑤였다. 하지만 저출산·고령화로 고갈시점이 앞당겨지는 상황에서 문제를 덮어두면 미래세대의 짐만 무거워진다. 국민연금 개편은 피할 수 없는 과제다. 문재인 대통령이 “국민연금 개편은 노후소득 보장 확대라는 기본 원칙 속에서 논의될 것”이라고 했지만 재정안정과 노후소득 보장을 위해선 보험료율의 인상이 불가피하다.

연금 개편은 가입자들의 처지를 세심하게 배려해야 한다. 예컨대 정년이 60세인데 보험료를 65세까지 내도록 할 경우 직장 가입자들의 반발을 살 수밖에 없다. 제대로 된 개편을 위해서는 각계각층이 참여하는 공론화위원회를 구성해 충분한 숙의를 거칠 필요가 있다. 국민연금을 둘러싼 불신과 오해를 적극 해소하는 것도 정부가 할 일이다. 연금기금의 운용과정에서 비효율을 제거하고 수익률을 높이는 방안을 찾아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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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검진을 받은 후 ‘아무 이상 없습니다’라는 말처럼 반가울 때가 없다. 올해가 국민연금 재정상태를 건강검진하는 해이다. 결과는 ‘이상 없습니다’가 아닌 수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네 차례의 건강검진이 있었는데 진보정부이건 보수정부이건 결론은 항상 똑같았다. 기금이 고갈되니 보험료 더 내고 연금 덜 받는 수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품위 있는 노후생활을 위한 최소한의 연금을 보장하겠다는 말은 나온 적이 없다. 사정이 이러니 각자 알아서 노후를 준비할 테니 정부는 손 떼라는 국민연금 폐지론까지 나온다. 

‘기금고갈’이라는 한 단어가 국민들의 뇌리에 너무 깊이 박혀 있다. 정부가 뭘 잘못해서 기금이 고갈되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국민연금은 처음부터 기금고갈을 전제로 설계되었다. 시기는 조정할 수 있지만 보험료 인상을 통해 기금고갈을 막을 수 없음을 전문가들은 다 알고 있다. 한때 세계은행을 중심으로 기금고갈을 원천적으로 막는 완전적립 방식의 연금제도가 대안으로 유행한 적이 있으나 이미 흘러간 옛 노래가 되었다.

2057년 기금고갈은 단순한 계산의 결과이지 그렇게 되기 어렵다. 2030년 후반에 GDP의 50%에 육박하는 대규모 기금이 국민연금에 적립된다. 기금이 고갈된다는 것은 주식, 채권, 부동산 등에 투자되어 있던 막대한 자산(2013년 기준 약 2500조원)을 팔아 20년 만에 현금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불가능한 얘기다. 국민연금이 보유한 막대한 금융자산을 팔면 주식·채권시장은 혼란의 도가니로 빠져들게 된다. 기금을 고갈시킬 수가 없다. 어떻게 하든 자산의 유동화에 따른 혼란을 막기 위해 기금고갈 시점을 최대한 늦출 수밖에 없다.  

기금이 고갈돼도 연금은 받을 수 있다. 연금기금을 많이 쌓아놓은 나라는 일본, 스웨덴, 미국, 한국 등 5개국 정도이다. 이 국가들도 연금 지급에 필요한 금액의 일부만 적립하지 필요금액 100%를 적립하지 않고 있다. 미국도 2030년대 중후반에 기금이 고갈된다. 대부분의 국가는 아예 기금 없이 필요한 지출을 매월 보험료와 세금으로 걷어서 충당한다. 독일은 1개월치 혹은 2개월치 적립금만 갖고 연금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노후소득보장에 대한 철학을 먼저 정립해야 한다. 국민연금은 국민들에게 최소한의 품위 있는 노후생활을 보장하기 위해 만든 제도이다. 역대 정부는 연금의 목적은 망각하고 기금고갈 시점을 연장하는 것을 개혁의 이름으로 포장하였다. 1998년과 2007년 국민연금 개혁으로 기금고갈 시점이 2030년 초반에서 2060년으로 30년 가까이 연장되었다. 하지만 국민연금의 신뢰도가 높아진 것이 아니라 ‘용돈연금’에 대한 불신만 늘어난 것이 역사적 경험이다.

