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부터 기초연금이 20만원에서 2600원 오른다. 소득세 연말정산으로 홍역을 치르고, 이달에 건강보험료 1년치 정산까지 해야 하는 국민들에게 모처럼 좋은 소식이다. 하지만 나는 반갑기보다 마음이 무겁다. 작년 기초연금법이 제정될 때 가졌던 우려가 현실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2600원 인상은 기초연금이 도입된 후 첫 자연인상 조치의 결과로 기존 20만원에 작년 소비자물가 상승률 1.3%가 반영된 금액이다. 그런데 기초연금의 전신인 기초노령연금은 당해연도 국민연금 가입자 평균소득(A값)에 연동돼 올랐다. 보통 소득 증가율은 물가 상승률보다 높다. 올해도 가입자 평균소득 증가율은 3.2%로 물가 상승률보다 높다. 만약 기존 방식이었다면 기초연금액이 6400원 올라야 하지만 2600원 인상에 그친 이유이다.

물가연동은 예금에서 복리 효과처럼 시간이 흐를수록 격차를 크게 만든다. 설상가상으로 최근 한국은행이 내놓은 올해 물가 상승률 전망치는 0.9%이다. 내년에는 기초연금 인상액이 더 작아진다는 이야기다. 정부 장기재정전망협의회 자료에 따르면, 2011~2040년 물가 상승률은 소득 증가율에 비해 약 3%포인트 낮다. 13년 후인 2028년에는 현재 가격 기준으로 소득연동이라면 40만원이어야 할 기초연금이 20만원으로 반토막날 운명이다.

이는 작년 기초연금법이 국회에서 통과될 때 예견되었던 일이다. 애초 박근혜 후보의 기초연금 공약에 물가연동은 없었다. 오히려 공약집은 기존대로 기초연금을 소득과 연동한다고 분명히 밝히고 있다. 이후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의 기초연금 공약 재검토 내용에도, 국민행복연금위원회가 다룬 수정안 어디에도 물가연동은 없었다. 심지어 2008년 기초노령연금이 도입된 이후 후속 개혁을 위해 국회에서 연금특위가 가동되었지만 여기서도 물가연동 이야기는 나오지 않았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는 국민행복연금위원회 논의를 참고해 기초연금법안을 국회에 제출하면서 느닷없이 소득연동을 물가연동으로 바꿔치기했다.

기초연금의 물가연동은 미래 연금액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는 사안이다. 장기적으로 보면, 논란의 중심에 있었던 ‘국민연금 연계 감액’보다 기초연금에 타격을 주는 독소조항이다. 하지만 작년 5월 국회에서 기초연금법이 순식간에 의결되면서 이 문제가 제대로 심의되지 못했다. 정부는 처음에 ‘물가연동’으로 입법안을 예고했다. 하지만 이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자 물가와 연동해 인상하되 ‘보건복지부 장관이 5년마다 물가, 노인 생활수준, 국민연금 가입자 평균소득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기초연금액을 조정’한다는 추가 문구로 야당을 무마했다. 생활수준과 소득이 5년 만에 크게 변하는 게 아니고, 예산 지출 추세를 감안할 때 매년 물가만큼 오르던 기초연금액이 5년째라고 크게 오르거나 내리기도 어렵다. 결국 정부 보완책은 5년마다 미세 조정을 거쳐 다시 물가를 반영하는 ‘사실상 물가연동’에 다름 아니다. 굳이 정부가 5년 주기 조정을 내세우면, 이걸 수용하더라도 최소한 매년 인상 기준으로 소득연동은 유지해야 했건만 국회는 무기력했다.

줬다가 빼앗는 노인 기초생활수급비 (출처 : 경향DB)


기초연금법의 졸속 심의는 ‘줬다 뺏는 기초연금’ 문제도 방치했다. 정부는 기초생활수급 노인도 기초연금 20만원을 받는다고 홍보해 놓고 기초생활보장법 시행령을 근거로 기초연금을 도로 빼앗고 있다. 기초생활수급 노인들도 이달부터 20만2600원을 받지만 다음달 같은 금액을 생계급여에서 공제당한다. 작년 가을 최경환 부총리는 노인복지관 방문에서 이 질문을 받자 “개선하겠다”고 약속했고, 지난 2월 이완구 국무총리도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보완 대책을 검토하겠다”고 답변했건만 후속 논의 소식은 전혀 들리지 않는다.

공무원연금 개혁 대응 과정에서 노동조합과 시민사회는 공적연금 강화를 제안하고 있다. 핵심 내용은 국민연금 상향이다. 보장성 원리에서 급여율 인상은 바람직한 일이지만 재정 수단이 동반될 때만 현실적 대안일 수 있다. 사실상 미래 세대에게 재정 책임을 넘기는 방안보다는, 어떤 방식이든 현재 세대가 재원을 조달하고 노동시장 불안정에 따른 연금 사각지대까지 해소할 수 있는 기초연금 역할 확장이 공적연금 강화의 중심이다. 기초연금을 온전한 보편복지로 만드는 일에 힘을 더 쏟아야 한다. 물가연동, 줬다 뺏기, 국민연금 연계, 이 세 가지를 해결하는 ‘기초연금 제자리’ 운동을 펴자.


