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근래 정치권의 동성애 호들갑을 보노라니 좀 혼란스럽고 어리둥절하다. 마치 오랫동안 외항선이라도 타다 내린 것 같다. 언제부터 동성애 문제가 고위 공직자의 역량과 자질을 판단하는 절대 기준이 됐나 싶어서다. 동성애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밝히라고 거칠게 다그치는 국회의원, 곤혹스러운 표정의 대법원장 후보자, 그리고 21세기 한국 사회에 등장한 황당무계한 ‘후미에’(17세기 일본 에도막부가 기독교 신자를 색출하기 위해 사용한 방법) 앞에서 한숨을 내쉬었을 국민들. 이미 후미에의 피해자도 나왔다. 김이수 전 헌법재판소장 후보자는 졸지에 ‘동성애 옹호자’로 몰렸다. 군형법의 ‘군대 내 동성애 처벌’ 규정이 불명확하다는 이유로 위헌 의견을 냈던 것이 동성애 찬성으로 ‘둔갑’한 것이다. 모호한 법으로 피해 보는 사람이 없어야 한다는 법관의 양심에 따른 판단이 어처구니없는 결과를 초래했다.         

정의당 김종대 의원과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 등 시민단체 주최로 25일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열린 '군 형법 92조의6 폐지안 발의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군대 내에서 합의에 따른 동성 간 성적 관계까지 처벌하는 내용을 담은 군 형법 제92조 6항의 폐지를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해당 군형법을 보면 ‘군인이 항문성교나 그 밖의 추행을 하면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는 내용이 있다. ‘그 밖의 추행’이 자의적으로 해석되거나 악용될 수 있기 때문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 것이 ‘동성애를 퍼뜨릴 위험인물’이라는 증거가 됐다. 비약도 이런 비약이 없다. 이 같은 논리가 별문제 없이 통용되는 분위기, 게다가 급격히 퇴행하는 정치인들의 수준을 보노라면 다음과 같은 문답이 오가는 청문회도 충분히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 후보자, 항문성교를 연상하게 하는 후배위를 선호하죠? (녹취 파일을 흔들며) 그동안 관계했던 여성의 증언이 확보돼 있어요. 인정하세요.”

“저는 상식과 양심에 어긋나는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동성애라는 성적 지향을 가졌다는 이유로 부당한 차별을 하지 말자, 애매한 피해자가 생기지 않도록 법조문을 정비하자. 현재 동성애와 관련한 논의의 수준은 이 정도다. 그런데 이에 대한 동의가 군대의 기강을 무너뜨리고 나라의 근간을 흔드는 행위와 동일시된다. 또 이것이 물꼬가 되어 소아성애, 수간, 시체상간까지 비화되리라 단언하고 군대 가야 할 자녀를 둔 부모들의 불안감을 강변한다. 

듣다 보면 동성애자만큼 무서운 존재가 없다. 페스트 저리 가라 할 만한 치명적 역병이다. 사회 구성원으로 인정받는 그 순간부터 동성만 보면 흥분해서 들이댈 좀비 같은 존재다. 언제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통제불능 성도착자들이다. 좀 있으면 ‘나는 동성애자가 싫어요’ 외치다 죽임을 당했다는 군대 괴담까지 나올 기세다. 이렇게 끔찍한 존재들이 널렸는데 그동안 사우나는 어떻게 다녔으며 화장실 소변기는 어떻게 이용했나. ‘항문성교하면 처벌한다’는 얄팍한 보호막 하나로 안심하고 살아왔다는 말인가. 같은 논리라면 사회적으로 인정되는 이성애자들은 이성만 보면 흥분해서 껄떡거리는 존재들이다. 남녀가 함께 모이는 학교, 회사, 각종 공동체는 언제든 난교파티가 벌어질 공간이다.

우려해야 하는 것은 남의 성적 지향이 아니다. 동성 간이든 이성 간이든 물리력이나 지위 등을 이용해 상대에게 가하는 모든 종류의 폭력이다. 기득권, 다수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차별과 탄압이다.