기금고갈론을 벗어나 연금의 철학을 세우려면 퇴직연금, 개인연금 등 여러 노후소득보장제도 중에서 국민연금과 기초연금이 담당해야 할 적정 보장수준에 대한 정부 차원의 가이드라인이 선행되어야 한다. 노후생활에 필요한 금액이 먼저 합의되고 각 제도의 몫을 정해야 한다. 국민연금의 적정 수준을 정하지 않으면 더 내고 덜 받는 과거 정부의 기금안정화 정책만 반복된다. 기금고갈에 따른 노인부양비용을 세대 간에 어느 정도 부담해야 할지도 국민연금의 적정 수준이 먼저 정해져야 합리적 논의를 할 수 있다.

5년마다 하고 있는 국민연금 재정 재계산 제도도 바꿀 필요가 있다. 재정 재계산 제도하에서는 재정안정화 대책만 나오게 된다.

전체 노후소득보장제도에 대한 재설계와 국민연금의 역할을 적극적으로 설정하기 어렵다. 행정부는 각 제도의 재정상태만 진단한 보고서를 국회에 제출하고 개인연금, 퇴직연금 등 노후소득보장제도 전체의 개혁 방향은 사회적 이해관계자가 참여하되 국회가 주도하는 대타협 방식으로 전환하자. 2015년 국회 주도하에 공무원연금 개혁 대타협이라는 비교적 성공한 경험도 있다.

<김연명 중앙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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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국민연금 가입내역 안내서를 받았다. 향후 받게 될 ‘예상연금월액’은 현재가치 기준 71만4000원이었다. “작년보다 좀 올랐네!” 우리 부부는 마주 보고 씁쓸히 웃었다.

친절하게도, 안내서에는 노후에 필요한 적정생활비가 나와 있다. 본인 기준 월 145만원, 부부 기준 월 237만원이다. 당장 내년도 최저임금을 적용해보아도 시간당 7530원, 월 157만3770원이니, 우리집 예상연금월액은 이리 보나 저리 보나 어림없는 숫자인가 보다.

지켜야 할 전제와 조건도 있다. 현재 내고 있는 수준의 보험료를 만 60세까지 중단 없이 납부해야 하며 지급은 만 64세부터 받을 수 있다. 만약 공단에서 만들어준 시나리오대로 살아간다고 가정하면, 은퇴 후 벌이도 없고 연금도 없는 3년간을 어떻게든 버텨내야 하는 셈이다.

은퇴 후의 삶은 ‘제도권 안에서 살아온 사람’인지, ‘제도권 밖에서 살아온 사람’인지에 따라 크게 갈린다. 제도권에서 안정된 고용으로 정년까지 쭉 일하는 사람들은 평생을 보장받는다. 차근차근 연금을 붓고 은퇴 후에는 매달 적정연금을 받을 터이다. 마치 찬비, 찬바람을 막아주는 우산 또는 온실 속에서 보호받는 것과 같다.

한편 제도권 밖에 있는 사람들은 들판에서 살아가는 야인과 같다. 동일노동을 하더라도 기간제 계약으로 끊어서 한다. 소득이 있을 때는 연금을 붓다가 소득이 끊기면 붓지 못하는 일이 여러번 반복된다. 예상연금액이 적어질 수밖에 없다. 제도권 사람들이 육아휴직을 하거나 자기계발을 위해 안식년을 갈 때, 제도권 밖의 사람들은 그들의 대체인력이 되어 기간제 노동을 한다. 누군가 휴직할 때 누군가는 임시 취직하며, 누군가 일터로 복귀할 때 누군가는 그마저 실직한다. 이들에겐 정년도 없지만 은퇴도 없다. 제도권에서라면 진즉 은퇴했을 나이에 여전히 일자리를 찾아 불안정한 노동을 이어간다.

