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가 실물을 내놓기 전까지 역사교과서 국정화는 이념의 문제였다. 정권이 역사관을 독점하면 안된다는 생각, 미래세대에게 하나의 역사관을 강요해선 안된다는 생각. 국정 역사교과서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생각을 무기로 싸웠다.

전선은 허무하게 무너졌다. ‘높은 국정화 반대여론을 바꾸기 위해 완성도 있는 교과서를 만들겠지만 현대사에 교묘한 편향과 왜곡이 있을 것’이라는 예상은 2016년 11월28일 현장검토본 발표 후 깨졌다. 사람들은 이제 “이게 교과서냐”고 묻는다.

국정 역사교과서를 만든 이들은 최신 연구 대신 수십년 전 폐기된 학설을 인용하고, 조선 대표 실학자를 소개하며 다른 이의 영정(인물그림)을 썼으며 좌우가 바뀐 사진을 원사료인 양 실었다. 교육부가 지적을 받아들여 현장검토본에서 수정했다고 밝힌 오류 건수만 760건인데, 민족문제연구소는 현장검토본과 공개된 최종본을 일일이 대조한 결과 실제 수정 건수는 1072건이라고 밝혔다. 전국역사교사모임은 최종본에 653개의 오류가 더 있다고 밝혔다. 교육부는 그중 일부만 수용하고 나머지는 “견해 차이”라며 버티고 있다. 교육부 말대로라면 견해가 다를 수 있는 내용을 교과서에 실었다는 뜻이다. 수능시험에라도 나오면 당장 소송감이다.

이준식 교육부 장관(왼쪽)이 21일 국회에서 열린 교육문화체육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 의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권호욱 기자

어떤 국정교과서 찬성론자들은 “박정희 시대의 경제발전을 강조한 것이 왜 문제냐”고 한다. 아쉽게도 국정교과서는 그런 차원을 넘어섰다. 이념의 문제가 아니다. 사람들은 이제 팩트로 싸운다. 교과서가 무기다. 현대사 부분까지 가기도 전에 교과서는 놀랄 만한 수준을 드러낸다. 세계 민주국가들의 교과서 발행체제를 공부하며 국정화 비판 논리를 준비하던 역사학자와 교사들은 상대를 너무 과대평가했다는 사실에 실소를 짓고 있다. 한 지인이 “그래도 아까우니 한국어 교재로 활용하면 어떠냐”고 했다. 국립국어원이 단 1주일 동안 어문규범을 감수한 결과 <한국사>에서만 1436건의 비문과 오탈자, 표기 오류가 발견됐다. 한글교재로도 못 쓴다.

국정교과서는 교육부만의 잘못은 아니었다. 청와대가 시켰고 여당이 온 힘을 다해 뛰었다. 공무원이 뜻을 거스르기 어려웠을 것이다. 진짜 잘못은 국정교과서 발표 이후부터다. 국정교과서는 교육부에서 인정한 부분만을 봐도 불량품으로 드러났다. 그사이 ‘주문자’는 국회에서 탄핵당했다. 촛불광장에선 수백만명이 얼굴을 드러내고 “국정교과서 폐기”를 외쳤다. 교육부가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했다면, 선의로 했으나 잘못 만들었다는 것을 조금이라도 반성했다면 그때라도 멈췄어야 했다. 교육부 공무원들이 하기 힘들었다면 몇개월 뒤 떠날 장관이 탄핵국면과 여론을 핑계로라도 이용해 교육부의 자존심을 지켰어야 했다.

교육부는 느닷없이 ‘다양성’이 중요하다며 국·검정혼용제를 발표해 국정교과서의 생명을 연장하고, 연구학교를 운영하겠다며 가산점과 돈으로 교사들을 유인하다 그마저도 안되니 보조교재로 뿌리겠다고 밝혔다. 교육부 장관은 행자부 장관과 법무부 차관을 대동하고 연구학교 신청을 막는 외부세력이 있다며 “법적 조치”를 운운했다. 겁쟁이들은 늘 “두고보자”고 한다. 엎질러진 물을 주워 담을 기적 같은 기회를 교육부는 최선을 다해 걷어찼다.

대선 후보들은 교육부 폐지와 개편을 말하고 있다. 교육부가 정말 문을 닫게 된다면 이준식 장관과 현 간부들의 책임이 팔할이다. 소외계층 학생들에게 장학금과 꽃다발을 주고, 전국의 학교현장을 찾아다니며 덕담을 건넨 시간을 떠올리며 장관은 억울할지도 모르겠다. 그때 교육부가 받은 박수는 장관이 아니라, 보도자료에 이름 한 줄 나오지 않는 공무원들이 헌신한 결과다. 공약은 ‘공약(空約)’이 되기 십상이고 교육부는 인사물갈이로 개편을 대신할지도 모른다. 어떤 결과든 이런 교육부는 마지막이길 바란다.