동성애가 정치권의 핵심 쟁점으로 부상한 데는 보수 개신교계가 큰 몫을 했다. 소돔과 고모라처럼 죄악에 물들어가는 세상을 두고 볼 수 없어서 떨쳐 일어날 만큼 ‘순수’한 신앙심 때문일까. 안타깝게도 냉전·반공체제를 발판으로 함께 성장했던 수구보수체제의 기득권을 유지하고 헤게모니를 되찾으려는 생존전략이라는 것을, 유통기한 지난 색깔론과 종북 타령을 대신해 혐오의 대상으로 삼기에 적절한 동성애를 선택했다는 것을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그게 아니라면 성경에 언급된 그 수많은 죄들이 지금도 도처에서 횡행하는데 왜 동성애에만 목숨 거는 건지 이해할 길이 없다.

<문화부 | 박경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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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예처럼 일했다는 공관병 때문에 다시 한국군의 존재 이유와 기능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모 기관과의 공동연구로, 군 복무 중인 청년부터 월남전 참전 용사까지, 6개월 공익근무요원 출신부터 전방 특수부대 출신까지 열댓명의 남자들과 ‘군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어보았다.

경험의 개인차가 무척 크지만, 대부분의 남자들은 ‘그래도’ 대한민국 군대의 존재 가치에 대해 인정했다. 군대 경험이 자기 생애에서 긍정적 기능을 했고, 후배나 아들도 군대 가는 게 좋겠다고 말했다. 작전권 문제는 물론 한국군의 온갖 적폐와 말도 안되는 가혹행위·인권침해를 앎에도 말이다. 그래서 ‘그래도’를 좀 더 파고드니 그런 답은 역설이나 일종의 결과론이었다. 무척 괴롭고 힘들었지만, 결과적으로 군대는 가족과 학교밖에 모르던 청년에게 팔도의 온갖 사람들을 만나게 하여 ‘사회성’을 기르게 하고, 짧은(?) 2~3년 동안 평생 잊지 못할 경험을 하게 했다는 것이다. 과연 이 시간이 해외여행이나 사회봉사를 그만큼 하는 것보다 유의미했을까?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세상의 허다한 ‘군대 이야기’를 종합해볼 때 한국군의 3대 폐단은 ‘삽질’, 부패 그리고 폭력이다. 셋 중에서 뭣이 더 중한지, 도대체 무엇부터 ‘시정’하자 할지 모르겠다. 다 너무나 심각하고 시급하기 때문이다.

‘삽질’은 무능과 무의미의 비유어다. 군대 가면 ‘나라를 지킨다’고? 추상적으로는 그렇다고 할 수 있다. 병사들은 분명 들판을 뛰고 바다를 헤엄치며 전쟁연습을 하기도 하고, 무기 다루는 법과 ‘적’을 살상하는 방법을 배우기도 한다. 그러나 왠지 공허하다. 그리고 그런 시간보다 훨씬 많은 무의미한 시간이 있다. 군생활의 상당 부분은 그냥 병사들이 거기 있기 때문에 행해진다. 60만명의 젊은이들이 모여서 잡초 제거, 평토, 제식, 점호, 관물대 정리, 다림질 따위를 열심히 하면 ‘나라가 지켜’지나? 물론 현실에 맞지 않는 이념·안보교육도 ‘삽질’에 해당한다. ‘삽질’의 본질은 군의 낡거나 잘못된 시스템과 무능·부패한 일부 장교·장성 집단일 것이다. 이를 보통 국민의 아들들이 무임금과 가혹행위로 벌충하는 것이 ‘국방의 의무’로 돼 있다. 그런 국방의 개념 자체에 문제 있는 거 아닌가?

부패는 더 말할 필요도 없는 방산비리 같은 일들이다. 나라가 가난했을 때는 군수나 인사비리가 다반사였다 하나, 지금은 미국의 글로벌 대기업 무기상들과 거래하는 장성들이 부패의 주역인 모양이다. 많은 남성들이 지적하듯 왜 북한보다 수십배의 국방예산을 수십년간 쓰고도 왜 ‘안보위기’에 시달려야 하나? 이 또한 ‘큰 개념’이 잘못된 탓일 것이다.

