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파탄'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6.12.26 마음 둘 곳
  2. 2016.12.12 [기고]국민의 탄핵 명령, 국회는 완수해야
  3. 2016.12.05 거짓말도 제대로 못하는 대통령

며칠 전 어느 단체의 송년 모임에서 간단한 강의를 했다. 나는 ‘올해 지구촌 뉴스’를 전하면서 “박근혜, 트럼프보다 더한 인물이 다음 우리의 대통령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청중석에서 비명 소리가 나왔다. 박근혜·최순실도 충분히 끔찍한데, 더 나쁜 사람이 나올 수도 있다고 하니 놀란 모양이다.

‘박·최’에 대한 국민의 분노가 국정파탄, 부정부패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그들은 구토를 부르는 인간의 모습이 어떠한가를 보여주었다. 나는 개인적으로 분노보다는 인간의 사회성에 대한 한계와 절망을 느꼈다. 독점한다는 의미의 ‘농단(壟斷)’은 적절한 표현이 아니다. 최순실씨 일가가 박태환 선수 협박부터 무기 구입까지 손을 뻗지 않은 곳이 없으나, 그들이 집어 삼킨 것은 좁은 의미의 국가권력(청와대)이 아니라 사회 전체다. 그들은 ‘우리’에게 깊은 자상을 남겼다. 정권이 교체될지 확실치 않지만, 이번 사태가 새누리당 해체나 정권교체 차원에 머물러서는 안되는 이유다.

인간관계, 사회성, 민주주의를 해결해주는 과학기술은 왜 등장하지 않은 것일까. 기왕 인공지능이 필요하다면 바둑이나 소설 쓰기 실험 대신 인간의 가장 어려운 문제인 도덕성을 조절해주었으면 좋겠다는 공상을 해본다. 삶의 꼭대기에 부와 성공, 물질적 욕망이 등극한 지 오래다. 하지만 실제로 사람들이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자원은 감정의 연대다. 덜 외로운 상태. 스트레스 덜 받는 일상. 자기가 속한 곳에서 인정받는 것. 나의 경우 미세먼지 없는 세상이다. 한국인들이 인간관계의 고통과 불쾌한 기분을 해소하기 위해 쓰는 비용은 만만치 않다. 세계 최고의 1인당 주류 소비량, 국민총생산 대비 최대 규모의 성산업, 쇼핑 중독.

<빵과 장미>라는 영화가 있지만, 둘은 다르지 않다. ‘빵’도 ‘장미(인간으로서 존엄)’의 힘이다. 의식주는 유대와 배려 속에서 생산된다. 정의가 힐링이다. 바람직한 사회제도 역시 선의의 인간이 운용할 때만 인프라로서 힘을 가질 수 있다. 박·최 게이트는 어쩌면 대한민국에서는 이 모든 것이 영원히 불가능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운 증명 같았다.

나는 휴대전화를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e메일을 많이 받는다. 이런 사연이 적지 않다. “저의 이번 생은 망했다는 생각을 자주 하는데, 요즘은 특히, 마음 둘 곳이 없는 중에, 하소연합니다. 별반 내용도, 목적도 없는 메모가 되고 말았지만… 죄송합니다.”

광장은 불신의 시대에 유일하게 마음을 주고, 나누고, 두고 올 수 있는 안전한 곳이 되었다. 광장에 모인 200만이 넘는 사람들의 동기와 생각이 같을 리 없다. 광장의 축제는 일상의 프로작(우울증 치료제)이기도 하다. 어쩌면 촛불은 밤의 시위가 아니라 낮의 우울을 밝히는 데 더 긴요한지도 모른다. 이런 촛불이 “바람 앞에 쉽게 꺼진다”고?