장은교 정책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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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유일의 국정 역사교과서 연구학교인 경북 문명고가 홍역을 앓고 있다. 이 학교 학생들과 학부모들은 연구학교 지정 철회를 요구하며 5일째 교내 시위 중이다. 학생들이 다음 아고라에서 벌이고 있는 서명운동은 단 며칠 만에 목표치 1만명을 넘어섰다. 학교 재단과 교장이 일방적으로 연구학교 지정을 밀어붙인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는 셈이다.

문명고 사태는 여론무시와 꼼수, 편법으로 얼룩진 국정 역사교과서의 문제점을 총체적으로 드러낸다. 교장은 학교운영위원 다수가 반대하자 학부모 위원들을 개별적으로 불러 설득작업을 벌였다. 교사들에게는 찬성 서명을 강요하고, 이에 응하지 않은 교사는 보직해임했다. 학생들의 집회를 막기 위해 등교하지 못하도록 자율학습 폐지 문자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보다 못한 학생들은 결국 항의시위를 하기에 이르렀다. 연구학교 지정 문제를 떠나 재단과 교장의 일방적 학교 운영 자체만으로도 반교육적인 행태라고 할 수 있다. 학교 구성원 다수의 의사를 반영하지 않는 학교 운영은 내실 있는 결과로 이어지기는커녕 혼란과 분열만 낳을 뿐이라는 것을 잘 보여준다.

20일 오전 경북 경산 문명고에서 학생들이 국정교과서 연구학교 지정 철회를 요구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연합뉴스

문명고의 독단적 결정 과정은 박근혜 정권 교육당국의 행태를 빼닮았다. 경북교육청은 문명고 교사 다수가 반대하자 연구학교 지정 요건 가운데 ‘교사 80% 동의’ 항목을 삭제했다. 교장이 일방적으로 연구학교 지정을 추진할 길을 터준 것이다. 교육부는 교사 승진 가산점과 연구지원비 1000만원 등 당근책을 제시했지만 그럼에도 응하는 곳이 없자 마감 시한을 5일 더 연장하는 꼼수를 부렸다. 이준식 부총리는 국정 역사교과서 선택권을 침해하면 법적 조치를 강구하겠다는 협박도 했다. 이 정권은 교육 문제에서도 채찍과 당근이란 비교육적 수단을 동원하지 않고는 배겨낼 수가 없는 것 같다.

국정 역사교과서는 박정희 전 대통령 기술 분량이 세종대왕의 7배를 넘을 만큼 편향된 역사의식을 담고 있다. 오류도 수백개가 넘는다. 전국 5000여 중·고교 중 문명고 단 한 곳만 연구학교로 지정되는 초라한 결과는 자업자득이다. 어제는 고교생 92%가 국정 역사교과서를 반대한다는 설문조사 결과가 나왔다. 역사왜곡 가능성, 편향된 역사의식, 집권당 성향 편중 등이 반대 사유였다. 고교생들도 알고 있는 문제점을 정작 당국자들은 모른다니 한심하고 답답한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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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 역사교과서 사용을 위한 연구학교 신청을 한 학교가 전국 중·고교 중 단 2곳에 불과한 것으로 집계됐다. 교육부가 마감 시한을 닷새 연장하면서까지 연구학교 신청을 독려했지만 철저하게 외면당한 것이다. 이로써 국정 역사교과서는 최종 사망선고를 받았다고 평가할 수밖에 없다. 전국 17개 시·도교육청에 따르면 전국 5429개 중·고교 중 경북 영주의 경북항공고, 경북 경산의 문명고 등 경북 지역의 2개 사립고교만 연구학교를 신청했다. 경북항공고는 학교운영위원회의 동의를 거치지 않고 연구학교를 신청했다. 경북 구미의 오상고는 연구학교 신청을 했다가 교사와 학생들의 반발이 커지자 하루 만에 철회했다. 교육부는 국립고 교장들을 불러 간담회를 열며 독려했지만 연구학교를 신청한 국립고는 나오지 않았다. 결국 국정 역사교과서 채택률은 0.04%에 그쳤다. 2014년 0%대의 채택률로 학교 현장에서 퇴출당한 교학사 교과서의 재판이 된 셈이다.

지난해 11월27일 ‘국정화교과서반대 청소년행동’ 주최로 서울 광화문 동화면세점 앞에서 열린 국정화 역사교과서 반대 집회에서 한 청소년이 손팻말을 들고 있다. 정지윤 기자 color@kyunghyang.com

전국 중·고교에서 국정 역사교과서가 외면당한 이유는 명백하다. 친일·독재를 미화한 데다 역사적인 사실 오류만 수백건에 달하는 함량 미달의 ‘박근혜표 국정교과서’로 판명났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이준식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지난 10일 연구학교 신청이 저조하자 “학교의 자율 선택을 방해하는 외부의 부당한 압력이 있을 경우 모든 법적 조치를 강구하겠다”는 협박성 대국민담화까지 발표했다. 건강에 해로운 불량식품을 만들어 놓고 소비자에게 왜 사지 않느냐고 어깃장을 놓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교육부는 학교 현장에서 탄핵당한 국정 역사교과서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않고 또 다른 꼼수를 쓰려 하고 있다. 연구학교로 지정되지 않더라도 국정 역사교과서를 희망하는 학교에는 수업 보조교재 형태로 배포하겠다는 것이다. 안될 일이다. 보조교재 사용 방침은 국정교과서를 배포할 경우 주 교재로 의무사용토록 한 ‘교과용 도서에 관한 규정’을 위반하는 것이자 교육현장을 혼란에 빠뜨리는 일이다.

