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의 대국민사과 한달째. 광화문에서는 100만명 이상의 꺼지지 않는 촛불이 횃불로 이어지고 있다. 뉴스는 아직도 대부분이 최순실의 국정농단 내용으로 채워지고 있다. 대통령은 헌법과 국민을 무시하고, 국가원수와 군 통수권자로서 스스로 권위를 던져 버렸다. 언젠가부터 국내 포털사이트의 청와대 연관검색어는 비아그라, 발기부전, 프로포폴 등으로 바뀌었을 정도다.

2014년 3월6일, 필자는 학군장교로서 동기생 5860여명과 함께 군 통수권자인 대통령 앞에서 ‘국가와 국민을 위해 충성을 다하고 헌법과 법규를 준수한다’는 임관선서를 했다. 이날 대통령은 군 통수권자로서 우리에게 ‘선배 전우들의 소임을 이어받아 강한 애국심과 투철한 사명감으로 충성을 다해줄 것’을 주문했다. 가슴 속 저 깊은 곳에서 끓어오르는 그날의 뜨거움은 가끔씩 힘들었던 군 생활 속에서 필자를 잡아주던 든든한 버팀목이었다.

그러나 장병들이 믿고 기대야 하는 정신적 지주 격인 군 통수권자는 스스로 군의 사명감을 저해하고 장병들의 권위와 사기까지 붕괴시켰다. 이 땅의 자유민주주의를 목숨으로 지켜온 선배 전우들의 뒤를 이을 각오로 훈련 중인 장교 후보생단의 기개를 꺾어버렸다.지금 이 순간에도 전후방 각지에서 작전에 투입되고 있는 우리 용사들의 사기를 북돋기 위해 지휘관들은 과연 뭐라고 할 수 있겠는가. 주변에 간신뿐인 군 통수권자는 최순실에게 국정을 맡겨놓고 얼이 빠져 있었는데 일선 지휘관들의 명이 서겠는가.

미국에서는 주한미군의 방위비 인상을 압박하는 트럼프가 당선되고, 북한은 한반도 평화를 저해하는 핵실험을 계속하는 일촉즉발의 위급한 안보상황이다. 군 통수권자는 장병들에게 ‘극한의 상황 속에서도 지휘관을 중심으로 단결하여, 적과 싸워 이길 수 있는’ 군기를 주문해야 한다. 그러나 지금의 국정 컨트롤 부재 상황에서는 그렇게 주문할 수 없다. 정치권은 하루빨리 국정을 수습해 ‘이러려고 군 생활하나’ 하는 자괴감을 장병들에게 그만 심어주어야 한다.

김용태 | 예비역 중위·고려대 대학원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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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선 실세 국정농단의 몸통은 결국 박근혜 대통령이었다. 정치적으로, 박근혜 ‘대통령’은 이미 없다. 법적으로만 간신히 대통령직을 유지하고 있는 본인만 이 현실을 거부하고 있다. 대통령이 불법과 비리를 지속적으로 저질러온 정황이 명백히 드러났으니, 그동안 온갖 의혹과 반대에도 대통령이 앞장서 밀어붙였던 정책들은 전면 재검토되어야 한다. 그런데도 문제의 정책들은 이전과 변함없이, 아니 더욱 신속히 진행되는 것 같다.

교육부는 국정 역사교과서를 예정대로 28일에 공개하겠다고 한다. 국정화 추진은 학생과 교사, 대부분의 역사학자를 비롯한 수많은 국민의 분노와 저항을 불러일으켰던 사안이다. 그리고 국정화의 선봉에는 대통령이 있었다.

지난해 12월 일본군 위안부 밀실·굴욕 협상은 외교부 장관이 반대했지만 대통령이 밀어붙인 정황이 드러났다. 대통령의 행태를 보면 충분한 개연성이 있지만, 외교부 당국자는 사실무근이라며 시치미를 뗀다. 여성가족부는 반성과 사과가 먼저라는 비판은 외면하고 피해 할머니들에게 위로금 지급만 서두른다. 환경부는 강원 양양군의 설악산 케이블카 사업 환경영향평가서를 통과시켰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가 국정감사에서 반려하라는 결론을 내린 조작·부실 평가서였다. 국회의원, 양양군,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이 공동 현장검증을 실시한 지 이틀 만이었다. 설악산 케이블카는 사업신청서가 제출되기도 전에 대통령이 두 번씩이나 적극 추진을 지시했다.

최재경 청와대 민정수석과 김현웅 법무부 장관의 사의 표명이 알려지고 새누리당 김무성 전 대표가 탄핵 주도를 선언한 23일 서울 광화문 사거리 뒤편으로 청와대 본관 건물이 보이고 있다. 서성일 기자 centing@kyunghyang.com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은 여건 조성이 우선이라는 입장에서 돌변해 국무회의 의결과 대통령 재가, 양국 서명을 순식간에 해치워버렸다. 지난 이명박 정부 때도 밀실협상 논란으로 막판에 무산됐던 사안이다. 대통령이 진두지휘했던 갑작스러운 ‘사드’ 배치 결정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일이었고, 그만큼 격렬한 반발과 분노를 샀다. 하지만 국방부는 롯데의 경북 성주골프장과 경기 남양주의 국유지를 맞바꾸면서 사드의 조기 배치에 열을 올리고 있다.