마지막으로 폭력이다. 물론 모든 군대는 존재 자체가 폭력이다. 그런데 어떤 군대의 폭력은 적을 향해 있지 않고, 자기 병사들이나 여군 그리고 민간인들을 향해 있으니 문제다. 대한민국 군대는 어떤가? 근래 들은 군폭력 이야기 중 모 특수부대 출신에게 들은 것이 가장 끔찍했다. 고참이 공개적으로 후임의 성기를 만지거나 때리고 몸의 다른 부위를 핥거나 하는 ‘장난’은 물론 일대일 상황에서의 성폭력이 비일비재했다는 것이다. 또한 그렇게 상관·선임에 의해서 수시로 저질러지는 성희롱·성폭력이, 폭로도 시정도 될 수 없이 은폐되고 마치 ‘전통’처럼 대물림되는 강력한 구조가 2000년대까지 있었다는 것이다(지금은 나아졌으리라 믿는다).

많은 희생과 노력이 있었는데도 왜 군 인권은 근본적으로 나아지지 못했을까? 여전히 군내 자살 장병과 성폭력 피해자들이 줄어들지 않는 이유는 뭘까?

전방에서 일병으로 근무하는 한 젊은 친구를 만나니 군대 간 지 1년 만에 놀랍게 성숙해졌다. 한눈에 봐도 몸에 근육이 붙었고, 마음에도 근육이 붙은 듯 공부와 자신의 미래에 관한 성숙한 걱정도 한다. 요즘은 시간 날 때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으려 한다고도 했다. 이전에는 모두 없었던 일이라니 대견스럽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이는 20대의 어느 시기를 병영에서 보내는 보통의 청년들에게 (거의 저절로) 일어나는 변화이기도 하다. 이러할진대 한국군은 이 시대에 무엇이어야 하며, 수십만의 병사들은 어떤 존재여야 하나? 근본적 성찰과 개혁이 필요하다.

민간 전문가들과 시민단체, 그리고 여성들도 참여하는 개혁 프로그램을 통해 예산구조, 병영문화와 인권, 교육과 생활의 체계를 재정립해야 한다. 군대가 나라에 진정 필요하고 젊은이들의 삶에 도움이 되는 조직으로 변해야 한다. 될 때까지, ‘개혁’으로 정말 ‘빡세게’ 군을 굴려야 하겠지만, 군개혁은 단지 군의 문제만이 아니다.

<천정환 성균관대 교수·국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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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24일, 한 해군 대위의 자살 소식이 전해졌다. 민간인 친구에게 “상관으로부터 성폭력 피해를 입었다”고 말한 사실이 확인됐고, 자살 다음날 바로 상관인 대령은 준강간 혐의로 긴급 체포됐다. 그리고 그 다음날에는 구속영장이 발부됐다. 해군의 대응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신속하고 거침이 없다. 고인의 안타까운 죽음을 생각하면 해군의 신속한 대응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지만 ‘뭔가 미심쩍다’는 의심을 떨치기 어렵다.
 
보도에 따르면 자살한 대위가 발견된 경위는 ‘연락이 끊긴 채 출근을 하지 않아 동료들이 대위의 집을 찾아갔다가’이다. 단순히 연락이 안되고 출근하지 않는다고 ‘동료들’이 집까지 찾아가는 일은 아무래도 상식적이지 않다. 유서도 없었는데 민간인 친구에게 털어놓았다는 얘기만으로 가해자를 특정하고 단 7시간 만에 긴급 체포했다는 것도 이상하다. 또한 대령이 만취상태로 성관계를 한 사실은 인정했다지만 체포 하루 반나절 만에 구속영장이 발부된 것까지. 그야말로 일사천리 속도전적 해결이다.
 
그동안 수많은 군대 내 성폭력 및 자살·사망사건들에서 축소·은폐·조작을 위한 조직적 시도들이 있었던 점을 고려하면 이런 대응들은 이상하고 낯설다. 뭔가 숨겨진 얘기가 훨씬 많을 것 같다는 합리적 의심이 든다. 그래서 지금 이 사건 해결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신속한 결론과 처벌’이 아니라고 느낀다. 대위에게 어떤 일이 있었고 왜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 철저한 조사가 먼저다.
 