교육부는 연구학교 신청결과를 엄중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0.1%도 안되는 채택률에는 국정 역사교과서를 즉각 폐기하라는 교사와 학부모, 학생들의 요구가 담겨 있다. 교육부는 국가예산 44억원을 쏟아붓고도 학교가 거부한 최악의 불량교과서를 제작한 책임을 지고 대국민사과를 해야 한다. 그게 시민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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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도 이렇게까지 고될 줄은 몰랐을 것이다. 교육부 장관직을 제안받았을 때 교육을 위해 한몸 불사르리라 다짐했을 수도 있고, 가문의 영광이니 해보자고 자리욕심을 냈을 수도 있다. 부동산 투기·차녀 국적 포기 의혹이 제기됐지만 청문회를 무사히 통과했을 때 어려운 고비는 다 넘었다 여겼을까. 이준식 교육부 장관은 지난해 1월13일 취임했다. 박근혜 정부의 세번째 교육부 장관이다.

이명박 정부의 장관 후보자 4대 필수과목이 병역비리, 세금탈루, 위장전입, 부동산 투기였다면 박근혜 정부 장관의 필수과목은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넷째도 ‘자기최면’이다. 이 장관은 여러 부처 장관들 중에서도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 함께 발군의 자기최면 능력을 보이고 있다.

역사교과서 국정화 고시는 이 장관이 취임하기 전 발표됐다. 이 장관은 정권이 만든 “검정교과서의 좌편향이 심각해 국정교과서가 필요하다”는 논리를 되풀이했다(그가 8종 검정교과서들을 읽어봤는지는 모르겠다). 편찬기준도 집필진도 비공개해 ‘복면집필’이라는 비판이 나오자, “<복면가왕>도 노래가 끝나야 가수얼굴을 공개한다”며 웃었다(요즘 말로 이런 걸 ‘×드립’이라고 한다). “국가가 역사관을 독점하는 것은 독재국가에서나 있는 일”이라는 지적엔, “교과서가 공개되면 논란이 사라질 것”이라고 자신했다. 여기까지가 “우리는 ‘올바른 교과서(정부가 지은 국정 역사교과서 이름)’를 만들고 있다”는 1차 자기최면이다.

이준식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오른쪽 두번째)이 지난달 28일 오후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중학교 역사 1·2, 고등학교 한국사 등 총 3종의 국정교과서 현장 검토본을 공개한 후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낙년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 이주영 건국대 명예교수, 최대권 서울대 명예교수, 이 부총리, 김정배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 정지윤 기자

2차 최면은 국정 역사교과서 공개 이후 시작됐다.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강행하는 것이 아니다”라는 최면이다. 국정 역사교과서에서 편향과 역사왜곡에 더해 기초적인 사실오류까지 무더기로 발견되자, 장관은 국정교과서 수정적용안을 내놨다. 2018학년도부터 국·검정교과서를 혼용하며, 2017학년도엔 원하는 학교만 연구학교로 지정해 국정교과서를 쓰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교육부는 연구학교로 지정되면 가산점과 연구비 1000만원을 주며 연구학교 지정을 거부하는 교육청은 제재하겠다고 밝혔다(다시 말하지만 절대 강행하는 것은 아니란다). 연구학교 신청과 지정은 오는 2월10일까지 끝내야 한다(지금 학교는 방학 중이다). 2018학년도부터 적용되는 개정 교육과정 교과목들은 2021학년도 수능부터 반영되지만, 한국사는 1년 앞당겨 2020학년도 수능부터 적용한다(수능으로 학생과 학부모를 겁준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나쁜 사람이다). 국정화 강행이 아니라 ‘국·검정혼용’이라는 구색을 맞추기 위해, 최소 2년 걸리는 검정교과서 개발도 1년 안에 끝내라고 통보했다(개발시간은 줄었지만, 검정교과서 심사는 강화하겠단다).

이 장관은 “학교현장의 혼란을 막는 것을 최우선으로 생각했다”고 강조했다. 박근혜 정부 장관들은 단체로 부끄러움을 잊는 주사라도 맞은 걸까. 서울대 교수로 20년을 재직한 장관이 ‘혼란’의 말뜻을 모를 리 없다. 자기최면이 아니고서야, 시정잡배나 쓸 법할 억지를 멀쩡한 얼굴로 반복할 리도 없다.

장관은 시한부다. 학생들이 국정교과서 몇 단원을 다 배우기도 전에 이 장관은 자리를 떠나게 될 것이다. 역사교과서 국정화 강행 외에도 교육부는 ‘최순실 특혜’ 의혹의 중심인 이화여대에 대학재정지원사업 몰아주기, 청와대 입김에 따라 국립대 총장 지명 미루기 등 여러 논란에 휩싸여 있다.

