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89년 7월11일, 미국 독립선언문의 초안을 작성했던 미국 정치가 토머스 제퍼슨은 프랑스대혁명의 와중에서 런던으로 긴급하게 편지 한 통을 쓴다. 수신인은 이후 프랑스대혁명의 정당성을 치밀하게 논증하는 글인 <인권>을 쓰게 되는 토머스 페인이었다. 

제퍼슨은 이 편지에서 국민의회가 지금 “낡은 정부를 무너뜨리고 이제 새로운 정부의 기초를 다지기 시작”했는데 그를 위한 가장 중요한 과업으로 “자연적이고 소멸될 수 없는 인간의 권리 선언”을 정초하고 있다고 쓰고 있다. 

바로 이 선언이 1789년 8월에 반포된 그 유명한 프랑스인권선언, ‘인간과 시민의 권리에 관한 선언’이다. 이 선언은 이후 공화국 프랑스의 구성과 운영의 원리를 정초하는 문서로 자리 잡게 된다.

물론 ‘인간과 시민의 권리에 관한 선언’에 대한 비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 선언만큼 프랑스대혁명의 근본 의미를 명확하게 밝혀놓고 있는 문서도 없을 것이다. 

프랑스대혁명은 1789년 시작되어 1875년 제3공화국 헌법제정으로 비로소 종결되는 100년의 장기혁명이었다. 그 장기혁명의 근본 의미는 무엇일까? 

그것은 모든 인간이 태어나면서부터 자유롭고 평등하다는 신념을 국가구성의 원리로 삼았다는 점이다. 프랑스대혁명 이전 인간의 권리는 출생에 따라서 불평등하게 배분되어 왔다. 

그 혁명은 국가의 출현 이후 수천년을 이어왔던 신분제, 즉 인간의 불평등 위에 구축된 정치질서를 혁파한 혁명, 철옹성과도 같은 기득권을 누려왔던 이들의 완고한 저항을 타도한 혁명이었다. ‘인간과 시민의 권리에 관한 선언’은 시민들의 힘을 통해 혁명의 정신과 결과, 곧 모든 인간의 자유와 평등을 국가의 토대에 기입한 공적 문서였다.

2017년 대한민국에 몰아치는 박근혜 정권의 국정농단에 맞선 시민들의 촛불은 아직도 타오르고 있다. 

지난해 늦가을 시작되어 봄을 바라보는 이 시점에 이르기까지 계속되고 있는 촛불항쟁의 의미는 무엇일까? 단지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으로만 그 의미를 축소할 수 있을까? 

한반도에서 모든 인간의 자유와 평등을 보장하는 국가체제로서 민주공화국을 만들고자 했던 시도는 적어도 1945년 해방과 더불어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1960년 4·19혁명, 1979년 부마항쟁과 1980년 광주항쟁, 1987년 6월항쟁과 7·8·9월 노동자대투쟁, 2008년 촛불집회를 지나 2017년 광화문 대로를 가득 채운 지금의 촛불항쟁은 바로 1945년 이후 시작된 자유와 평등의 민주공화국 수립을 위한 과정의 분기점들이다. 민주공화국을 향한 우리의 역사 역시 투쟁으로 점철되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 역사적 투쟁의 성과를, 승리의 결과를 어떤 방식으로 남겼을까? 우리의 현대사는 아직 인권과 민주적 권리를 시민의 힘으로 공인한 권위 있는 공적 문서를 갖지 못했다. 1960년 4월의 승리도, 1987년 6월의 승리도 자유와 평등에 기초한 권리를 아로새긴 공적 문서를 남기지 못했다. 

매주 100만명이 넘는 인파가 모여 민주주의와 시민의 권리를 외친 집회는 우리 현대사만이 아니라 세계사적으로도 유례를 찾아보기 드문 혁명적 사건이다. 지금 우리는 이 나라를 모든 인간의 자유와 평등이 보장되는 민주공화국으로 만들기 위한 장구한 투쟁의 결정적 국면에 서 있다. 이 국면에서 무엇을 남겨야 할까?

지난 18일 2000명에 가까운 시민들이 장충체육관에 모여 ‘촛불권리선언을 위한 시민대토론회’를 열었다. 

촛불집회 이후 대한민국, 모든 시민의 자유와 평등이 보장되는 민주공화국으로 나아가기 위해 필요한 민주적 시민헌장, 혹은 권리선언의 내용을 토론하는 자리였다고 한다. 이 토론의 과정과 결과가 2017년 촛불시민혁명의 의미와 정신을 제대로 밝히는 시민들 공적 선언으로 자리 잡기를 기대한다. 시민의 행동과 실천으로 세우는 민주공화국의 기초를 시민들이 선언하는 공인된 권리선언을 우리도 이제 가질 때가 되지 않았는가? 그러한 승리의 권리선언이 2017년 촛불시민혁명이 남겨야 할 중요한 성과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정정훈 | 서교인문사회연구실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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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소속 야당 의원들이 그제부터 자유한국당 소속인 신상진 미방위원장에 대해 불신임 결의안을 국회에 낸 뒤 농성을 하고 있다. 미방위원 24명 중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정의당, 무소속 의원 등 절반이 넘는 14명이 뜻을 모은 결과다. 이들은 공영방송을 정부가 마음대로 주무르지 못하도록 하는 방송법 개정안을 신 위원장이 법안소위에조차 회부해 주지 않고 있다고 불신임 사유를 밝혔다. 다수의 뜻을 존중하며 공정하게 회의를 진행해야 하는 위원장의 책무를 망각한 채 특정 당파의 뜻에 따라 상임위를 좌우한다는 것이다. 신 위원장은 야당이 다수의 힘으로 방송법 개정안을 밀어붙이려 한다며 맞서고 있다.

자유한국당 인명진 비상대책위원장(왼쪽에서 세번째)이 20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비대위 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권호욱 기자

그동안 미방위 상황으로 볼 때 신 위원장의 주장은 억지에 지나지 않는다. 지난해 5월 국회가 열린 후 미방위 소관 법률안이 단 1건도 본회의에서 처리되지 않은 것 자체가 신 위원장의 무리한 위원회 운영을 이미 입증하고 있다. 이번에는 여야 간 이견 조정 기구인 안건조정위원회가 구성되지 않고 있다는 점을 구실로 들고 있지만 앞뒤가 맞지 않는다. 안건조정위 불발 이유는 바로 한국당이 안건조정위원을 선임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자기 당이 위원 선정을 미뤄 위원회 결의가 진척되지 않고 있는데 도리어 야당에 책임을 돌리고 있다. 신 위원장의 논리는 여소야대 의석수를 만들어준 유권자들을 탓하고, 여당의 분당 책임을 야당에 돌리는 꼴이다. 게다가 이런 판국에 신 위원장은 여당 간사와 함께 선진 정책을 배워오겠다며 오는 25일부터 해외 시찰을 나간다고 한다.

신 위원장의 미방위 방해 행위가 그 혼자만의 판단은 아닐 것이다. 개혁 법안 협상 시 언론장악방지법안을 수용하지 않은 점으로 볼 때 한국당은 애초부터 공영방송 개혁에 뜻이 없었다. 지금 공영방송 MBC의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위원장 고영주)는 야당 추천 이사들의 반대를 다수결로 뭉개고 23일 MBC 새 사장을 뽑겠다고 우기고 있다. 정권과 여당, 방문진이 한통속이 되어 친박근혜 방송과 경영진을 비호하겠다는 뜻도 감추지 않고 있다.

한국당의 국회 파업은 미방위에 그치지 않는다. 어제는 법사위와 미방위, 교문위 등 4개 상임위 한국당 간사들이 기자회견을 열어 ‘고영태 국정농단 청문회’를 열자고 주장했다. 국정농단의 주범이 고씨인데 헌법재판소가 그와 관련한 녹음파일 등을 증거로 채택하지 않았으니 국회가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새 출발 하겠다며 당 이름을 바꾸더니 하는 일이 이런 생떼 쓰기다. 이게 과연 참회하는 자세인지 한국당과 인명진 비상대책위원장은 자문해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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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농단 의혹’을 규명하는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종전 11차례 실시된 특검과는 달랐다. 특검 및 특검보와 파견검사들은 한 몸이 되어 팀플레이를 했다. 주말과 설 연휴를 반납하고 거침없이 달려왔다. 혐의가 있는 자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소환했고, 구속사유가 있는 피의자에 대해서는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증거가 있는 곳은 여지없이 압수수색을 감행했다. 특검이 출범한 이후 구속자는 11명에 이르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과 삼성 사이의 뇌물거래에서 ‘거간꾼’ 노릇을 한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 문화계 블랙리스트 작성에 관여한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등 5명, 비선진료 의혹의 실마리를 풀어줄 박채윤 와이제이콥스메디칼 대표, 이화여대 입학·학사비리에 연루된 김경숙 전 학장 등 4명을 구속했다. 구속자만 보더라도 박영수 특검은 짧은 기간에 괄목할 만한 수사성과를 냈음을 알 수 있다.

특검법이 정한 수사대상은 14가지이다. 특검이 이 14가지의 수사과정에서 인지한 사건도 수사대상이다. 현재 특검은 정해진 수사대상 중 극히 일부분에 대해서만 수사를 완료했다. 앞으로 수사해야 할 사항은 산더미처럼 쌓여있다.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이 삼성, 현대, SK, CJ 등 재벌로부터 받은 뇌물사건은 첫걸음만 뗀 상태이다. 김영한 전 민정수석이 작성한 업무일지에 나타난 수많은 정치공작 의혹, 김기춘 전 비서실장과 우병우 전 민정수석의 직무유기와 직권남용 의혹, 박 대통령의 세월호 참사 7시간 동안의 행적에 대한 의혹, 청와대가 재벌에 압력을 넣어 극우단체의 관제데모 자금을 마련한 의혹, 비선진료 의혹, 시민단체가 고발한 사건 등에 대해서는 아직 손조차 대지 못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 퇴진촉구 촛불집회가 열린 11일 저녁 광화문에서 광장을 가득 메운 참가자들이 촛불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박민규 선임기자

특검의 1차 수사기간 70일은 2월28일까지이다. 이 기간 동안 법에 정한 의혹사건을 규명하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더군다나 국정농단의 주범으로 지목된 박 대통령은 특검 수사에 협조하지 않고 있다. 청와대는 특검이 법원으로부터 적법하게 발부받은 청와대에 대한 압수수색영장 집행을 ‘군사상 비밀’을 핑계로 방해하고 있다. 대통령은 ‘경내에서’ ‘비공개로’ ‘1회에 한하여’ 대면조사하지 않으면 조사에 응하지 않겠다며 버티고 있다.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은 ‘압수수색 승인 여부는 청와대 경호실장과 비서실장의 권한’이라며 청와대의 압수수색 거부를 두둔하고 있다. 청와대와 황 권한대행이 특검수사를 가로막는 동안 천금 같은 수사기간은 흘러가고 있다. 특검이 국정농단의 실체를 밝히려면 수사기간을 반드시 연장해야 한다.

특검법에는 특검이 대통령의 승인을 받아 수사기간을 30일 연장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대통령이 직무정지되어 있기 때문에 수사기간의 연장은 황 권한대행의 손에 달려있다. 황 권한대행은 특검의 청와대 압수수색 승인 요청을 묵살한 장본인이다. 그는 국정농단의 실체를 밝히는 데 협력하지 않고 박 대통령의 범죄증거를 은폐하는 길을 선택했다. 특검이 수사기간 연장을 요청한다고 하더라도 연장승인을 거부할 가능성이 높다. 특검의 운명을 피의자 박근혜와 동반자의 길을 선택한 황 권한대행에게 맡겨놓을 수는 없다. 국회가 나서서 특검법을 개정하여 수사기간을 연장하도록 해야 한다.