마음 둘 곳. 마음을 두는 곳은 어디인가. 나는 한때 이데올로기에 마음을 두었고, 한때는 사람에게 마음을 두었지만 지금은 없다. 나의 거처는 나 자신이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으니 나 역시 있을 곳이 없다. 옆을 기웃거리게 된다. 외로움과 혼자임은 무관하다. 문제는 자기 충족적인 건강한 외로움이 아니라 불안하고 고립된 느낌이다. 외로운 사람이 취약해질 수밖에 없는 이유는 외로워서가 아니다. 외로움 자체는 죄가 없다. 사회가 따뜻하다면, 외로움은 절실한 연대의 근거가 된다. 그런데 경험하다시피 현실은 외로운 사람을 이용한다.

살 만한 현실이 중력처럼 나를 붙잡아주면 좋으련만 세상이 썩었으니 그 끈도 위태롭다. 예전에는 종교에 몸을 맡기는 이들이 많았지만 지금은 기복은커녕 위안도 되지 못하나 보다. “종교가 없다”는 한국인이 56%가 넘는다. 마음 둘 곳을 찾아 헤매다가 방황을 멈춘 이들의 결심, 대한민국의 자살과 우울은 상상 이상이다.

마음 둘 곳이 없는 상황은 몸(존재)을 둘 곳도 없다는 뜻이다. 우리말의 “몸 둘 바(所)를 모르겠습니다”는 겸양, 민망, 사과 등의 의미다. 내 몸이 차지하고 있는 작은 관짝만 한 공간조차 아깝고 부당하다는 자학의 뜻이다. 그런데 비유적으로 “죄송하다”는 의미 말고, 글자 그대로 실제 몸을 둘 곳이 없는 상태. 이것은 외로움을 넘어 존재의 위기다. 나는 어디에 있어야 적합한 사람일까. 타인과 세상에 민폐가 되지 않을까. 진로를 정하지 못한 이들의 스트레스가 이것이다. 자기 몸 둘 곳이 없는 사람에게 사회는 “눈으로 레이저를 쏘며”(‘눈총’에 대한 어느 청소년의 표현인데 실감 났다) 한심하게 여긴다.

나를 포함, 마음 둘 곳도 몸 둘 바도 없는 이들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 많은 젊은이들이 자신이 잉여 신세임을, 그렇게 될 가능성이 높음을 알고 있다. 자기계발도, 힐링도 속임수라는 것을 안다. 거기에 투자할 돈도 없다. 다른 쪽 사람들, 고령화사회에서 나이 들어가는 이들의 심정은 또 다른 서러움이다. 세상이 계속 “당신의 존재 자체가 사회문제”라고 하면? 고령화 대책은 좋은데, 그럴 때마다 ‘실제’ 고령인 사람의 심정은 어떻겠는가. 나는 ‘그들’과 동일시된다.

나의 송년 결론. 한 사람에게라도 의미 있는 사람이면 되지 않을까. 쓸모가 ‘생산과 건설’로 지구를 망치는 일이라면, 쓸모의 의미를 재규정하면 되지 않을까. 내 마음 둘 곳을 찾지 말고, 쉽지 않겠지만 남들이 마음을 둘 수 있는 사람이 되어보자. 이렇게라도 생각을 묶어두어야 새해를 감당할 수 있을 것 같다.

정희진 | 여성학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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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어리석은 행위가 세계적인 사건이 되어버렸다. 국정농단을 둘러싼 참혹한 진실이 양파껍질처럼 벗겨지면서 나라는 국제 망신이고 국민들의 분노는 하늘을 찌른다. 언론보도, 촛불시위, 검찰조사에 이어 특검과 국정조사가 진행되면서 과녁은 대통령을 정조준하고 있다. 결국 국회가 대통령 탄핵안을 발의함으로써 온 나라를 가득 메운 촛불의 마지막 국면이 시작되었다.