지난 21일 검찰은 민주노총 한상균 위원장의 항소심 결심공판에서 징역 8년을 구형했다. 1심 형량인 징역 5년이 너무 가볍다는 것이다. 작년 민중총궐기의 근원이었던 박근혜 정권 폭정의 실태가 훤히 드러난 지금도 검찰의 현실 인식은 여전하다.

아우슈비츠의 생존자 프리모 레비의 말이 떠오른다. “괴물이 없지는 않다. 그렇지만 (중략) 그보다 더 위험한 것은 평범한 사람들이다. 의문을 품어보지도 않고, 무조건 믿고 행동하는 기계적 인간들 말이다.”(홍세화, <생각의 좌표>) 눈에 띄는 괴물이라면 맞서 싸울 수는 있다. 하지만 괴물을 무조건 추종하는, 눈에 띄지 않는 수많은 ‘기계적 인간들’과 일일이 싸울 수는 없다. 이런 절망적 현실 때문에 지옥에서도 살아남았던 레비가 노년에 자살했는지도 모르겠다.

우리 사회 현실도 썩 달라 보이지 않는다. 괴물을 따르는 평범한 사람들이 땅에서 갑자기 솟아날 리 없다. 이들도 결국 교육의 결과다. 대입과 취업이 지상 목표가 되어버린 교육 현실에서, 아이들은 자기 생각이 아니라 주어진 문제의 ‘정답’을 맞히는 능력을 키우도록 강요된다. 자율적·비판적 사고 능력은 퇴화되고, 지시받은 업무를 충실하고 효율적으로 수행하는 ‘실무형’ 인간이 만들어진다. 자기가 노예이면서도 노예인지 모르는 인간 말이다.

이런 현실을 감안하면, 요즘 광장에서 만나는 우리 아이들의 모습은 참으로 놀랍고, 반갑고, 고맙다. 무엇보다 미안하다. 이제는 정말 학교 교육의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 부패한 권력일수록 학교 교육을 통제해 아이들을 기존의 현실에 순응하는 ‘기계적 인간들’로 키우려 한다. 자유롭고 비판적 사고의 숨통을 옥죄는 학교, 영혼을 없애는 교육에 우리 아이들을 더 이상 맡겨 놓을 수는 없다. 광장에서 아이들이 보여준 놀라운 가능성을 직접 만나고 돌아올 때마다 드는 간절한 바람이다.

조현철 서강대 교수·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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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이 돌아섰다. 검찰이 등을 돌린 것은 시민들에게 총을 겨눈 군과 경찰이 시민의 편에 선 것과 같다. 살아 있는 권력에 굴종하고 죽은 권력만 물어뜯는다는 ‘하이에나 검찰’의 재빠른 변신이다. 검찰은 촉이 빠르다. 검찰의 표변은 박근혜 대통령이 더 이상 살아 있는 권력이 아니란 뜻이다. 오동잎이 떨어지면 가을이 온 것을 안다.

국정복귀 일성으로 던진 ‘엘시티 철저 수사’ 지시는 지금 박근혜가 갖고 있는 패가 흑싸리 껍데기만큼 보잘것없다는 것을 만천하에 공개한 꼴이 됐다. 특검 후보로 반짝 거론된 채동욱 전 검찰총장은 엘시티 이영복 회장과 친분이 있다. 부산의 룸살롱 마담이었던 그의 내연녀 임모씨(혼외아들의 생모)에게 레스토랑을 차려준 사람이 이영복이다. 하마터면 채동욱에게 조사를 받을 뻔한 박근혜는 ‘채동욱 특검’ 시나리오를 좌절시켰다. 대통령의 엘시티 발언은 김수남 검찰총장을 겨냥한 것이란 얘기도 나왔다. 김 총장도 이영복과 잘 아는 사이라는 것이다. 서초동 법조타운에선 최순실 국정농단 수사를 총지휘하고 있는 검찰총장에게 보내는 모종의 메시지란 얘기가 돌았다. 문재인·김무성 연루설까지 더하면 1타3피, 1타4피라 할 수 있다. 대통령이 국정에 고심하는 수준이 이 정도다. 김 총장에게 물어봤다.

박근혜 대통령이 18일 청와대에서 열린 신임 정무직 임명장 수여식에 참석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 이영복 회장을 아시는가.

“그렇잖아도 범정(범죄정보기획관실)으로부터 그런 첩보 보고를 받고 깜짝 놀랐다. 얼굴을 본 적도, 통화한 적도, 악수 한번 한 적도 없다. 난 부산에서 근무한 적이 없다. 전혀 모른다.”

- 대통령의 철저 수사 지시는 뭔가.

“아마 대통령도 비슷한 정보보고를 받은 것 아닌가 싶다.”

- 검찰총장을 염두에 두고 한 얘기인가.

“그렇게 생각하고 싶지는 않다.”

- 문재인·김무성 연루설은.

“지라시로 먹고사는 사람들이 써대는 소설이다.”

