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예처럼 일했다는 공관병 때문에 다시 한국군의 존재 이유와 기능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모 기관과의 공동연구로, 군 복무 중인 청년부터 월남전 참전 용사까지, 6개월 공익근무요원 출신부터 전방 특수부대 출신까지 열댓명의 남자들과 ‘군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어보았다.

경험의 개인차가 무척 크지만, 대부분의 남자들은 ‘그래도’ 대한민국 군대의 존재 가치에 대해 인정했다. 군대 경험이 자기 생애에서 긍정적 기능을 했고, 후배나 아들도 군대 가는 게 좋겠다고 말했다. 작전권 문제는 물론 한국군의 온갖 적폐와 말도 안되는 가혹행위·인권침해를 앎에도 말이다. 그래서 ‘그래도’를 좀 더 파고드니 그런 답은 역설이나 일종의 결과론이었다. 무척 괴롭고 힘들었지만, 결과적으로 군대는 가족과 학교밖에 모르던 청년에게 팔도의 온갖 사람들을 만나게 하여 ‘사회성’을 기르게 하고, 짧은(?) 2~3년 동안 평생 잊지 못할 경험을 하게 했다는 것이다. 과연 이 시간이 해외여행이나 사회봉사를 그만큼 하는 것보다 유의미했을까?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세상의 허다한 ‘군대 이야기’를 종합해볼 때 한국군의 3대 폐단은 ‘삽질’, 부패 그리고 폭력이다. 셋 중에서 뭣이 더 중한지, 도대체 무엇부터 ‘시정’하자 할지 모르겠다. 다 너무나 심각하고 시급하기 때문이다.

‘삽질’은 무능과 무의미의 비유어다. 군대 가면 ‘나라를 지킨다’고? 추상적으로는 그렇다고 할 수 있다. 병사들은 분명 들판을 뛰고 바다를 헤엄치며 전쟁연습을 하기도 하고, 무기 다루는 법과 ‘적’을 살상하는 방법을 배우기도 한다. 그러나 왠지 공허하다. 그리고 그런 시간보다 훨씬 많은 무의미한 시간이 있다. 군생활의 상당 부분은 그냥 병사들이 거기 있기 때문에 행해진다. 60만명의 젊은이들이 모여서 잡초 제거, 평토, 제식, 점호, 관물대 정리, 다림질 따위를 열심히 하면 ‘나라가 지켜’지나? 물론 현실에 맞지 않는 이념·안보교육도 ‘삽질’에 해당한다. ‘삽질’의 본질은 군의 낡거나 잘못된 시스템과 무능·부패한 일부 장교·장성 집단일 것이다. 이를 보통 국민의 아들들이 무임금과 가혹행위로 벌충하는 것이 ‘국방의 의무’로 돼 있다. 그런 국방의 개념 자체에 문제 있는 거 아닌가?

부패는 더 말할 필요도 없는 방산비리 같은 일들이다. 나라가 가난했을 때는 군수나 인사비리가 다반사였다 하나, 지금은 미국의 글로벌 대기업 무기상들과 거래하는 장성들이 부패의 주역인 모양이다. 많은 남성들이 지적하듯 왜 북한보다 수십배의 국방예산을 수십년간 쓰고도 왜 ‘안보위기’에 시달려야 하나? 이 또한 ‘큰 개념’이 잘못된 탓일 것이다.

마지막으로 폭력이다. 물론 모든 군대는 존재 자체가 폭력이다. 그런데 어떤 군대의 폭력은 적을 향해 있지 않고, 자기 병사들이나 여군 그리고 민간인들을 향해 있으니 문제다. 대한민국 군대는 어떤가? 근래 들은 군폭력 이야기 중 모 특수부대 출신에게 들은 것이 가장 끔찍했다. 고참이 공개적으로 후임의 성기를 만지거나 때리고 몸의 다른 부위를 핥거나 하는 ‘장난’은 물론 일대일 상황에서의 성폭력이 비일비재했다는 것이다. 또한 그렇게 상관·선임에 의해서 수시로 저질러지는 성희롱·성폭력이, 폭로도 시정도 될 수 없이 은폐되고 마치 ‘전통’처럼 대물림되는 강력한 구조가 2000년대까지 있었다는 것이다(지금은 나아졌으리라 믿는다).

많은 희생과 노력이 있었는데도 왜 군 인권은 근본적으로 나아지지 못했을까? 여전히 군내 자살 장병과 성폭력 피해자들이 줄어들지 않는 이유는 뭘까?

전방에서 일병으로 근무하는 한 젊은 친구를 만나니 군대 간 지 1년 만에 놀랍게 성숙해졌다. 한눈에 봐도 몸에 근육이 붙었고, 마음에도 근육이 붙은 듯 공부와 자신의 미래에 관한 성숙한 걱정도 한다. 요즘은 시간 날 때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으려 한다고도 했다. 이전에는 모두 없었던 일이라니 대견스럽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이는 20대의 어느 시기를 병영에서 보내는 보통의 청년들에게 (거의 저절로) 일어나는 변화이기도 하다. 이러할진대 한국군은 이 시대에 무엇이어야 하며, 수십만의 병사들은 어떤 존재여야 하나? 근본적 성찰과 개혁이 필요하다.

민간 전문가들과 시민단체, 그리고 여성들도 참여하는 개혁 프로그램을 통해 예산구조, 병영문화와 인권, 교육과 생활의 체계를 재정립해야 한다. 군대가 나라에 진정 필요하고 젊은이들의 삶에 도움이 되는 조직으로 변해야 한다. 될 때까지, ‘개혁’으로 정말 ‘빡세게’ 군을 굴려야 하겠지만, 군개혁은 단지 군의 문제만이 아니다.

<천정환 성균관대 교수·국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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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