현행 특검법에는 또 다른 허점이 있다. 검찰은 최순실을 대기업이 미르재단 등에 돈을 제공하도록 한 혐의를 뇌물수수죄가 아닌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로 기소했다. 반면 특검은 이를 뇌물수수죄로 기소하려고 한다. 국정농단 사건으로 기소된 사건의 공소장변경권과 공소유지 권한을 특검이 가질 것인지, 검찰이 가질 것인지를 명확히 해야 한다. 그런데 현행 특검법은 이에 대해 명확히 정해놓지 않고 있다. 특검법을 개정하여 모든 국정농단 사건의 공소유지권한을 특검이 갖도록 하여 재판의 통일성을 기할 필요가 있다.

‘박근혜·최순실 등에 의한 국정농단 사건’에 대한 수사는 수십년 동안의 적폐를 해소하고 ‘새로운 대한민국’을 여는 첫걸음이다. 국회는 하루빨리 특검법을 개정하여 특검이 역사적 소명을 다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재화 |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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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농단 사태는 박근혜 대통령 개인뿐 아니라 박근혜 체제의 문제이기도 하다. 대통령을 꼭짓점에 두고 수백만 공직자가 연계된 위계적 피라미드 형태의 이 체제는 놀랍게도 아직 가동 중이다. 청와대가 법원의 영장을 받은 특검의 압수수색을 거부한 것이 이를 증명한다. 특검을 거부한 청와대가 택배차량 출입을 버젓이 허용하고, 수석 및 장관들과 독대하지 않는 대통령이 말 중개상을 단독 접견한 것은 이 체제가 연출한 부조리극의 실체다. 이들이 시민들의 분노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청와대를 낙동강 전선 삼아 농성하고 있는 것도 이 체제를 믿기 때문일 것이다.

이 점에서 미국의 고위공직자들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야만적인 반이민 행정명령을 막은 것은 신선해 보인다. 샐리 예이츠 법무장관 대행은 행정명령 변호 거부로, 시애틀 연방법원 제임스 로바트 판사는 행정명령 효력 중단 선고로 미국 공직사회의 건강성을 입증했다. 예이츠 장관 대행은 “대통령이 위법적인 일을 지시하면 ‘노’(NO)라고 말하겠다”던 청문회 때 약속을 지켰다.

임기 초반 대통령의 서슬 퍼런 권력에 맞서 단호하게 노라고 외치는 미국의 공직자들은 한국에 곤혹스러운 질문을 던진다. 정권에 충성하지 않고 사회 정의를 실천하는 공직자들이 있느냐고 묻는다면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을까. 최순실 사태는 한국의 공직자들이 노라고 외치지 못한 결과물이기도 하다.

유진룡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25일 오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9차 변론에 증인으로 참석하기에 앞서 기자들과 질의응답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예외도 있었다. 유진룡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박 대통령의 낙하산 인사 지시를 거부했다가 퇴출됐고, 노태강·진재수 전 문체부 국·과장은 최씨 딸에게 불리한 감사보고서를 작성했다는 이유로 좌천당했다. 최씨가 150억원의 예산을 전횡하려던 사업 추진을 몸을 던져 막은 정준희 문체부 서기관도 희망의 빛을 던진다. 문체부 공무원들은 블랙리스트 증거자료를 없애라는 장관의 지시를 이행하지 않고 특검에 제출했다. 한국 공무원들도 영혼이 있다는 것을 이들은 직을 걸고 증명했다. 하지만 이들의 용기에도 불구하고 블랙리스트는 도중에 무산되지 않고 실행됐다. 공직자 개인 차원의 문제 제기는 찻잔 속 태풍으로 끝나기 십상이다. 제도화되지 않은 저항이 제왕적 대통령제 아래에서 효율성을 갖추지 못한 것이다. 국정 전반에 걸친 농단이 가능했던 이유다.

어느 조직에서건 노라고 말하는 것은 불편한 일이다. 익숙한 것으로부터 떨어져 나가는 데 따른 당사자의 불안감을 떨쳐낸다 해도 안정을 추구하는 다른 구성원들과의 다툼을 피할 수 없다. 애초 누군가가 자신의 질서를 상대방에 관철시키려고 하는 일 자체가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구나 지금 관가에는 권력에 줄을 대 출세를 꾀하는 영혼없는 공무원들로 넘쳐난다. 권력자 주변을 맴돌며 권력 남용 도구 역할에만 골몰하는 그들로 인해 양심과 사명감으로 일하는 공무원들은 우대받지 못하고 조직에서 밀려나고 있다. “시키는 대로 하라. 아니면 문체부를 떠나라”고 윽박지른 김종 전 문체부 차관이 대표적이다.

이런 상황에서 공무원들이 논리나 이성을 관장하는 ‘인간의 뇌’ 대신 생존 및 본능과 관련된 ‘파충류의 뇌’를 활용한다고 무작정 비난할 수는 없다. 공무원들에게 소신과 정의를 지키라고 요구하려면 먼저 할 일이 있다. 헌법 제7조는 ‘공무원은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이며, 국민에 대하여 책임을 진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이 정도로는 안된다.

‘이유 있는 항명’의 조직 문화는 제도에서 나온다. 미국 공직자들의 용기 있는 행동은 인사권 남용이나 부당한 행사로부터 공무원을 보호하기 위한 장치가 마련돼 있기 때문이다. 연방인사처 산하 ‘실적제도보호위원회’나 ‘특별검찰관’이 그것이다. 한국에도 법적으로는 부당하거나 위법한 지시를 이행하지 않았다고 징계하거나 해임할 경우 공직자가 소청심사위원회 등을 통해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길은 열려 있다. 하지만 대부분 심증만 있지 직접적인 증거가 없기 때문에 구제받는 경우가 드물다. 상급자의 부당한 지시를 거부할 수 있는 ‘문화기본법’ 제정 움직임이 있지만 이는 문체부 공무원만 대상으로 한다. 전체 공무원으로 대상을 확대하고 행정부 및 정치권이 실효적 운영을 담보해야 기대와 현실의 조화가 가능해진다.

공직사회에 대한 사회적 감시와 견제도 필요하다. 무관심이야말로 국정농단을 용인하고 재생산한다는 것을 이번 사태가 똑똑히 보여줬다. 문제 제기를 격려하고 보호하는 문화 정착을 위한 노력도 빠져서는 안된다. 사회 스스로 정의를 추구하지 않으면서 공무원들의 맹성만 촉구할 수는 없다. “사람들이 듣기 싫어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시민의) 책임”이라는 조지 오웰의 경구가 더욱 와닿는다.

조호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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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의 대표자로 권력을 위임받은 사람은 사고력, 판단력, 표현력을 두루 갖춰야 한다. 정치인은 직무와 관련된 결정과 행위를 논리적으로 철저히 시민들에게 설득할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 그것은 위임받은 권력을 통치행위로 행사하는 정치인들이 갖춰야 할 최소한의 자격이며 도리이다. 직무 수행이 온전치 못했거나 판단 착오를 범했을 때, 더욱이 그것이 법규 위반으로 이어졌을 때는 그에 대한 입장 또한 명료한 언어로 밝혀야 마땅하다.

오늘의 정국은 권력이 우리 사회에서 의미하는 바를 숨김없이 드러냈다. 권력은 사적인 삶을 위한 도구로, 권력을 가진 자를 법치영역의 예외자로 만드는 일탈적 힘으로 사용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가치의 공유를 가능하게 하는 상식적 언어의 변질, 부재라는 현상으로 적나라하게 노출되었다. 언어는 외적 대상을 지시하기만 하는 수단이 아니다. 언어는 인간의 심리적, 정신적 본질을 드러내는 통로이자 내용이며, 공동체의 합리적 일상을 가능하게 하는 공적 기반이다. 사고의 훈련은 그래서 언어를 사용하는 방식을 배우고 다듬는 훈련과 불가분의 것이다.

대통령은 자신이 법으로부터 예외적인 존재라고 굳게 믿는 것으로 보인다. 그 법에는 문법도 포함된다. 대통령의 발화는 늘 문장구조가 부정확하고 지시대상과 표현이 불분명하다. 오죽하면 ‘박근혜 번역기’라는 패러디 게시물들이 인터넷에서 회자되겠는가. 탄핵정국 이후 신년의 이른바 기자간담회에서 일방적으로 내놓은 입장표명도 마찬가지였다. 끝이 없는 비문들로 늘어놓은 부인과 해명은 법적 책임의식이나 윤리적 성찰의 흔적을 보이지도 않았고, 논리적 정당성을 확보하지도 못했다. 최순실이 고친 연설문이 국정농단 사태 폭로의 발단이 된 건 우연이 아니다. 그러나 속속 공개되는 최순실의 말주변, 글솜씨는 또 어떤가. 그들의 두서없는 말을 이해하기 위해 녹취를 했다는 대통령 비서관의 증언은 이 사태의 핵심적 아이러니다. 대통령이 주장하는 ‘철학과 소신’이 그에게든 최순실에게든 있다면, 어법에 맞지 않는 말의 파편들을 조리없이 나열하는 발화가 바로 그것의 실체다. 철학은 언어 밖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국회의 ‘최순실 게이트’ 청문회가 계속되는 동안 최고권력을 사유화한 이들은 법적 책임을 추궁당하는 엄중한 상황에서도 윤리적 주체로서의 발언은커녕 최소한의 성의조차 보이지 않았다. 국회의 소환에 불응하다 겨우 출석한 전·현직 공무원들은 ‘모른다’와 ‘기억나지 않는다’는 말만 태연히 늘어놓으며 법치영역의 예외자로 행세했다. 무한 반복되는 그 말들은 민의를 위임받은 국회 청문회 자체를 무의미하게 만들어 시민들을 모욕했다. 헌법재판소 탄핵심판의 변론을 위해 대통령 변호인단이 구사하는 언어도 마찬가지다. 청와대를 비롯한 최고위 권력층에서 동원하는 논리와 표현 수준은, 그들에게 권력을 맡겼던 시민들에게 수치와 모멸감을 느끼게 한다. 부끄러움이 위반한 자들의 몫이 아닌 시민의 몫이라는 점 역시 견디기 힘든 부조리다.

국정농단 사태가 드러나기 시작한 지 어느덧 석 달이 지났다. 하지만 대통령과 비선 관계의 실제 내막과 뇌물 수수의 규모, 대통령의 7시간, 대통령의 성형시술 의혹을 비롯한 비선 의료진의 존재, 청와대의 비아그라와 향정신성 의약품 다량 구입, 문화계 블랙리스트의 진상 등은 여전히 의문투성이다. 검찰 수사가 있었고, 청문회에 이어 헌재의 탄핵심판과 특검이 진행 중이지만, 정확한 사실관계가 드러나지도, 납득할 만한 해명이 제시되지도 않고 있다. 참으로 불가사의한 일이다.