2016년 금태섭 의원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여군 대상 성폭력 범죄를 저지른 ‘육군’은 총 111명이고 대부분 계급과 서열에 의한 권력형 성폭력이었음에도 실형 선고는 7명(5.9%)에 그쳤다. 2014년 발표된 홍일표 의원의 자료에서도 실형은 5%에 불과했다. ‘강력한 처벌’을 할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제대로 처벌받는 사례는 드문 것이다.
 
상명하복의 강력한 권위적, 위계적인 구조, 폐쇄적인 조직문화, 여성군인을 동료가 아닌 ‘여성’으로 여기는 젠더화된 위계질서는 군대 내 성폭력의 원인이자 동시에 군대 내 성폭력을 축소·은폐·조작하는 메커니즘이다. 피우진 보훈처장 내정자의 경험담과 2013년 육군 대위 자살사건 등 수많은 성폭력사건을 통해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2014년 발표된 ‘군 성폭력 실태조사’에 따르면, 군대 내에서 성적 괴롭힘이 밝혀졌을 때 피해자는 집단 따돌림(35.3%), 가해자나 부대 내 선임 혹은 상관에 의한 보복(각 23.5%), 전출(17.7%) 등의 불이익을 받았고, 불이익을 받지 않은 경우는 단 한 건도 없었다. 피해 시 남성군인은 97.4%가 대응하겠다고 했지만 여군은 단 10.0%만이 대응하겠다고 했다. 이런 현실에서 군대 내 시스템만으로 군대 내 성폭력 문제 해결을 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근본적인 문제 해결에 제대로 접근할 수 없고 어떠한 변화도 만들어낼 수 없다.
 
지금 필요한 것은 신속한 결론이 아니라 ‘인권 관점의 충분하고 철저한 조사’다. 그래서 여성단체들은 인권위, 국회, 민간전문가가 참여하는 특별조사를 요구한다. 특별조사에는 종결된 성폭력사건에 대해서도 철저한 검증과 재조사를 포함할 것을 제안한다. 또 다른 ‘ㄱ대위’가 생기지 않도록 환부를 확실히 도려내는 과정이 필요하다. 고인의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김민문정 한국여성민우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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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탄생한 국민개병제가 위협받고 있다.‘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실종이 국민개병제를 좀먹고 있다.

문제의 중심에 합법적 병역면탈이 있다. 병역면탈의 경우 일부 특권층의 전유물임을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2010년 천안함 사태 때 청와대 지하벙커 상황실에 모인 참석자 대부분이 병역면제자란 사실에 놀란 적이 있다. 위기를 관리할 핵심 인사들이 그러하니 과연 누가 전선을 제대로 지킬 것인가.

그런데 병역면탈은 사회 전반의 병폐다. 군 면제자들은 ‘신의 자식’으로 불린다. 지금도 지도층의 병역문제는 인사청문회마다 단골 메뉴라 국민개병제는 가히 위기 수준이다.

이것이 대한민국의 현주소다. 그렇다면 우리 군 내부는 어떤가. 오십보 백보다. 왜 그런가. 병사들을 ‘군복 입은 시민’으로 대하자는 인식이 낮아 그렇다. 그저 졸(卒) 개념으로 보기 때문이다.

누구보다 존경받아야 할 병사들을 ‘파트너’로 인식하지 못한 결과다. 군 스스로 국민개병제의 숭고한 정신을 훼손하고 있다.

서울 중구 세종대로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군대 내 인권보장을 위한 공동행동' 발족 기자회견에서 2011년 육군 훈련소에서 급성 뇌수막염으로 숨진 노우빈 훈련병의 어머니 공복순 씨가 발언하고 있다. (출처 : 경향DB)


혁신이 필요한 시점이다. 병사들에 대한 군내 예우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의료체계의 혁신도 시급하다. 군 병원의 접근성이 좋은데도 간부들은 수준높은 민간병원을 선호한다. 선택해 치료받을 수 있는 건강보험 덕분이다. 그러니 군 의료시설의 개선과 함께 병사들도 건강보험 혜택을 누릴 수 있게 법제화를 서둘러야 한다. 예산 타령만 할 문제가 아니지 않은가.