박근혜는 쓸 수 있는 카드는 다 던지고 있다. 최순실을 덮으려 개헌을 꺼내든 것을 보면 그의 심리상태가 얼마나 비정상인지 알 수 있다. “거짓 자기를 스스로 자기라 믿으며 마음의 평화를 지켜가는 리플리 증후군과 비슷하다”(소아청소년정신과 전문의 서천석 박사)는 의학적 소견은 그래서 더 무겁게 들린다. ‘리플리 증후군’은 현실을 부정하고 허구의 세계만을 진실로 믿으며 상습적으로 거짓된 말과 행동을 일삼는 반사회적 인격 장애다. 미국의 여류 작가 퍼트리샤 하이스미스가 1955년에 쓴 범죄 소설 <재능 있는 리플리씨(The Talented Mr. Ripley)>에서 유래했다. 주인공 톰 리플리가 재벌 아들인 친구를 죽인 뒤 대담한 거짓말과 행동으로 그의 인생을 대신 살아간다는 내용이다. 자기 말이 탄로날까봐 불안에 떠는 단순 거짓말쟁이와 달리 리플리 증후군을 보이는 사람은 자신의 거짓말을 완전한 진실로 믿는다.

박근혜의 거짓말은 리플리의 수준을 넘어섰다. 최순실 보도에 대해 “사회 혼란 일으키는 유언비어”→“일고의 가치도 없는 허위사실”→“연설문 도움받은 정도”→“선의로 한 일”이라고 말을 바꿨다. 새로운 사실이 밝혀질 때마다 또 다른 거짓말을 내놓는 식이다. 최순실 국정농단 감찰에 나선 이석수 특별감찰관을 ‘국기문란’이라며 내쫓았던 그다. 이제 와선 “나도 최순실에게 속았다”고 한다. 나는 잘못한 게 없으니 대통령으로서 국정을 계속 맡아야 한다는 자기방어 논리는 이렇게 만들어진 것이다. 비정상적 자기합리화, 자기왜곡, 공감능력 상실이다. 100만 촛불민심 앞에서 뻔뻔할 수 있고, 어떤 위기에서도 멘털 갑으로 버틸 수 있는 이유다. 불행히도 김종필 전 총리의 “5000만명이 시위해도 박근혜 대통령은 절대 물러나지 않을 것”이란 예언은 점점 맞아가고 있다. 의학 교재엔 리플리 증후군의 위험성도 쓰여 있다. ‘본인의 상습적인 거짓말을 진실인 것으로 믿게 되면 단순한 거짓말로 끝나지 않고 타인에게 심각한 피해를 입힐 위험이 높아진다.’

지금 박근혜에게 나라를 맡기는 건 위험천만한 일이다. 미친 마부에게 말을 맡기는 것과 진배없다. 리플리는 소설 속 주인공이지만, ‘재능 있는 박근혜씨’는 현실의 대한민국 대통령이다. 그의 거짓말 릴레이와 막가파식 버티기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검찰 수사도 못 받겠다고 하더니 국회 추천 총리도 철회하겠다고 한다. 중대범죄의 주범이 청와대를 진지 삼아 농성 중이다. 성(城)안에 갇힌 줄 모르고 성 밖 시민을 상대로 결사항전 태세다. 자기 살겠다고 나라야 결딴 나든 말든 상관없다는 짓이다. 내일은 또 뭘 꺼낼지 짐작도 할 수 없다.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일 것이다. 아무래도 우리 대통령은 치료를 받으셔야 할 것 같다.

박래용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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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최순실씨와 함께 국정농단에 개입한 정황이 또 제기됐다. 보도에 따르면 김종 전 문화체육관광부 2차관은 “김 전 비서실장 소개로 최씨를 처음 알게 됐다”고 말했다. 김 전 실장은 이에 대해 침묵하고 있다. 그는 그동안 최씨와 알고 지냈다는 의혹이 여러 차례 제기됐지만 그때마다 부인했다. 여권의 핵심인사는 2013년 박근혜 대통령이 저도에서 여름휴가를 보낼 때 김 전 실장과 최씨도 동행했다고 말했다. 그 자리에서 비서실장 교체 문제를 논의했다고 한다. 김 전 실장이 최씨 소유의 강남 소재 건물을 사무실로 사용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그 빌딩에서 그를 봤다는 목격담도 있다. 그러나 김 전 실장은 최씨를 알지도 못하고 만난 적도 없다고 발뺌해왔다. 어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수사 발표를 한 검찰도 김 전 실장을 거론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김 전 실장이 비선과 공적 라인을 연결하는 고리 역할을 해왔다는 의혹은 끊이지 않고 있다. 비서실장 사임 후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을 내세워 국정에 개입했고, 우 전 수석이 사임한 후에도 김 전 실장이 막후에서 국정을 챙기고 있다는 말도 나온다. 그를 조사하지 않는다면 게이트를 제대로 수사했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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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이 어제 최순실씨 국정농단 사건의 주요 피의자를 기소하면서 박근혜 대통령을 최씨 등의 공범으로 규정했다. 검찰은 “현재까지 확보된 제반 증거자료를 근거로 피고인 최순실, 안종범, 정호성의 여러 범죄 사실 중 상당 부분과 공모관계가 있는 것으로 판단했다”고 밝혔다. 박 대통령을 피의자로 정식 입건, 특별검사의 수사가 시작될 때까지 추가 조사를 통해 내용을 보완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검찰 조사에 응하겠다던 입장을 뒤집고 검찰의 수사를 거부하겠다고 밝혔다. 현직 대통령이 자신이 지휘하는 검찰에 의해 형사범죄의 피의자로 규정된 것도 초유의 일인데 사법체계마저 거부하다니 충격적이다. 국가적 비극이자 이런 막장이 따로 없다.