지난 주말 국회의원 171명의 이름으로 대통령 탄핵을 위한 절차가 시작되었다. 야 3당이 만든 탄핵소추안은 세월호 참사 당일 대통령의 부실대응을 국민 생명권 보호 의무 위반으로, 대기업에 미르·K스포츠 재단 출연을 강요한 혐의 등은 뇌물죄와 직권남용, 강요죄로 명시했다. 12월9일 의결을 예정하고 있는 ‘탄핵화살’은 시위를 떠났다. 탄핵안이 발의된 순간 가결 여부가 핵심 쟁점으로 부각됐지만 결론부터 말하면 탄핵안은 가결되거나 가결 이상의 효과로 나타날 것이다. 그 근거를 밝혀보자.

국민이 대통령 탄핵을 요구한다. 우리 헌법 제1조는 국민을 대한민국의 주권자로 명시하고 있다. 국민의 90% 이상이 대통령에 반대하고 압도적 다수가 탄핵을 원하는 것만으로도 대통령은 이미 국민의 탄핵을 받았다. 헌법적 권능에 기초해서 대통령을 선출한 국민이 그 권능에 기초해 탄핵을 요구하는 이 시점에서 이미 탄핵은 이루어진 것이고 박근혜 대통령은 더 이상 대통령이 아니다.

탄핵 결정권은 국민에게 있다. 대통령 탄핵의 법적 권한은 국회에 속하지만 이번 탄핵의 진원지는 광화문이다. 국민이 탄핵의 결정자라는 뜻이다.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 4%가 이를 대변한다. 탄핵은 국민이 결정하는 것이며 국회의원 300명의 의결은 국민들의 결정에 대한 보충적 행위로 보아야 한다. 이것이 탄핵 결정권의 본질이며 진행 중인 촛불 정신이다.

국정농단의 공범인 새누리당에는 탄핵 결정권이 없다. 새누리당은 탄핵 발의를 거부함으로써 국민의 명령을 거부했다. 대통령 말 한마디에 추풍낙엽처럼 흔들리면서 우왕좌왕하는 새누리당은 노선 부재와 내부 분열로 대통령 탄핵에서 변수가 되지 못한다. 새누리당에 남은 일은 이해관계에 따라 이합집산하면서 가능한 범위에서 각자 생존을 도모하는 것뿐이다.

국정농단의 주범인 대통령 역시 탄핵의 변수가 아니다. 국정파탄의 몸통으로 특검과 국정조사의 핵심 대상으로 전락한 대통령은 범죄행위의 피의자에 불과한 만큼 지금 대통령이 해야 할 일은 잘못을 시인하고 즉시 자리에서 물러나거나 자숙하며 탄핵을 기다리는 일뿐이다. 이것이 한때나마 자기를 뽑아준 국민에게 예의를 다하는 길이다. 더 이상의 고집이나 부질없는 담화로 탄핵 국면을 혼란스럽게 한다면 죄를 더할 뿐이다.

이제 탄핵이 임박한 시점에서 국회가 명심해야 할 역사적 진실이 있다. 형식적 민주주의하에서 국민은 4년(국회의원 선거) 또는 5년(대통령 선거)에 오직 하루 주권자의 지위를 인정받는 수동적 존재에 불과하지만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하여 새로이 건설해야 하는 비상한 국면에서는 능동적 주권자로서 국회 자체에 대하여 창조적 파괴를 명할 권능을 갖는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국회와 권력이 본디 국민의 것이라는 민주주의의 가장 본질적인 원리로서 헌법 제1조의 국민주권론에 기초한다.

국회의원에게는 권리와 의무가 있다. 권리는 삼권분립 정신에 따라 범법자 대통령을 탄핵하는 것이며 의무는 주권자 국민의 명령을 받들어 탄핵을 완수하는 것이니 권리와 의무가 하나로 일치한다. 국민을 모독하는 범죄행각으로 나라를 위기에 빠뜨린 대통령을 탄핵하지 않는다면 국회는 해산에 준하는 정치적 탄핵에 직면할 수밖에 없고 이를 거부하는 국회의원은 국민의 대리자로서 자격을 상실할 뿐이다.