현충원 묘역 문제는 어떤가. 국립현충원은 계급별로 묘역을 구분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병사묘역이 낮은 곳에 자리하고, 기별 면적도 작다. 이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살펴보니 세계 어느 나라에도 이런 식은 없다. 그러니 동일한 묘역, 동일한 묘비 아래 이들을 공정히 잘 모셔야 한다.

국외 영주권자의 군복무 또한 공정해야 한다. 이들의 군 복무는 적극 권장하고 환영할 일이나, 대도시 부대 등 본인이 원하는 곳으로 배치하는 것은 문제다. 불공정한 제도적 특혜는 최전방 근무를 자원한 영주권자들의 명예심을 훼손하고, 군의 결속력을 해친다.

군 내외 사정이 이러한데도 병역면탈 궁리나 하고 모병제 운운하는 사람들은 이제 염치없음을 알아야 한다.

군도 밖을 탓하지 말고 스스로 혁신해 나가야 한다 군 복무는 분단국 구성원의 의무이자 공정한 원칙임을 망각해선 안된다.

천일양병(千日養兵) 일일용병(一日用兵)이란 병가의 가르침을 새삼 되새길 때다. 국민개병제의 생명인 공정성의 원칙이 훼손되지 않도록 눈을 부릅뜨고 감시할 일이다.


고성윤 | 군사평론가·전 국방연구원 현안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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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군대

우리 헌법은 대통령을 국군의 통수권자로 규정한다. 대통령은 군인 아닌 민간인이며, 군에 대한 문민통제는 민주주의의 기본이다. 그러나 식민지, 분단과 전쟁, 장기간의 군사독재 탓에 우리는 ‘별짜리’와 그 출신이 군에 관한 주요 결정을 사실상 독점하는 심각한 폐해에 대해 여전히 둔감하다.

전쟁에 대비하는 특수조직이니만큼 문민통제가 직업군인의 ‘전문성’을 존중하는 것은 당연하다. 1993년 출범 직후 김영삼 대통령은 육군의 사조직 ‘하나회’ 청산을 단숨에 해치우면서 군 혁신의 장기적인 전망과 계획 수립이라는 후속조치에는 소홀했다. 이전에는 상상하기 힘든 응당한 조치였지만, 새 시대에 부응할 문민통제의 모범 사례는 아니었던 셈이다.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를 고려할 때, 튼튼한 상비군은 평화 유지를 위해 필수적이다. 그렇게 믿음직한 군대를 위한 문민통제의 절실함은 최근 잇달아 터진 사고들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벌어진 사고 자체도 중대하지만, 하나같이 그 실상을 왜곡하거나 은폐하려 들었다는 점이 정말 심각하다. 이렇게 불투명한 군대는 무능하고 부패한 지휘관들의 밥줄일 뿐이지 국민과 나라를 지키는 방패가 될 리 없다.

이명박 정부와 현 정부의 ‘역주행’을 7년째 겪으며 우리 사회가 어두운 과거를 확실하게 극복하지 못했다는 사실 하나는 명백해졌다. 그래서 사반세기가 넘은 고 리영희 선생의 옛 칼럼은 여전히 새롭다. “6·25전쟁의 첫 달부터 최전방에서 3년 반, 후방에서 3년 반, 합계 꼬박 7년을 보병장교로 지낸 나는 대한민국 군대의 부패와 부정이라면 웬만한 일로는 놀라지도 않는다. 그렇게 무딘 감각인데도 이른바 ‘제5공화국’ 8년 동안에 대한민국 군대에서 군기사고와 안전사고로 자그마치 6393명이 죽었다니 대경실색하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은 내가 아는 옛 보병 편성으로 3개 연대가 훨씬 넘는 병력이다. 1개 사단의 손실이다. 끔찍한 일이다.”(한겨레신문 1988년 10월9일자)

이 중 자살자 2254명은 당시 민간 동년배 자살률의 20배를 넘는 수치다. 반면, 최근 10년간 군내 자살률은 (약간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지만) 민간의 동년배 자살률보다도 낮고 절대숫자도 크게 줄었다. 이 대조적인 수치는, 과거보다 우리 군이 나아진 면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얼마나 야만적인 시대를 거쳐 우리가 오늘에 이르렀는지를 더 실감나게 한다. 축소와 은폐를 일삼던 그 시절에 자살자 중 피살자는 몇 명이나 될는지.