이 상황에서 수없는 추측성 가설들과 믿고 싶지 않은 가상의 시나리오들이 시중에 유통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이것들은 물론 음모론의 일환이다. 하지만 음모론이야말로 가장 비합리적인 것처럼 보이면서도 실은 가장 합리적인 충동의 대중적 발현이다. 합리성의 영역에서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현실을 어떻게든 이해가능한 논리로 언어화하려는 필사의 시도라는 점에서 그렇다. 이런 현상은 현 정권 출범 이래 두드러졌다. 세월호 사건이나 메르스 사태 때도 정부의 적절한 대처와 납득할 만한 해명이 없었다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다. 그러나 현 정권은 유신시대 공안정국을 떠올리게 하는 ‘유언비어’라는 낡고 낯선 말로, 끊일 날 없었던 시민들의 불안감과 의구심을 위축시키는 데만 골몰했다. 표현의 자유를 통제하고 말의 소통을 막으려고만 했다. 하지만 정윤회 문건을 ‘지라시’ 수준의 유언비어라고 규정했던 정권의 실체야말로 비선의 농단이었다. 유언비어란, 말이 있으되 말이 안된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과연 유언비어가 누구의 입에서 나오고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지금 가장 비논리적인 언어로, 가장 비합리적인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윤조원 고려대 영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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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몇 달 동안 우리 모두의 관심은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에 집중됐다. 매일같이 뉴스와 소셜미디어에서 새로운 사실이 밝혀질 때마다 사람들은 흥분하고 분노했다. 그래서 국회에서 청문회가 열리고, 이번 사태의 주체가 되는 인물들이 TV 앞에 나섰을 때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여기에 고정되었다. 몇몇 증인들의 용감한 증언이 나올 때 사람들은 박수를 보냈다. 그러나 이번 사태와 관련된 대부분의 증인들은 ‘모른다’ ‘아니다’ ‘기억에 없다’로 일관했다. 법적 구속력이 있는 유의미한 정보를 얻는 데는 실패하였기 때문에 청문회 무용론도 떠올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반 사람들은 누가 거짓말을 하고 있고, 누가 진실을 말하는지 직관적으로 알 수 있었다. 그 이유는 우리들이 대화를 할 때 언어뿐만 아니라 손짓, 몸짓, 자세나 얼굴 표정 등을 이용해 상대를 이해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이것을 통틀어 ‘비언어 의사소통’(nonverbal communication)이라 한다. 그리고 이런 비언어 의사소통 덕분에 우리는 유의미한 말이 없었어도 증인에 대해 중요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우리 인류가 언어를 처음 사용한 시점이 언제인지는 논란거리이다. 그러나 언어를 진화시키기 이전의 원시 인류도 의사소통을 했다. 이들은 주로 동작과 소리, 그림을 이용하여 의사소통을 했는데,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뜻을 전달할 수 있다. 비언어 신호는 오늘날에도 중요하다. 서로 언어가 통하지 않는 나라의 사람들이 만나도 손짓, 몸짓을 이용하여 기본적인 대화가 가능하다.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왼쪽 사진)과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오른쪽)이 각각 6일과 22일 국회에서 열린 ‘최순실 국정농단 진상규명’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청문회에 출석해 의원들의 질의를 듣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비언어 표현의 중요성을 가장 먼저 간파한 사람은 찰스 다윈이다. <종의 기원>을 발표한 후 찰스 다윈은 인간의 기원에 대해 엄청난 비판을 감수해야 했다. 이런 비판에 맞서 그는 여러 권의 책을 발표하였는데, 그중 하나가 1872년에 나온 <인간과 동물에서 감정의 표현>이다. 이 책에서 찰스 다윈은 인간과 동물의 감정 표현을 비교하면서 비슷한 상황에서 비슷한 동작이 사용됨을 강조했다. 이런 유사성은 인간과 동물이 공통 조상에서 유래했고, 그의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를 뒷받침하는 증거였다.

감정 표현에 대한 찰스 다윈의 놀라운 통찰력은 지난 몇 십 년간의 연구를 통해 대부분 사실로 밝혀졌다. 비언어 신호는 말을 할 수 없는 아기도 사용할 수 있다. 아기와 아기를 돌봐주는 사람은 울음, 웃음, 얼굴 표정을 통해 의사소통이 가능하다. 또 우리가 낯선 사람을 만나면 말을 하기 전에 먼저 비언어 신호를 이용하여 상대방과 의사소통한다. 그래서 처음 말을 걸기도 전에 상대방에 대한 첫인상이 마음속에 그려져 있다. 이런 사실은 인간의 비언어 신호가 영장류와의 공통 조상에서 유래했기 때문이다.

비언어 의사소통은 우리 사회생활 전반에 걸쳐 깊숙이 배어 있다. 사람들은 의사소통을 할 때 언어와 비언어 신호를 동시에 사용한다. 언어에도 말투, 높낮이나 억양과 같이 비언어 표현이 담겨 있다. 말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자세, 얼굴 표정, 응시, 손짓 등은 말하는 사람의 지위, 상태, 진실성 또는 성적 매력도를 암시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의사소통할 때 전달하는 의미의 반 이상(60~65%)을 비언어 신호에 의존한다. 물론 말을 하는 사람의 나이나 성별 또는 말을 하는 상황에 따라 이 수치가 크게 바뀔 수는 있지만 비언어 신호가 우리의 의사소통에 아주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분명하다.

언어와 비언어 신호는 그 내용이 서로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지만, 이 둘이 서로 상충할 수 있다. 이럴 경우 사람들은 언어보다 비언어 신호를 더 신뢰한다. 우리는 말이 값싸고, 진실을 쉽게 왜곡시킬 수 있다는 것을 직관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사람 얼굴의 윗부분은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스스로 움직이는 근육에 의해 주로 지배를 받지만, 얼굴의 아랫부분은 의지에 따라 움직이는 근육의 지배를 받는다. 그리고 두려움, 노여움, 기쁨, 슬픔, 역겨움 같은 주요 감정 표현은 얼굴 윗부분의 표정을 적어도 하나씩 포함하고 있다. 얼굴 표정 같은 비언어 신호가 얼굴 아랫부분의 움직임에 의존하는 말보다 우리의 감정을 보다 솔직하게 드러낸다는 의미이다.

비언어 신호는 언어에 비해 왜곡시키기 어렵지만 그렇다고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그리고 능숙한 거짓말쟁이는 말과 더불어 비언어 신호도 상대방을 속이기 위해 동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짓말을 할 때 쉽게 드러나는 비언어 표현이 있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비언어 표현은 동공이 팽창하며 처음에는 눈을 껌뻑이지 않다가 나중에 자주 껌뻑이는 것이다. 일명 ‘동공지진’이다. 두 번째는 얼굴에 표정이 없고, 입술이 굳으며, 머리가 꼿꼿하다. 국회 청문회에서 나타난 익숙한 광경이다.

인간은 자신의 명성을 높이기 위해, 자원을 얻거나 지키기 위해, 처벌이나 충돌을 피하기 위해 거짓말을 한다. 그리고 그런 거짓말을 탐지하기 위해 말이나 비언어 신호를 통해 상대방의 마음을 읽으려고 한다. 우리 인간이 지닌 의사소통의 속임수와 독심술은 다른 어떤 동물의 능력보다 탁월하다. 불행하게도 인간의 이런 능력은 우리 의사소통에 속임이 만연해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장이권 |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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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실 국정농단에서 비롯한 대통령 탄핵 정국이 촛불에서 횃불로 옮겨붙었다. 부문별, 계열별 전문가 집단이나 협회, 단체들의 자잘한 이해관계를 넘어서 대한민국의 기틀을 혁신하려는 이 도도한 흐름은 국민·시민 주체가 만들어내는 촛불공론장이다. 그렇다고 해서 국민이나 시민이라 불리는 주체들이 단일한 실체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따로따로 존재하지만 서로 강고하게 연대한 개별주체들이다. 이렇듯 파편화한 개인들을 엮어주는 공론장은 소셜미디어로 무장한 개인들이 자발적으로 일궈내고 있다.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다. 거대한 퍼포먼스와 섬세한 몸짓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모아내는 시민운동가와 문화예술인들의 역할도 매우 크다.

탄핵안 가결 이후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기다리는 동안 변혁의 에너지를 지켜내는 일은 100만 촛불의 몫으로만 남겨진 것은 아니다. 그 힘을 연결해주는 매개자들의 지속적인 대화와 협업이 더욱 중요한 시점이다. 한겨울 추위가 강해질수록 현장을 지키는 문화예술인들의 강단있는 활동이 도드라져 보인다. 단 한 명의 입건 사례 없이 평화롭게 이어온 촛불집회는 공연을 매개로 한 정서적 공감의 장이다. 그것은 장르와 세대를 넘어 정신적 가치를 공유하게 만드는 예술의 역할을 재확인시켜준다. 민중가요와 대중가요가 공존하는 촛불문화제는 투쟁의 장을 축제의 장으로 확장시켜 놓고 있다.

문화예술인들이 12일 서울 대치동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특검 사무실 앞에서 박근혜 정부의 문화예술인 블랙리스트 작성 의혹과 관련해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 등을 특검에 고발하기에 앞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준헌 기자

여기에 더해서 시각예술가들의 다양한 표현물들이 집회장을 풍요롭게 만들어가고 있다. 이들은 텍스트 작업은 물론 걸개그림과 포스터, 깃발, 퍼포먼스, 스티커, 조형물에 이르기까지 풍자와 비판정신 가득한 작품들로 광화문광장을 예술의 거리로 만들고 있다. 100만의 촛불파도는 그 자체로 하나의 거대한 퍼포먼스여서 예술적 이벤트로 주목받고 있기도 하다. 최근에는 광장의 갤러리 ‘궁핍현대미술광장’을 열고 개관전 ‘내가 왜’를 시작했다. 촛불이 만들어내는 감동의 공론장을 기록하고 그것을 재해석하고 확산하는 예술적 소통공간이다.

이제 광화문광장을 가득 메운 시민들의 마음은 국가위기에 대한 정서적 공감을 넘어 이성적인 합의로 진화하고 있다. 이번 일의 초기부터 광장에 자리 잡고 광화문텐트촌을 꾸리고 있는 예술인들은 현재와 미래를 동시에 바라보고 있다. 집회 현장의 공연 및 전시 프로그램을 통하여 광장의 에너지를 집결하는 한편, 그 너머 새로운 사회를 열망하는 문화예술 개혁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언론 보도가 아무래도 비리의 폭로에 주력하느라 차분한 성찰과 대안 논의가 부족하다는 점을 생각해볼 때 이들의 광장토론은 성숙한 시민사회의 힘을 실감하게 한다.

이번 국정농단 사건이 특히 문화체육관광부의 정책과 사업 분야에 집중해 있다는 점에서 문화예술인들이 느끼는 자괴감은 인내의 한계를 넘어섰다. 예술위원회를 비롯한 여러 곳에서 문화예술인 블랙리스트가 돌았다. 민관협치 개념으로 출범했던 예술위원회는 오작동을 연발했다. 공공기관의 인사 문제 또한 무방비로 농단의 무대로 전락했으며, 문화융성의 이름으로 깨알 같은 사익편취가 만발했다. 일이 이 지경에 이르는 동안 문체부의 행정 시스템은 작동하지 않았다. 행정적 과실 유무 여부를 떠나서 공직자 윤리의 관점에서 보더라도 참담하기 그지없으니, 이제 문화예술의 영역에서도 대한민국의 기틀을 다시 논의할 때가 왔다.

국가단위 행정을 지자체단위 행정으로 세분화·지역화하고, 아카데미와 시장과 행정이 주도하는 제도예술과 그 바깥 비제도예술의 공존과 균형을 맞추며, 예술위원회를 되살려 민관협치를 복원하고, 기관장 인선 관련 전문성 강화 및 국정농단의 비리 관련 부역행위에 관한 행정적·윤리적 책임을 묻는 일 등 무수한 사안들이 있다. 나아가 국정 전반에서 문화예술이 차지하고 있는 위상에 대해 매우 근본적인 재구조화 논의가 절실하다. 지금 우리가 대면하고 있는 최순실은 현 정권의 비선 실세일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도처에 똬리 틀고 있는 모순덩어리의 또 다른 이름이기 때문이다.