내일이면 취임 1년. 이 장관은 장관직 제의를 받았을 때 품었던 꿈을 얼마나 이뤘을까. 그는 1년 전 취임사에서 “무엇보다도 국민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국민이 원하는 교육을 실현하기 위해 열과 성을 다하겠다”고 했다. “항상 멀리 내다보고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조타수 역할을 하겠다”고 했다. 최면에서 깨어나 거울 앞에 홀로 설 장관의 속마음이 궁금하다.

장은교 정책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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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가 중·고교 검정 역사교과서 집필기준을 바꾸는 방식으로 모든 검정 역사교과서의 국정화를 시도하겠다는 의도를 드러냈다. 친일·독재를 미화해 폐기해야 마땅할 국정 역사교과서를 되살리기 위해 온갖 편법을 동원하고 있는 것이다. 이준식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그제 “기존 검정 역사교과서가 좌편향 논란을 부른 것은 검정 절차 탓이라는 지적이 있어 심사기준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내년부터 국정 역사교과서와 함께 중·고교에서 쓰일 검정 역사교과서가 집필기준에 미달하면 검정 심사에서 통과시키지 않겠다는 뜻이다. 특히 검정 역사교과서 집필기준의 큰 틀을 국정 역사교과서 편찬기준을 따르도록 해 검정 역사교과서를 ‘제2의 국정 역사교과서’로 만들려는 얄팍한 속셈을 드러냈다. 1948년을 ‘대한민국 정부 수립’이 아닌 ‘대한민국 수립’으로 기술하고, 박정희·이승만 관련 내용과 북한의 도발 사례를 대폭 늘린 국정 역사교과서 편찬기준을 따르지 않는 검정 역사교과서는 탈락시키겠다는 것이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출판사가 심사본을 제출하면 교육부 지침에 따라 심사하는 과정을 거친다. 출판사들로서는 교육부가 제시한 집필기준을 따를 수밖에 없다. 탈락하면 교과서 개발비를 회수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검정 역사교과서 필진이 자기 검열을 통해 국정 역사교과서 편찬기준을 따를 개연성이 높다. 검정 역사교과서가 ‘제2의 국정 역사교과서’가 될 가능성이 커지는 셈이다.

한국사교과서국정화저지네트워크 등 시민단체 회원들이 지난달 27일 정부세종청사 교육부 앞에서 국정 역사교과서 강행 중단을 요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검정 혼용 방침에 따라 검정 역사교과서의 집필기준을 새로 마련해야 한다는 교육부의 입장은 자신들이 이미 만들어 놓은 ‘검정교과서 집필기준’을 적용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자기 부정이자 무원칙의 극치가 아닐 수 없다. 2015 교육과정 개정에 따른 검정 역사교과서 집필기준은 2015년 8월에 만들어졌다. 당시 교육부 위탁으로 역사 교수와 중·고교 교사 13명이 참여해 ‘한국사 교과서 집필기준’을 만들어 공청회까지 거쳤다. 하지만 국정화 고시가 발표되면서 해당 집필기준은 시안으로만 남아있다.

시민에게 탄핵당한 국정 역사교과서를 되살려볼 요량으로 꼼수만 쓰고 있는 교육부의 기회주의적 행태에 말문이 막힌다. 교육부는 시대착오적인 검정 역사교과서의 국정화 시도를 즉각 중단해야 한다. 그것만이 교육현장을 혼란에 빠뜨리지 않고, ‘박근혜표 국정교과서’에 부역해온 잘못을 속죄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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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7일 교육부는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고등학교 ‘한국사’ 국정교과서에 대한 대책을 발표하였다. 국정 역사교과서의 전면 사용을 1년 유예하고, 유예 기간이라도 국정교과서를 사용하려는 학교가 있으면 연구학교로 지정하겠다는 것이다. 또 새로운 검정교과서를 개발하여 2018년학도부터 국·검정을 혼용하겠다고 밝혔다.

교육부 관계자는 국정교과서 현장검토본의 ‘품질’을 자신한다고 말했다. 정말 그럴까. 먼저 역사인식의 기초인 사실의 오류가 너무 많다. 필자가 보기에는 근현대사 부분의 경우 교학사판 한국사 교과서에 비해 낫다고 말할 수 없다. 통합 임시정부 때 안창호 선생의 직책이 노동국 총판인데, 통합 이전의 직책인 내무총장을 언급하고 있을 정도이니.

더 큰 문제는 사실과 사실을 연결하는 부분에서 특정한 의도가 눈에 띈다. 예를 들어 외교론과 실력양성론의 독립운동을 유달리 강조하고 노동자·농민 등 대중의 생존권운동을 사회주의운동처럼 취급하며 가벼이 다뤘다. 또 유신정권을 독재정권이라고 말할 때 흔히들 그 이유를 긴급조치에서 찾는데, 이때 가장 중요한 법률이 제9호이다. 그럼에도 1300여명을 구속시킨 제9호보다는 경제문제를 다룬 제3호를 중점 소개하고 있다. 사실을 빙자하여 시대의 이미지를 비틀어 버린 대목이다.