윤모 일병 사건 당시 윤 일병의 사인이 구타인 근거를 제기한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 (출처 : 경향DB)


5공 치하의 군대에서 20대를 보낸 이는 지금 대략 40대 후반에서 60대 초반이다. 아직 현역이라면 장군이든 부사관이든 30년 안팎을 복무한 핵심 간부들이다. 이들은 과연 우리 사회의 민주화를 얼마나 진심으로 받아들였을까. 역대 정부는 이들이 역사적 변화에 적응할 여건들을 제대로 마련해주었을까. 문민통제하의 깊이있는 조사 연구와 정책보고만이 대답할 수 있다.

문민통제는 직업군인의 명예와 자긍심을 살리는 길이다. 강한 군대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군의 인사가 투명하고 공정해야 하며, 그것은 정책의 일관성을 지닌 원칙있는 문민통제가 직업군인의 소명의식, 경험 및 전문적 식견과 조화를 이룰 때 가능하다. 그러나 사이버사령부의 대선 개입이 보여주듯이 (군 출신이 요직을 차지한) 현 정권과 군 지휘부에 문민통제는 남의 얘기다. 이런 현실을 빨리 교정하지 못할 경우 우리 군대는 전쟁이 터지면 제 역할을 다할 수 없다.

문민통제만이 군의 관성과 기득권을 타파하고 시대에 맞게 군을 발전시킬 수 있다. 참된 국방개혁의 출발점은 특히 육군의 저항이 심한 병력 감축이다.

5공 시절 50%선이던 징병 대상자 현역 판정비율이 현재 90%를 넘겼듯이, 군복무가 어려운 젊은이까지 마구 징집함으로써 ‘관심병사’를 양산하는 낡은 체제의 시효는 끝났다. 당연히 간부 규모도 줄이면서 질을 높여야 군을 정예화할 수 있다. 그래야 연줄 있는 고급장교는 전역 후에 군수산업 등 좋은 자리에 취직하지만 부사관 출신 등 다수는 생활고에 시달리며 소외를 겪는 모순을 피할 수 있다.


김명환 | 서울대 교수·영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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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까지도 군대에 끌려가는 꿈을 꾸었다. 까맣게 잊었다고 믿은 중대장이 어제 만난 사람처럼 생생하게 내 앞에 나타나 네 전역은 행정 오류였으니 다시 입대해야 한다며 나를 데리고 갔다. 나는 재입대가 얼마나 부당한지를 항의했으나 희한하게도 그런 꿈을 꿀 때면 어디에 항의해야 할지조차 알지 못했다. 군대 이야기만큼 하고 싶지 않은 이야기가 또 없으나 나는 이 글에서 사소한 사연 하나를 풀어 볼 생각이다.

나는 강원도 철원에서 복무했다. 당시 복무기간은 26개월이었고 또래의 친구들보다 서너 해 늦게 입대했다. 훈련병 시절이 끝나고 부대를 배치받았다. 신병 생활은 고달팠다. 선임병들이 군기를 잡는다는 명목으로 일상적으로 폭언을 퍼붓고 얼차려를 비롯해 수없이 많은 행동과 생활의 제약을 가한 탓이었다. 계급장 떼고 맞짱 뜨고 싶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러나 또한 나는 그들의 일상적인 불행을 목격했다. 어떤 이는 축구를 하다 정강이뼈가 부러져 영원히 그 다리를 절게 되었고 어떤 이는 내 눈앞에서 갑자기 넘어진 취사장 철문에 팔뚝 살갗이 해부도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형태로 벗겨지기도 했다. 피를 뚝뚝 흘리는 그이의 팔뚝을 잡고 의무대로 달려가던 순간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뿐이랴. 휴가를 나갔다가 복귀하지 않아 체포되어 영창에 간 이도 있었고 온몸을 유리조각으로 자해한 이도 있었다. 나는 말라리아에 걸려 이송되었다. 처음에는 열이 오르락내리락하는 터라 단순한 몸살로 여기기도 했다. 대대 의무실에 한동안 입실해 있다가 사단 의무대로 혈액검사를 받으러 간 뒤에야 말라리아 판정을 받았다. 정신질환을 앓는 병사들, 결핵 환자들과 함께 격리병동에 입원한 채 병실 창밖으로 내리는 봄비를 보았다. 오한이 찾아온 뒤 체온이 40도를 넘어가면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팠고 온몸에 멍이 든 것처럼 욱신거렸다. 밤마다 정신질환을 앓는 병사들의 병실에서 들려오는 기이한 울음을 들으며 뒤척였다. 설령 저 신음 가운데 고된 군생활을 벗어나기 위해 거짓으로 그러는 병사가 있다 해도 노여움이 생기지 않을 만큼 속 깊은 울음들이었다. 그럴 때 드는 생각은 과연 내가 살아서 이 컴컴한 암흑의 시기를 빠져나갈 수 있느냐였다. 지금 이 순간 군 복무 중인 청년들도 그런 두려움과 공포를 감당하고 있을 것이다.