오건호 |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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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서울역 근방 쪽방촌에서 어르신들을 만났다. 당사자 목소리를 모으는 복지시민단체 활동으로 나선 거지만 마음이 무겁다. 기초연금을 받은 만큼 수급비가 깎인다는 이야기를 믿으려 하지 않으신다. 더 설명을 듣고 나서야 이렇게 힘없는 노인들을 외면할 수 있느냐며 통탄하신다. 다른 지역을 다녀온 동료 경험도 비슷하다. 기초생활 수급 노인 대부분이 기초연금이 오른 만큼 생계급여가 준다는 사실을 모르고 계신다.

오늘은 40만명의 기초생활 수급 노인에게 기초연금을 ‘줬다 뺏는’ 날이다. 생계급여(주거급여 포함) 지급일인 오늘 20일, 독거노인의 경우 7월에 약 39만원을 받았지만 이번 달에는 29만원만 입금된다. 지난달에 기초노령연금이 기초연금으로 바뀌면서 10만원에서 20만원으로 인상된 만큼 생계급여가 공제된 것이다. 많은 어르신들이 통장을 확인하고 왜 수급비가 덜 들어왔느냐며 주민센터에 문의하실 거고 지난달 기초연금을 받았으니 그러한 것이라는 답을 듣고 황당해하고 끝내 좌절하실 거다. 노인빈곤을 완화하기 위해 도입했다는 기초연금이 오히려 가장 가난한 노인을 울리고 있다.

기초생활급여에서 기초연금 금액이 빠지게 된 김호태 씨가 서울 동자동 쪽방촌 계단을 내려오고 있다. (출처 : 경향DB)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생긴 것일까? 기초노령연금이 도입되기 전인 2007년으로 돌아가 보자. 당시 기초생활 수급 노인은 5만원가량의 경로연금과 월 1만~2만원의 교통수당을 받았다. 생계급여와 별도로 총 6만~7만원의 현금수당이 따로 존재했다. 2008년 약 8만원 수준의 기초노령연금이 도입되면서 경로연금과 교통수당이 폐지되었다. 기존 현금수당이 기초노령연금으로 통합되는 모양새다. 일반 노인은 새로 기초노령연금을 얻게 되었지만 기초생활 수급 노인에게는 기존 현금수당이 사실상 기초노령연금으로 이름만 바뀌어 지급되는 것이기에 추가 혜택은 거의 없는 제도 변화였다.

그런데 기초노령연금 시행 과정에서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졌다. 이전에 경로연금이 생계급여와 별도로 지급되었으므로 기초노령연금도 그러해야 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는 기초노령연금 일부액을 생계급여에서 공제하더니 2011년 들어 전액을 생계급여에서 삭감했다. 기초노령연금만큼 생계급여가 줄어버리면서 기존에 받았던 경로연금, 교통수당이 사라져버린 꼴이 되었다. 일반 노인은 기초노령연금 혜택을 누리는 반면 기초생활 수급 노인들은 오히려 기존 현금수당만 잃었으니 기초노령연금 도입이 오히려 손해로 귀결되었다.

당시 이 일은 제대로 알려지지 않고 진행되었다. 기초생활 수급 노인들은 사회적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처지라 항의하지 못했고, 생계급여 구조가 복잡해 자초지종을 충분히 이해하지도 못했다. 전문가 집단이나 시민사회도 그다지 주목하지 못했다. 이명박 정부는 분명한 법령 근거도 없이 생계급여를 공제한 후 뒤늦게 2011년 9월 ‘기초노령연금액이 수급자의 소득으로 산정되고 있는 현실을 고려하여 기초연금액을 소득인정액으로 포함’하도록 기초생활보장법 시행령을 개정했다. 생계급여가 최저생계비와 소득인정액의 차액을 지급하는 보충원리에 토대를 두고 있는데 기초노령연금도 노인의 소득이므로 그만큼을 차감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경로연금, 교통수당 때는 없던 논리가 갑자기 기초노령연금에서 등장해 빈곤 노인의 복지를 일방적으로 빼앗아갔다.

그래서 ‘모든 노인에게 20만원을 드리겠다’는 박근혜 후보의 기초연금 공약이 기초생활 수급 노인에게는 대단한 희망이었다. 5월에 국회를 통과한 기초연금법에도 기초생활 수급 노인에게는 20만원 전액을 준다는 내용이 담겨 있고 보건복지부는 이를 보도자료로 알렸다. 당사자 노인 누구도 가장 가난한 자신들이 20만원 권리에서 배제될 것이라 의심하지 않았다. 오늘은 이 기대가 무너지는 날이다. 끝내 생계급여가 삭감된다. 노인빈곤을 완화하겠다던 기초연금이 정작 가장 어려운 처지에 있는 노인을 절망으로 몰아넣고 있다. 통장에 적힌 금액을 몇 번이나 응시하고 있을 어르신, 주민센터에서 큰소리 한번 못 내고 터벅터벅 발걸음을 돌릴 어르신에게 무슨 말을 드릴 수 있을까? 기초생활보장법 대통령령에 기초연금을 생계급여와 별도로 지급한다는 문구 하나만 넣으면 해결되는 일인데 말이다. 면목이 없다.

오건호 |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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