김준기 | 제주도립미술관장·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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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국 땅에서 벌어지고 있는 국정농단이라는 이름의 드라마(?)를 지켜보면서 어두침침하고 섬뜩한 영화 속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매트릭스>의 네오가 말한 것처럼 현실은 어쩌면 인공지능 컴퓨터시스템이 우리 뇌 속에 심어놓은 거대한 환상에 불과한지 모른다. 무엇이 현실이고 무엇이 꿈인가. 작금의 현실에 빠져들수록 디지털 지하세계 ‘다크웹’ 속의 극단적인 범죄자들을 마주하는 느낌이다.

다크웹은 원래 표현과 언론의 자유를 보호하기 위해 탄생했다. 특히 독재국가의 시민들이 정보를 교환하고, 언론자유를 마음껏 누릴 수 있도록 하는 익명성 보장이 존재 이유였다. 하지만 익명성 보장이라는 매력적이고 강력한 기능은 범죄자들에게 오히려 반가운 툴이었다. 이제 다크웹이라고 하면 은밀한 범죄왕국, 혹은 거대한 불법 거래시장 등을 연상시킨다. 살인청부, 보복 의뢰, 인신매매, 장기밀매 등의 거래까지 이어지기도 한다. 접속하기 위해서는 토르라는 소프트웨어 툴을 통해 가능한데, 다운로드 수만 2015년 기준 1억6000만건에 달한다고 한다.

얼마 전 우병우는 청와대 민정수석을 그만둔 후 텔레그램에 가입했다. 민정수석실에서 국가의 모든 고급정보를 접하던 그가 민간인이 된 후 한 첫 번째 행동이었다. 그는 정보조작과 교란, 왜곡을 바로잡아야 할 역할을 방기하고, 오히려 대통령에게 법적논리를 제공하는 등 국정논란의 거대한 축을 형성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한동안 국정조사 증인으로 나서지 않기 위해 그가 숨어들어간 곳이 다크웹은 아니었지만, 강력한 보안기능을 갖춘 메신저 텔레그램이었다. 2년 전 검찰과 경찰의 카카오톡 대화록 사찰과 검열 논란이 생기면서 카카오톡 탈출 러시가 벌어졌다. 1주일 만에 200여만명이 카카오톡을 떠나 텔레그램으로 이동한 것이다.

8일 오후 서울 프레스센터 언론노조에서 고 김영한 비망록의 민간인,법조계 사찰에 대한 분석 기자회견을 열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청와대의 민변,카카오톡 SNS,종교계을 계획 통제하려 했던 내용등을 공개하고 있다. 김기남 기자

나는 당시 ‘카카오톡 사찰의 교훈’이라는 칼럼에서 카카오톡 사찰이 인터넷 산업을 위축시키는 것은 물론 창조경제의 기본원칙과도 맞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창조경제를 주창하는 정권이 공안정국을 조성, 국내 이용자들을 불안케 해 결과적으로 인터넷 산업을 위축시키느냐는 것이 칼럼의 요지였다. 최근에서야 창조경제가 그처럼 어설프고 엉성하게 진행되었던 이유를 깨달았다.

국정농단의 주역인 최순실 일당은 창조경제까지 말아먹고 있었다. 문화융성사업 예산을 유린하던 차은택은 한동안 창조경제추진단장으로 국민혈세에 빨대를 꽂고 지속적으로 이권을 강탈해 나가고 있었다. 최순실은 아직도 태블릿PC가 자신의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데이터 분석기술로 휴대폰 사용자가 어느 곳을 돌아다녔는지를 분석해 24시간 이후 사용자가 어디에 있을지, 20m 이내의 정확성으로 예측하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최순실은 수많은 디지털 흔적을 남겨두고 오리발을 내밀고 있다. 대통령의 연설문과 대선 관련 자료, 외교문서까지 망라돼 있는 태블릿에 셀카까지, 모든 게 드러났는 데도 말이다. 권력을 등에 업고 장관·차관은 물론 국가기관의 인사를 전횡하고, 딸을 부정입학시키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공무원까지 내쫓는 모습은 다크웹의 위험한 범죄자와 다를 바 없다. 청와대 안에서 벌어진 민정수석과 문고리 3인방의 정보독점과 왜곡은 국가 시스템을 붕괴시켰다. 그들은 그저 국정농단 주역인 최순실의 심부름꾼이고, 정보를 왜곡 조작하는 시정잡배와 다를 게 없었다. 사악한 정치권력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정보조작을 통해 여러 사람의 운명을 바꾸어 놓았다. 박관천 전 경위나 조응천 전 비서관, 노태강 전 문화체육관광부 체육국장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권력이 말하면 거짓도 진실이 된다.

혼란스럽다. 현실은 막장드라마보다 신선(?)하고 추악했으며 상상을 초월했다. 우리는 마약, 폭발물, 장물, 위조화폐, 장기밀매 등이 넘치는 다크웹이라는 가상공간보다 위험하고 살벌한 사회에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분노와 사기, 음해와 협잡, 사찰과 갑질, 완장질 등은 소통하지 않고 군림하려는 정권이 남겨준 더러운 적폐다. 칼을 막을 수 있는 방패는 없다. 서글픈 현실이지만 마음만 먹고 달려든다면 완벽한 보안은 존재하지 않는다. 보안시스템은 책임자가 반드시 매뉴얼을 지켜야 한다. 국가 개조작업을 통해 사회와 국가를 혼란으로 몰아넣는 권력의 정보조작이나 왜곡 등의 적폐를 제거해야 한다. 그래서 정직하고 공평한, 특권 없는 사회를 우리의 아이들에게 넘겨줘야 할 것이다.

최희원 ‘해커묵시록’ 작가·인터넷진흥원 수석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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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최고 금수저인 박근혜 대통령과 재벌은 닮은 점이 많다. 무엇보다 한 줌도 안되는 지분으로 권력을 향유하고 있다. 지지율 4%에 국회의 탄핵소추안 가결로 직무정지 상태지만 박 대통령은 여전히 새누리당과 정치권을 쥐락펴락한다. 이정현 같은 친박계 의원들을 내세워 새누리당을 장악하고, 새누리당을 통해 입법·행정·사법부 관료조직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방식이다. 재벌 총수들은 더 심하다. 지분율이 1%도 안되지만 순환출자를 이용해 그룹 계열사 전체를 지배한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에버랜드 대주주로 등극한 뒤 에버랜드 보유 지분으로 삼성생명과 삼성전자 등을 지배했다.

형제자매와 연을 끊고 산다는 점도 비슷하다. 박 대통령 동생 지만씨는 “피보다 진한 물이 있다”는 말로 누나와의 관계를 표현했다. ‘진한 물’은 최순실씨다. 박 대통령 동생 근령씨의 남편 신동욱씨도 “아내가 해야 할 일들을 최순실씨가 했다. 최씨로 인해 형제간의 관계가 나빠졌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 삼남매는 어머니 고 육영수 여사가 세운 육영재단의 소유권을 놓고 다툼을 벌였다. 박 대통령이 처음 육영재단 이사장을 맡았던 1982년에는 최태민씨를 고문으로 임명했다는 이유로 근령·지만씨가 반기를 들었다. 이후 재단 이사장에 취임한 근령씨는 동생 지만씨와의 송사로 조용한 날이 없었다. 재벌 2·3세들도 유산 상속 등을 놓고 암투와 소송이 다반사로 일어난다. 삼성가 이맹희·건희 형제의 분쟁, 현대가 정몽구·몽헌 형제의 ‘왕자의 난’이 과거 일이라면 효성(조현준·현문), 금호(박삼구·찬구), 롯데(신동주·동빈)의 골육상쟁은 현재 진행형이다. 유산 다툼은 그 재산이 이들의 노력으로 형성되지 않았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6일 오전 서울역에서 시민들이 최순실 게이트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두한 재벌 총수들의 모습을 TV를 통해 보고 있다. 이석우 기자

배신을 혐오하는 것도 박 대통령과 재벌의 공통점이다. 이들은 조폭 우두머리처럼 부하들에게 맹목적인 의리와 복종을 강요한다. 윤리나 도덕, 개인의 가치 판단이 끼어들지 못하게 한다. 삼성은 이건희 회장의 차명 비자금 등을 폭로한 김용철 변호사를 배신자로 낙인찍었다. 현대차는 승객 안전을 위협하는 에어백 센서 결함과 세타2 엔진 불량 문제를 경향신문 등에 제보한 김모 부장을 해고했다. 한화는 ‘최순실 국정농단’ 국정조사 청문회에 증인으로 나와 정권과 재벌의 유착을 비판한 주진형 전 한화증권 사장을 눈엣가시처럼 여기고 있다. 박 대통령이 유승민 의원을 내치고, 친박이 비박을 욕하는 것과 판박이다. 배신을 혐오하는 것은 자신이 떳떳하지 못하기 때문이고, 배신자를 응징하는 것은 그만큼 배신이 두렵기 때문이다. 배신자가 늘면 이들이 쌓은 성은 저절로 무너진다.

박 대통령은 검찰에 당했다. 대통령직에서 물러나면 감옥에 갈 가능성이 높다. 박 대통령은 3개월 전만 해도 우병우 전 민정수석을 통해 검찰을 완전히 장악했다고 생각했다. 국정농단 사건에 검찰 수사가 본격화하자 최고의 특수부 검사라는 평판을 들었던 최재경 전 인천지검장을 민정수석으로 앉혔다. 그러나 결국 김수남 검찰총장 지시에 따라 움직인 40여명의 검사들에게 탈탈 털렸다. 막강한 재벌 총수들도 검찰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경우가 있다. 평소 다양한 방법으로 검찰 수뇌부를 관리하고 수사가 시작되면 수십억원의 수임료를 줘가며 검사 출신 전관 변호사를 고용한다. 하지만 검사 비리 문제 같은 것으로 검찰이 코너에 몰린 상황이라면 도움이 안된다. 검찰은 재벌의 뒤통수를 치면서 한순간에 정의의 사도로 변신하는 신공을 발휘한다. 최태원(SK)·김승연(한화)·이재현(CJ) 회장이 그렇게 해서 감옥에 가게 됐다는 시각이 있다. 작년에는 포스코가, 올해는 롯데가 그런 이유로 검찰에 당했다고 주장한다. 물론 유죄 판결을 받더라도 전직 대통령은 화합을 명분으로, 재벌 총수는 경제를 살려야 한다는 이유로 사면을 받는다. 

일상의 자유로움에서 박 대통령과 재벌을 능가할 수 있는 사람은 지구상에 없다. 숙소에 누워 있어도 알아서 보고가 올라오고, 가만히 있어도 저절로 지시가 내려간다. 없는 듯하면서도 있고, 있는 듯하지만 확인할 수 없다. 이들은 오로지 질문을 할 뿐 답변은 하지 않는다. 누가 적어준 것을 그대로 읽지 않고 자기 생각대로 말을 하면 도무지 무슨 뜻인지 알 수 없다. 수천만 시민이 TV로 바라보고 있는데도 얼굴빛 하나 변하지 않고 거짓말을 한다. 이런 소소한 것까지 박 대통령과 재벌은 닮았다. 논어에 ‘인지장사 기언야선(人之將死 其言也善)’이라는 말이 있다. 사람이 죽음을 앞두면 선해진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그러나 이들은 나이를 먹어도 늙지 않고 치명적인 병에 걸려도 죽지 않는다. 스스로는 개과천선하기 어렵다. 바로 이것이 추운 겨울에도 시민들이 광장에서 촛불을 놓지 못하는 이유이다.