그나마 일자리를 얻을 수 있다면 다행이다. 지하철 실버택배를 하고 있는 74세 노인의 하루를 취재한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다. 하루 평균 두어 건을 한다. 그나마 공치는 날도 있다. 교통비는 ‘시니어패스’로 면제가 되지만 식비와 통신비는 자기부담이다. 다치기라도 하거나 배달물이 손상이라도 되면 낭패다. 한달 내내 일하고 버는 돈이 50만원을 넘기기 쉽지 않다. 노인이 적게 버는 것은 정당한가? 성별, 인종별, 연령별 임금격차에 관한 문제제기다. 몇 해 전 ‘동일임금의 날(Equal Pay Day)’ 벨기에 본부는 ‘만족(satisfaction)’이라는 풍자 영상을 만들었다. 영상 속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대개 60대에서 70대의 여자로서 드릴을 들고 콘크리트 벽에 못을 박거나 전기톱으로 목재를 자르거나 공사장에서 브레이커를 쥐고 아스팔트 깨는 일을 한다. 동일노동에 적은 임금을 받으면서도 이들은 연신 ‘만족’을 외친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제도권 안과 밖을 두고 발생하는 연금격차는 정당한가? 공무원연금은 해마다 적자를 세금으로 메우고 있다. 누가 낸 세금일까? 제도권 내에서 모은 돈으로 부족할 때에는 제도권 밖에서 거둔 돈을 서슴없이 끌어다 쓴다. 하지만 제도권 밖의 사람들은 정작 자신들의 부족한 노후연금에 대해서는 은퇴도 없는 저가의 노동으로 각자도생 메워나가고 있다.

최근 기간제교사 정규직화 여부를 둘러싸고 첨예한 갈등이 벌어졌었다. 거대한 진입장벽 앞에서 울부짖는 사람들이 보인다. 얼마전 신임 대법원장 청문회에선 재산신고액 8억6000만원을 놓고 ‘경제적 무능’이 아니냐는 질문이 있었다. 질문을 주고받은 그들은 과연 얼마짜리 예상연금월액을 통보받고 있는지 갑자기 몹시 궁금해진다.

직업을 목숨에 비유하자면 입각한 사람들 중엔 목숨이 두 개인 분들이 많다. 교수자리 하나는 확보해 두고서 다른 목숨을 하나 더 얻은 셈이다. 이런 분들이 한 개의 목숨조차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사람들의 불안감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왜요? 대체 뭐가 불안하다는 겁니까?”

‘선한 포도원 주인의 비유’라는 이야기가 있다. 포도원 주인은 이른 아침에 나가 한 데나리온의 품삯을 주기로 하고 일꾼을 구한다. 아홉시, 열두시… 오후 다섯시에도 나가 “아무도 우리에게 일을 주지 않아 이러고 있습니다”라며 할일 없이 있는 사람들을 일꾼으로 구한다. 날이 저물자 이른 아침에 온 사람에게도, 나중에 온 사람에게도 똑같이 한 데나리온의 품삯을 나눠준다. ‘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 우리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정당한 지분이 있다. 제도권 안에서도 밖에서도 차별 없는 동등한 권리와 품삯이 보장되어야 하고 우리 사회가 그런 합의를 이루는 날이 곧 오리라고, 나는 오늘도 과격한 꿈을 꾼다.

<김현정 | 서울특별시동부병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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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9일 건강보험 보장 강화 정책을 발표하자 논란이 뜨겁다. 초음파, 자기공명영상장치(MRI) 등 비싼 비급여 진료의 건강보험 적용에 환영의 목소리가 쏟아져 나온 반면, 30조원이 넘는 재원이 필요하다는 데 대해선 “세금 폭탄이 올 것”이라는 우려가 만만치 않았다.

의료비 부담이 컸던 시민들은 반겼다. ‘병원 치료는 곧 생활고’로 직결되던 악순환을 끊을 계기가 마련됐다고 기대했다. 자신을 백혈병 환자 가족이라고 소개한 한 누리꾼은 SNS에 “쌍수를 들고 환영한다”고 글을 올렸다. 그는 “지금 2개월째 입원 중인데 900만원가량 병원비가 나왔다. 월급에서 나가는 세금을 좀 더 내고 병원비를 조금이라도 낮출 수 있다면 무조건 찬성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2022년까지 30조6000억원의 재원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된다는 전망에 국민부담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많았다. 김모씨는 페이스북에서 “내가 고소득자는 아니지만 ‘유리지갑’이라 이미 목구멍까지 보험료를 내고 있다”며 “국민연금 사례에서 보듯이 제도 확대는 필연적으로 건강보험 재정을 메우는 원천을 대다수의 서민 지갑에서 찾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모씨는 “국민의료를 민간의료기관이 책임지고 있는데 공공의료 기관의 대폭 확대가 없다면 필요한 재정을 국민에게서 뽑아낼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20조원의 건강보험 적립금을 일단 활용한다고 하지만 쓰는 건 금방이다. 너무 장밋빛으로만 보는 것 같다”고 했다.