검찰의 공소장을 보면 박 대통령의 혐의는 예상한 것보다 훨씬 더 심각하다. 우선 미르·K스포츠 재단 강제 모금에서부터 추가 출연 강요, 최씨의 대기업 갈취, 청와대 문건 유출 등 사건 전반에 개입했다. 국가 비밀자료 유출도 드러난 것만 47건으로, 장차관 인선 검토 자료와 외교문서까지 포함돼 있었다. 검찰 관계자는 “공소장에 기재된 내용은 100%라고 말 못하겠지만 거의 99%는 저희들이 입증 가능한 부분만을 썼다”고 설명했다. 박 대통령의 범죄가 감출 수 없을 만큼 분명하다는 말이다. 박 대통령을 공동정범이라고 한 것도 예우일 뿐, 실제 역할과 위상을 고려하면 주범이라고 표현하는 게 타당하다.

[김용민의 그림마당]2016년 11월 21일 (출처: 경향신문DB)

그동안 박 대통령 측은 범죄 연루가 확인되지도 않았는데 야당과 여론이 박 대통령을 상대로 마녀사냥을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검찰이 박 대통령을 공범이라고 밝힌 만큼 이젠 어떤 변명도 통할 수 없게 됐다. 그런데도 박 대통령은 검찰의 기소 내용을 부인하며 수사를 거부했다. 정연국 청와대 대변인은 “박 대통령이 부당한 정치적 공세에 노출되고 인격 살인을 당하는 상황이 됐다”고 항변했다. 국정을 농단하고도 거짓말로 모면하려던 행동은 잊은 채 다시 피해자 시늉을 하고 있다. 박 대통령의 변호인도 검찰이 공정하게 수사하지 않았다며 특검에서 무고함을 밝히는 한편 합법적 절차에 따라 대통령의 책임 유무를 가리자며 탄핵절차에 대비하겠다고 밝혔다. 검찰이 자기 편인 줄 알고 수사를 통해 다 밝히자고 할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검찰이 공정하지 못하다니 그저 황당할 뿐이다. 특검법이 통과됐으니 검찰 조사는 건너뛰고 특검 조사를 받겠다는 소송 전략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자기에게 불리한 내용이 나왔다고 국정 최고기구인 청와대가 한순간에 말을 뒤집고 국가 시스템을 거부한 것은 막가파식 대응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청와대의 의도는 검찰에서 방어에 실패하자 다시 특검과 헌법재판소에서 법리 논쟁을 하며 장기간 버티겠다는 것이다. 보수 일색으로 꾸려놓은 헌법재판소 재판관 진용을 믿고 탄핵절차로 가자는 심산인데 여론을 모르는 딱한 처사다. 95%의 시민에게 이미 탄핵을 받은 대통령이 법정 투쟁에 의지해 연명하려는 모습에 연민의 정을 금치 못한다. 박 대통령은 지난주 국정에 전면 복귀하더니 엊그제는 청와대 홈페이지에 ‘오보·괴담 바로잡기’ 코너를 신설해 여론전에까지 나섰다. 범죄적 행위와 세월호 참사 무능 대응 등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고 곁가지 해명으로 본질을 흐리려는 것이다. 최경환·홍문종 의원 등 당내 친박세력도 당이 뭉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 줌도 안되는 세력이 국정을 말아먹은 것도 모자라 국민 여론과 맞서는 꼴이다.

어제 문재인·안철수·박원순 등 야권의 대선주자들이 만나 박 대통령에 대한 탄핵 추진을 국회에 요청했다. 여당 내에서조차 탄핵론이 나온 만큼 박 대통령이 특검의 칼날을 벗어난다 해도 탄핵은 피하기 어렵다. 그제 4차 촛불집회에는 전국적으로 100만명의 시민이 운집했다. 박 대통령이 계속해서 무리수를 두며 휘발유를 붓고 있으니 촛불이 더 크게 타오르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세월호 침몰 때 사라진 박 대통령의 7시간 행적까지 드러나면 여론은 더 험악해질 게 뻔하다. 그때는 무슨 일이 벌어질지도 모른다. 박 대통령의 버티기는 한때나마 자신을 지지한 시민과 국가에 대한 배신이자 반역이다. 박 대통령이 56년 전 이승만 대통령의 하야보다 못한 선택은 하지 않기를 바란다. 국가와 국민을 더 이상 부끄럽게 만들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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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들 손으로 직접 대통령을 뽑은 지 30년이 됐고, ‘박근혜’는 그 여섯번째로 선택받은 대통령이다. 어디 순탄한 정권은 없었다. 임기 초 90% 넘는 지지를 받다가 떠날 때쯤에는 곤두박질친 대통령이 있었고, 퇴임 후 검찰 조사를 받은 대통령도 있었다. 몇 번의 정권을 지나다보니 주기라는 것도 있다. 취임 초 의욕적으로 정책을 추진한다. 대통령 주변 사람들이 비리로 걸려들면 정권의 도덕성이 상실돼 국정의 추가 비틀거린다. 측근들, 친·인척 이름이 나오면 국정을 이끌 힘이 쫙 빠진다. “역사는 평가해 줄 것이다. 역사로부터 평가받겠다”면서 ‘역사와의 대화’를 시도하며 무리한 정책을 추진하기도 하지만 곧장 여론의 역풍을 맞고 흐지부지된다. ‘미래 권력’ 자리를 다투는 대선 국면이 본격화하면 ‘현재 권력’은 국민들의 관심에서 멀어지고 짐 쌀 준비를 한다. 물론 후임 대통령이 와도 1~2년은 고생을 해야 한다.