오창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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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농단 세력들이 전면적인 반격을 시도하고 있다. 최순실씨는 그제 열린 첫 재판에서 모든 혐의를 부인했다. 검찰의 공소사실 가운데 8가지는 박근혜 대통령과 공모했다는 것인데 공모 사실 자체가 없으니 무죄라는 논리도 폈다. “죽을죄를 졌으니 용서해 달라”며 검찰청에 들어서면서 머리를 조아리던 게 불과 50일 전 일이다. 앞서 박 대통령은 헌법재판소에 낸 탄핵심판 답변서에서 ‘헌법·법률 위반은 모두 사실이 아니고, 최순실의 비리를 전혀 몰랐다’며 국회가 제시한 13가지 탄핵 사유를 모두 부인했다. 몇 차례 반성하는 대국민사과를 일방적으로 하고 눈물도 흘리는 듯하더니 이제 와서는 ‘내가 무슨 잘못을 했느냐’는 식이다. 갖은 비리에 찰떡궁합을 과시하던 두 사람은 기억상실증도 동시에 걸리는 모양이다. 최소한의 양심마저 내팽개친 이들의 행태에 분노가 치민다.

[김용민의 그림마당]2016년 12월 21일 (출처: 경향신문DB)

박 대통령의 헌재 답변서와 최씨의 재판 발언, 최근 불거진 새누리당 친박계와 최씨 측근의 국정조사 말 맞추기 의혹 등을 종합하면 모든 것이 치밀한 각본에 따라 이뤄졌다는 의심이 든다. 박 대통령은 헌재 답변서에서 최씨와 안종범 전 정책조정수석, 정호성 전 비서관 등의 1심 재판 완료 후에 헌재 결정이 내려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씨가 재판에서 혐의를 부인하는 등의 방법으로 시간을 끌고, 이를 이용해 헌재의 탄핵 결정도 최대한 늦추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국정혼란이 길어지든 말든 자신의 몸을 건사해 반전의 기회를 엿보겠다는 심산이다. 새누리당 친박 의원들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청문회에서 대통령 연설문 등이 들어있던 태블릿PC가 최씨 것이 아니라는 심증을 시민들에게 퍼뜨리려 한 것도 작전의 일종이다. 최씨는 이 태블릿PC가 자신의 것이 아니라며 재판부에 검증을 요청했다. 하지만 태블릿PC가 최씨 소유가 아니라고 해도 비선에 국민주권이 훼손되고 국정이 유린된 이 사건의 본질은 달라지지 않는다.

박 대통령과 최씨의 본심이 확인된 만큼 박영수특검팀은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한다. 특검팀은 20일의 준비기간을 마치고 오늘부터 본격적인 수사에 착수한다. 특검팀은 박 대통령의 뇌물죄 입증 등에 수사력을 집중하면서도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과 우병우 전 민정수석 같은 이들의 비리도 밝혀야 한다. 범죄 소굴이나 마찬가지인 청와대 압수수색을 실수 없이 마쳐야 함은 물론이다. 헌법재판소는 최대한 신속하게 재판 절차를 진행해 탄핵 결정을 늦추려는 국정농단 세력에 경종을 울려줘야 한다. 법원도 매일 재판을 연다는 각오로 국정혼란의 조기 수습을 바라는 시민들의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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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 이정현 대표의 입가에 모처럼 미소가 번졌다. 목소리와 표정에서 감정을 잘 숨기지 못하는 분이다 보니 기쁜 일이 있었던 모양이다. 그 자리는 16일 사퇴 기자회견이었다. 국정농단 사태에 떠밀려 임기 2년 당 대표직을 4개월 만에 물러나면서 웃음이 나온 것이다. 일주일 전 대통령 탄핵안이 국회에서 가결됐다는 소식에 “혼밥, 혼술은 해봤지만 ‘혼박’은 처음이었다. 날아갈 것 같다”면서 박수치며 기뻐했던 사람들은 ‘이건 뭐지’라고 했을 장면이다.

 

이른바 친박이라는 사람들. 자신들이 따랐던 지도자가 국민들에 의해 쫓겨날 상황이지만 이를 악물고 버티고 있다. 작금의 현실을 상상조차 해보지 못한 홀로코스트 같은 일로 여길지도 모르겠다. “왜 살아야 하는지를 아는 사람은 그 어떤 상황도 견뎌낼 수 있다.” 국민들이 어떻게 보건 중요하지 않았다. 비박 인사들을 경멸하는 말을 쏟아내다가도 원내대표 경선이 임박하자 언제 그랬냐는 듯 비굴 모드로 들어가도 상관없었다. 어찌됐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살아남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치열하게 정치를 한 적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보였다.

 

원내대표 경선을 하던 날, 한국갤럽의 주간 여론조사 결과가 나왔다. 새누리당 지지율은 15%. 더불어민주당이 40%를 찍었으니 반토막도 안되는 수준이다. 철옹성 같았던 ‘박근혜 지지율’은 흔적조차 없이 신기루처럼 사라졌고, “최소 지지율이 35%”라던 새누리당은 제2야당과 지지율 경쟁하는 처지가 됐다. 그 이유는 다 아는 일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당이라면 무슨 문제가 있는 것인지, 다수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귀 기울여 신속하게 과감한 대책을 내놔야 한다. 그런 생각은 눈곱만큼도 하지 않고 있다. 살아있는 정치집단이라고 볼 수 없는 지경이다.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왼쪽에서 세번째)가 16일 국회 당 대표실에서 최연혜·조원진·이장우 최고위원(왼쪽부터)과 지도부 일괄 사퇴 기자회견을 하면서 웃는 얼굴로 인사하고 있다. 권호욱 기자

 

국민들은 국정농단 사태가 알려지자 ‘이것이 나라냐’라는 본질적 질문을 던졌다. 돌이켜보면 세월호 참사 때도, 메르스 사태 때도 국가의 존재 이유를 묻는 같은 질문이 던져졌다. 국민이 국가를 믿지 않게 되고, 국가와 국민은 분리됐다. 새누리당도 그랬다. 대통령의 오만·독선을 견제할 의지나 능력은커녕, 그 품 안에서 편안함을 느꼈다. 새누리당도 국민들로부터 분리됐다. 4·13 총선에서 ‘여소(與小)’로 전락한 이유였다. 대통령이 최순실이 엮어놓은 실에 따라 움직이는 허깨비였다는 것이 드러나도 대통령 지키기에 급급한 것이 친박의 실상이다. 이런 집단이 한국 정치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정치세력으로 군림해왔다.

 

친박들의 생각은 달랐다. 이념과 노선 따위는 애시당초 ‘살아야 할 이유’가 아니었다. ‘박근혜’를 버리면 더 이상 나란 존재도 의미가 없어지는 것이었다. 촛불 민심이 “새누리당을 해체하라”고 하고, 여의도 당사에 계란이 날아들어도 눈을 감고 귀를 막았다. 4·13 총선에서 갖은 무리수를 써가며 배지를 달아준 ‘진실한 사람들’은 믿는 구석이었다. 당의 생리도 잘 알았다. 새누리당은 보수적 정서와 행동, 현상유지적 가치를 통해 오랫동안 일관성과 동질성을 유지해왔다. 다른 정당을 흡수해 세를 불리기는 했지만 내부가 쪼개진 적은 없었다. 지금 상황에 대입하면 ‘비박은 집단적으로 뛰쳐나가지 못한다’는 게 친박의 구상으로 정리된다. 친박의 농단으로 4·13 총선에서 참패했음에도 넉 달 뒤 대통령을 향한 충성심에서 둘째라고 하면 서러워할 친박 당 대표를 배출하지 않았던가.

 

비박도 한심하기는 매한가지다. 친박 추대 후보 정우택 의원이 경선에서 얻은 표는 62표. 대통령 탄핵안 표결에서 반대 56표보다 6표가 더 많았다. 정 의원이 “내년에 좌파정권, 진보좌파가 집권하는 것을 반드시 막아야 한다”고 호소할 때, 비박 단일후보 나경원 의원도 같은 얘기를 했다. 친박에 반대하는 사람들이란 이미지 이외에는 변화의 비전을 보여주지 못했다. 무엇이 잘못됐는지에 대한 진단도 틀렸고, 아무것도 버릴 생각이 없었다. 오로지 보수정권 재창출을 목표로 삼았으니 친박이나 비박이나 ‘거기서 거기’라고 해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정우택 원내대표는 “저희 당은 보수정권으로 대표적으로 추진한 정책이 뒤바뀌지 않게 최대한 노력할 것”이라고 했다. 비박들을 적당히 비상대책위원회에 끼워주는 방식으로 포장지만 바꿔 놓고 달라졌다고 할 태세다. 눈엣가시였던 이 대표를 위시한 친박 핵심들은 2선으로 물러나지 않았느냐면서.

 

친박이 비박과의 팽팽한 힘겨루기에 이겼다고 좋아할 일은 아니다.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이 종종 쓰는 표현이 ‘제궤의혈(堤潰蟻穴·작은 개미 구멍이 둑을 무너뜨릴 수 있다)’인데 둑은 이미 무너지고 있다. 3년4개월 뒤 21대 총선에서 몇 명이나 살아남을지는 두고볼 일이다.

 

안홍욱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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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의 권력은 막강하다. 현대 사회에서 합법적으로 타인의 인신을 구속할 수 있는 권한은 오로지 사법부와 의료인에게만 허용되어 있다. 최근 정신보건법 개정으로 절차가 까다로워지기는 했지만, 정신과 전문의는 환자의 의사와 상관없이 환자를 정신병원에 입원시킬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다. 의료의 권력이 정신병원 강제입원 같은 특수한 상황에만 행사되는 것은 아니다. 일반인의 의료 이용 전반에 걸쳐 행사되고 있다.

 

의료의 권력이 보편적으로 확립된 것은 20세기 초 이후에 형성된 현상이다. 그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의료 이용의 중심 공간은 병원이 아니었다. 빈민층은 수용소와 다름없는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지만, 중산층 이상의 환자는 의료인을 자신의 집으로 불러서 치료를 받았다. 의료인이 환자를 통제할 수 있는 여지는 매우 적었다. 그러나 의료기기와 기술이 발전하고 의료조직이 체계화되면서 병원이 의료 이용의 중심 공간으로 자리 잡게 됐고, 중산층 이상의 환자도 병원에 입원해서 치료를 받게 됐다. 병원이라는 통제된 공간에서 의료인은 환자의 일거수일투족에 개입할 수 있게 됐다. 의료인은 지시하고 환자는 따라야 하는 고전적인 의사·환자 관계는 점차 문화로 굳어졌다. 이런 관계는 법에도 반영되어 있다. ‘보건의료기본법’은 모든 국민은 보건의료인의 정당한 지도에 협조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질병을 잘 치료해서 건강을 회복하기 위한 목적이라고는 하지만, 일반적인 상거래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소비자 의무 조항이다.

 

국민의당 이용주 의원이 14일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국정조사특별위원회 3차 청문회에서 피멍 자국이 있는 박근혜 대통령 얼굴 사진을 들고 미용 시술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김창길 기자

 

국가권력은 면허 제도를 통해 의료의 권력을 배타적으로 보장하고 있다. 면허가 없거나, 면허 범위를 벗어난 일체의 의료 행위는 불법으로 간주되어서 처벌받는다. 고 백남기 선생의 사망진단서 논란에서도 확인한 바와 같이, 모든 의사가 아니라고 해도 주치의가 그렇다고 하면 그 누구도 해당 환자의 사망진단서에 손을 댈 수가 없다. 현대사회에서 타인의 몸에 칼을 대고도 처벌받지 않는 이는 의료인이 유일하다.

 

의료의 권력은 천부적인 것이 아니다. 근대 의료가 확립되는 과정에서 형성되었고, 사회로부터 부여받은 일종의 공적 권력이다. 그런 만큼 의료인은 높은 책임성과 윤리성을 요구받는다. 일부 의료인은 왜 우리에게 일반인보다 더 엄격한 이중 잣대를 들이대느냐고 불만을 터뜨리기도 한다. 더 높은 책임성과 윤리성을 거부한다면 의료의 배타적 권력은 존립 근거를 잃게 될 것이다. 그런 만큼 책임성과 윤리성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의료인 스스로를 위해서도 중요하다.

