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 홍수 속에 살고 있지만 그 크기를 쉽게 가늠할 수 없는 경우가 있다. 같은 숫자도 단위에 따라 천양지차이기 때문이다. 숫자 535 뒤에 조 단위가 붙고, 또 그 뒤에 달러가 붙으면 상상조차 하기 힘든 액수가 된다. 535조달러. 우리 돈으로 약 60경원이다. 경은 조보다 1만배나 크다. 0의 개수만 16개나 된다. 일상생활 속에서는 결코 마주칠 수 없는 숫자다. 얼마나 큰 액수인지 짐작되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이런 비교를 하면 피부에 와닿을지 모르겠다. 1400조원대인 한국 가계부채보다 429배나 많은 액수다. 18조1247억달러(2015년 기준)인 미국 국내총생산(GDP)을 기준으로 해도 약 30년치에 해당하는 돈이다. 어쨌든 이 천문학적인 535조달러의 정체가 궁금하지 않은가.

현재 인류가 처한 문제 중 하나가 기후변화에 따른 지구온난화다. 그 심각성은 시간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이를 보여주는 지표가 온실가스인 이산화탄소(CO2) 농도다. 18세기 중엽 산업혁명이 시작되기 전까지 지구의 CO2 농도는 280PPM 수준이었다. 그러다 2015년, 400PPM을 돌파했다. 400PPM은 흔히 지구온난화의 심리적 저지선으로 불린다. 끔찍한 대재앙의 전조다. 그래서 기후과학자들은 400PPM 수준인 CO2 농도를 350PPM 아래로 낮춰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난해 지구 평균기온은 산업혁명 이전보다 1.3도 높았다. 기후과학자들은 350PPM 아래로 낮춰야만 금세기 후반에 기온 상승폭을 1도로 묶을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한다. 2015년 말 체결된 파리기후변화협정은 기온 상승폭을 산업혁명 이전 기준 2도 이내로 묶는 것이 목표다. 이 추세로도 지구 기온은 엠 간빙기 때만큼이나 높아질 수 있다고 기후과학자들은 우려한다. 엠 간빙기는 13만~11만5000년 전 지구가 뜨거웠던 시기다. 지금보다 빙하가 훨씬 적고 해수면은 6~9m나 높았다.

지구온난화에 따른 대재앙을 막는 최선의 방법은 CO2 배출량을 줄이는 것이다. 석유나 석탄 같은 화석연료를 줄이는 수밖에 없다. 전 세계가 이 방법을 활용하고 있다. 화석연료를 줄이지 않고 CO2를 없애는 방법은 없을까. 이론적으로는 CO2를 제거하면 된다. 즉 대기 중에서 CO2만 추출해 밀폐시키는 것이다. 이른바 CO2 포집·저장 기술이다. 문제는 이런 기술을 개발하는 일이 쉽지 않고, 그 비용이 엄청날 것이라는 점이다.

최근 미국·프랑스·중국·영국·호주의 기후과학자들이 충격적인 논문을 발표했다. 2100년까지 대기 중 CO2 1조t을 추출해 저장하려면 535조달러가 든다는 내용이다. 논문은 유럽지구과학협회가 지난 18일 펴낸 ‘지구시스템다이내믹스’ 최신호에 실려 있다. 연구자들은 이 비용을 ‘미래세대의 부담’이라고 했다. 말하자면 535조달러는 우리가 CO2 배출량을 줄이는 노력을 하지 않았을 때 후손들이 지불해야 할 비용인 것이다. 현재 전 세계인구를 75억명으로 추산하면 1인당 부담액은 8억원이나 된다. 미래세대가 감당하기 힘든 엄청난 액수다.

어떻게 535조달러가 나왔을까. 계산법은 이렇다. CO2 배출량 증가율을 현 추세인 2%로 가정했을 때 금세기 말까지 대기 중에서 추출해야 할 CO2 양은 1조t에 이른다. 이를 모아서 지층 아래에 저장할 경우 드는 비용이 535조달러로 추산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CO2 배출량을 2021년부터 매년 6%씩 줄인다면 2100년까지 추출할 CO2 양은 1500억t으로 줄어든다. 이 가운데 1000억t은 농업과 산림정책 개선만으로도 가능하다고 한다. 그 경우 비용은 최대치의 6분의 1 수준인 89조달러로 떨어진다. 하지만 연구팀은 CO2 포집·저장 기술은 현재로서는 실현가능성이 희박하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미국 펜스테이트대학이 지난해 한 실험을 보면 추출한 CO2를 저장하는 일이 결코 쉽지 않다. 연구팀은 지층에서 자주 발견되는 사암과 석회암을 대상으로 실험을 했다. 그 결과 암석에는 구멍이 많고, 지하수는 소금을 용해시킨다는 것을 알아냈다. 이는 곧 물과 CO2가 만나면 소금물의 산성이 더 강해지고, 그 물은 바위를 녹인다는 것을 뜻한다. 다시 말하면 CO2를 지층에 저장하는 방법이 불가능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535조달러는 너무나 큰 액수이다 보니 좀처럼 믿기지 않는 게 사실이다. 당장 나와 무관하다고 여길 수 있다. 지금껏 그래왔듯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극복할 수 있으리라는 믿음이 생길지도 모른다. 하지만 결코 무시할 숫자가 아니다. 무시해서도 안된다. 우리 자식들과 후손, 인류의 미래가 걸린 문제다. 어쩌면 535조달러는 미래가 인류에게 미리 보내는 경고일지도 모른다. 535조달러짜리 청구서를 받은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자명하다. 미래세대로부터 지구를 파괴한 세대라는 말을 듣고 싶지 않다.