한국사교과서국정화저지네트워크 회원들이 19일 서울행정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역사 국정교과서의 효력을 정지시키는 결정을 조속히 내려달라는 의견서를 제출했다고 밝히고 있다. 김영민 기자

그러다보니 국정교과서는 더 심각한 문제를 노출하고 있다. 예를 들어 박정희 정부의 경제정책에서 정치적 배경을 빼버렸고, 식민지기 역사를 수탈과 저항의 역사로만 기술함으로써 당시 사람들의 일상을 설명한 생활사 부분이 없다. 경제와 사회 영역이 생략·축소된 경우는 고대, 고려, 개항기 서술에서도 마찬가지다. 결국 국정교과서는 학생들이 특정 시대를 종합적으로 이해하는 길안내 역할을 하지 못하는 교재이다.

이것도 수정하면 될 것 아닌가라고 말할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다. 글쎄, 필자들이 수정할 능력이 있는지도 의문이지만, 문장을 수정해서 될 일도 아니다. 분량과 수업 시수를 고려하며 단원을 조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것까지 감수하겠다고 한다면 그것은 수정이 아니라 ‘신판’ 제작이다. 오탈자 수정도 신고하는데, 이 지경에 이르면 ‘재검정’을 해야 한다.

이런 교과서를 현재의 검정교과서와 함께 사용하면 2017년 고교 1학년생들에게는 어떤 문제가 발생할까. 국정교과서로 한국사를 배운 학생은 검정교과서에 나온 내용을 제대로 배울 기회가 없다. 검정교과서와 국정교과서의 전체 쪽수가 최소 100쪽 차이가 나는데, 근현대사 부분에서 특히 편차가 크다. 반대로 국정교과서는 특정한 곳에서 수많은 여성 독립운동가의 이름을 나열하고 있는데, 검정교과서에는 그렇게까지 많이 나오지 않는다. 국정교과서를 배운 학생이 2019년의 입시를 준비하려면 다른 출판사의 책을 2~3종 더 사서 공부하거나, 시간을 낭비하는 줄도 모르고 열심히 외워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교육부 장관은 ‘공통 범위에서 출제하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기자회견에서 자신했기 때문이다. 결국 절충이라지만 부담을 학생과 교사에게 떠넘기는 것이다.

그러면 2018년 국·검정 혼용을 본격화할 때는 어떻게 될까. 이때 사용할 검정교과서는 1년 만에 인쇄까지 해야 해서 시간이 매우 촉박함도 문제지만, 국정교과서용 교육과정에 따라 집필된 교재라서 문제다. ‘대한민국 수립’ 문제와 같은 사회적 논란이 있는 내용들을 그대로 방치하고 있다. 더구나 국정교과서용 교육과정은 정치사 중심이어서 역사교육의 계열성을 무시하고 있다. 1876년 개항 이전과 그 이후의 서술 비율도 6 대 4를 지향하고 있어 근현대사 교육을 강조하는 지금까지의 흐름에도 역행하고 있다.

따라서 국·검정을 혼용할 것이 아니라 2019년도부터 적용할 교육과정을 우선 새로 개발해야 한다. 장기적으로 역사교육을 정치화로부터 독립시키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마침 내년에 대선이 있으니 역사학 대회에 참가하는 학회들이 후보자들에게 역사교육 공약을 공개적으로 질문하는 방법이 출발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신주백 연세대 HK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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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가 국정 역사교과서 현장 적용시기를 1년 늦추고, 2018년부터 국·검정 교과서를 혼용하는 방안을 내놨다. 친일·독재를 미화하고 역사적 사실을 왜곡해 ‘함량미달의 불량 교과서’로 판명난 국정 역사교과서를 폐기하지 않고 최악의 선택을 한 것이다. 즉각 폐기를 요구한 시민들의 뜻을 거스르고, 차기 정부에 부담을 떠넘긴 교육부의 행태는 무책임하기 짝이 없다.

이준식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어제 “2018학년도부터 국정교과서와 함께 검정교과서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하겠다”며 국정화 강행 의지를 드러냈다. 이 부총리는 또 “2017학년도에는 국정교과서를 희망하는 모든 학교를 ‘연구학교’로 지정해 1000만원의 지원금을 주겠다”고 밝혔다. 국정화를 밀어붙인 박근혜 대통령과 함께 시민들에게 탄핵당한 ‘좀비 교과서’를 되살려 보겠다는 기회주의적 행태의 극치가 아닐 수 없다. 당초 교육부는 국정 역사교과서 적용시기를 1년 유예하는 쪽으로 방침을 정했다가 새누리당 친박계와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의 의지를 꺾지 못하고 막판에 국정화 강행으로 돌아선 것으로 알려졌다. 국정 역사교과서 즉각 폐기를 선언해도 시민들의 분노를 누그러뜨리지 못할 상황에서 교육 현장의 극심한 혼란을 부를 최악의 선택을 한 교육부는 정권의 시녀 부처로 전락했다고 해도 할 말이 없게 됐다.