 

그러나 사망진단서 논란부터 ‘박근혜 의료 게이트’에 이르는 일련의 사태에서 일부 의료인이 보인 모습은 이런 기대와는 거리가 멀었다. 사망진단서 논란은 권력화된 의료의 힘을 실감하게 했다. 권력과 가까운 의료인과 병원에 주어진 각종 특혜 의혹은 우리 사회의 고질병인 정경유착과 판박이처럼 닮아 있다. 아직 진상이 다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진료기록 조작과 위증이 사실이라면 이것 역시 의료인의 책임성과 윤리성을 전적으로 위배한 것이다. 환자의 정보보호라는 의료인의 의무 조항이 진료기록 폐기와 조작을 감추는 방패막이로 악용하라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일부 의료인이 보인 모습은 대다수 의료인의 정서와도 동떨어진 것이었다. 의료계의 대표 단체인 대한의사협회는 사망진단서 논란 초기에 백남기 선생의 사인은 외인사라는 공식 입장을 발표했다.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에 대한 대다수 의료인의 분노도 일반인의 그것과 다르지 않았다. 대한전공의협의회 소속의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은 촛불집회 내내 광화문에 진료소를 차려서 촛불시민을 진료했다. 그러나 연이어 터져 나온 의료 게이트 파문은 의료인들의 이런 노력을 무색하게 했다.

 

권력에 유착된 의료는 국민으로 하여금 의료인의 책임성과 윤리성을 의심하게 했고, 최고 권력자가 누린 독특한 ‘웰빙 의료’는 정권의 정당성을 부정하게 만들었다. 대통령이라고 미용시술을 하지 말고, 각종 주사제를 맞지 말란 법은 없다. 우리나라 국민이 그런 것을 가지고 트집 잡을 정도로 야박하지는 않다. 그러나 정도껏 해야 했다. 때와 장소를 가리는 눈치는 있어야 했다. 대통령에게 특별한 의료를 보장하는 이유는 그가 국민의 안위를 책임지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국민의 안위를 제쳐놓고 웰빙하라는 것이 아니다.

 

이번 사태에서 권력에 유착된 의료와 권력자의 독특한 웰빙 의료는 한 몸이었다. 국민은 독특한 웰빙 의료를 누리던 권력자로부터 권력을 거두어들였다. 권력에 유착된 의료가 다시 기승을 부리지 못하도록 경계하는 것은 상식 있는 의료인들이 스스로를 위해서라도 해야 할 일이다.

 

이진석 서울대 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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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헌법재판소의 움직임에 시선이 쏠려 있다. 만약 헌법재판소에서 탄핵이 인용되면, 박 대통령은 헌법에 따라 즉각 파면되고 60일 이내에 후임자를 뽑기 위한 선거가 실시된다. 헌재의 결정 시점에 따라 대선시기가 달라질 수 있고, 대선후보로 나설 지방자치단체장들은 퇴임 여부를 결정해야 하는 등 정치일정은 매우 급박하다.

 

그런데 박 대통령이 특검 수사를 받게 될 현시점의 대통령기록 처리와, 실제 탄핵인용이 될 경우 대통령기록 이관에 관한 규정이 명확하지 않아 대통령기록 파기와 멸실이 우려된다. 대통령기록물법은 ‘대통령기록물생산기관의 기록관의 장은 대통령 임기종료 6개월 전부터 이관 대상 대통령기록물의 확인·목록작성 및 정리 등 이관에 필요한 조치를 강구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가 정상적으로 임기를 종료한다면, 2017년 8월25일에 대통령기록 이관을 준비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탄핵이 인용되면 법에서 명확한 이관 규정을 두고 있지 않다.

 

그뿐만 아니라 현시점에 청와대가 대통령기록을 체계적으로 보존하고 이관에 협조적일지도 매우 우려스럽다. 최순실 특검법 수사대상 1호는 ‘이재만·정호성·안봉근 등 청와대 관계인이 민간인 최순실 등에게 청와대 문건을 유출하거나 외교·안보상 국가기밀 등을 누설하였다는 의혹사건’이다.

 

세종시에 위치한 대통령기록관 4층에 역대 대통령 선거 당시 사용됐던 벽보와 유세사진이 전시돼 있다. 연합뉴스

 

특검법에 문건 유출에 관한 수사를 명시하고 있으니, 증거자료로 활용될 대통령기록이 파기될 가능성도 높다. 하지만 현재 특검 및 대통령기록관은 청와대에서 생산된 대통령기록에 관한 어떤 법 조치를 하지 않고 있다. 실제 대통령기록을 전달받은 최순실은 지난 10월 독일 도피 기간 ‘더 블루케이’에서 사용하던 컴퓨터 폐기를 지시했고, 측근들은 컴퓨터 5대의 하드디스크를 포맷한 뒤 망치로 파기했다. 만약 이런 일이 청와대에서 일어나면 체계적인 수사도 힘들 뿐만 아니라 어렵게 시행하고 있는 대통령기록물법도 유명무실화될 수 있다.

 

따라서 특검과 대통령기록관은 위 사태를 막을 수 있는 적극적인 조치를 해야 한다. 우선 박영수 특검은 대통령기록관의 협조를 얻어 박근혜 정부 대통령기록 생산 실태를 확인해야 한다. 현재 대통령기록물법에는 청와대가 대통령기록물의 원활한 수집 및 이관을 위하여 매년 대통령기록물의 생산현황을 대통령기록관에 통보하도록 하고 있다. 따라서 대통령기록관은 이 통계를 박영수 특검과 공유해야 하며, 통보되지 않은 대통령기록에 관한 실태 파악에도 나서야 한다.

 

다음으로 현재 청와대 대통령기록에 대한 파기 및 증거인멸을 하지 못하도록 특검은 압수수색 등 적극적인 조치를 취해야 한다. 그리고 수사과정 중에 대통령기록의 파기 등이 확인되면 ‘증거인멸죄’ 등이 아닌 대통령기록물법 무단파기 등으로 기소한다는 의지를 피력해야 할 것이다. 형법상 증거인멸죄는 실효성 있는 처벌을 하기 힘들었으나, 대통령기록물법상 무단파기죄는 ‘10년 이하 징역’으로 강력한 처벌조항을 두고 있다.

 

마지막으로 실제 헌법재판소의 탄핵인용이 실현되면, 대통령 이관에 관한 현 정부의 협조를 얻기가 어려울 수 있다. 법에서는 기록 생산기관이 폐지될 때 대통령기록물 생산기관의 장은 지체 없이 그 기관의 대통령기록물을 대통령기록관으로 이관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탄핵이 인용되는 순간 청와대 전체의 직무가 마비될 수 있어, 기록 이관 절차를 이행하기 어려울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대통령기록관은 인용결정이 난다는 가정하에 대통령기록물을 인수할 수 있는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한다.

 

역설적이게도 최순실 국정농단을 드러낸 것도 대통령기록이었다. 김영한 전 민정수석이 남겨둔 비망록이 얼마나 큰 증거로 활용되고 있는지 똑똑히 보고 있다. 이렇듯 대통령기록은 박근혜 정부의 수많은 문제점을 보여줄 수 있는 ‘사초’이다. 박근혜 정부에서 생산된 대통령기록을 향후 역사적 증거로 활용할 수 있도록 지금부터 보호조치를 서둘러야 한다.

 

전진한 ‘바꿈’ 상임 이사·알권리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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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 친박근혜계가 요즘 하는 일을 보면 그 막무가내 행태를 표현할 마땅한 말을 찾기 어렵다.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을 부른 폐족으로 자성하기는커녕 시민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 막 나가고 있다. 그제는 박 대통령을 징계하려는 당 윤리위까지 편법적으로 장악했다. 친박 일색의 최고위원회가 이진곤 윤리위원장과 사전 협의 없이 친박 성향 위원 8명을 추가로 임명했다. 기존 윤리위원 7명보다 더 많은 위원을 추가 투입해 대통령 보호막을 치고 나선 것이다. 그래 놓고 “애초 윤리위 구성에 균형이 맞지 않았다”고 변명하고 있다. 꼼수와 편법도 모자라 오리발까지 내미는 처사에 할 말이 없다. 참다못한 이 위원장과 기존 위원들은 일괄 사퇴를 선언했다.

새누리당 친박계 좌장 격인 서청원 의원(왼쪽)이 13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친박계 주류 모임인 ‘혁신과 통합 보수연합’ 출범식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권호욱 기자

친박처럼 몰상식한 정치 집단은 헌정사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다. 민주 국가의 정상적인 정치 집단이라고 말할 수도 없다. 박 대통령에 대한 친박의 맹목적 충성은 왕조시대를 방불케 한다. 박 대통령의 정치적 노예라는 표현이 백번 맞다. 박 대통령에 대한 의리를 강요하며 후배 정치인들을 겁박하는 서청원 의원의 조폭적 행태 역시 목불인견이다. 촛불시민의 분노를 불렀던 김진태 의원은 어제 또다시 “친박이 아무리 주홍글씨라고 해도 나라를 팔아먹진 않았다. 종북 좌파들에게 나라를 넘겨주게 생겼다”고 했다. 국정농단 동조 세력이 순국자들인 양 행세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수준의 사람들이 박 대통령을 에워싸고 국정을 이끌었으니 탄핵으로 귀결된 것이 당연하다. 친박은 자신들의 모임 명칭을 ‘혁신과 통합 보수연합’이라고 했다. 창립선언문에서는 “정통 보수세력으로서 헌법과 법치주의를 수호하겠다”고 했다. 혁신과 법치주의를 표방하다니 그 뻔뻔함에 실소를 금할 수 없다.

친박은 16일 새 원내대표로 정우택 의원을 밀기로 어제 집단 결의했다. 탄핵을 부른 데 대한 반성은커녕 또다시 당권을 장악하겠다는 것이다. 촛불시민의 의식수준을 얕잡아보지 않고는 할 수 없는 오만한 행동이다. 신임 원내사령탑은 조만간 이정현 대표가 사퇴하면 당 대표 권한대행까지 겸직하게 된다. 한 줌도 안되는 계파의 이익을 위해 정치를 오염시키는 친박세력이 다시 당을 장악하게 해서는 안된다. 정 의원 개인에 대한 호불호의 문제로 접근할 사안이 아니다. 친박을 지금 징치하지 않으면 박근혜 정권 같은 불통 정권이 다시 나오지 않으리란 법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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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어리석은 행위가 세계적인 사건이 되어버렸다. 국정농단을 둘러싼 참혹한 진실이 양파껍질처럼 벗겨지면서 나라는 국제 망신이고 국민들의 분노는 하늘을 찌른다. 언론보도, 촛불시위, 검찰조사에 이어 특검과 국정조사가 진행되면서 과녁은 대통령을 정조준하고 있다. 결국 국회가 대통령 탄핵안을 발의함으로써 온 나라를 가득 메운 촛불의 마지막 국면이 시작되었다.

지난 주말 국회의원 171명의 이름으로 대통령 탄핵을 위한 절차가 시작되었다. 야 3당이 만든 탄핵소추안은 세월호 참사 당일 대통령의 부실대응을 국민 생명권 보호 의무 위반으로, 대기업에 미르·K스포츠 재단 출연을 강요한 혐의 등은 뇌물죄와 직권남용, 강요죄로 명시했다. 12월9일 의결을 예정하고 있는 ‘탄핵화살’은 시위를 떠났다. 탄핵안이 발의된 순간 가결 여부가 핵심 쟁점으로 부각됐지만 결론부터 말하면 탄핵안은 가결되거나 가결 이상의 효과로 나타날 것이다. 그 근거를 밝혀보자.