누구는 대통령의 5년이 비슷하게 반복돼 온 것을 ‘불행한 역사’라고 한다. 그럼에도 분명한 건, 정권 5년 동안 내세울 만한 공(功)이 있었다. 과(過)도 있었지만 반면교사가 되면서 사회가 발전해왔다. 청와대 운영도 마찬가지라고 볼 수 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수사해온 검찰 특별수사본부 이영렬 본부장(서울중앙지검장)이 중간수사 결과를 발표하는 모습이 20일 서울 중구 한 전광판을 통해 생중계되고 있다. 그 뒤로 청와대가 보인다. 정지윤 기자 color@kyunghyang.com

2014년 말 이른바 ‘정윤회 비선 파동’이 났을 때다. 박근혜 정부 초기 청와대에 파견됐다 나왔던 공무원 ㄱ씨의 허탈한 표정이 아직 생생하다.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우리가 실패하면서도 수십년간 쌓아온 시스템이란 게 있는데 그게 송두리째 무너졌잖아요.” ㄱ씨도 자신이 청와대에 있을 때 최순실이라는 이름을 몰랐을 것이다. 비선 실세 국정농단의 양태들이 드러난, 말도 안되는 이 상황을 어떻게 생각할까. 대놓고는 말을 못할 것이다. 공무원이니까. ㄴ씨는 행정고시에 합격하고 중앙부처 5급 사무관으로 공직을 시작했을 때, 고참으로부터 들은 “일선 공무원들은 장관을 위해, 장관은 대통령을 위해, 대통령은 국민을 바라보고 일을 한다”는 말을 가슴에 새겼다. 그래서 설령 ‘아닌 것 같은데’라고 생각되는 일도 결국은 국민을 위한 것이라고 여기고 했었다고 한다. 요즘 민심 동향 파악이 임무인 공무원들도 아예 손을 놓고 있다고 한다. 특별히 전할 민심이 없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하는 일에 5%가 지지하고, 딴소리 말고 즉각 퇴진하라는 여론이 계속 늘어 70%대에 이른 상황이니 ‘위’에다 무엇을 보고하겠는가.

그동안 대통령은 두 번 사과했다. 처음은 마지못해 한 티가 역력했다. 불난 집에 기름을 끼얹었다. 그래서 두번째 사과를 했지만 “내가 이러려고 ○○○이 됐나 자괴감이 든다”는 패러디를 양산했을 뿐이다. 사과의 성패는 사과하는 이의 말과 의도뿐 아니라 상대방의 관심과 태도, 즉 쌍방의 상호작용에 달려 있다. 비난받을 자신의 행동을 명확히 설명하고 그에 따른 사회규범을 수용할 뜻을 밝혀야 한다. 위기 모면에만 급급한 이런 식의 대통령 사과는 백날 해봐도 소용없는 일이다. 사람들이 들어야 하는 말이 있는데 그 얘기를 안 하기 때문이다. 말로 뭘 어떻게 할 수 있는 단계도 지났다.

평화롭게 마무리된 지난 토요일 집회는 ‘세상의 바보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이었다. 헌법을 유린당한 국민들에게 ‘헌법(대통령 권한) 수호’만 얘기하고 “대통령 관련 의혹 중에 입증된 게 하나라도 있느냐”고 머리를 들고 있다. 민심이 돌아올 가능성이 없는데, 대통령 자신도 결국은 민심에 굴복할 수밖에 없음을 알 텐데 이판사판에 다름없다. 청와대 홈페이지에 ‘오보·괴담 바로잡기’ 코너도 열었다. 가용 공적 수단을 총동원해 민심과 맞서겠다는 것인데, 기세등등했던 대통령이 초라해 보인다.

대통령은 검찰의 국정농단 사건 수사에서 ‘공범’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이번주에 받겠다던 검찰 수사를 거부하고, 자신이 선택한 특별검사로부터 수사를 받겠다고 한다. 어차피 ‘대통령 박근혜’가 아니라 ‘피의자 박근혜’로 지내야 할 시간들이다. 미래 성장동력으로 삼겠다던 문화융성과 창조경제는 ‘창조 비리’의 수단이었음이 국정농단 사태로 만천하에 드러났다. 국정에 복귀한다고 한들, 갖은 수를 써서 남은 1년3개월 임기를 채우겠다고 한들, 무엇을 하더라도 될 일도 없고 될 리도 없다. 그동안 온나라가 난장판이 될 게 뻔하다. 안보의 위기, 경제의 위기는 가중되고, 국격과 국익도 훼손될 수밖에 없다.