‘재원 조달’ 논쟁은 점점 커졌다. “많이 내더라도 제대로 받자” “돈을 더 내고 비싼 사보험을 안 들어도 되면 이득 아닌가”라는 반론도 나왔다. 장모씨는 “내 가족이 아파 치료할 돈이 없어 생계가 힘들어져도 그런 소리가 나올까? 국민이 생명을 잃으면 국가 손실이지 세금을 아낄 문제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국회의원 해외연수비, 군수비리 등 줄줄 새던 세금만 잡아도 될 것”이라고도 말했다.

다른 한편에선 “의료 서비스가 퇴보할 수 있다” “민간 의료기관 등이 해온 ‘의료 과잉’ 등을 먼저 없애는 게 선행돼야 한다”는 얘기도 나왔다.

박홍두 기자 phd@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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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부터 국정기획자문위원회가 ‘100대 국정과제’를 확정해갈 예정이다. 특히 문재인 대통령의 복지공약을 전향적으로 평가하기에 기대가 크다. 다만 계속 마음에 걸리는 주제가 국민연금이다. 문재인 정부의 국민연금 정책이 현세대 편향을 지닌다는 판단 때문이다.

국민연금은 다른 복지제도와 달리 ‘시차’를 지닌다. 만약 문재인 정부가 국민건강보험의 보장성을 늘리면 우리는 그 혜택을 누리면서 동시에 세금이나 건강보험료로 재정을 충당한다. 새로 도입될 아동수당도, 기초연금 30만원도 그렇다. 반면 국민연금은 내고 받는 시점이 다르다. 지금 국민연금 대체율을 올리는 의사결정을 하더라도 지출은 수십년 후에 이루어진다. 이렇게 시차를 지닌 제도이기에 국민연금에선 현세대의 재정 책임 인식이 중요하다.

문재인 대통령은 공약집에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인상’을 명시했고, 후보 TV토론에서도 대체율 40%를 50%로 올리겠다고 주장했다. 국정기획자문위원회 사회분과장도 오래전부터 이를 강하게 주창해 왔던 연금학자이다. 지난주엔 참여연대, 민주노총 등 300여개로 구성된 ‘공적연금강화 국민행동’이 기자회견을 열고 대체율 50%를 요구하며 정부 기조에 힘을 보탰다. 문재인 정부의 공약과 핵심 인사, 많은 시민단체까지 대체율 인상에 한목소리를 내는 모양새이다.

대체율 인상의 근거는 낮은 국민연금액이다. 불안한 노후를 생각하면 매력적인 제안이다. 하지만 연금은 급여와 보험료의 짝으로 존재한다. 아무리 급여를 올리고 싶어도 적합한 재정방안을 갖추지 못하면 부실 건축물로 전락한다. 현재 우리가 소득의 9%를 보험료로 내지만, 40% 대체율에 부응하는 수지균형 필요보험료율은 대략 14~16%이다. 현세대의 여러 어려움을 감안하더라도 부족한 보험료만큼이 미래로 넘어가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여기서 대체율을 더 올리면 이에 합당한 보험료율 논의가 가능할까? 결국 문재인 정부가 대체율 인상을 국정과제로 꺼내고도 임기 내내 실행하지 못하거나 공약 후퇴라는 비판 때문에 도로 주워 담지도 못하는 늪에 빠질까 걱정된다.

그 조짐은 지난 대선 토론에서 발견되었다. 대체율을 올리면 보험료율은 어떻게 할 것이냐는 유승민 후보의 끈질긴 질문에 문재인 후보는 사실상 답을 내놓지 못했다. 한 번 그랬다면 생중계 토론에서 답변이 미진했다 여기겠지만, 이어진 토론회의 거듭된 질문에도 답을 하지 못했다면 후보보다는 캠프의 연금 공약 자체가 타당했는지 물어야 한다. 간혹 출산율을 올리는 게 대안이라는 주장이 있으나 가입자가 내고 받을 몫을 사전에 확정하는 국민연금에서는 보험료와 급여의 수지 균형이 문제의 본질이다. 기금 수익을 강조하는 논리도 있지만, 국민연금기금이 무슨 신공을 가진 투자자도 아니고 그만큼 위험도 따르기에 공적연금에는 적합지 않은 제안이다.