한국사교과서국정화저지네트워크 등 시민단체 회원들이 27일 정부세종청사 교육부 앞에서 국정 역사교과서 강행 중단을 요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교육부가 차기 정부에 부담을 떠넘기는 꼼수 대책을 내놓기는 했지만 국정 역사교과서가 학교 현장에 실제로 적용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주권자인 시민의 3분의 2가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반대하고 있는 데다 전국 교육청 17곳 중 14곳이 국정 역사교과서를 채택하지 않겠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특히 국정교과서 금지법안이 내년 2월 말 야당 등의 주도로 국회에서 통과되면 교육부 의지와 상관없이 국정화 자체가 법적으로 차단될 수 있다.

국정 역사교과서는 수많은 역사적 사실의 오류, 내용의 전문성 결여, 해석의 정치적 편향성 등으로 학교 현장에서 도저히 사용할 수 없는 수준 미달로 판명났다. 한마디로 독재자 박정희 정권의 과오는 축소·왜곡하고 업적은 과대평가한 ‘박정희를 위한 박근혜의 효도 교과서’에 지나지 않는다. 오죽하면 인명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도 “국정화 정책은 시작 자체가 잘못된 것”이라며 국정 역사교과서 폐기를 촉구했겠는가. 그럼에도 교육부는 지난 2년 동안 자신들이 심사해 통과시킨 검정 역사교과서에 대해 좌편향 운운하며 역사교육을 이념대결로 몰아갔다. 이들의 뇌리에는 오직 박 대통령 한 사람만 있었을 뿐 친일과 독재를 미화한 국정 역사교과서로 피해를 입을 학생과 학부모, 교사 등은 안중에도 없었다.

교육부는 더이상 시민들을 기만하지 말고 국정 역사교과서를 즉각 폐기해야 한다. 교육 현장에서 빚어질 혼란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강행하는 것은 반역사적인 죄악이다. 교육부가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포기하지 않는다면 촛불민심은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과 이준식 부총리를 향할 것임을 명심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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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가 ‘올바른 교과서’라고 이름을 붙인 국정 역사교과서가 공개됐다. 그간 국민들은 역사학자 대다수가 집필을 거부한 마당에 국정 교과서가 제대로 쓰여질 수 있을까 우려했다. 이에 대해 교육부는 ‘내용을 가지고 평가해 달라’면서 서술 내용과 수준에 자신감을 보여 왔다.

국정 역사교과서라 하면 대부분은 한국사, 그중에서도 근현대사에만 깊은 관심을 가지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이번에 국정화된 역사교과서에는 고등학교 <한국사>뿐 아니라 중학교 과정의 <역사>도 있다. 그리고 중학교 <역사>에는 한국사와 세계사가 모두 포함된다. 중학교 <역사>에서 세계사를 서술한 부분은 한국사 분량의 5분의 1가량이다.

중학교 과정에서 배울 <역사> 가운데 일부만 살펴보기로 하자. 중학교 <역사>의 제4장 제1절은 중국의 송·요·금 시대를 다루고 있다. 이 부분은 전체 200여쪽 가운데 4쪽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 적은 분량에서도 너무 많은 오류 내지 사실관계의 착오가 발견된다.

역사학자들이 11월 30일 서울 동대문구 역사문제연구소에서 국정 역사교과서 긴급 분석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김창길 기자

우선 113쪽을 보면 ‘송은 거란과 화약을 맺고(전연의 맹), 평화를 보장받는 대가로 막대한 물자를 거란에 제공하였다. 11세기 후반 신종은 이러한 재정 부담을 줄이기 위해 왕안석을 등용하였다’는 내용이 나온다. 신종이 거란에 보내는 재정 부담을 줄이기 위해 왕안석을 등용하였다는 것이다.      

하지만 왕안석의 개혁은 거란에 보내는 물자(세폐)의 축소와는 아무 관련이 없다. 재정 적자 상황의 타개를 목표로 삼았을 뿐이다. 재정 적자를 야기한 주요인도 거란에 보내는 세폐가 아니었다. 서하와의 전쟁으로 인해 촉발된 군사비 부담이 가장 큰 이유였다. 오른쪽 보조단에는 ‘(전시에서) 황제가 합격자를 직접 선별하였다’는 내용이 나온다. 전시는 황제가 형식적으로 주관하는 시험일 뿐이다. 황제가 시험 과정에 구체적으로 간여하는 일은 극히 드물었다. 하물며 전시는 당락을 가르는 시험도 아니다. 합격자의 순위만을 정하는 시험이었다.

114쪽에도 부정확한 서술이 적지 않다. 넷째 줄에는 ‘송이 약속한 대가를 지급하지 않자 금은 이를 구실로 송의 수도 변경을 공격하였다’고 적혀 있으나, 이 또한 역사적 사실과 다르다. 금이 송을 공격한 것은 약속한 대가를 지급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송이 맹약을 어기고 금에 도발하였기 때문이다. 책은 바로 이어서 ‘금이 여진 문자를 사용하고 전통문화를 지키면서 한족의 문화에 동화되지 않고 정체성을 유지하였다’고 서술했다. 이 역시 사실에 반하는 내용이다. 금이 문화적 독자성을 유지한 것은 전반기까지이다. 12세기 후반을 넘어가면 여진족의 한족화가 심각하여 금 조정이 이에 대한 대책을 부심하게 된다.