대통령이 버티면서 이제 국회는 탄핵 절차에 돌입할 태세다. 국민들은 ‘이게 나라냐’라고 한다. ‘개인 박근혜’의 자존심은 접어두고, ‘국가’와 ‘역사’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생각해 주길 바란다. ‘대한민국 18대 대통령’으로서 국민들의 자존감을 세워줬으면 한다. 그것이 마지막 남은 ‘명예’일지도 모른다. 떠날 때는 말없이.

안홍욱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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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국민인 것이 부끄럽다.” 요즘 많이 듣는 말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평범한 영매 아줌마의 아바타 노릇을 하며 국가를 운영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급기야 호스트바 선수, 대를 이은 주술, 그리고 사우나 부녀회 모임까지 등장했다. 국격이 한없이 무너져내리는 모습에 국민은 분노를 넘어서 수치심과 자괴감을 느낀다. 고개를 들고 다닐 수가 없다고 한탄한다. 국정농단은 박 대통령과 최순실이 저질렀는데, 왜 부끄러움은 우리 국민의 몫일까? 울화통을 잠시 접어두고 부끄러움이라는 감정이 왜 존재하게 되었는지 살펴보자.

부끄러움, 그리고 그 강도가 강화된 형태인 수치는 사람을 괴롭히고 들쑤시는 정서다. 최근 많은 사람이 공감할 이야기다. 수치를 느낀 사람은 가슴이 미어터질 듯하고, 체온이 높아져 얼굴이 붉어지고, 눈을 내리깔아서 시선을 회피하고, 몸을 움츠리게 된다. 슬픔에 빠지고, 우울증에 시달리고, 자신을 비하하게 된다(“아, 나는 저런 사람들에게 지배를 받아온 개·돼지였어”). 이처럼 언뜻 보기에 수치는 혼을 비정상으로 만드는 쳐부숴야 할 암 덩어리로 여겨진다. 실제로 어떤 임상심리학자들은 수치심이 아무 쓸모도 없는 병리적인 상태라고 설명하기도 한다.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그러나 수치심이 먼 과거 조상들의 번식에 영향을 끼쳤던 문제를 잘 해결하게끔 자연 선택에 의해 설계된 심리적 적응임을 보여주는 증거가 많다. 첫째, 수치는 모든 인간 사회에서 빠짐없이 나타난다. 둘째, 수치심은 아주 어릴 때부터 저절로 생긴다. 태어나면서부터 눈이 멀어서 남이 수치스러워하는 모습을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람도 공공장소에서 발가벗는다면 수치심 특유의 표정과 행동을 한다. 셋째, 영장류에서 열위 개체가 우위 개체 앞에서 쩔쩔매면서 복종할 때 하는 행동은 인간이 부끄러워하는 행동과 유사하다. 즉, 수치는 특정한 문제를 잘 풀게끔 정교하게 다듬어진 적응이다.

어떤 문제를 잘 풀게끔 만들어졌을까? 진화심리학자 다니엘 스니저를 따르면, 수치심은 남들이 자신의 가치를 낮게 평가하는 것을 막기 위한 방어로서 진화했다. 인간은 매우 사회적인 종이다. 내가 믿음직한 동료로서, 매력적인 배우자로서, 혹은 잘나가는 경쟁자로서 남들에게 어떻게 평가받는가에 따라 번식의 성패가 크게 좌우되었다. 따라서 수치심은 자신에 대한 부정적인 정보가 남들에게 전달됨을 미리 막고, 부정적 정보가 이미 새어나갔으면 그에 따른 악영향을 최소화하는 행동을 취하게끔 설계되었다.

부끄러운 마음이 들게 하는 여러 상황을 살펴보자. 사회적 지위가 내려가면 부끄럽다(예컨대, 직장에서 권고사직을 당함). 아주 쉬운 일도 잘해내지 못하면 부끄럽다(예컨대, 어른인데 자전거도 못 탐). 질병에 걸리면 부끄럽다(예컨대, 수업시간에 자꾸 기침함). 비도덕적인 짓을 저지른 게 들통나면 부끄럽다(예컨대, 성희롱 가해자로 신문에 실림). 남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부끄럽다(예컨대, 악수를 청했는데 깨끗이 무시당함). 고문, 강간, 아동학대 등 심각한 폭력의 피해자가 되면 부끄럽다(예컨대, 남편에게 맞은 상처를 이웃에게 들킴). 이 유발요인들은 지극히 다양하고 종잡을 수 없어 보이지만, 한 가지 중요한 공통점이 있다. 남들에게 알려진다면 내 가치를 떨어뜨릴 부정적 정보가 전파되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수치심이 만들어내는 일련의 행동은 내 가치가 더 떨어짐을 막고 나에 대한 부정적인 정보를 감추는 기능을 수행한다. 남의 시선을 피하고 뺨을 붉히는 행동은 자신이 이제 을이 되었음을 알려서 남들과 화해를 도모한다.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으로 집에 틀어박히는 행동은 자신에 대한 부정적인 정보가 더 새어나가는 사태를 막는다. 코르티솔 호르몬을 분비하여 우리 몸을 스트레스로부터 보호한다.