사각지대 대책의 하나인 크레디트 확대 역시 균형 잡힌 인식이 요청된다. 지금 출산크레디트, 군복무크레디트 등을 늘리더라도 실제 지급은 은퇴할 때 이루어지므로 재정은 미래 세대가 감당한다. 국민연금기금의 공공투자도 결국은 국채 발행이다. 크레디트 확대가 필요하고, 공공투자 사업의 효과를 지지하지만, 재정 책임을 후일로 미루는 우리의 안이함도 되돌아봐야 한다.

공적인 노후소득보장을 단념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국민연금의 대체율 인상론에 얽매여 연금개혁 논의가 공전만 되풀이할까 우려스러워서 하는 말이다. 크레디트를 늘리고, 국민연금용 국채를 발행하는 만큼 우리 세대의 각성을 촉구하려는 취지이다.

국민연금의 현세대 편향을 직시하자. ‘국민연금은 세대 간 연대제도’라는 당위적 포장으로 안주할 일이 아니다. 현행 대체율도 감당하지 못하는 보험료율 상황에서 대체율 인상은 설득력이 약하다. 현재 노인의 빈곤 대응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하는 것도 한계이다. 연금의 시야를 기초연금, 퇴직연금을 포함한 다원체계로 넓혀가야 출구가 생길 수 있다. 현재 노인빈곤에도 대처하고 당해 세대의 재정 책임을 동반하는 기초연금을 더 올려 최저보장선을 확보하자. 법적 의무인 퇴직연금을 제2국민연금으로 전환하면 여기서도 공적연금 대체율이 20% 정도 상향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지금 온 힘을 쏟아야 할 주제는 국민연금 대체율 인상이 아니라 기초연금과 공공투자 재원을 위한 증세, 퇴직연금의 공적연금 전환을 위한 사회적 합의, 궁극적으로는 은퇴를 늦춰 연금 의존을 줄일 수 있는 노후의 재구성 등이다. 이 모두가 ‘지금 우리’가 풀어야 할 시대적 숙제이다. 연금의 지속가능성은 미래 아이들의 몫이 아니라 우리에게 달려 있다.

오건호 |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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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아그라’는 지난 한 주간 트위터상에서 가장 뜨거운 단어가 됐다. 최순실 국정농단 관련 키워드가 6주째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다. 트위터코리아가 빅데이터 분석업체 다음소프트와 함께 21일부터 27일까지 트위터상에서 가장 많이 언급된 키워드들 중 주목할 만한 단어를 분석해 29일 발표했다.

가장 많이 언급된 키워드는 ‘비아그라’였다. 청와대가 세금으로 비아그라와 미용 주사제 등을 대량 구입한 사실이 확인되면서 논란이 불거졌다. 당시 박근혜 대통령의 주치의였던 서창석 서울대병원장은 “수행원 고산병 때문에 비아그라를 구입했다”고 해명했지만, 청와대가 고산병 치료제를 별도로 구입한 사실도 드러나면서 논란이 지속됐다.

전국에서 190만명이 모인 26일 ‘촛불집회’에 대한 관심도 높았다. 트위터에서는 광화문광장에 모인 150만 인파의 촛불 파도타기,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는 의미로 시작된 1분 소등 퍼포먼스, 가수 양희은과 150만명의 ‘아침이슬’ 합창 장면 등이 주로 공유됐다. 촛불집회가 처음 시작된 9월27일부터 이달 26일까지 ‘최순실 게이트’ 관련 키워드는 약 1600만건에 달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22일 국무회의에 참석해 국무위원 전원 사퇴를 주장하면서 ‘국무회의’ 역시 핫 키워드가 됐다. 박 시장은 트위터를 통해 “무력감과 분노감으로 국무회의장을 박차고 나왔습니다”라며 “대통령의 즉각 하야를 주장하는 국민의 뜻을 분명 전했습니다”라고 전했다.