더욱 심각한 것은 ‘패배한 남송은 금과 평화롭게 지내는 조건으로 매년 은과 비단을 제공하였는데, 이로 인해 부족해진 재정을 메꾸기 위해 강남 지역을 개발하였다’라고 서술한 부분이다. 강남 개발은 이미 2세기 후반부터 진행되고 있었다. 위진남북조와 수당을 거쳐 남송이 되면서 강남 개발은 사실상 일단락되기에 이른다. 강남 지역의 개발과 금에 대한 세폐의 제공을 연결시키는 것은 너무도 심각한 오류이다.

그 아래에 등장하는 ‘남방에서 새로운 품종의 벼가 도입되어 강남지역에서는 1년에 쌀을 두 번 수확하였다’는 서술도 대단히 곤란하다. 이곳에서는 남송 시기에 ‘남방에서 새로운 품종의 벼가 도입’되었다고 적고 있다. 하지만 남방의 새로운 벼, 즉 점성도(참파벼)는 11세기 초반인 북송시대에 도입되었다. 또한 북송과 남송을 통해 강남에서는 벼의 이기작이 거의 시행되지 않았다. 송대에 벼의 이기작이 있었던 지방은 양광(兩廣) 및 푸젠의 일부 지역이었다. 벼의 이기작이 이 시기 농업의 발달을 상징하는 것도 아니다. 이기작이 행해진 지역은 오히려 낙후 지역이었다.

중국의 송·요·금 시대에 대한 서술은 전체 교과서의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도저히 용인할 수 없는 심각한 오류가 너무도 많다. 역사교과서 내용은 이념적 편향 여부를 떠나 사실관계에서만큼은 오류를 범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이번에 공개된 국정교과서는 적어도 중국사 부분에 관한 한 오류와 착오가 지나치게 많다. 약간의 수정을 통해 보완할 수 있는 수준을 벗어났다.

이근명 | 한국외대 사학과 교수·중국 중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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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선 실세 국정농단의 몸통은 결국 박근혜 대통령이었다. 정치적으로, 박근혜 ‘대통령’은 이미 없다. 법적으로만 간신히 대통령직을 유지하고 있는 본인만 이 현실을 거부하고 있다. 대통령이 불법과 비리를 지속적으로 저질러온 정황이 명백히 드러났으니, 그동안 온갖 의혹과 반대에도 대통령이 앞장서 밀어붙였던 정책들은 전면 재검토되어야 한다. 그런데도 문제의 정책들은 이전과 변함없이, 아니 더욱 신속히 진행되는 것 같다.

교육부는 국정 역사교과서를 예정대로 28일에 공개하겠다고 한다. 국정화 추진은 학생과 교사, 대부분의 역사학자를 비롯한 수많은 국민의 분노와 저항을 불러일으켰던 사안이다. 그리고 국정화의 선봉에는 대통령이 있었다.

지난해 12월 일본군 위안부 밀실·굴욕 협상은 외교부 장관이 반대했지만 대통령이 밀어붙인 정황이 드러났다. 대통령의 행태를 보면 충분한 개연성이 있지만, 외교부 당국자는 사실무근이라며 시치미를 뗀다. 여성가족부는 반성과 사과가 먼저라는 비판은 외면하고 피해 할머니들에게 위로금 지급만 서두른다. 환경부는 강원 양양군의 설악산 케이블카 사업 환경영향평가서를 통과시켰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가 국정감사에서 반려하라는 결론을 내린 조작·부실 평가서였다. 국회의원, 양양군,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이 공동 현장검증을 실시한 지 이틀 만이었다. 설악산 케이블카는 사업신청서가 제출되기도 전에 대통령이 두 번씩이나 적극 추진을 지시했다.

최재경 청와대 민정수석과 김현웅 법무부 장관의 사의 표명이 알려지고 새누리당 김무성 전 대표가 탄핵 주도를 선언한 23일 서울 광화문 사거리 뒤편으로 청와대 본관 건물이 보이고 있다. 서성일 기자 centing@kyunghyang.com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은 여건 조성이 우선이라는 입장에서 돌변해 국무회의 의결과 대통령 재가, 양국 서명을 순식간에 해치워버렸다. 지난 이명박 정부 때도 밀실협상 논란으로 막판에 무산됐던 사안이다. 대통령이 진두지휘했던 갑작스러운 ‘사드’ 배치 결정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일이었고, 그만큼 격렬한 반발과 분노를 샀다. 하지만 국방부는 롯데의 경북 성주골프장과 경기 남양주의 국유지를 맞바꾸면서 사드의 조기 배치에 열을 올리고 있다.

지난 21일 검찰은 민주노총 한상균 위원장의 항소심 결심공판에서 징역 8년을 구형했다. 1심 형량인 징역 5년이 너무 가볍다는 것이다. 작년 민중총궐기의 근원이었던 박근혜 정권 폭정의 실태가 훤히 드러난 지금도 검찰의 현실 인식은 여전하다.