수치심이 개인의 가치가 남들에 의해 평가절하됨을 막는 방어라는 스니저의 이론은 당사자의 무능 혹은 일탈을 알게 되는 사람들의 수가 더 많아질수록 수치심이 더 심해진다는 사실과 부합한다. 또한 대학생이 교수들 앞에서 홀로 논문을 발표하는 상황처럼 당사자에게 겁을 주는 사람들로 청중이 구성되면 수치심이 더 심해진다는 사실도 잘 설명해준다.

이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자. 왜 수치심은 우리 국민의 몫일까? 앞서 말했듯이, 고문이나 강간, 아동학대 등 심각한 폭력의 피해자가 되어도 수치심이 유발된다. 물론 합리적으로 따지면, 폭력을 휘두른 가해자가 부끄러워해야 마땅하다. 피해자가 부끄러울 이유는 전혀 없다. 그러나 스니저의 이론을 적용해보면, 누군가가 심한 폭력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다는 사실은 가해자와 피해자의 무력 차이가 그만큼 큼이 입증되었음을 뜻한다.

결국 남들이 매기는 피해자의 가치가 하락했으니, 더 하락하는 사태를 막고자 수치심이 동원된다. 박 대통령과 최순실 덕분에 모두가 민주공화국의 시민에서 무당이 전권을 뒤흔드는 초기 국가의 신민으로 추락했다. 세계라는 청중 앞에 대한민국의 가치가 더 떨어지는 불상사를 막기 위해 우리가 느끼는 수치심은 깊고 클 수밖에 없다.

전중환 |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진화심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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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권이 중·고교 역사교과서 국정화와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을 강행하고 있다. 박근혜·최순실 국정 문란 사태로 시민의 관심이 분산된 사이 시민의 지지를 상실한 정부가 문제의 정책을 일사천리로 밀어붙이고 있는 것이다. 시민들의 반대가 여전하고, 강행할 경우 재앙적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 사안임에도 아랑곳없다는 태도이다.

1일 역사학자들이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국정농단 책임자 처벌, 역사교과서 국정화 중단'을 요구하는 시국선언을 하고 있다. 정지윤 기자

교육부는 오는 28일 인터넷에 ‘e북’ 형태로 중·고교 국정 역사교과서 현장검토본을 공개할 예정이다. 이어 연말까지 현장 의견을 수렴한 뒤 내년 1월 최종본을 확정, 3월부터 전국 6000여개 중·고교에 배포할 계획이다. 이 계획대로라면 학생들은 내년부터 시대착오적 국정교과서로 역사를 공부할 수밖에 없게 된다. 역사교과서 국정화는 역사교육의 다양성을 말살하는 것은 물론 친일파와 박정희 정권 미화를 통해 미래 세대의 역사 인식을 왜곡하는 위험한 정책이다. 시민사회도 최근 국정화 반대 시국선언 등 반대 움직임을 본격화하고 있다.

그럼에도 박 대통령이 국정화를 강행하는 것은 최씨 입김이 작용한 결과일 가능성이 있다. 박 대통령이 국정화 의지를 처음 피력한 지난 2013년 6월은 최씨가 대통령 연설과 업무에 전방위적으로 개입하던 시기다. 박 대통령은 “바르게 역사를 배우지 못하면 혼이 비정상이 될 수밖에 없다”면서 최씨와의 관련성을 의심케 하는 주술적 발언도 한 바 있다.

일본의 제안으로 추진 중인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은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와 함께 중국과 러시아를 자극해 동북아 신냉전 체제를 부추길 수 있는, 민감한 쟁점이다. 군사대국화를 꿈꾸는 일본의 야욕을 한국 정부가 나서서 도와주는 꼴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한국의 정치적 혼란을 틈타 밀린 숙제를 해결하려는 일본의 의도에 정부가 말릴 이유도 없다. 박 대통령의 ‘드레스덴 선언’ 등 외교·안보 정책에 개입한 흔적이 드러난 바 있는 최씨가 이 협정에도 간여했다는 의혹을 낳고 있다. 이 때문에 비선 실세 최씨의 국정농단이 남긴 후유증을 하루빨리 해소해야 한다는 요구가 높다. 그의 개입으로 왜곡된 정책을 재검토하는 차원에서도 강행하면 안된다. 박근혜 정부는 이미 시민의 신뢰를 잃었다. 민감한 현안을 밀어붙여 또다시 국정혼란을 일으켜서는 안된다. 역사교과서 국정화와 군사정보보호협정 추진을 즉각 중단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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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실씨가 2013년 박근혜 정부 출범 초부터 최근까지 아무런 통제 없이 청와대를 드나들었다는 보도가 나왔다. 청와대 부속실 행정관이 운전하는 차량에 앉아 ‘11문(정문)’을 통해 검문 없이 오갔다는 것이다. 장관들도 출입증 제시와 얼굴 대조를 거친 뒤에야 진입이 가능한 곳이라고 하니 최씨의 위세는 장관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높았음을 알 수 있다. 박 대통령이 법과 시스템에 의한 통치가 아니라 사적 인연에 의한 통치를 행한 것이며 이 나라가 ‘박근혜-최순실 공동 정부’였다는 얘기와 다를 바 없다.