검찰이 삼성 미래전략실과 국민연금관리공단을 압수수색하면서 ‘국민연금’에 대한 언급량도 급증했다. 검찰은 국민연금이 손실을 감수하면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에 찬성하는 대가로 정권 및 최순실씨가 이익을 취했는지 여부를 들여다보고 있다.

‘후쿠시마’가 최순실 게이트와 무관한 키워드로는 유일하게 순위에 이름을 올렸다. 22일 새벽 후쿠시마 앞바다에서 규모 7.4의 강진이 일어났지만 큰 사고는 일어나지 않았다.

이효상 기자 hsl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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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공무원연금 개혁안의 국회 처리와 관련해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을 현행 40%에서 50%로 올리도록 합의문에 명기할 것인가를 놓고 여야가 대립했으나 타결의 방향으로 가닥이 잡히고 있다. 그동안 야당은 50%를 명기하자고 주장했고 여당과 청와대는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버텼으나, 모두 한발씩 양보해 향후 국회에 사회적 기구를 설치해 소득대체율 50% 등의 적정성 및 타당성을 검증키로 합의했다.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에 관한 논의는 2007년 국민연금법을 개정할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당시 장기적으로 국민연금 재정의 고갈을 막기 위해 보험료율은 9%에서 15%까지 장기간에 걸쳐 인상하고 급여수준은 40년 가입자의 경우 60%에서 50%로 낮추는 방안이 제안됐으나, 국회심의과정에서 보험료는 인상하지 않고 급여수준만 대폭 낮춰 2028년 소득대체율이 40%가 되도록 한 것이다.

소득대체율, 즉 퇴직 전 소득에 대비한 연금액의 비율을 40년 가입 시 60%에서 40%로 낮춘 것은 지나친 것으로 본다. 국민연금의 가입기간은 25세부터 시작해 65세까지 계속 가입해야 40년이 되는데 실제는 길어야 30년 정도 될 것이므로 퇴직 전 소득의 30%밖에 되지 않는 것이다. 더구나 보험료와 급여수준 산정의 기준이 되는 소득의 상한선(최고소득)이 약 400만원으로 제한돼 있어 그 이상의 소득은 반영되지 않기 때문에 본인의 실제 소득에 비해 연금액이 낮게 산정돼 고소득자라도 30년 가입 시 약 120만원밖에 안되므로 소득대체율은 너무 낮다. 이 수준으로는 노후 생계유지가 어렵다.

따라서 소득대체율은 50% 수준으로 인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러나 소득대체율을 10%포인트 올리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보험료를 인상해야 한다. 보험료를 인상하면 당장 가입자와 기업의 부담이 증가돼 가계와 기업 나아가 국민경제에 부담이 크지만, 적정수준의 소득을 보장해 노후생활을 안정시키는 문제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므로 이 문제에 관한 국민적 합의가 필요하다.

지금 현세대가 적정 수준으로 보험료를 올려 연금기금을 충분히 적립하고 잘 운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렇게 적립된 기금에서 노후에 연금을 받도록 하면 기금의 고갈 시점을 훨씬 늦출 수 있는 것이다. 만일 현세대가 지금 보험료를 더 부담하지 않으면 기금의 고갈 시기가 앞당겨져 나중에 후세대에게 지금보다 훨씬 높은 수준의 보험료를 부담시킬 수밖에 없다. 이는 후세대에게 지나치게 부양책임을 전가하는 것으로 결코 바람직하지 못하다. 따라서 노후생활 수준을 높이기 위해 현세대가 지금 보험료를 조금 더 부담할 것인지, 후세대에게 어느 정도 부양책임을 전가할 것인지 하는 문제에 대해 현세대의 결단이 필요한 것이다. 보험료는 일시에 올리기가 사실상 어려우므로 장기간에 걸쳐 조금씩 올려가는 지혜가 필요하다.