물이 모여 강이 되고 바다가 되며 바람이 일어 태풍이 된다. 주권자의 집합적 자기표현인 촛불은 새로운 상상력으로 낡은 관행을 파괴하는 혁명적 항쟁으로 발전하고 있다. 이 역사적 국면에서 당파적 이익을 추구하거나, 정치적 유불리를 계산하거나, 숫자를 셈하는 기회주의적 태도를 보이는 것은 국민이 요구하는 바가 아니다. 지금 국회가 해야 할 일은 오직 하나, 주권자 국민의 지엄한 명령을 이행함으로써 헌법을 수호하는 것이다. 국회의 대오각성과 분발을 촉구한다.

정대화 상지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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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용 감독의 영화 <가족의 탄생>(2006)에서 내가 자주 떠올리는 장면이 있다. 주인공(공효진)은, 엄마의 애인인 유부남의 집에 쳐들어간다. 온 가족이 모인 단란한 식사 시간이다. 그녀는 다짜고짜 “아저씨! 우리 엄마 진짜로 사랑해요?”라고 묻는다. 아저씨는 자기 부인과 자녀들 앞에서 차분하게 말한다. “그래, 나 너희 엄마를 죽도록 사랑한다.” 거짓말을 기대하고 ‘불륜 아저씨’ 집에 화풀이를 하러 갔던 주인공은 풀이 죽어 돌아선다.

나는 인간의 진정성을 믿지 않지만 인상적인 장면이었다. 진정성만큼이나 거짓말도 논쟁적이다. 거짓말이 항상 나쁘지는 않다. 하지만 속된 말로 면전에서 ‘생까는’ 거짓말은 누구에게나 상처가 된다. 몇 분이면 탄로 날 거짓말을 반복하는 사람, 다 아는 사실을 갑자기 잡아떼는 경우, 오랜 친구의 속임수…. 이런 일을 자주 겪다보면 제정신을 간수하기 힘들다. 타인의 잦은 거짓말은 인간의 판단력을 무너뜨린다.

나는 지난 2년 동안 세 커플의 ‘안타까운’ 혼외 사랑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내 시간, 비용, 지력의 손해가 없었다고 할 수 없지만, 상담료를 청구할 생각은 없다. 더 큰 문제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아무 이해관계 없이 고민을 들어주었으나, 지금 나는 마피아 영화에 나오는 살인 사건의 증인처럼 ‘도망 다니는 신세’다. 궁지에 몰린 그들이 내가 ‘오해’하고 있다며, 자신들의 결백을 주장하고 있다. 물론 나는 그런 적도, 그럴 이유도 없다.

시민들이 12일 서울 광화문광장 일대에서 열린 3차 범국민행동에 참가해 촛불로 글씨를 만들어 박근혜 대통령 하야를 촉구하고 있다. 강윤중 기자

며칠 전까지 내게 연애 상담을 했던 이들의 필사적인 책임 전가에, 억울하다기보다 믿어지지가 않는다. 짐승에게 미안한 말이지만 ‘인면수심’이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지면에 쓸 사연도 아니고 내용도 복잡하다. 그들은 자신의 ‘부정(不貞)’으로 인해 부정(不正)한 일이 생기자 이를 학력주의, 언론탄압 등으로 프레임을 이동시켰다. 게다가 결정적으로 나의 성격(결벽증)을 문제 삼아 “이상한 여자의 의심”이라고 떠들고 있다.

요즘 사람들은 놀랄 정도로 혼외 관계에 관대했다. 한마디로, 그들이 비난받은 이유는 ‘불륜’이 아니라 관계를 이용해서 공정치 못한 행동을 일삼았기 때문이다. 논란이 계속되자 이제는 돌변하여 “아무 관계도 아니다”라며 펄쩍 뛰고 있다.