조찬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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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온실가스) 국외 감축은 감축 관련 국제사회 합의, 글로벌 배출권 거래시장 확대, 재원조달 방안 마련 등 전제조건 충족이 필요한 사항입니다.”

정부는 6일 ‘제1차 기후변화대응 기본계획’을 국무회의에서 확정해 발표했다. 이 중 배출전망치(BAU) 대비 11.3%의 온실가스는 국외 노력을 통해 감축해야 한다며 이같이 밝혔다. 지난해 12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에 제출한 “2030년까지 배출전망치 대비 37.0%의 온실가스를 감축하겠다”는 내용을 좀 더 구체화해 발표한 기본계획의 한 부분이다.

언뜻 보면 큰 문제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정부가 언급한 전제조건은 실체가 없는 허깨비에 가깝다. 온실가스 배출권에 대한 국제 거래시장은 구체화되기는커녕 아직 제대로 된 논의조차 이뤄지지 않은 상태다.           

온실가스 배출 시나리오별 기후변화 건강영향 누적비용 (출처: 경향신문DB)

정부는 “제반 조건 진행 현황 및 감축수단별 세부사업 발굴 결과 등을 반영해 2020년까지 온실가스 국외 감축 세부 추진 계획을 마련할 예정”이라고 설명했지만 전문가들은 “‘전제조건이 충족되지 않을 경우 11.3%는 감축하지 못한다’는 포기 선언에 가깝다”는 혹평까지 내놓고 있다. 정부가 국제사회에 약속한 온실가스 감축량 중 3분의 1은 공염불이 될 공산이 크다는 것이다.        

실제 올해 모로코 마라케시에서 열린 제22차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에서는 정부가 언급한 국제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시장에 관한 논의는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아직 자국 내에서의 감축계획 비준조차 끝나지 않은 나라들도 있기 때문이다.

국외 감축 계획을 제외하고도 이미 망신살이 뻗친 한국의 온실가스 감축정책이 앞으로 국제사회에서 어떤 취급을 당하게 될지 걱정이 커지는 이유다.

국제 기후변화 연구기관들이 지난달 초 한국을 기후변화 대응에 가장 무책임하고 게으른 국가를 뜻하는 ‘기후 악당’ 국가로 선정했다. 이것이 국제적 비난 물결의 시작이 아니길 바란다. 정부는 허상을 버리고, 국내 감축에 더 집중해야 한다.

김기범 | 정책사회부 holjjak@ 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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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부와 기상청이 한반도 기후변화 연구 동향과 전망을 정리한 ‘한국 기후변화 평가보고서 2014’를 어제 발간했다. 2011년 국립환경과학원이 발간한 ‘한국 기후변화 평가보고서 2010’에 이어 두 번째로 내놓은 한반도 기후변화 관련 연구의 집대성이다. 이 보고서는 세계 기후변화 정책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유엔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 보고서의 방식과 체제를 그대로 따르고 있다. 2010년부터 지난해까지 한반도를 대상으로 한 2500여편의 국내외 논문과 보고서의 연구 결과를 분석·평가한 것으로서 ‘한국판 IPCC 보고서’라고 할 만하다.

과학적이고 신뢰할 만한 국내 기후변화 보고서가 나온 것은 고무적인 일이지만 그 내용은 상당히 우울하다. 한반도의 기후변화가 지구 평균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음을 구체적으로 확인해주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10년간 연평균 기온 상승폭의 경우 1954~1999년에는 0.23도, 1981~2010년에는 0.41도, 2001~2010년에는 0.50도로 갈수록 가팔라지는 추세를 보였다. 해수 온도와 해수면 상승률은 전 지구 평균보다 약 2~3배, 동해에서 표층 이산화탄소 증가도 약 2배 높은 것으로 관측됐다.

‘2014년 기후변화 방재산업전’에서 태양열 집열장치를 이용해 물을 끓여 보이고 있다. (출처 : 경향DB)


기후변화 진행 속도가 빠른 만큼 그 영향도 강하게 나타날 수밖에 없다. 폭염에 의한 사망자가 서울의 경우 현재 인구 10만명당 0.7명에서 20년 후인 2036~2040년 1.5명으로 약 2배 증가할 것으로 전망됐다. 기후변화로 인해 발생하는 교통혼잡비용이 약 7조2670억원, 해수면 상승에 따른 경제적 손실이 부산 지역의 경우 1m 상승으로 3963억원에 이를 것이라는 추정도 나왔다. 기후변화가 묵시록적 경고가 아니라 바로 과학이자 현실임을 일깨우는 내용들이다.