아우슈비츠의 생존자 프리모 레비의 말이 떠오른다. “괴물이 없지는 않다. 그렇지만 (중략) 그보다 더 위험한 것은 평범한 사람들이다. 의문을 품어보지도 않고, 무조건 믿고 행동하는 기계적 인간들 말이다.”(홍세화, <생각의 좌표>) 눈에 띄는 괴물이라면 맞서 싸울 수는 있다. 하지만 괴물을 무조건 추종하는, 눈에 띄지 않는 수많은 ‘기계적 인간들’과 일일이 싸울 수는 없다. 이런 절망적 현실 때문에 지옥에서도 살아남았던 레비가 노년에 자살했는지도 모르겠다.

우리 사회 현실도 썩 달라 보이지 않는다. 괴물을 따르는 평범한 사람들이 땅에서 갑자기 솟아날 리 없다. 이들도 결국 교육의 결과다. 대입과 취업이 지상 목표가 되어버린 교육 현실에서, 아이들은 자기 생각이 아니라 주어진 문제의 ‘정답’을 맞히는 능력을 키우도록 강요된다. 자율적·비판적 사고 능력은 퇴화되고, 지시받은 업무를 충실하고 효율적으로 수행하는 ‘실무형’ 인간이 만들어진다. 자기가 노예이면서도 노예인지 모르는 인간 말이다.

이런 현실을 감안하면, 요즘 광장에서 만나는 우리 아이들의 모습은 참으로 놀랍고, 반갑고, 고맙다. 무엇보다 미안하다. 이제는 정말 학교 교육의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 부패한 권력일수록 학교 교육을 통제해 아이들을 기존의 현실에 순응하는 ‘기계적 인간들’로 키우려 한다. 자유롭고 비판적 사고의 숨통을 옥죄는 학교, 영혼을 없애는 교육에 우리 아이들을 더 이상 맡겨 놓을 수는 없다. 광장에서 아이들이 보여준 놀라운 가능성을 직접 만나고 돌아올 때마다 드는 간절한 바람이다.

조현철 서강대 교수·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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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가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위한 폭주를 멈추지 않고 있다. 지난 주말 100만명이 모인 촛불집회에 참석한 시민들은 국정 역사교과서의 즉각 폐기를 촉구했다. 전국 102개 대학 역사·역사교육학과 교수들도 그제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국정 역사교과서를 폐기하지 않으면 ‘불복종 운동’에 돌입하겠다고 선언했다. 지난해 10월 국정화에 찬성했던 보수성향의 교원단체인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도 “친일과 독재를 미화하고, 1948년을 ‘대한민국 수립’으로 명시하려는 국정 역사교과서에 반대한다”는 입장으로 돌아섰다. 더불어민주당 등 야 3당은 어제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법률로 금지하는 내용을 담은 법안들을 국회 교육문화위원회에 상정했다.

15일 서울 동숭동 흥사단 강당에서 열린 ‘전국 대학 역사·역사교육 교수 역사교과서 국정화 폐기 촉구’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날 성명에는 전국 102개 대학의 역사·역사교육 교수 561명이 참여했다. 김창길 기자

그런데도 교육부는 오는 28일 국정 역사교과서 현장검토본 공개를 강행하겠다는 뜻을 굽히지 않고 있다. 헌정질서를 파괴하고 국정을 농단한 박근혜에 의한, 박정희를 위한 가족교과서 발행을 밀어붙이고 있는 교육부야말로 ‘혼이 없는 비정상’이 아닌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어제 경향신문 보도를 보면 국정 역사교과서 현장검토본 5종 가운데 교사용지도서 2종은 공개 대상에서 제외된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해 검정 역사교과서를 공격하면서 정부 검증을 거치지 않은 교사용 지도서로 인해 편향적인 수업이 이뤄지고 있다는 궤변을 늘어놓던 교육부가 국정 역사교과서 현장검토본에 교사용 지도서를 제외한 것이다. 그러면서 “교사들이 보는 책이라 사전검증할 필요가 없다”는 이율배반적인 변명을 했다. 교육부는 또 국정 역사교과서의 의견수렴 절차를 공개토론형이 아닌 ‘비공개 접수형’으로 진행하며 반대 여론 형성을 차단하겠다는 의도를 드러냈다.

국정 역사교과서를 폐기하는 절차는 간단하다. 교육부 장관이 고시만 개정하면 된다. 지금 당장 국정화를 철회해도 내년 3월부터 기존 검정교과서를 쓰면 돼 아무런 문제가 없다. 역사교과서 국정화는 교육의 자주성과 정치적 중립성을 보장하는 헌법정신을 유린하는 것이다. 또 주권자의 3분의 2가 반대하는 국정화 강행은 시민주권을 침해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교육부가 국정 역사교과서 발행을 강행한다면 헌법정신을 유린하고, 주권을 침해한 책임을 져야 한다. 이준식 교육부 장관과 교육부 관료, 국사편찬위원회와 집필진은 국정 역사교과서 발행이 역사에 죄를 짓는 행위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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