국민이 대통령 탄핵을 요구한다. 우리 헌법 제1조는 국민을 대한민국의 주권자로 명시하고 있다. 국민의 90% 이상이 대통령에 반대하고 압도적 다수가 탄핵을 원하는 것만으로도 대통령은 이미 국민의 탄핵을 받았다. 헌법적 권능에 기초해서 대통령을 선출한 국민이 그 권능에 기초해 탄핵을 요구하는 이 시점에서 이미 탄핵은 이루어진 것이고 박근혜 대통령은 더 이상 대통령이 아니다.

탄핵 결정권은 국민에게 있다. 대통령 탄핵의 법적 권한은 국회에 속하지만 이번 탄핵의 진원지는 광화문이다. 국민이 탄핵의 결정자라는 뜻이다.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 4%가 이를 대변한다. 탄핵은 국민이 결정하는 것이며 국회의원 300명의 의결은 국민들의 결정에 대한 보충적 행위로 보아야 한다. 이것이 탄핵 결정권의 본질이며 진행 중인 촛불 정신이다.

국정농단의 공범인 새누리당에는 탄핵 결정권이 없다. 새누리당은 탄핵 발의를 거부함으로써 국민의 명령을 거부했다. 대통령 말 한마디에 추풍낙엽처럼 흔들리면서 우왕좌왕하는 새누리당은 노선 부재와 내부 분열로 대통령 탄핵에서 변수가 되지 못한다. 새누리당에 남은 일은 이해관계에 따라 이합집산하면서 가능한 범위에서 각자 생존을 도모하는 것뿐이다.

국정농단의 주범인 대통령 역시 탄핵의 변수가 아니다. 국정파탄의 몸통으로 특검과 국정조사의 핵심 대상으로 전락한 대통령은 범죄행위의 피의자에 불과한 만큼 지금 대통령이 해야 할 일은 잘못을 시인하고 즉시 자리에서 물러나거나 자숙하며 탄핵을 기다리는 일뿐이다. 이것이 한때나마 자기를 뽑아준 국민에게 예의를 다하는 길이다. 더 이상의 고집이나 부질없는 담화로 탄핵 국면을 혼란스럽게 한다면 죄를 더할 뿐이다.

이제 탄핵이 임박한 시점에서 국회가 명심해야 할 역사적 진실이 있다. 형식적 민주주의하에서 국민은 4년(국회의원 선거) 또는 5년(대통령 선거)에 오직 하루 주권자의 지위를 인정받는 수동적 존재에 불과하지만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하여 새로이 건설해야 하는 비상한 국면에서는 능동적 주권자로서 국회 자체에 대하여 창조적 파괴를 명할 권능을 갖는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국회와 권력이 본디 국민의 것이라는 민주주의의 가장 본질적인 원리로서 헌법 제1조의 국민주권론에 기초한다.

국회의원에게는 권리와 의무가 있다. 권리는 삼권분립 정신에 따라 범법자 대통령을 탄핵하는 것이며 의무는 주권자 국민의 명령을 받들어 탄핵을 완수하는 것이니 권리와 의무가 하나로 일치한다. 국민을 모독하는 범죄행각으로 나라를 위기에 빠뜨린 대통령을 탄핵하지 않는다면 국회는 해산에 준하는 정치적 탄핵에 직면할 수밖에 없고 이를 거부하는 국회의원은 국민의 대리자로서 자격을 상실할 뿐이다.

물이 모여 강이 되고 바다가 되며 바람이 일어 태풍이 된다. 주권자의 집합적 자기표현인 촛불은 새로운 상상력으로 낡은 관행을 파괴하는 혁명적 항쟁으로 발전하고 있다. 이 역사적 국면에서 당파적 이익을 추구하거나, 정치적 유불리를 계산하거나, 숫자를 셈하는 기회주의적 태도를 보이는 것은 국민이 요구하는 바가 아니다. 지금 국회가 해야 할 일은 오직 하나, 주권자 국민의 지엄한 명령을 이행함으로써 헌법을 수호하는 것이다. 국회의 대오각성과 분발을 촉구한다.

정대화 상지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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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열차가 종착역을 향해 달리고 있다. 국회는 9일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농단에 대한 탄핵소추결의안 표결에 나선다. 탄핵은 가변적이다. 하지만 탄핵 결정이 난 뒤에도 박 대통령은 헌법재판소까지 탄핵사건을 가지고 가겠다고 한다. 끝까지 해보겠다는 것이다. 탄핵 정국의 혼란이 조속히 마무리되기를 바라는 시민의 기대를 저버리는 것이다. 탄핵 이후에도 정국은 긴 안개 터널이다.

국가를 경륜한다고 하는 것은 자기 몸을 괴롭히고, 정신을 피로하게 하고, 몸은 나그네가 머무는 집 같은 데 두고, 입은 문지기 같은 음식을 먹고, 손은 노예와 같은 일을 하는 것이라고 했다. 통치자는 시민들의 눈높이에서 공감하고 소통해야 한다. 그런데 그는 시대·시민과 불화를 자초하며 싸움에 빠져들었다. 그는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 역사·시민·시간과의 전쟁을 벌이고 있다. 그는 아버지인 박정희 전 대통령의 명예회복에 나서며 역사에 싸움을 걸었다. 아버지의 명예회복은 그를 정치에 입문시키고 대통령에까지 이르게 한 원동력이기도 하다.

그는 자서전 곳곳에 박정희를 ‘국가만을 생각한 위대한 애국자’로 기록했다. 그는 1979년 박정희 피격사건 이후 “아버지의 혜택을 보았으면서도 많은 사람들이 표변했다”며 ‘배신자’라고 적었다. 세상이 뒤집힌 뒤 아버지에 대한 사회의 냉소적 평가에 불만을 토로했다. 그리고 대통령이 되자 재평가 작업에 나섰다. 역사교과서의 근대사 부분이 전교조의 이념에 경도돼 있다고 했다. 국정 역사교과서 추진을 통해 역사와의 전쟁에 나선 것이다.

그는 “바르게 역사를 배우지 못하면 혼이 비정상이 될 수밖에 없다”며 국정화를 집권 후반기의 주요 정책과제로 밀어붙였다. 그러나 반대여론이 빗발치며 참여 학자들이 부족하자 깜깜이로 모집해 ‘몰래 집필’에 들어갔다. 결국 만들어진 교과서는 편향성 시비에 몰리면서 누더기가 됐다. 사초를 찢고 개칠을 해도 역사는 바꿀 수 없다.

그는 40여년 전 개발시대의 프레임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했다. 그는 박정희 생존 당시 가족모임에서 ‘새마을 노래’를 불렀다고 했다. 그리고 대통령이 돼서는 아버지의 유산인 새마을운동 전파에도 몰두했다. 하지만 시대에 뒤떨어진 장단에 맞추는 이는 손에 꼽을 정도밖에 없었다. 지속가능한 것도 아니었다.  

그는 시민들과 대화하지 않았다. 오히려 맞서고 있다. 지난 10월29일 첫 촛불집회 이후 6차례에 이르면서 함성은 커지고 규탄의 목소리는 강해졌다. 지난 주말 집회에는 조직적인 동원 없이도 232만명에 달하는 시민이 광장으로 나왔다. ‘퇴진’ ‘하야’에서 이젠 ‘구속’으로 강도가 높아졌다. 그러나 국정농단에 자신은 하나도 잘못이 없다고 한다. 국민들은 그에게 나라를 맡겼으나 그는 모르쇠다. 그는 국민들이 인간다운 생활을 하고 차별받지 않고 평등하게 살 수 있도록 할 의무를 방기했다. 그는 세월호가 침몰할 때 머리를 만지고 있었으며 최순실이 딸 정유라를 위해 갖가지 편법을 동원할 때도 이를 방치했다. 어린 학생에게는 노력하면 잘살 수 있다는 희망이 아니라 ‘돈도 실력’이라는 좌절감을 안겨주었다. 청소년들은 장시호와 정유라가 불법·편법으로 명문대에 진학하는 현실에 절망했다.

그는 시간과의 싸움을 하고 있다. 시간을 벌기 위한 버티기다. 232만 촛불이 시간이 지나가면 꺼질 한시적인 화풀이 정도인 것으로 인식하는 듯하다. 그는 1차, 2차, 3차에 걸친 대국민담화를 하면서 차일피일 퇴진을 미뤘다. 그리고 어제 “탄핵이 가결되더라도 헌법재판소의 결정 과정을 보면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다하겠다”고 했다. 헌재까지 가서 싸우겠다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의 “5000만명이 반대해도 고집을 꺾지 못할 것”이라는 예견이 맞았다. 탄핵안 가결 후 헌재 결정까지 최장 6개월이 소요된다. 그동안 국정혼란은 불을 보듯 하다.

국가적인 위기 상태다.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국정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고 있다. 내년도 성장률은 올해보다도 낮게 예상되는 등 경제지표들도 하나같이 좋지 않다. 조류인플루엔자가 전국을 덮치고 있다. 그는 국가와 국민을 위한다면서 국민을 볼모로 잡고 실익 없는 싸움에 나섰다. 그는 스스로 1원도 챙기지 않았다며 버티고 있다. 솜털보다 가벼운 법률지식을 가지고 자신의 방어막을 치고 있다. 끝까지 사익을 추구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역사에 거슬러 ‘효도 교과서’를 만들고 아버지의 명예회복에 나선 것, 그 자체가 엄청난 사익 추구다. 국민은 합법적인 구제수단으로 목적을 달성할 수 없을 때 권리와 자유를 위해 실력행사를 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박종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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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화재가 발생한 대구 ‘서문시장’은 박근혜 대통령의 방문이 겹치면서 트위터상의 언급량이 폭발했다. 박 대통령 탄핵에 미온적인 새누리당 의원들의 ‘전화번호’도 대중에 공개되면서 큰 관심을 받았다. 트위터코리아가 빅데이터 분석업체 다음소프트와 함께 지난달 28일부터 이달 4일까지 트위터상에서 가장 많이 언급된 키워드들 중 주목할 만한 단어를 분석해 6일 발표했다.

지난 한 주간 트위터에서 가장 많이 언급된 키워드는 ‘서문시장’이었다. 지난달 30일 화재가 발생하며 언급량이 증가하기 시작해, 이튿날 박근혜 대통령이 방문하면서 폭증했다. 박 대통령의 서문시장 방문은 최순실 국정 농단 파문 이후 첫 외부 일정이었다. 하지만 피해 상인들은 박 대통령이 자신들을 만나지 않고 10분 만에 돌아갔다며 항의했다. 박사모 회원들과 피해 상인들의 언쟁 역시 트위터상에서는 화제가 됐다.

박 대통령의 탄핵에 반대하는 새누리당 의원 명단과 전화번호가 공개되면서 ‘전화번호’도 큰 관심을 받았다. 새누리당 의원들은 탄핵에 대한 입장을 바꿀 것을 종용하는 시민들의 전화·문자가 새벽에도 쏟아지고 있다며 고통을 호소했다. 새누리당은 명단을 공개한 더불어민주당 표창원 의원과 성명불상의 전화번호 유출자를 검찰에 고소했다.

최순실 게이트와 무관한 이슈로는 유일하게 홍콩에서 열린 2016 엠넷 아시안 뮤직 어워드가 이름을 올렸다. 트위터에는 ‘레드카펫’이라는 키워드와 함께 행사에 참여한 연예인들의 사진·영상 등 콘텐츠가 다수 공유됐다.