이번 보고서 발표가 일과성 행사로만 그쳐서는 안 된다. 기후변화에 대한 경각심을 고취하고 대책을 마련하는 자료로 적극 활용돼야 한다. 정책 결정자도 관심을 갖고 참고하도록 해야 한다. 기후변화 대책을 위한 국제적 노력이나 행동과 별도로 국내의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는 대책을 세워나가는 일도 필요하다. 보고서도 지적하고 있듯이 지역별로 구체화된 기후변화 영향이나 취약성 평가가 이뤄지고 이를 바탕으로 좀 더 정밀하게 정책과 제도를 마련하는 방향으로 나아갔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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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필리핀을 방문한 프란치스코 교황은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강조하며, 12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리는 기후변화협약당사국총회(UNFCCC)에서 세계 지도자들이 결단을 내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2015년은 기후변화 대응에 있어 절체절명의 시기이다. 파리회의에서 2020년부터 시작될 개도국과 선진국이 모두 참여하는 온실가스 감축 방안에 합의해야 하는 것이다.

파리로 가는 길은 험난하다. 지난해 12월 페루 리마회의에서도 개도국과 선진국의 해묵은 기후변화 책임 공방은 계속되었다. UNFCCC는 단순 온실가스 감축 협상이 아니다. 지난 200년 동안 화석연료에 기반을 둔 세계경제를 근본적으로 전환하는 협상이다. 온실가스 감축에는 비용이 들기에 기후변화에 대한 역사적 책임을 따지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개도국들은 신기후체제 협상에 앞서 선진국의 감축기여와 재정지원을 강조하고 있다. 갈등은 계속되었고, 그 결과 리마회의에서도 지구온도 상승 ‘2도 이내 억제’ 목표를 재확인하고, 감축목표 제출방식에 합의하는 데 그쳤다. 교토의정서가 전 세계 감축총량을 결정하고, 각국의 책임과 역량에 맞게 할당하는 방식이었다면, 신기후체제는 각국이 자발적으로 결정한 기여방안(INDC)을 유엔에 제출하는 방식이다. 3월까지 제출하기로 했지만 의무사항은 아니어서 늦춰질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자발성에 기초할 경우 각국의 기여방안을 더한 총합이 파국을 피하기 위한 ‘2도 이내’ 목표를 달성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페루회의에서는 목표 감축량을 현재보다 높게 설정하되, 감축량 기준연도와 계산법, 감축계획 시간표를 각국 재량에 맡겼다. 감축에 관한 명확한 가이드라인이 제시되지 않았기에 느슨한 목표치가 나오더라도 강제할 수 없다. UNFCCC 사무국은 각국 감축안을 종합해 ‘2도 이내’ 목표달성 여부에 대한 보고서를 11월1일까지 작성하기로 했다. 하지만 보고서를 제때 작성할 수 있을지,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을 때 각국의 목표치를 조정할지, 한다면 어떻게 조정할지 모든 것이 안갯속이다. 중국을 비롯한 개도국은 내정간섭을 이유로 조정 자체에 반대하고 있다. 그 밖에도 적응대책과 2020년 이후 연간 1000억달러 이상 모금하겠다는 녹색기후기금(GCF) 조성문제도 남아있다.

10년도 기후 총회의 협상 마지막 날 칸쿤 메세의 홍보 부스는 대부분 철수했다.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 사무국 홍보 부스도 마찬가지였다. (출처 : 경향DB)


신기후체제 협상이 본격 진행되면서 한국은 진퇴양난이다. 온실가스 배출량 세계 7위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배출량 증가율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온실가스 배출량의 43%를 차지하는 발전 부문에서 석탄화력발전소 건설도 급증하고 있다. 한국이 제출할 자발적 기여방안에 세계의 관심이 쏠리는 것이 당연하다. 환경부는 감축목표 설정에 고심 중이고, 감축목표는 산업통상자원부의 에너지계획과도 맞물려 있다.

이에 더해 한국 정부는 감축량 설정방식부터 재검토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협의체(IPCC) 제5차 보고서는 글로벌 배출허용 총량방식을 제시했다. 기후변화의 파국을 막기 위한 배출허용총량은 온실가스 2900Gt(기가톤)인데, 이미 1900Gt을 배출해 버렸다. 따라서 1000Gt이 인류에게 남는 한도이다. 그 안에서 190여개 국가가 몫을 나눠야 한다. 이것은 한국이 설정한 ‘2020년 BAU(배출전망치) 대비 온실가스 30% 감축’ 방식이 적합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글로벌 배출허용 총량방식에 따라 BAU가 아닌 절대량 감축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 2015년 우리의 미래가 수술대 위에 올라있다.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은 “우리는 자연과 협상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번 파리회의에서 배수의 진을 치고, 신기후체제 협상을 마무리해야 한다. 한국사회에서도 올해만은 기후변화 협상과 대안 마련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이유진 |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연구기획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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