말라리아를 치료하고 소속 부대로 복귀한 나는 뜻밖에도 고향집에서 연락이 왔다는 전갈을 받았다. 주말에 한 번씩 전화를 하던 녀석인데 갑자기 몇 주 동안 소식이 끊겨 불안했던 아버지가 부대로 전화를 했던 거였다. 워낙 우리 부자는 소 닭 보듯 하는 사이인지라 서로에게 애정을 품었다 해도 표현해 본 적이 없을뿐더러 그걸 표현해야 하는 건지도 몰랐다는 게 정직한 고백일 것이다. 한마디로 아버지는 목석 같은 구석이 있었다. 그런 아버지가 직접 부대로 전화를 걸어 말라리아에 걸려 이송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소대장에게 왜 알려주지 않았느냐면서 불같이 화를 냈더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막사 뒤편 야외화장실에 처박혀 조금 울었던 것도 같다. 세상과 나를 이어주는 가느다란 끈 하나가 여전히 내게 있다는 위로를 받았다. 어느 부모라고 다를까. 하물며 자식이 군대에서 싸늘한 시체가 되어 돌아왔다면 그이가 얼마나 고통스러울지 짐작조차 할 수 없다.

윤 일병이 사망한 경기도 연천군 28사단 포병부대의 내무반옆 공중전화 박스에 군대내 언어폭력 근절을 알리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출처 : 경향DB)


병사 개개인의 인권의식이 부족해서 이런 사건이 되풀이된다고 믿는 건 순진하거나 음흉하거나 둘 중의 하나이다. 우리가 사는 이 사회가 민주주의를 몰라서 독재가 횡행할 수 있는 게 아니듯이 군대라는 울타리 안에서 일어나는 비인간적인 사건들은 군대라는 제도, 조직의 비인간성을 반영한다. 이런 사건이 터질 때마다 사건의 진상을 축소·은폐하고 왜곡하려는 시도가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바로 그 증거이다. 군대에 다녀온 사람이라면 종종 이런 말을 듣는다. 너도 이제 진짜 사내가 되었구나. 감히 말하건대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은 신뢰할 필요가 없다.


손홍규 |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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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이후 100일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자식을 잃은 부모들은 밥을 굶는다. 친구를 잃은 아이들은 뙤약볕 아래 행진하였다. 그래도 ‘이만하면 됐다’며 ‘일상으로 돌아가자’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돌아온 일상에서 우리를 기다린 악마는 바로 윤 일병 사망사건이 드러낸 군대 내 병폐였다. 세월호의 적폐 앞에 무기력하게 눈물을 흘려야 했던 이 시대의 부모들은 군대 내 병폐의 악마 앞에 다시금 가슴을 쓸어내려야 하는 일상이 전개되고 있다.