사연도 가지각색이다. 절친의 배우자와의 사랑, 내연 관계를 이용한 횡령, 애인을 낙하산으로 취직시킨 경우. 결국 사랑보다 비즈니스다. 그들의 필사적인 거짓말은 능력은 없는데 유명세, 돈, 자존심은 유지하고 싶은 욕망에서 나온 것이다. 가족, 학력, 연줄은 비난받지만 혼외 사랑은 드러나지만 않으면 ‘동아줄’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특히 세 여성 모두 여성스러움을 무기로, 남편과 애인의 친구들까지 십분 활용하여 ‘페미니스트 커리어우먼’으로 거듭나는 중이다.

그들의 거짓말은 e메일이나 통화 기록 등 증거가 분명하기 때문에, 더욱 절실했을 것이다. 이 시대에 윤리 따위가 무슨 소용이겠는가. 다들 최순실급 정도만 아니면 눈감아 주자고 한다. 최순실 정국의 최대 수혜자다. 그들은 모두 사회성이 지나치게 발달한 사람들이어서 거짓말에도 능숙하다. 거짓말과 비방도 이 시대에는 능력인 셈이다.

그런 와중에 멍하니 TV를 보고 있는데, 대통령이 나보다 더 멍한 표정으로 황당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구명조끼를 학생들은 입었다고 하는데 그렇게 발견하기가 힘듭니까?” 갑자기, 박근혜 대통령은 무엇을 잘하는 사람인가라는 의문이 들었다. 거짓말, 연기조차 할 수 없는 사람? 아니, 그저 자신의 기본 업무를 전혀 모르고 있었다.

국정파탄도 파탄이지만 촛불정국 전 과정을 통해, “대통령이 저런 수준인지 몰랐다”는 사람은 나만이 아닐 것이다. 그의 전문 분야는 무엇인가? 학부 전공인 전자공학일 리는 없고 뭐라도 아는 분야가 한 가지라도 있는가? 국정 관심사는 무엇인가. 테니스? 앞서 말한 무고한 타인을 짓밟는 후안무치한 인간들은 세상을 파멸시키고 있고, 이를 통제해야 하는 사람은 지구를 떠나 우주의 기를 독점하고 있으니 완벽한 조합이다.

박 대통령과 그 주변인들의 근본적인 문제는 거짓말 각본도 없다는 사실이다. 여기서 “이것이 국가인가”라는 탄식이 나올 수밖에 없다. ‘정치력’ ‘통치력’이 전무한 것이다. 거짓말을 하려면 어느 정도의 현실감각과 판단력이 필요하다. 거짓말을 옹호하는 것이 아니다. 거짓말의 전제인 자기 파악이 안돼 있다.

지금 232만명이 거리에 나온 이 시국에 대통령만 다른 나라에 살고 있다. 놀라운 점은 대통령이라는 자의 ‘백치성’이다. 누구처럼 학살자도 아니고, 박식한 사람도 아니고, 바로 전직이었던 이처럼 축재한 사람도 아니다(?). 도대체 정체가 무엇인가. 성형(설), 피부 관리, 공주놀이(해외순방)를 하려고 청와대에 들어갔는가. 단지, 간신에게 휘둘린 것인가. 부모가 빙의되는 과정에서 ‘에러’가 난 것인가.

그가 ‘나쁜 사람’이라기보다 개념 없는 사람이라는 판단이 들자, 혹시 향후에 정 많은 한국인들이 그의 백치성을 불쌍히 여겨 용서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면서 끔찍해진다. 세상에서 가장 악한 사람은 나쁜 의지를 가진 사람이 아니다. 알 수 없는 사람이다. 국가 지도자가 이런 유형인 경우 국민은 의미 없는 고민에 빠지고, 공동체는 분노와 의구심으로 소진된다. 박 대통령의 능력은 단 하나, 유신의 유령이다. 이것이 우리의 비극이고, 내가 민주주의보다 상식을 원하는 이유다.

정희진 | 여성학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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