지난달 29일 박근혜 대통령이 3차 대국민담화를 진행할 것이라는 속보가 나오자 ‘대국민담화’ 언급량도 크게 높아졌다. 세월호 참사 당일 행적이 밝혀지지 않은 박근혜 대통령의 7시간 의혹을 풀어줄 핵심인물로 지목된 ‘간호장교’에 대한 관심도 높았다. 더불어민주당 안민석 의원이 해당 장교를 만나기 위해 미국을 방문했지만 만나는 데 실패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언급량이 다시 늘었다.

이효상 기자 hsl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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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을 규명할 특별검사로 박영수 전 서울고검장이 임명됐다. 박영수 특검은 “수사영역을 한정하거나 대상자의 지위고하를 고려하지 않을 것이며 일체의 정파적 이해관계도 고려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사건은 현직 대통령이 피의자인 미증유의 사건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검찰 수사를 거부하고 혐의도 인정하지 않고 있으며 시민들의 퇴진 요구도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세월호 참사 당시 박 대통령의 행방을 둘러싼 ‘7시간 의혹’은 여전하다. 박 특검의 말처럼 진실 규명을 위해서는 수사 대상이나 범위에 성역이 있어서는 안된다.

박 특검은 무엇보다 시민들의 뜻에 부응해야 한다. 특검은 국정농단으로 금이 간 민주주의를 회복하자는 95%의 촛불 민심으로 출범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때문에 특검 수사는 박 대통령과 최순실씨 등의 비리를 드러내 처벌하는 것 외에 망국적인 정경유착을 근절하고 헌정 질서를 바로 세운다는 관점에서 이뤄져야 한다. 이는 ‘대한민국의 주권이 국민에게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일이기도 하다. 일각에서는 박 특검이 대검 중수부장 시절 부하였던 최재경 청와대 민정수석과의 관계를 의심하지만 사사로운 인연으로 나라의 명운이 달린 수사를 그르치지 않을 것으로 믿는다.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과 우병우 전 민정수석의 비리를 밝히는 것도 이제 특검의 몫이 됐다. 이들은 국정농단을 묵인·방조하는 수준을 넘어 공무원들에게 압력을 넣고 수사정보를 유출해 ‘부두목’ ‘행동대장’이라는 비아냥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검찰과 사건 관련자들의 발언을 종합하면 김 전 실장은 최씨와 차은택씨 등 사건의 주범들을 이미 2년 전에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우 전 수석은 2014년 12월 민정비서관 시절 ‘청와대 문건 유출 사건’을 은폐·조작했다는 의심을 받고 있는 등 사건의 핵심 피의자이다. 우 전 수석의 청와대 입성을 최씨가 막후에서 도왔다는 얘기까지 있다.

그러나 검찰 수사는 실망스럽다. 검찰은 김 전 실장과 우 전 수석을 각각 직권남용과 직무유기 피의자로 입건해 수사 중이라고 밝혔지만 박 대통령을 최씨 공범으로 규정하고 재벌 총수들을 소환할 때와는 사뭇 다른 양상이었다. 검찰에도 당부한다. 특검이 임명됐지만 아직 시간은 있다. 김 전 실장과 우 전 수석 비리 의혹 등 남은 수사에 최선을 다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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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 민심에 놀라 침묵했던 새누리당 친박들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3차 대국민담화에서 “진퇴 문제를 국회 결정에 맡기겠다”고 떠넘긴 뒤부터다. 친박들은 개헌 추진 등 정국 전환을 시도하고, 촛불 민심을 조롱하고 있다. 박 대통령이 비선 실세들 범죄의 공범이 되고 탄핵·퇴진에 몰리게 된 데는 친박 세력 책임이 가장 크다. 자숙해야 마땅한 이들이 또 돌격대인 양 나서고 있다.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는 야당이 대통령 담화를 ‘꼼수’라고 비판한 것에 대해 “국회 권능을 스스로 무시한 피해 의식”이라며 “국회가 역할을 못하면 ‘무기력 집단’으로 지탄을 받게 될 것이고, 국민은 절망할 것”이라고 반박했다. 도둑이 몽둥이를 든 격이다.

친박계 조원진 최고위원은 “의원총회에서 (당내 비주류가 결성한) 비상시국회의를 해체하고, 당의 분열을 초래하는 탄핵을 더 이상 추진하지 말라고 요구했다”면서 “탄핵에 들어가면 지도부는 (21일로 예정된) 사퇴를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정진석 원내대표는 “개헌이 전지전능한 해법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광장의 함성을 통해 반영된 국민의 바람을 이어갈 수 있는 첫걸음은 될 것”이라고 밝혔다. 탄핵 정국을 개헌 정국으로 바꾸겠다는 의지다.

[김용민의 그림마당]2016년 12월1일 (출처: 경향신문DB)

막말도 이어지고 있다. 친박계 중진 홍문종 의원은 라디오에 출연해 “탄핵을 위해 야당이 하나가 됐고 정치 타임테이블을 설정해놨는데, (대통령 담화로) 대오가 흐트러지지 않았을까 생각한다”며 “야당으로서는 시쳇말로 약이 좀 오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조롱했다. 김종태 의원은 그제 의총에서 “촛불시위는 평화시위가 아니다. 좌파 종북 세력은 통상 시위 때마다 분대 단위로, 지역별로 책임자를 다 정해 나온다”고 말했다. 촛불을 들고나온 시민이 종북 세력에 의해 조종됐다는 폄훼다. 실로 몰상식하다.

이런 사람들이 박근혜 의원을 대선후보로 만들어 대통령으로 세웠고, 여당을 이끌어 왔다. 국정농단을 방관·방조하면서, 정부와 여당의 좋은 자리를 나눠 먹는 등 이권을 챙겨온 게 이들이다. 대통령이 피의자로 전락한 시점에서도 이간질, 범죄자 보호, 사법 방해, 위력 과시, 협박에 무고까지 하고 있다. 주먹만 안 썼을 뿐 범죄 단체와 다를 바가 없다. 지금 시민들은 눈을 부릅뜨고 여당을 지켜보고 있다. 이 당이 해체하지 않더라도 다음 21대 총선 때 선거 벽보에 박 대통령과 자신의 사진을 나란히 붙일 후보가 몇이나 되겠나. 깊게 생각하고 자중자애해야 한다. 형해나 다름없는 일부 무리가 아니라, 시민의 뜻을 받들어야 한다. 그게 국회의원들이 가장 무서워한다는 유권자의 명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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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는 올려다보기도 힘들 만큼 고압적인 광화문이 그토록 처연한 모습을 한 것은 처음이었다. 귀를 때리는 스피커의 울림이 멀리 보이는 화면과 전혀 맞지 않는, 각자의 외침과 노랫소리가 100만, 혹은 200만의 인파와 함께 뒤엉기는 혼돈 속에서 문득 치밀어 올라온 것은 깊은 서러움이었다. 내 주변에 서 있는 사람들, 그리고 이 광장을 메운 낯선 이들을 이곳으로 불러낸 것도 이런 서러움이며, 그들도 지금 목이 메고 있을까. 문득 스피커에서는 ‘길가에 버려지다’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내가 가장 먼저 하고 싶은 이야기는, 광장에 모여드는 사람들을 이끄는 것은 단순한 분노가 아니라는 점이다. 분노는 강력하나 일시적이고 이토록 오래 지속되기는 힘들 것이다. 이토록 철저하게 질서있고, 차갑도록 뒷정리에 신경을 쓰며, 가족과 함께 유모차를 밀고 오게 하는 힘은 분노는 결코 아닐 것이다. 바람이 불면 꺼지는 분노보다도 훨씬 더 서늘하게 깊고 무거운 그 무엇일 것이다.

그것은 무엇보다 ‘버려진’ 서러움이 아닌가 생각한다. 우리 유전자에 각인될 정도로 소소한 일상까지 깊숙이 들어와 있는 국가, 좌측통행을 어느날 우측통행으로 바꿀 수 있으며 조의금을 얼마나 주고받을 수 있는지까지 결정해주는 국가, ‘한강의 기적’을 이끄는 엔진이었으며 사회경제 모든 분야를 베 짜듯이 효율적으로 지휘하는 국가. 그 국가가 언제부터였는지는 모르지만 한낱 홑이불 뭉치에 불과했다는 자각이야말로 이 상실감과 서러움의 원인이 아닐까. 경외하면서도 미워하고, 그 무능함에 치를 떨면서도 그 존재를 한번도 의심한 적이 없던 국가가 사실은 한번도 ‘거기 없었다’는 사실이 이 열패감의 원인이 아닐까.

26일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 일당의 국정농단에 분노한 시민들이 서울 도심인 광화문과 세종로 일대에서 촛불집회를 열고 있다. 이석우 기자

이런 ‘버려진 서러움’은 새로운 것도 아니다. 다만 세월호 참사나 백남기 농민을 잃는 과정에서 우리는 국가가 실패하였다고 생각했다. 메르스 창궐이나 가습기 살균제 사건에서 국가가 시민들의 생명권을 지키는 데 실패했다고 생각했다. 역사교과서 국정화나 개성공단 폐쇄에서, 그리고 각종 사안들에서 국가가 시민들의 말을 듣는 데 실패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실패’한 것이 아니라 공적 과정으로 국가가 ‘부재’했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은 매우 고통스럽고 서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사람들이 던지는 물음은 근본적으로 정치적이며 포괄적일 수밖에 없다. 여기서 정치적이라 함은 법적 책임을 묻는 지점을 넘어선다는 의미이고, 포괄적이라 함은 청와대를 넘어서서 국가와 사회 전반에 대해 물음을 던진다는 의미이다.

청와대의 법적 책임은 물론 ‘입증의 책무’(onus probandi)를 진 검찰과 특검이 범법을 확증할 수 있는 지점까지만 한정될 것이다. 그러나 최종적으로 법정에서 가려질 법적 책임과는 달리 청와대와 대통령의 정치적 책임은 스스로의 결백과 여러 의사 결정과정의 절차적 정당성을 국민과 동맹국가들에 납득시켜야 하는 또 다른 무겁고 지난한 과정이다.

그런 의미에서 검찰 조사나 특검이 책임질 법적 절차 못지않게 중요하고 의미있게 지켜보고 평가해야 할 것은 국민이 위임한 권한의 다른 축인 국회가 밟게 될 국정조사 과정이다. 나는 대통령의 사임이나 탄핵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이러한 법적 책임과 정치적 책임을 명백하고 정직하게 밝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제2, 제3의 ‘박근혜 정부’가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광장이 제기하는 문제들의 근본적인 포괄성은 청와대의 범위를 넘어서 정부와 정당, 나아가 우리 사회의 전반적인 거버넌스 구조 자체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진다. 그것은 ‘국정농단’이라는 편리한 말로 뭉뚱그려지는 결과에 대한 질문이 아니라, 특정 사익 집단이 어떤 경로로 공적 의사결정을 좌우할 수 있었고, 어떻게 공당(公黨)과 의회와 사회집단이라는 저지선을 돌파할 수 있었으며, 어떻게 재벌과의 상호침투가 가능했는지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질문들에서 출발해야 할 것이다. 이에 대해 정치권이 편리하게도 준비하고 있는 ‘개헌’이라는 답변은 지나치게 제한적이고 손쉬운 해답일 따름이다.

이러한 일들이 하루아침에 이루어질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으며 당장 손쉬운 대답을 찾기도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광장을 메웠던 사람들이 많이 했던 말이 이러한 나라를 아들딸에게 물려주고 싶지는 않다는 바람이었던 것처럼 광장은 과연 길이 어디에 있는지를 끊임없이 물을 것이며, 끊임없이 찾으려 할 것이다. 마치 ‘길가에 버려지다’가 이렇게 노래하는 것처럼 말이다. “내 의지에 날개가 돋아서/ 정의의 비상구라도 찾을 수 있길.”

박원호 | 서울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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