국회 공무원연금 개혁 특위 새누리당 간사인 조원진 의원(왼쪽)이 국회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공무원연금 개혁 실무기구 국민연금 개혁 관련 합의문’을 들어 보이며 그간 협상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_ 연합뉴스


국민연금은 모든 국민이 평소 성실히 보험료를 내고 노인이 되면 연금을 받도록 해 모든 국민의 평생을 관리하는 제도이다. 하지만 일반 국민들이 내용을 정확히 이해하는 것은 쉽지 않다. 따라서 정부는 국민들에게 이러한 실상을 소상히 알리고 동의를 얻도록 노력해야 한다. 정치권에서는 보험료 인상을 거론하면 정치적으로 표를 잃게 되지 않을까 우려해 보험료 인상에 소극적인 면이 있지만, 단기적인 이해관계를 떠나 국가 백년대계를 내다보는 차원에서 결단이 필요하다. 앞으로 국회에 구성될 사회적 기구에서 소득대체율을 비롯한 국민연금 체제의 장기적 개편 방안에 대한 논의가 심도 있고 진지하게 이루어지기 바란다.


인경석 | 전 국민연금공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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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에서 공무원연금 개혁안 처리가 무산된 책임을 놓고 여야, 청와대가 제 논에 물대기식 공방을 벌이고 있다. 새누리당은 ‘국민연금 강화’를 강제적 규정으로 담으려 한 야당의 몽니 때문이라 하고, 새정치민주연합은 ‘사회적 대타협’을 청와대의 말 한마디에 원점으로 돌린 여당의 무책임을 따진다. 청와대는 또다시 공무원연금 개혁과 국민연금을 연계시킨 여야 합의안 자체를 문제 삼고 있다. 저마다 ‘남 탓’만 해대는 꼴이다.

공무원연금 개혁안 처리가 무산된 것은 새누리당과 청와대의 갈등, 친박 의원들의 반발이 결정적 구실을 했다. 친박 의원들은 의원총회에서 ‘국민연금 명목소득 대체율 50%’ 명시를 문제 삼았으나, 속셈은 다른 데 있어 보인다. 청와대의 기대보다 미흡한 공무원연금 개혁안을 좌초시키려 한 것이다. 유승민 원내대표조차 청와대가 ‘소득대체율 50%’ 협상을 알았으면서도 뒤늦게 딴지를 걸고 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정치권과 정부 대표, 이해당사자, 전문가들이 어렵사리 마련한 ‘사회적 대타협’을 청와대가 개입하고, 그 조종을 받은 친박 의원들이 파탄시키려 든 것은 부적절하고 무책임한 처사다.

애초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와 새정치연합 문재인 대표가 ‘국민연금’에 접근한 방식에도 문제가 있다. 두 대표는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을 40%에서 50%로 올리는 방안을 논의하는 ‘사회적 기구’를 국회에 설치하기로 합의했다. 국민적 동의 절차를 충분히 거치지 않은 상태에서 ‘국민연금’ 인상의 구체적 수치까지 적시함으로써 논란을 잉태했다. 공무원연금 개혁의 참뜻이 공적연금 기반 강화로 이어져야 한다는 대의에는 국민도 공감한다. 하지만 국민연금 인상을 위해 소요되는 재원 대책 없이 이를 제시함으로써 ‘보험료 폭탄’ 시비를 자초했다. ‘노후보장’ ‘사각지대 해소’ 같은 명분은 실종되고 국민정서법상 휘발성이 강한 ‘보험료 폭등’ ‘미래 세대에 부담 떠넘기기’ 이슈가 연금정국을 뒤덮게 만들었다. 거기에 휩싸여 공무원연금 개혁안마저 떠밀려간 형국이다.

국회 공무원연금 개혁 특위 새누리당 간사인 조원진 의원(왼쪽)이 7일 국회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공무원연금 개혁 실무기구 국민연금 개혁 관련 합의문’을 들어 보이며 그간 협상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_ 연합뉴스


여야는 공히 5월 임시국회에서 공무원연금 개혁안을 처리한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하지만 여야, 청와대가 뒤엉켜 한번 뒤틀어버린 공무원연금 개혁이 다시 탄력을 받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50%’ 명시를 둘러싼 여야 갈등에, 집권세력의 내분까지 겹친 상황이다. 한발씩 물러나야 한다. 일부 미흡한 점이 있지만 정치권과 이해당사자들이 마련한 ‘대타협’이 무산될 경우, 공무원연금 개혁은 영영 어려워진다. 공무원연금 개혁안은 일부 문제점을 보완해 5월 국회에서 처리하고, 국민연금은 국회에 설치할 ‘사회적 기구’에서 포괄적으로 논의해 대안을 찾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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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