[김용민의 그림마당]2016년 11월2일 (출처: 경향신문DB)

최씨가 청와대에서 박 대통령을 만났을 것이란 점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박 대통령과 얼굴을 맞대고 온갖 국정에 개입했을 것이다. 최씨가 청와대로 올라오는 각종 기밀문서들을 훑어보고 직접 들고 나왔을 수도 있다. 그동안 현 정부에서 장관들의 대통령 대면보고가 차단돼 있으며 이는 매우 비정상적이란 우려가 높았다.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도 1일 국회에서 청와대 정무수석으로 재임하는 11개월 동안 박 대통령과 독대한 적이 없다고 답했다. 관련 부처 책임자와 교감이 가능한 대면보고의 중요성은 거론할 필요조차 없다. 그럼에도 박 대통령은 지난해 신년 기자회견에서 장관들과의 대면보고가 적은 게 아니냐는 지적에 “그게 필요하다고 생각하느냐”고 반문했다. 전화 한 통으로 빨리빨리 하는 게 편리하지 않으냐는 이유를 댔다. 그런 박 대통령이 최씨에게는 무시로 청와대를 드나들도록 허용했다는 소식은 정말로 경악스럽다. 최씨와 국정을 상의하고 있으니 장관들과 논의할 시간은 불필요했다는 얘기가 아닌가.

청와대는 최씨의 과거 출입기록을 낱낱이 공개해야 한다. 정연국 청와대 대변인이 “검찰의 수사가 진행 중인 만큼 각종 의혹에 대해서 실체적 진실이 밝혀질 때까지 나라를 위해서 좀 냉정을 지켜줬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한 것은 정말 무책임하다. 사실이 아니라면 떳떳하게 공개 못할 이유가 없다. 검찰은 최씨가 언제 청와대를 출입했는지, 누구와 만났는지 반드시 규명해야 한다. 최씨가 자주 청와대를 드나든다는 얘기는 진작부터 돌았다. 친박 실세들도 모를 리 없었을 것이다. 마땅히 최씨를 멀리하도록 대통령에게 진언했어야 했다. 그럼에도 친박 실세들은 대부분 최씨 전횡을 몰랐다며 잡아떼고 있다. 대통령 주변에서 권력만 누리던 사람들이 이런 식으로 나온다면 정말 후안무치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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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선 실세 최순실씨에 이어 그 언니 최순득씨와 조카 장유진씨(장시호로 개명)도 비리를 저질렀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최씨 자매와 매주 만나는 한 지인은 “최순실은 최순득이 지시하면 그대로 움직이는 현장 반장이며, 최순실을 비선 실세라 하는데 최순득이 숨어있는 진짜 실세”라고 말했다. 박 대통령이 테러를 당한 뒤 요양했던 곳도 박 대통령의 고교동창인 최순득씨 집이라고 한다. 최순실씨의 브레인이 장유진이며, 그가 국정농단의 핵심이라는 주장도 있다. 최씨 모녀의 호가호위도 모자라 일가족이 나랏일을 주무르고 있었다니 허탈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

영국 가디언은 “굴착기 운전자가 대검찰청 청사로 돌진했다”는 내용까지 보도했다. 가디언 홈페이지 캡처

최근 제기된 의혹을 보면 이번 사건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아니라 ‘박근혜 대통령을 등에 업은 최태민씨 일가 국정농단’이라고 불러야 할 정도다. 새로 불거진 의혹은 지난 6월 설립된 동계스포츠영재센터의 사무총장을 맡고 있는 최씨의 조카 장씨의 역할과 관련되어 있다. 영재센터는 1년 새 6억7000만원의 정부 예산을 챙겼고 이 과정에 장씨가 절대적인 역할을 했다고 한다. 기존 단체와 기능이 중복되는 데다 실적이 없는 단체에 이런 큰 금액이 지원된 것은 특혜라고 볼 수밖에 없다. 나아가 장씨는 1300억원이 투입된 강릉 빙상장의 사후 활용계획 등에 관여했다는 말이 나온다. 평창 동계올림픽 이권에까지 개입하려 했다는 것이다.

이뿐 아니다. 최순실씨의 첫째 언니의 아들 이모씨는 최씨가 쓰던 태블릿PC 명의자인 김한수 청와대 선임행정관과 고교동창이다. 김 행정관은 최씨를 이모라고 불렀다고 한다. 청와대 관계자들은 이씨가 경력에 어울리지 않게 3급이 된 것에 대해 의문을 품었다고 한다. 최씨 일가가 박 대통령의 권력을 공유했던 셈이다.

박 대통령의 영적 지도자였던 최태민씨의 가족은 이제 40년 가까운 박 대통령과의 친분과 배경을 이용해 국정을 농단하고 이권까지 챙겼다는 의심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수천억원대에 이르는 최씨 자매 재산의 출발점이 과거 육영재단에서 횡령된 돈이라는 의심마저 나오고 있다. 이들 가족이 13조원에 달하는 평창올림픽의 이권에 개입하려 했다니 다른 곳에서 또 어떤 비리를 저질렀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국가 예산을 제 곳간처럼 여긴 최씨 일가라면 못할 일이 무엇이었을까. 더불어민주당 안민석 의원은 “장씨가 보름 전 국가대표 출신 모씨에게 전화를 해서 (장씨가 한 일에 대해) 증거인멸을 지시했다”고 했다. 검찰은 서둘러 의혹에 연루된 최씨 가족들을 찾아 소환해야 한다. 그리고 이들의 국정농단을 남김없이 밝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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