민주국가의 군대는 주권을 수호하는 최후의 보루다. 국민은 군대를 무장시킨다. 국가안보의 최후 수단으로 무력을 사용할 수 있게 허락한다. 국민의 군대는 국가 안보의 처음이자 끝이다. 적대적 봉쇄와 협력적 포용을 해야 하는 야누스적인 북한과 대면하고 있는 우리에게 군대는 소중한 재산이다. 군 복무가 개인의 인생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믿음으로 국민은 군대에 복무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그러나 이 군대에서 있어서는 안될 일들이 벌어진다. 선임병들이 후임병을 집단으로 구타하고 때로는 죽음으로 내몬다. 복무기간 내내 집단 따돌림을 당한 병사는 총기를 난사하여 전우들을 사살한다. 술에 취한 상관은 여군에게 성폭력을 행사한다. 그리고 군 지휘부는 피해자와 가족들에게 ‘가만히 있으라’고 하며 폐악을 치부로 여기고 숨기려 한다. 지난 10년간 771명의 장병이 자살하였다. 군대 내 전체 사망자의 61.4%를 차지한다. 이중 군병원 냉동고에 191기의 군인들이 안치되어 있다. 이들 대부분이 길게는 십수년째 사실관계가 규명되지 않은 “억울한 죽음”이라고 한다. 군에 자식을 보낸 부모는 피눈물을 흘린다.

윤 일병의 사망은 군내부의 폭행과 집단 따돌림이라는 적폐만을 고발하는 것이 아니다. “때려도 된다”는 기형의 집단문화와 함께 “입 닫고 있으라”는 군지도부의 축소와 은폐라는 군조직의 못된 생리를 고발한다. 최근 몇 년간 굵직한 군사고를 돌아보면 자명해진다. 2012년 10월 북한군 병사가 철책을 넘어 우리군 초소 막사의 유리창을 두드리며 귀순의사를 밝혔다. 일명 “노크 귀순” 사건이다. 당시 군은 CCTV로 북한군의 귀순을 처음부터 확인했다고 발표했지만 결국 거짓으로 판명되었다. 2013년 여군 오 대위는 상관의 지속적인 성추행을 못 이겨 자살하였으나 가해자는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지난 6월 임 병장 총기난사 사고에서 군은 체포과정 중 교전이 있었다고 발표했으나, 교전은 없었고 오히려 오인사고로 인해 병사가 사망하였다는 것이 밝혀졌다. 이번 윤 일병 사망사건 역시 은폐와 축소의 연속선상에 있다.

임 병장 사건 당시 군 당국의 말바꾸기 행태 (출처 : 경향DB)


병사들간 구타사건의 원인이 인성교육에 실패한 사회 교육에 있다고 한다. 그렇다 치자. 그렇다면 때리고 난 후, 자살 사건이 있고 난 후, 성폭력이 있고 난 후, 군 지휘부가 보여준 은폐와 축소의 못된 관행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군 지휘부의 은폐와 보고 누락은 누구와 무엇 때문에 그런 것인가. 그렇게 중요하다는 국가안보의 수행체인 대한민국의 군대는 너무도 패악스러운 악마의 병에 통증도 모른 채 병들고 있었다.

군은 보안이 생명인 조직이다. 그 보안의 목적이 국가 방위에 연관되어 있을 때 더더욱 그렇다. 그러나 군이 인사과실을 피하기 위해 일단 숨기고 보자는 조직의 악습을 보안과 연결시키는 동안 국민의 신뢰를 잃고 궁극적으로 국가안보는 군에 의해 악화된다. 우리 군이 아무리 세계 최고의 동맹과 최신 무기를 보유하고 있다 하더라도 신뢰할 수 없는 군을 국민이 지지하겠는가.

안보와 보안이라는 이름으로 모든 것을 닫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부조리에 의해 우리 병사가 죽고 다치는 것은 왜 그랬는지 공개해야 한다. 그래야 군이 산다. 그러나 군 상부의 보고 누락과 사건 축소는 국민의 신뢰를 침해할 뿐만 아니라 때려도 된다는 악마의 규범을 양성하는 적폐적 관행을 초래한다. 군의 치밀한 조직력이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는 노력을 보이지 않는다면 임무를 묵묵히 수행하는 장병들의 헌신적 명예를 배신하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안보는 위태로워진다는 사실을 알아야 할 것이다. 국민 없이 군은 존재할 수 없다.


최종건 | 연세대 교수·국제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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